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85화 (86/1,336)

#085

"운이 좋군!"

천문석이 외친 순간,

지금껏 열심히 달리던 4명의 헌터들이 잇달아 픽, 픽- 쓰러졌다.

결국, 체력을 모두 소진하고 탈진해서 쓰러진 것이다.

"쟤네들은, 운이 안 좋군."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저거 도와줘야 하나?”

화물차와 마수 해일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지고 있었다.

마수 해일과 오크 무리가 뒤엉켜 싸우면서 여유가 생긴 것이다.

지금이라면 저 헌터들을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몇 번이나 마수를 막는 인간 방파제로 유용하게 써먹은 상황.

“좀 미안한데···.”

혹시 모르니 구한 후에 사고가 터지면 방패로 쓸까···?

한참 동안 고민하던 천문석이 화물차를 돌리려 할 때,

언덕 위 거점 마을에서 튀어나오는 장갑 SUV 한 대가 보였다.

구으으으응-

장갑 SUV는 엄청난 속도로 진입로를 내려오고 있었다.

화물칸에 군용 개틀링 건이 거치된 군경용 장갑 SUV다!

진입로를 빠져나온 장갑 SUV는 거침없이 핸들을 틀어 마수와 오크가 뒤엉킨 격전지 가장자리로 돌진했다.

타, 타, 타, 타-

대기를 울리는 둔중한 폭음.

화물칸에 거치된 군용 개틀링 마탄의 노란 마력광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픽, 픽 쓰러져 나가는 마수들과 오크들!

장갑 SUV는 개틀링 마탄을 쏟아부으며 격전지 가장자리를 뚫었다.

순간 개틀링 총구를 돌려 위협 사격을 넣으며 달리는 장갑 SUV.

도로를 달린 장갑 SUV는 탈진해 쓰러진 4명의 헌터 앞에서 멈춰섰다.

끼이이익-

차가 정지하는 순간.

개틀링 건을 잡고 있던 사람이 도로로 뛰어내려 탈진한 4명의 헌터를 화물칸으로 올렸다.

탈진한 헌터들을 구조한 장갑 SUV는 이번에는 천문석이 탄 화물차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구으으으응-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장갑 SUV.

개틀링 건 뒤 손을 흔드는 경찰 복장의 사람이 보였다.

눈에 익은 옷과 체형.

거점 마을의 방벽 위에서 신호탄을 쏘고, 들어오라고 손짓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은 마수와 오크 무리가 격돌하자,

그 틈에 사람들을 구하려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것이다.

천문석이 올라선 화물차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장갑 SUV.

구으으으응-

거친 군용 마력엔진음을 뚫고 탈진한 헌터들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발놈···."

"개새끼야···!"

"하- 너 이 새끼···."

...

헌터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이 쏟아질 때,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게릭이라는 탱커는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

화물칸에 널브러진 세 헌터들도 손가락 하나 들 힘도 없는지 간신히 입만 움직이고 있었다.

이때 개틀링 건을 잡은 경찰 복장의 사람이 다급히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혹시 뭐 아는 거 있나?!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마을까지 길 열 테니까. 바로 내 뒤로 화물차 붙여서 따라와! 저 전투 끝나면 위험해진다!"

천문석은 경찰 복장을 한 사람을 봤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주름진 얼굴의 60대는 될듯한 외형.

경찰 옷, 가슴에는 오각형 별 모양 경찰 배지가 달려 있었다.

일명 보안관 배지,

게이트 너머 이세계 사법 경찰관의 상징이었다.

이 경찰 옷을 입은 사람은 은퇴한 상급 헌터가 주로 맡는다는 거점 마을의 보안관이었다.

이 보안관은 목숨을 걸고 거점 마을에서 나와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죽음의 행진의 선두는 화물차다.

이 화물차가 서로 싸우는 마수와 오크에게 다가가면 구름 속 하늘고래도 이동한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화물차는 계속 달려야 했다.

이때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천문석은 보안관에게 외치고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김철수를 장갑 SUV로 피하게 하고,

혼자서 화물차를 운전해 달릴 생각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김철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식 웃었다.

