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1시간 후의 비포장도로.
선두의 장갑 버스를 뒤로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장갑 버스를 따라 달리는 마차와 수레, 개조 자전거들이 만든 행렬.
장갑 버스 바로 뒤를 따라 달리는 화물차 운전석에 앉은 천문석은 주위를 돌아봤다.
역시 사람 생각은 모두 비슷하다고,
다른 이동수단을 탄 헌터들도 장갑 버스를 방패 삼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적중해서 해가 지기 30분 전인 지금까지,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만나지 않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위험한 이세계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분위기.
"이야. 네 생각이 맞나 보다. 생각보다 더 편한데?"
철수형의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로 위를 살폈다.
하나의 집단처럼 장갑 버스를 따라 달리는 화물차, 마차와 수레, 개조 자전거들.
다음 거점 마을까지는 1시간이 넘는 거리.
가는 도중에 해가 진다.
그런데도 도로 위를 달리는 이동수단들이 많았다.
이런 것이 군중심리인가?
이렇게 무리를 지어 달리니 어쩐지 이세계의 밤도 두렵지가 않았다.
"...!"
문득 뇌리에 느껴지는 껄끄러움!
적의나 살기가 아닌,
생경한 직감이 들었다!
천문석은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장소를 찾아 주위를 훑었다.
시선이 풍경을 지나갈 때.
휘이이-
바람이 불고.
싸아아아-
수풀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그리고 느껴졌다.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장소는 이미 지나친 곳이었다.
도로 뒤, 7시 방향,
바람에 물결치는 수풀 너머 평지 숲.
도토리나무 숲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머리를 긁는듯한 껄끄러움, 생경한 직감이 느껴졌다!
'뭐지? 지나갈 때는 별것이 없었는데···?"
잠시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오늘 하루 너무 순조로운 게 마음에 걸렸다.
천문석은 김철수에게 말했다.
"철수형. 운전대 좀 잡아주세요. 저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차 세우려고?"
"아뇨. 이대로 차 위로 올라갈 거니까. 형이 저 대신 운전하시면 돼요."
"야, 위험해!"
달리는 화물차 지붕에 올라가겠다는 말에 김철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천문석은 말없이 김철수의 안전벨트를 풀고,
일기일원공이 담긴 힘으로 슬쩍 끌어당겼다.
"어, 어어!"
김철수가 쑥 운전석으로 끌려와 운전대를 잡는 순간,
천문석은 부드럽게 창밖으로 빠져나가 단숨에 화물차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
"철수형. 속도 줄일 필요 없으니. 그대로 운전해요!"
천문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김철수에게 외쳤다.
"어, 어! 알았어!"
김철수는 곧 정신을 차리고 화물차를 운전하기 시작할 때,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운공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구으으응-
쿵, 쿵, 쾅-
비포장도로 위를 빠르게 이동하는 화물차.
거센 바람이 쏟아지고 비포장도로의 진동이 느껴진다.
그리고 일기일원공으로 날카로워진 감각으로 주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해가 지기 30분 전,
하늘은 석양에 붉게 물들고.
휘이이잉-
시원한 바람이 뜨거운 대기를 가르고 불어온다.
바람에 실려 오는 몬스터와 야수 냄새는 없고,
하늘에도 노을 지는 구름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위 평야에서도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서울을 떠난 후 계속 보던 풍경이다.
천문석은 껄끄러움이 느껴지던 곳으로 기감을 집중했다.
진행 방향 기준, 7시 방향.
이미 지나쳐온 도로 옆,
짧게 잘린 수풀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도토리나무 숲.
그러나 껄끄러운 직감과 달리,
기감에 걸리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기감에도 한계는 있다.
거리가 멀고 적의나 살기가 없는 상대는 기감에 잘 걸리지 않는다.
가장 확실한 확인 방법은 차를 돌려 직접 가서 확인해보는 것.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 따라 달리는 장갑 버스를 놓칠 것이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앞서 달리고 있는 장갑 버스를 봤다.
대형 길드의 장갑 버스는 화물차와 수레, 마차들이 따라가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도를 늦춰서 말이 끄는 마차와 수레가 따라올 수 있게 해줬다.
뒤를 따라 달리는 헌터들의 의도는 알지만,
대형 길드답게 일반 헌터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그렇다고 뒤처지는 것까지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천문석이 다시 고민할 때,
기감에 걸리는 게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자 보이는.
하얀 덩어리!
새하얀 덩어리가 직선에 가깝게 화물차 지붕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휘이잉-
반사적으로 쳐내려 할 때,
손에 느껴지는 폭신폭신한 감촉!
순간 쳐내지 않고 잡자,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토끼?"
어이없게도 하늘을 날아온 새하얀 덩어리는 토끼였다.
