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배송 당일,
재금 빌딩 지하 주차장.
김철수는 화물차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우선은 내가 운전할게. 넌 거기 대시보드 서류 좀 확인해줘."
천문석은 대시보드를 열고 서류를 확인했다.
김철수 사무실 앞으로 나온 헌터업 라이센스.
이 헌터업 라이센스에는 천문석 자신과 김철수의 이름이 사원으로 올라가 있다.
그리고 게이트 임시 출입증, 신서울과 이세계의 지도책, 재금 그룹과의 계약서까지.
필요 서류는 모두 있었다.
천문석은 김철수에서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건넸다.
"여기 출입증. 서류는 다 있네요. 철수형 짐은 다 확인했어요?"
김철수는 출입증을 받으며 열쇠와 서류철을 건네줬다.
"내가 확인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문석이 네가 다시 한번 확인해봐."
열쇠를 받은 천문석은 화물차 화물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서류철을 보며 화물을 확인했다.
화물칸 안쪽에는 대형 생수통과 쌀, 라면 같은 식료품과 조리도구.
방수 압축팩과 방수천, 침낭과 담요, 밧줄과 삽, 곡괭이 같은 도구들이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혹시 수요가 있을지 몰라 준비한 생필품과 기호품, 식료품들로 화물칸 반 정도가 차 있다.
모든 물품은 진동에 대비해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꼼꼼한 철수형의 성격대로 화물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
탁, 탁-
그래도 천문석은 서류철을 보면서 물품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고정된 상태를 다시 살핀 후 화물칸에서 내려왔다.
"철수형. 전부 확인했습니다."
"수고했어. 아직 시간 여유는 있는데. 어떻게 할까? 바로 출발할까?"
"바로 출발하죠."
화물차는 바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게이트 너머 신서울의 재금 그룹 지사였다.
---
광화문 게이트를 넘어와 며칠 만에 다시 도착한 신서울.
김철수는 복잡한 신서울의 도로를 운전하며 계속 천문석을 힐끔거렸다.
"문석아. 저기 말이 끄는 마차 있다!"
"네. 마차 있네요."
"우와. 저기 자전거 인력거야!"
"네. 자전거 인력거네요."
천문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할 때마다 축축 처지는 김철수.
김철수는 어쩐지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안 놀라냐?"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미 며칠 전에 오리온 길드 장갑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모두 본 것들이다.
화물차와 말이 끄는 마차, 자전거 인력거와 버스가 같이 달리는 신서울의 도로.
시대가 뒤섞인 듯한 신서울의 도로는 이미 익숙했다.
이때 김철수가 무언가를 보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
“저기 목탄차도 있다!”
“네? 목탄차요?”
목탄차는 여러 이유로 운행이 금지됐을 텐데?!
고개를 돌리자 하얀 연기를 쏟아내며 달리는 트럭이 보였다.
자욱한 연기는 도로와 인도로 쏟아져 안개처럼 깔렸다.
“콜록, 콜록! 이거 뭐야!?”
“야, 이! 누가 목탄차를 끌고 나왔어!”
...
도로를 달리던 차량은 멈추고,
헌터들은 연기를 뒤집어쓰고 분노한다.
목탄차는 곧 출동한 경찰에 의해 멈춰섰고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끌려 나왔다.
“...아니 이 목탄차는 연기를 줄인 거라니까!?”
“선생님. 신서울과 이세계에서는 목탄차 운행은 안 됩니다. 연기랑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다른 분들이 위험해져요.”
“그러니까. 내건 괜찮다니까!?”
“아니. 그러니까. 선생님 운행이 안 된다고요.”
“나중에! 나중에 벌금 낼게! 나 지금 배송업무 받으러 가야 해!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목탄차 운전기사는 곧 경찰에 이끌려 사라졌다.
그리고 곧 도로는 정상화 됐다.
짧은 해프닝이었다.
천문석은 김철수를 봤다.
"철수형. 재금 그룹에서 받은 배송 일 좀 다시 말해봐요."
멍한 얼굴로 목탄차를 보던 김철수가 대시보드를 가리켰다.
"거기 안에 지도에 표시했어."
천문석은 대시보드에서 신서울을 중심으로 한 이세계 지도를 꺼내 펼쳤다.
신서울 북동쪽 동그라미가 그려진 마을이 보였다.
[고산]
"고산 마을. 여기가 목적지에요?"
"맞아. 여기 신서울, 재금 그룹 지사에서 물건 받아서 거기 고산 마을까지 나르면 된다. 간단한 일이야."
"2, 3일 거리라고요? 거리가 생각보다 먼데요?"
"거기 고산 마을 근처까지 어떤 길드가 비포장도로 비슷한 걸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차라리 그걸 신동대문까지 깔지···. 그 비포장도로를 이용하면 고산 마을까지 3일이면 될 거야."
천문석은 지도를 자세히 살폈다.
신서울에서 목적지인 북동쪽의 고산 마을까지는 구불구불한 가는 선이 이어져 있었다.
