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얼마라고요?!"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머리가 새하얀 60대의 건 스미스 주인, 박호는 난감한 표정이 됐다.
"이거 우리도 마진이 거의 안 남아. 재금 공업에서 가격을 그렇게 책정해서 어쩔 수 없어."
박호는 테이블에 놓인 리볼버용 마탄과 그 옆에 놓인 매입 전표를 가리켰다.
매입 전표에 적힌 매입가는 98만원.
천문석은 두 눈으로 직접 숫자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리볼버 마탄이 한 발에 99만원이라는 게 말이 돼요?!"
그렇다!
이세영 선생님에게 받은 리볼버에 사용하는 마탄의 가격은 발당 99만원이었다!
대물 저격총에 사용하는 특수탄도 아니고,
리볼버 마탄이 이런 어이없는 가격이라니!?
어이없어하는 천문석 앞.
‘맹호 건 스미스’의 박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매입 전표의 매입 단가 부분을 다시 한번 손으로 짚었다.
[980,000원]
“우리 맹호 건 스미스 마진이 발당 1만 원이다. 세금, 보험, 재고 보관비용 생각하면 이건 진짜 거의 남지 않는다.”
“...진짜로 99만원이라고요?”
박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도 이상해서 재금 공업에 전화로 문의했거든? 리볼버 일련번호 불러주니까. 원래 이 리볼버 마탄 가격은 그렇다네?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오죽했으면 고객한테 매입 전표까지 보여주겠냐?"
"..."
천문석은 말문이 탁 막혔다.
판매자 재금 공업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한발에 99만원짜리 마탄이라니!
순간 섬뜩한 전율이 천문석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백곰 마수!
그 녀석을 잡을 때 이 리볼버로 5발을 쐈다!
99만원 x 5발 = 495만원!
자신은 495만원짜리 사격을 한 것이다!
‘아, 몸으로 때우는 건데···.’
천문석이 내심 피눈물을 흘릴 때,
맹호 건 스미스의 박호가 테이블을 두들겼다.
똑똑-
천문석이 고개를 들자,
들려오는 목소리.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이거 살 거야, 말 거야? 안 살 거면 우리도 빨리 반품해야 해.”
"...혹시 호환되는 마탄 좀 싼 거 없을까요?"
탁-
박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랍에서 리볼버 탄환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이 마탄. 이 리볼버랑 완벽히 호환된다."
"이건 얼마···?"
조심스러운 천문석의 질문에 박호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이십만원이요?"
천문석이 깜짝 놀라 외치자,
피식 웃는 박호.
"설마 라이센스 리볼버 마탄이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한발당 2만원. 책정된 라이센스 비용이 세서 이것도 일반 마탄보다는 비싸다."
"..."
99만원짜리 마탄을 봐서인지···.
어이없게도 한 발당 2만원이란 가격이 아주 싸게 느껴졌다.
천문석은 두 마탄을 유심히 살폈다.
길이와 두께, 겉모습은 똑같다.
그러나 재금 공업 제품은 99만원이고 라이센스 생산된 제품은 2만원이다.
겉모습은 별 차이가 없는데,
99만원과 2만원으로 가격 차이가 50배나 났다.
천문석은 99만원과 2만원인 두 마탄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 리볼버 마탄. 두 제품 차이가 뭔가요?"
"나도 몰라."
"네?"
"99만원 짜리 리볼버 마탄을 시험 사격할 수는 없잖아? 이거 찾는 손님도 없을 텐데, 반품해야지?"
그렇긴 했다.
이 마탄을 사용하는 리볼버를 영치한 자신도 안 사고 있지 않은가?
"..."
천문석은 2만원짜리 마탄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거 이세계에서도 쓸 수 있는 정식 라이센스 생산한 마탄 맞습니까?"
박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어떤 미친놈이 재금 그룹 마탄 라이센스를 무단 사용하냐? 이거 정식 라이센스 비용 내고 만든 마탄 맞다."
