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78화 (79/1,336)

#078

구르릉-

쿵, 쿵, 쾅-

어느새 천문석이 운전하는 화물차는 신서울 지역을 빠져나와 비포장도로 위를 달렸다.

비포장도로의 굴곡이 운전석에 그대로 전해졌지만,

예전에 택배 일을 했던 천문석은 화물차를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문득 입고 있는 강화 전투복을 살폈다.

투박한 디자인의 오래된 구형 강화 전투복.

우득-

주먹을 힘껏 쥐는 순간,

강화 전투복의 신체 보조 기능이 근육 움직임에 반응한다.

그러나 전보다 더한 딜레이!

목소리와 화면의 싱크가 맞지 않는 영화를 보는듯한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세 번째 입어보는 강화 전투복이다.

처음은 장민 대표에게 빌렸고,

두 번째는 오리온 길드 현장 면접용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은 철수형의 인맥을 통해서 빌렸다.

이렇게 새로운 강화 전투복을 입을 때마다 전투복의 품질이 떨어지고 있었다.

보통은 장비가 업그레이드될 텐데,

거꾸로 다운그레이드되고 있었다.

힐끗 철수형을 보니.

철수형은 구형 강화 전투복이 영 어색한지 몸 곳곳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김철수가 말했다.

"운전 내가 할까? 너도 좀 쉬어야지?"

"아뇨. 오늘은 제가 운전할 테니. 철수형은 강화 전투복에 적응하세요."

"이거 몇 번 입어 봤는데···. 전에 입었던 거랑 다르게, 이 강화 전투복은 어색하다. 넌 괜찮냐?"

천문석은 웃었다.

"공짜로 빌리는 건데 이 정도면 감사해야죠. 이거 못해도 몇천을 할 텐데."

그렇다. 이런 구형 강화 전투복도 몇천은 하고 일용 헌터 중에는 이런 전투복도 없이 헌터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 아무리 그래도 창고 구석에서 쓰지도 않던 구형 강화 전투복을 꺼내 주냐."

허탈하게 웃는 김철수.

오리온 길드의 직원은 길드 내 헌터가 모조리 동원 중이라 길드에 남은 장비가 없다며 창고 구석 오래된 구형 장비들을 꺼내줬다.

그래도 그 직원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미안해하면서 소총은 A급으로 챙겨주고,

주무장으로 사용할 검과 창, 방패도 두 개 빌릴 수 있었다.

문제는 마탄.

오리온 길드에서는 소총은 대여해줘도 마탄은 빌려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마탄은 소모품이고 여전히 한국에서 총기류는 특별 관리 품목이다.

대형 길드는 마탄을 많이 사용하는 만큼, 헌터부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

그래서 마탄은 김철수가 준비하기로 했다.

천문석은 김철수에게 물었다.

"철수형. 마탄은 준비됐습니까?"

"잠시만."

김철수는 운전석 뒤 공간에서 낯익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전자 봉인이 붙은 무장 박스.

김철수는 전자 봉인을 뜯어냈다.

"게이트 넘어왔으니 이제 뜯어도 되겠네. 마탄 가격 엄청나더라. 재금 중공 마탄은 가격이 너무 세서 못 사고. 라이센스 생산품으로 샀는데. 이것도 발당 15,000원이야. 우선 20발 탄창 10개 준비했다."

무장 박스 안에는 마탄이 20발씩 여유있게 채워진 헌터용 소총 탄창 10개가 들어있었다.

모두 200발의 마탄,

300만원이나 되는 금액이다.

탄창을 확인하던 김철수는 창밖을 보며 말했다.

"아마 이걸 쓸 일은 없을 거야."

천문석도 창밖을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형의 말대로 총을 사용할 일은 없어 보였다.

천문석이 탄 화물차가 달리는 비포장도로 위에는,

수레와 마차, 버스와 자동차, 장갑 SUV 그리고 개조 자전거를 탄 수많은 헌터가 있었다.

몇몇 개조 자전거는 각성 헌터가 몰고 있는 건지 말이 끄는 수레보다 빨랐다.

비포장도로 어디를 봐도 사냥 준비를 끝낸 무장한 헌터들이 보였다.

어지간한 마수나 몬스터는 나타나자마자 끝장날 것 같았다.

'그래도 무장은 해두는 게 좋겠지.'

천문석은 탄창을 확인하는 김철수에게 말했다.

"철수형. 그 뒤에 제 무장 박스 좀 열어주세요."

김철수는 전자 봉인을 뜯고 천문석의 무장 박스를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어, 이건 뭐야? 리볼버? 너 이 총 사 온 거야?"

"그 리볼버 선물 받은 겁니다. 제가 총을 살 리 없잖아요? 마탄 가격 더럽게 비싼데. 철수형. 그거 장전할 수 있겠어요?"

"잠시만."