이 선이 철수형이 말한 비포장도로 같았다.
그리고 이 비포장도로 곳곳에는 '마을'이라고 표시된 곳들이 있었다.
보는 순간 마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헌터들의 사냥 거점 역할을 하는 마을이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장벽이 있고, 식수와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상점과 숙박시설이 있는 거점 마을들.
거점 마을 옆에는 철수형이 조사해서 적어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주변 몬스터 분포.
주로 이용하는 헌터의 수.
마을을 관리하는 조직 이름.
숙박 요금과 생필품 보급 비용.
...
생각 이상으로 꼼꼼히 조사한 흔적들이 보였다.
천문석은 지도 위 비포장도로를 손으로 훑으며 여행의 일정을 살폈다.
철수형 말대로 아무리 오래 걸려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3일이면 될 것 같았다.
낮에 이동한 후,
위험한 밤이면 쉴 수 있는 마을들도 도로 곳곳에 있었다.
아무리 봐도 위험도가 크지 않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재금 그룹과 계약한 이세계 배송 의뢰는 얼핏 봐도 별로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재금 그룹은 ‘협력업체’라는 엄청난 이권까지 제시하며 외주를 줬다.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철수형.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 정도 거리면, 재금 그룹 계열사에서 직접 날라도 될 것 같은데? 재금 보안 있잖아요?"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상하긴 한데. 재금 그룹이잖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마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
재금 그룹이 하는 일이다.
재금 그룹이 이상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뭔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천문석과 김철수를 태운 화물차는 신서울, 재금 그룹 지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재금 그룹 신서울 지사의 넓은 주차장에는 수십 대의 이동수단이 모여있었다.
---
히이잉-
빠아앙-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와 경적.
"거기 길에서 차 좀 빼세요!"
"누가 여기다가 수레를 놨어요!"
"인력거 좀 바짝 붙여요! 통로를 막고 있잖아요!"
...
주차장에서 다닥다닥 붙은 이동수단을 움직이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이건 뭐야···?"
철수형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이 사람들도 자신들과 같은 배송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다!
탕, 탕-
이때 화물차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좀 내려 주세요!"
재금 그룹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태블릿을 들고 나타나 말하고 있었다.
김철수가 창문을 내리자 태블릿을 확인하며 묻는 직원.
"물품 운송 일 때문에 오신 분 맞으시죠? 계약서랑 신분증 제출해주세요."
천문석은 대시보드를 열고 계약서를 꺼내 김철수에게 건네줬다.
"여기 있습니다."
직원은 김철수가 건넨 계약서와 신분증을 확인한후 태블릿에 체크 하고 말했다.
"‘김철수 사무실’. 지금 복잡하니까. 중앙 도로 들어가지 마시고. 오른쪽으로 이동하셔서 주차장 가장자리 'J-20'에 차를 대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이동을 시작한 화물차.
천문석은 김철수에게 물었다.
"형. 이 일 인맥을 통해서 특별히 받은 거라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뭐냐···?"
김철수는 어이없어하며 주위를 훑어봤다.
천문석도 창밖을 살폈다.
주차장에 어지럽게 늘어서고 있는 마차와 수레, 개조 자전거에 차량 들.
온갖 이동수단을 가지고 몰려든 수십 명의 사람이 보였다.
"..."
뭔가 시작부터 꼬이는 느낌에,
천문석은 혹시나 해서 김철수에게 물었다.
"철수형. 혹시 이 일 받겠다고 수수료 주고 그런 건 아니죠?"
"당연하지. 그런 식으로 일을 할 리 없잖아.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럼 뭐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사이.
주차장 가장자리, J-20이라고 적힌 주차 공간이 나왔다.
김철수는 화물차를 J-20 위에 세웠다.
그리고 계약서에 적힌 물품 인수 시간인 12시가 되자,
주차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약자 여러분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번 배송 업무를 진행하게 된 재금 보안의 이인호 차장입니다.]
[우선 화물을 실은 후, 구체적인 배송 업무 진행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똑, 똑-
이때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창문을 내리자 재금 보안 모자를 쓴 보안 요원이 말했다.
"화물을 실어야 합니다. 화물칸 좀 열어주세요."
"제가 열어드리겠습니다."
천문석은 화물칸 열쇠를 들고 차 밖으로 나가 화물칸 문을 열었다.
화물칸 안으로 가로세로높이 1미터가량 되는 정육면체 형태의 금속 상자가 실렸다.
천문석은 금속 상자를 로프로 단단히 묶어 화물칸 안에 고정했다.
그러자 재금 보안 직원이 화물이 실린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태블릿을 내밀었다.
"여기에 인수 사인 부탁드립니다."
천문석은 태블릿에 사인한 후,
화물칸을 잠그고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철수형. 화물 인수했습니다."
"수고했다···."
김철수는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천문석을 봤다.
"...문석아?"
"네?"
"이거 괜찮겠지?"
창밖 주차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불안하게 말하는 김철수.
"..."