"야, 나 사장이다."

"네?"

"사장이 부사장에게만 일을 맡길 수는 없잖아?"

천문석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경영학과 화석 철수형은 이런 사람이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

천문석은 화물차 지붕으로 돌아와 장갑 SUV를 탄 보안관에게 외쳤다.

"저희는 이대로 달리겠습니다! 사정이 좀 있습니다!"

"뭐!? 위험해! 오늘 밤 뭔가 이상해!"

보안관은 밝게 빛나는 구름을 가리키며 외쳤다.

“지금까지 빛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 이곳뿐만이 아니야! 지금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주위 마을 모두가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있다! 당장 우리 마을로 피해야 한다!”

보안관은 천문석을 설득하려 다급히 외쳤지만,

이 이상 현상을 일으킨 존재가 자신의 화물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다시 거절하려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화물칸에 널브러진 헌터들을 봤다.

완전히 탈진해 화물칸에 쓰러진 4명의 헌터들.

이들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습공격으로 화물차를 뺏으려 했고,

서슴없이 마탄을 갈긴 질이 나쁜 녀석들이다.

이놈들이 이대로 거점 마을로 들어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생각을 정리하고 화물칸의 헌터들을 가리켰다.

"보안관님. 저놈들 범죄자들입니다."

"뭐!?"

깜짝 놀라는 보안관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헌터들.

"어, 어? 어!"

"뭐 우리가 범죄자···!?"

"...뭐라는 거야!? 네가 우리를 굴렸잖아!!"

...

지금이 중요한 순간.

천문석은 보안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재빨리 말을 쏟아냈다.

"저기 정신을 잃은 헌터. 육체계열 각성자, 탱커입니다."

"화물차를 습격해 탈취하려고 하는걸.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여기를 보세요!"

천문석은 창으로 화물차를 때렸다.

탕-

화물차 곳곳 파손된 부위를 가리키는 창!

비처럼 쏟아진 마수에 맞고 파손된 곳들이지만,

천문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헌터들에게 뒤집어씌웠다.

"저 탱커와 싸우다가 부서진 곳입니다. 엄청난 힘에 이렇게 우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구멍 보이시죠? 저 헌터들의 마탄 사격에 뚫린 흔적입니다."

그리고 화물차 보닛 앞을 가리키는 창.

"저 앞에 범퍼는 이들이 타고 온 장갑 SUV가 추돌해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기 검은 부위 보이시죠? 장갑 SUV 페인트 흔적입니다."

은퇴했지만 상급 헌터인 보안관.

노인이 될 때까지 헌터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게이트 전쟁을 겪은 베테랑들이다.

개틀링 건을 잡은 보안관의 매서운 눈이 널브러진 헌터들을 훑었다.

보안관의 손은 군용 개틀링 건의 방아쇠에 걸려있었고.

네 명의 헌터는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개틀링 건 앞에서 움츠러들었다.

"어···."

"이게 아닌데?"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클릭스와 폴리머가 멍청한 목소리로 말할 때.

엠마가 재빨리 나섰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저···. 녀석! 우리를 버리고 혼자서 도망쳐서 간신히 쫓아갔어요! 화물차 따라 달리다가 탈진해서 쓰러진 거 보셨잖아요?!"

보안관의 미심쩍은 눈이 천문석에게 향한 순간.

천문석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여튼 범죄자 놈들 거짓말은···."

천문석은 정신을 잃은 탱커를 가리키며 단편적으로 모아들인 정보로 쐐기를 박았다.

"저 탱커의 이름은 게릭. 이놈들 전문 강도단입니다."

"하이웨이맨 작전을 주로 쓰는데. 제압 사격 후 탱커 게릭이 육체계열 각성 헌터의 육체 능력으로 차량을 탈취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순간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어떻게 알았지?"

"닥쳐! 클릭스!"

엠마가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보안관의 개틀링 건이 널브러진 헌터들에게 겨눠졌고,

탈진한 헌터들의 팔과 다리에는 천문석이 직접 헌터용 강화 수갑을 채웠다.