이 순간,
거센 바람 소리와 날카로운 비명이 동시에 들려왔다.
휘이이잉-
꾸에에엑-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
커다란 멧돼지가 숲에서 날아와,
앞서 달리는 장갑 버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앙-
꾸에에엑-
충돌음이 터지는 터져 나오는 푸른 섬광!
"마수!"
마수의 반발 섬광!
마수화된 멧돼지다!
꾸에에엑-
쿵, 쿵, 쿵, 쿵-
멧돼지 마수는 장갑 버스의 지붕 위를 데굴데굴 굴러 도로로 떨어져 내렸다.
도로 위를 달리는 수레 앞으로 갑자기 떨어진 멧돼지 마수!
"으엇! 이게 뭐야!?"
"으아악"
깜짝 놀란 마부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멧돼지 마수와 달리던 수레가 충돌했다!
콰아앙-
히이이잉-
꾸에에엑-
말과 멧돼지 마수가 뒤엉키고,
수레가 단숨에 뒤집혀 떨어졌다.
으아악-
캬악-
헌터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멧돼지 마수와 뒤엉킨 수레가 화물차 앞으로 다가왔다.
"으앗!"
김철수의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화물차는 급히 회전해 뒤엉킨 수레를 피해 달렸다.
이때 다시 한번 들려오는 마수의 비명!
꾸에엑-
등 뒤, 하늘에서 다시 한번 멧돼지 마수가 날아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화물차 지붕을 가로질러 조수석으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철수형! 방패! 창!"
김철수는 재빨리 몸을 돌려 창과 방패를 잡아 창으로 내밀었다.
"이걸로 뭐 하려고!?"
창과 방패를 잡은 천문석은 바로 외쳤다.
"철수형! 장갑 버스 옆! 옆으로 바짝 따라붙어요! 뒤에서! 마수 계속 날아와요!"
김철수는 바로 천문석의 의도를 파악했다.
장갑 버스를 방패 삼아 달리겠다는 것!
"뭐, 마수!? 알았다!"
김철수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화물차 액셀을 밟았다.
천문석은 방패와 창을 들고 화물칸 지붕을 달렸다.
구으으응-
엔진음이 커지고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화물차!
화물차는 속도를 올려 장갑 버스 왼쪽에 붙어 달렸다.
그러나 조금씩 뒤처지는 화물차.
갑자기 나타난 마수에 장갑 버스도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철수형! 난 걱정하지 말고 최고 속도로 올려요!"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하늘을 날아온 멧돼지 마수와 장갑 버스가 다시 충돌했다!
콰아앙-
꾸에에엑-
마수의 비명과 함께 터지는 반발 섬광!
쿠르릉-
쿵, 쿵, 쿵-
멧돼지 마수가 장갑 버스 지붕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반발 섬광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순간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놈은 화물차로 떨어진다!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리며 허공으로 창을 찔렀다.
휘잉-
창날이 허공을 꿰뚫는 순간,
터지는 금속성 폭음!
쩌어엉-
심상 공간에서 쏟아진 일기일원공의 내력,
내력이 손에서 쏟아져 창대를 타고 흘러 창날 끝에서 터져 나왔다.
파르르륵-
하늘에 펼쳐지는 붉은 술.
순간 창을 잡은 손에서 시작된 감각이 단숨에 창끝까지 확장된다!
마치 창이 손이 되는듯한 감각!
천문석은 창 날로 허공에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창끝에서 올올이 풀려나와,
허공에 그려지는 내력의 원!
내력의 원이 만들어지는 동시에,
장갑 버스 지붕을 구르던 멧돼지 마수가 화물차로 떨어져 내렸다.
쿵-
꿰에에엑-
천문석은 부드럽게 다리를 굽히며,
내력의 원으로 떨어지는 멧돼지 마수를 받았다.
창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
파바바바박-
내력의 원과 접촉하는 순간,
부러질 듯 창대가 진동하고 반발 섬광이 불꽃처럼 흩날렸다.
꾸에에엑-
으아아악-
멧돼지 마수가 울부짖을 때,
천문석은 기합을 지르며 창을 비틀어 떨어지는 멧돼지 마수의 궤도를 바꿨다.
멧돼지 마수는 달리는 화물차 옆 비포장도로에 처박혀 데굴데굴 굴렀다.
콰아아앙-
꾸에에에엑-
"으아악-!"
갑자기 운전석 옆으로 떨어진 멧돼지 마수에 깜짝 놀란 김철수의 비명.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도로 뒤쪽 노을 진 하늘을 날아오는 수많은 점!
멧돼지 마수뿐 아니라 들개, 토끼, 뿔 소, 대형 쥐 같은 마수와 동물들이 뒤섞여 날아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운전석 지붕으로 달려가 발을 굴러 신호했다.