천문석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독보적인 게이트 기술력을 가진 이 기업이 그동안 보인 이상한 행보가 하나둘이 아니다.
마탄 라이센스 보복.
일본 섬 1000엔 매입.
천공섬 침입자 격추.
마석 정제 방법 무료 공개.
신 바벨탑 건설 계획.
...
재금 그룹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하곤 했다.
이번에는 또 뭘 하려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이때 스피커에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지금 화물을 모두 실었습니다.]
[그럼 바로 이번 배송 업무 진행 방법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순간 소음이 사라지고 조용해지는 주차장.
조용한 주차장에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지금 여기 모이신 계약자분들과는 각각 다른 장소를 목적지로 하는 배송 계약을 맺었습니다.]
[예비 계약자분들은 각자가 계약한 위치에 지금 실은 화물을 배송하면 됩니다.]
"...그게 끝인가요?"
"네? 협력업체 선정은?"
"협력업체는 어떻게 선정합니까!?"
"자세히 좀 설명해주세요!"
...
주차장 곳곳에서 질문이 터져 나올 때,
천문석은 다급히 외쳤다.
"철수형! 출발!"
"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김철수.
천문석은 재빨리 운전석으로 움직이며,
김철수의 안전벨트를 풀고 끌어당겼다.
일기일원공이 실린 움직임!
"어, 어엇!"
김철수가 깜짝 놀라 외칠 때,
마술처럼 천문석과 김철수의 자리가 바뀌었다.
부르릉-
천문석은 바로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어 화물차를 뒤로 뺐다.
"철수형! 안전벨트!"
끼이익-
마침 주차장 가장자리,
입구가 가까운 위치였다!
천문석은 화물차를 벽에 바짝 붙여 출구로 달렸다!
주차장 안 대부분 사람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른 마차와 수레 등에 막혀 빠져나오고 있지 못했다.
이렇게 운이 좋다니!
천문석은 순식간에 주차장 가장자리를 지나 출구를 통과했다.
화물차가 출구를 통과하는 순간,
스피커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처음으로 출발하신 계약자분이 나오셨습니다.]
[이번 배송 업무는 일찍 도착할수록 가산점을 받는 방식입니다.]
[지금부터 기록을 측정하겠습니다.]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무슨 배송으로 경주를 시켜요!?"
"배송 위치가 다른데! 무슨 경주···."
...
경악한 외침이 주차장 곳곳에서 들려올 때,
천문석이 운전하는 화물차는 이미 신서울 도심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
"뭐? 경주. 이런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어이없어하던 김철수는 천문석을 보고 감탄했다.
"너는 어떻게 바로 감을 잡은 거냐?"
"철수형. 재금 그룹이잖아?"
천문석은 간단히 대답하고 머릿속으로 동선을 짰다.
오리온 길드에서 장비를 대여하고 바로 목적지인 마을까지 달린다.
"철수형. 오리온 길드까지 가는 도로, 이 길 맞습니까?"
"잠시만. 나도 한번 밖에 안 가봐서."
김철수는 대시보드에서 신서울 도로 책을 꺼내 위치를 확인했다.
"이대로 쭉 가다가 10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면 된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철수형. 목적지까지 경로 다시 짜야겠는데요."
천문석의 말을 듣는 순간,
김철수는 바로 감을 잡았다.
"그렇지! 일찍 도착해야 하는 경주면, 경로를 다시 짜야지!"
김철수는 목적지가 표시된 지도책을 꺼내 목적지까지 사이에 있는 거점 마을을 확인했다.
"해뜨기 1시간 전에 출발하면 잘하면 2일 안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천문석은 지도를 힐끗 보고 말했다.
"철수형. 우선 해지기 전에 첫 번째 마을까지 최대한 타이트하게 달려보고 결정하죠.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그래 그게 좋겠네. 그럼 우선 첫 번째 마을을 최대한 멀리 잡아볼게."
김철수는 경로를 다시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멀리 낯익은 오리온 길드 건물이 보였다.
"철수형! 오리온 길드 건물 보입니다. 바로 장비 대여할 수 있습니까?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해요."
"미리 연락은 해뒀는데. 다시 한번 연락할게."
김철수는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시작했다.
무선 통신망이 정상작동하는 신서울 지역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네, 네. 맞습니다. 김철수 지원 9팀장님 소개를 받은 김철수. 아뇨. 지원 9팀장님 본인이 아니라. 이름만 같은 거예요! 네 그냥 김철수요. 네, 네. 알겠습니다. 곧 도착합니다."
김철수가 통화를 끝내고 천문석을 봤다.
"바로 빌릴 수 있도록 담당자가 준비한단다."
그리고 화물차가 오리온 길드 주차장에 멈춰선 순간.
천문석은 앞장서 오리온 길드 건물로 들어가며 외쳤다.
"철수형. 바로 가죠!"
잠시 후 오리온 길드에서 나왔을 때.
천문석과 김철수는 구형 강화 전투복과 구형 방검방탄복 같은 방어 장비와 소총과 검,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