김철수는 리볼버에 탄약을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올려 천문석에게 건넸다.

"야, 리볼버 멋지다! 뭔가 로망이 있는데?"

“이거 엄청 비싼 로망입니다.”

천문석은 웃으며 강화 전투복의 총집에 리볼버를 넣고 주머니에 탄약 상자를 넣었다.

이 리볼버 마탄 한 발의 가격이 2만원이다.

심법을 찾은 이상 어지간하면 몸으로 때우고 이 리볼버는 안 쓸 생각이었다.

이 리볼버를 빵야, 빵야 쏠 때마다 실시간으로 건물주의 꿈은 멀어지는 것이다.

천문석이 내심 결심하고 있을 때,

헌터의 목소리가 열린 창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게 정말이야!?"

문득 고개를 돌리니,

트럭에 탄 헌터들이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수를 주웠다고?"

"그렇다니까! 마수가 무력화된 채 숲에 떨어져 있어서! 마석을 뽑아내고 부산품을 바로 꺼냈어!"

"지금 우리가 가는 거기 장난 아냐. 저기 봐 대형 길드 장갑 버스도 움직이잖아?"

"맞아. 숲 곳곳에 몬스터와 마수가 떨어져서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이제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하던데?"

"그거 대박 낸 애들이 독식하려고 낸 헛소문이다. 저기 봐라. 지오 길드도 냄새를 맡고 이동 중이잖아?"

...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저 헌터들은 철수형이 말했던 이상 현상을 말하고 있었다.

철수형 말대로 신서울 주변 지역에는 엄청난 수의 헌터들이 깔리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헌터들과 같이 이동하고 있는 이상.

몬스터와 마수의 위협에 노출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철수형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었다.

문제라면 헌터들이 너무 많아서 화물차 속도가 나지 않는다는 건데···.

이건 곧 해결됐다.

신서울을 떠난 지 한 시간 후,

비포장도로 옆에 지어진 커다란 초소 건물이 보였다.

초소 건물 뒤로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고,

주차장 앞에는 문장이 새겨진 경계석이 서 있었다.

[신서울 권역 경계.]

이세계 거점도시, 신서울 권역의 경계가 나타났다.

저기가 한계점이었다.

무선 통신 한계점.

그리고 기름의 정상 연소 한계점.

...

즉, 일반적인 내연기관 차량은 저 경계 이상으로 운행할 수 없었다.

이 화물차의 진가를 확인할 순간이 왔다!

---

신서울 권역 경계가 보이자,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와 트럭, 자동차들이 줄줄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기름을 이용한 내연기관 차량은 신서울 권역 밖에서 정상 작동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경계 초소가 있는 이곳 주차장에서 이동수단을 갈아타려는 것이다.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헌터들에게 달라붙는 호객꾼들이 외침이 화물차까지 들려왔다.

"개조 산악용 자전거 수리, 대여해드립니다!"

"사냥 거점까지 10만원에 모십니다! 숙련 마부가 운행 중인 마차에요!"

"사냥 수레 장기 렌트 합니다! 1일에 10만원 3일 이상이면 할인해 드려요!"

...

터미널처럼 헌터들과 이동수단이 얽혀 복잡한 경계 지대 주차장.

헌터를 실은 마차와 수레, 자전거 그리고 마력 엔진을 장착한 장갑 SUV가 경계석 너머로 계속 출발하고 있다.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김철수를 봤다.

"이 화물차 권역 넘어갈 때 다른 조작이 필요한 겁니까?"

"아니. 그냥 바로 통과하면 된다."

"이거 연료는 뭐래요? 혹시 중간에 연료 떨어지면···."

계기판 연료 게이지 부분은 FULL 상태에서 미동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문석은 물었다.

"...잠시만."

김철수는 운전석 뒤쪽에서 커다란 통을 꺼냈다.

"이 엔진 개발한 친척 말로는 연료 떨어질 일은 없다는데. 혹시 게이지 바닥나면 연료통에 이거 넣으라더라."

철수형이 들고 있는 통속에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게 뭔데요? 휘발유 같은 건가?"

김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나고 투명한 게 겉으로 보기에는 물 같은데···. 잘 모르겠어. 개발자가 워낙 특이한 사람이라 설명을 안 해줘서."

천문석은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재금 그룹의 배송 업무를 끝마치는 거다.

마침 경계석이 가까워지며 내연기관 차량이 빠진 도로 위가 비어가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액셀을 밟고 화물차의 속도를 높였다.

부으응-

화물차는 비어있는 도로를 지나 순식간에 신서울 경계를 지나갔다.

덜컹-

순간 엔진에서 큰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엔진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달라졌다.

구으으응-

더 낮고 작아진 진동.

마치 엔진 종류가 다른 차를 탄 것처럼 느낌이 확 달라졌다.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이래서 복합엔진이라고 했구나!