쿵-
"들려! 말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외치는 김철수.
“"철수형! 마수들 계속 떨어집니다! 속도 절대 늦추지 말고! 바짝 붙여요! 창문 닫아요!”
"알았다!"
구으으응-
김철수가 운전하는 화물차는 장갑 버스를 따라 질주했고.
천문석은 화물차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쏟아지는 마수와 동물들을 창으로 튕겨냈다.
잘못해서 바퀴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평화롭던 비포장도로 위에,
온갖 마수와 동물들의 비명과 포효가 뒤섞여 터졌다.
카아아-
크아앙-
꿰에엑-
...
그리고 장갑 버스를 따라 달리던 수레와 마차, 개조 자전거 위로도 마수와 동물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비 오듯 쏟아지는 마수와 동물들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는 비포장도로!
꿰에엑-
콰아아앙-
수레 한 대가 땅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멧돼지 마수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타고 넘어 마차를 덮쳤다.
콰지지직-
속도가 실린 수레에 받혀 단숨에 박살 나는 마차!
으스러진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박살난 나뭇조각이 산산이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진다.
으악-
캬아악-
마차에 탄 헌터들의 비명이 터질 때,
수레와 마차가 뒤엉켜 도로 위로 미끄러졌다.
히이이잉-
마구에 매달린 채 도로 위로 나뒹구는 말들.
쾅, 콰쾅, 쾅쾅-
연이어 추돌하는 마차와 수레들
“이거 뭐야! 으아악-”
“위험해! 달려! 아니 멈춰!!”
...
서로 뒤엉켜 추돌하는 마차와 수레 위로 토끼와 들개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후드드득-
"아니, 시발! 이게 뭐야! 들개?!"
박살 난 마차에서 빠져나오다가 쏟아지는 들개에 얻어맞은 헌터.
헌터가 들개를 쳐내고 뛰어내리는 순간.
마구가 끊어진 말이 헌터를 덮쳤다.
히이이잉-
콰아앙-
발광하는 말 뒷발에 방검복이 차여 날아가는 헌터!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헌터는 엉망이 된 도로 위를 요리조리 피해 달리는 개조 자전거와 충돌했다.
"어, 어어!?"
"으어억-"
...
두 헌터가 뒤엉켜 구를 때,
장갑 SUV가 자전거를 깔아뭉개고 튀어나왔다.
구으으응-
콰지지직-
으아악-
커어억-
비포장도로 곳곳에서 수레와 마차가 뒤엉키고,
이동수단에서 튕겨 나온 헌터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이 위로 쏟아지는 동물들과 마수들의 비명!
크아아-
꿰에에엑-
캬아, 카아악-
...
순간 도로 곳곳에서 헌터들의 외침과 폭음이 들려왔다.
으아아악-
콰아앙-
"아니! 이게 뭐야!"
"앞에! 앞에 보라고!"
"거기 들어!"
"셋에 들고 빼낸다!"
타다다당-
"사선 확인!"
"야, 이 새끼야! 누가 난전에 총을 쏴!"
"총 집어넣어!"
"야, 뒤! 뒤에 봐!"
한 헌터가 뒤집힌 마차와 수레에서 동료들을 구할 때,
땅에서 몸을 일으킨 마수들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엑-
콰아앙-
멧돼지 마수의 돌진에 들이박혀 날아가는 헌터!
으아아악-
깜짝 놀란 다른 헌터가 몸을 던져 피하는 순간,
들개 무리가 미친듯이 달려와 헌터를 타고 넘어 달린다.
"어, 어어?!"
간신히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수레와 마차,
개조 자전거를 사이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들개와 마수들!
도로 위에 앞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총성!
콰아아앙-
타다다다닥-
"으악- 죽어라!"
"아, 시발! 미친 마수 새끼 으아악-!"
"총 쏘지 말라니까!"
"미친 새끼야! 숙여! 총 맞는다! 숙여!"
"방패! 방패 전열 막아!"
"야! 빠져! 도로에서 빠지라니까!"
...
사방에서 헌터들의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어떤 헌터들은 마수를 잡기 위해 무기를 들고 달려들고.
각성 헌터가 각성력을 담은 방패로 돌진하는 마수를 막는 사이,
몇몇 헌터들은 피를 철철 흘리는 다친 헌터들을 도로에서 빼냈다.
번뜩이는 마수의 반발 섬광이 도로 곳곳에서 터지고,
사선 확인이라는 외침과 함께 마탄의 섬광이 끝없이 번뜩인다.
으아악-
꿰에에에엑-
헌터의 고함과 마수의 포효가 뒤섞인 전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때 김철수가 운전하는 화물차는 질주하는 장갑 버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엄청난 속도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문석은 화물차 지붕에서 미친 듯이 창을 내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