천문석은 악랄하게도 4명의 헌터들의 팔과 다리를 서로 엇갈려 채웠다.

"고맙다. 범죄자라니! 큰일 날뻔했다."

보안관은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힐끗 마수와 오크의 전투를 살폈다.

여전히 팽팽한 격전.

그러나 처음과 달리 전투가 소강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오랜 헌터 생활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곧 전투가 끝난다!

"진짜 마을로 안 들어갈 거야? 지금 아니면 저기 못 뚫는다. 이 뒤 거점 마을들도 몬스터가 몰려들고 있어. 지금 주위에 안전한 거점은 없다."

보안관의 걱정이 담긴 말에도.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있습니다. 이대로 달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안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운전석을 향해 외쳤다.

"바로 돌려 마을로 돌아간다!"

구으으응-

장갑 SUV가 화물차에서 떨어지는 순간 보안관은 천문석에게 외쳤다.

"고산 마을을 목표로 달려."

"네?"

"고산 마을에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다!"

보안관은 도로 앞쪽을 가리키며 천문석에게 신호탄을 던져줬다.

"이틀 전에 고산 마을로 재금 보안과 연구소의 사람들이 이동했다! 재금 보안의 전투 병력과 연구소의 마력 각성자라면! 저놈들 해결 가능할 거야! 바로 달려. 혹시 따라잡히면 그 신호탄···."

이때 보안관의 말을 끊는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름이 뭐냐?"

헌터들의 리더로 보이는 여성 헌터가 천문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닥쳐!"

쾅-

보안관의 단단한 주먹이 얼굴을 때렸으나,

여전히 이글거리는 눈으로 미동도 하지 않는 여성 헌터.

"말하면 안 돼! 이런 놈들 뒤끝이 강하다!"

보안관이 다급히 외쳤으나,

천문석은 이 헌터의 눈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이 녀석 독종이다.

들쑤시고 다니게 놔두면 크게 귀찮아질 타입이다.

그래서 천문석은 가슴을 펴고 창으로 지붕을 때리며 당당히 외쳤다.

탕-

"내 이름은 창천검 이세기다!"

"창천검. 이세기, 이세기···."

여성 헌터가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되뇔 때,

천문석은 당당히 물었다.

"넌 이름이 뭐냐?"

"엠마! 엠마 파리킨슈! 이세기 우리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다!"

엠마는 살벌한 미소를 띤 얼굴로 대답했다.

각성 헌터의 보복 예고,

보통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상황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당당히 엠마 파리킨슈의 얼굴을 응시했다.

구으으응-

그리고 장갑 SUV가 사라진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메모지를 꺼내 이름을 적었다.

엠마 파리킨슈.

육체계열 각성 탱커 게릭.

얼핏 들었던 이름 클릭스.

그리고 이들의 인상착의와 타고 이동한 장갑SUV의 정보까지!

천문석은 모든 걸 메모지에 기록하며 혀를 찼다.

쯧쯧쯧-

엠마라는 헌터 성격만 독하지,

하는 행동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창을 들고 창천검 이세기라고 외쳤는데.

이걸 바로 믿다니!

게다가 분위기에 취해서 자기 풀 네임까지 말했다.

이렇게 조심성이 없다니!

4명 중 이름을 들은 것만 3명이다.

게다가 인상착의와 장갑 SUV 정보까지 확인했다.

이 정도 정보면 이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파악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천문석은 이미 헌터 업계의 거물들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들.

그중 이 일에 제격인 사람이 생각났다!

한경석.

암살검, 한경석!

PVP, 대인전에서는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랭커!

한국에서 랭커라는 말은 곧 세계 랭커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천문석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 메모는 암살검 한경석에게 넘어가,

저 헌터들에게 뼈저린 교훈을 남겨주게 될 것이다.

악당이 조심성 없이 허술한 짓을 하면 좆된다는 교훈을!

좋은 사람들은 조심성 없이 허술해도 된다.

그러나 악당이 조심성이 없이 허술한 건 죄다.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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