구으으응-

어느새 천문석과 김철수가 탄 화물 탑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수레와 마차를 추월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말이 끄는 수레와 마차, 개조된 자전거를 탄 헌터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5시간 후, 천문석이 운전하는 화물차는 흔한 고블린 한 마리 만나지 않고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천문석은 조수석의 김철수에게 물었다.

"철수형. 오늘 일몰 시각이 어떻게 되죠?"

"오후 7시 50분."

지도를 확인하던 김철수는 바로 대답했다.

천문석은 힐끗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시간은 6시 15분.

일몰 전까지 1시간 35분이 남았다.

천문석은 주위를 둘러봤다.

비포장도로 위에 가득했던 수레와 마차, 개조 자전거의 수가 줄어든 게 눈에 띈다.

각자의 목적지인 사냥 거점으로 흩어진 것.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동수단이 도로 위에 있었고,

이 위에는 완전무장한 헌터들이 타고 있었다.

무장한 헌터들 때문인지,

지금까지 몬스터는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휘이잉-

문득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문석은 주위를 살폈다.

화물차는 이세계의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

비포장도로 좌우, 짧게 쳐낸 수풀이 보이고.

그 뒤로 드문드문 나무가 자리한 평야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평야 뒤 멀리 보이는 지평선.

바람에 평야는 물결치고, 나뭇가지가 바람을 받은 돛처럼 흔들린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위험한 이세계가 아닌 지구의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고즈넉한 저녁이었다.

천문석은 문득 웃었다.

드디어! 내 운이 트이는 건가?

이번 재금 그룹의 일은 쉽고 편하게 가고 있었다.

천문석이 내심 흐뭇하게 웃을 때,

지도를 보던 김철수가 고개를 들었다.

"이거 시간이 좀 애매한데···. 일몰 전 도착하는 마을은 여기서 40분쯤 달리면 있거든? 그런데 그다음 마을이 2시간 4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두 번째 마을까지 가려면, 해가 지고 한 시간쯤 달려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천문석은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화물차 - 첫 번째 마을 - 두 번째 마을]

화물차에서 첫 번째 마을까지는 40분.

첫 번째 마을에서 두 번째 마을은 2시간이 걸린다.

일몰은 1시간 35분 남은 상황.

첫 번째 마을에서 차를 멈추면,

대략 1시간의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손해 보게 된다.

무리해서라도 두 번째 마을까지 달리려면,

일몰 후 1시간 정도를 밤의 비포장도로 위를 달려야 한다.

이세계의 밤은 낮과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시야가 좁아지는 밤은 몬스터와 마수들의 시간이고, 사냥 위험도가 확 올라간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해가 지기 전에 안전한 거점 마을로 이동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천문석과 김철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과 상황이 달랐다.

배송 계약 완수 자체보다,

재금 그룹의 협력업체가 되는 게 더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재금 그룹의 화물을 운송하고 가산점을 받아야 한다.

출발은 경쟁 상대 누구보다 빠르게 했다.

그러나 목적지가 모두 다르므로,

경쟁 상대가 어디까지 이동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김철수를 봤다.

"철수형. 형 생각은 어때요?"

김철수는 바로 대답했다.

"네 생각은 어떤데?"

"네?"

"내가 보기에는 너 감이 아주 좋은 거 같거든. 네 생각대로 하자."

김철수는 믿음과 확신이 가득한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뭐지?

이 근거 없는 믿음은?

천문석이 내심 웃음을 삼킬 때.

구으으응-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장갑 버스 한 대가 뒤에서 나타났다.

대형 길드에서 운용하는 마력 엔진 장갑 버스.

천문석은 도로 가장자리로 화물차를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깜빡, 깜빡-

헤드라이트를 깜빡여 인사를 하고 앞으로 치고 나가는 장갑 버스.

이 순간 천문석은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장갑 버스!"

"...장갑 버스가 왜?"

반문하는 김철수에게 천문석은 바로 설명했다.

"저 장갑 버스를 따라 달리는 겁니다!"

"뭐···?"

김철수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천문석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저거 대형 길드 장갑 버스잖아요! 완전무장한 헌터들이 가득 탄! 움직이는 성채!"

천문석의 말을 듣는 순간,

김철수는 의도를 깨달았다.

장갑 버스를 방패처럼 쓰자는 말!

"캬! 이 잔머리 대마왕 같으니라고!"

카카카-

흐흐흐-

천문석과 김철수는 웃음을 터트리고,

재빨리 장갑 버스 움직이는 성벽 뒤로 따라붙었다.

천문석은 하늘을 슬쩍 봤다.

하늘의 저울이 연속된 불운으로 기울어진 저울의 수평을 맞추려는 건가?

이번 일은 아주 쉽고 편하게 끝날 것만 같았다.

운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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