천문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그럼 이거 2만원짜리로 100발만 주세요."
탁, 탁-
건 스미스 주인은 50발들이 상자 두 개를 바로 테이블에 올렸다.
"확인해봐."
천문석은 종이 상자를 열어 5발씩 줄지어 담긴 마탄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세영 선생님에게 선물 받은 리볼버에 마탄을 채워 넣었다.
탁, 탁, 탁-
키리리릭-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는 탄환.
“여기 지하에 사격장 있는데, 시험 사격해볼래?”
“아뇨. 괜찮습니다.”
건 스미스 주인의 질문에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젓고 채워 넣었던 탄환을 뺐다.
이 마탄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문석은 마탄 값을 카드로 긁었다.
마탄 값 2,000,000원!
카드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랩터 두 마리로 번 돈이 2,123,122원인데,
마탄 100발 가격이 200만원이다!
이 순간 예전에 대청소할 때 들었던 김통천 관장 할아버지의 분노한 외침이 생생히 기억났다.
‘총을 빵야- 빵야- 쏘면! 네 통장이 빵야! 빵야다!’
직접 마탄을 구입해보니 그 말에 담긴 무거움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마탄으로 몬스터와 마수를 잡으면 가뜩이나 부산물 상태가 안 좋아지고 마석 등급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수익이 팍팍 내려간다고 한다.
그런데 소모품인 마탄 가격도 엄청났다.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한테 마탄을 갈기면 거의 100% 적자가 날 것만 같았다.
괜히 헌터들이 검, 칼, 창으로 피를 뒤집어 써가며 몬스터를 때려잡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 잡겠다고 마탄을 마구 갈기다간,
김통천 관장 할아버지 말대로 순식간에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것이다!
이때 박호가 카드영수증을 건네주며 물었다.
"이 리볼버랑 탄약, 직접 가져갈 거야? 아니면 광화문 게이트 지역 안에 있는 우리 사무실에서 찾아갈래? 직접 가져갈 거면 봉인해주고."
천문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바로 주세요."
박호는 상점 안쪽에 쌓인 무장 박스를 하나 꺼내왔다.
“이 무장 박스는 총기류 영치하는 고객분들에게 무상 대여하는 거다. 한국이랑 신서울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위치 추적도 되니까 편하게 쓰면 된다.”
박호는 강화 철판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무장 박스를 열고,
마탄 두 상자 100발과 리볼버를 넣고 완충재를 넣어 고정했다.
그리고 무장 박스를 닫은 후 천문석에게 밀어줬다.
"비밀번호 설정해라."
천문석이 수동식 다이얼 비밀번호를 설정하자 무장 박스를 다시 가져가는 박호.
박호는 무장 박스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자 봉인을 무장 박스를 가로질러 꼼꼼히 붙였다.
"이 무장 박스는 게이트 지역 들어가서 열어. 그 전에 열어서 전자 봉인 훼손하면 경찰 출동하고 벌금 낸다. 그리고 게이트 지역 안에도 우리 사무실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이 리볼버 거기에 영치하는 게 쓰기 편할 거야. 총기류를 게이트 지역에서 한국으로 가지고 나올 때는 까다로운 규정이 많거든."
"네,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인사를 하고 맹호 건 스미스에서 나왔다.
묵직한 무장 박스를 메고 광화문 거리를 걸으니,
이제야 진짜 헌터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문석의 헌터 1일 차 손익은 -200만원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마탄을 한발도 쓰지 않았으니, 실현 손실은 아니었다.
“...”
천문석은 다시 한번 마탄을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
천문석이 나간 후,
박호는 테이블에 놓인 마탄을 치우며 피식 웃었다.
"재금 공업 놈들은 역시 미친놈들이라니까."
리볼버 마탄 출고단가가 98만원이라니!
박호의 혼잣말을 들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손님. 주문한 리볼버 마탄 안 사가셨나 보네요?"
"당연하지. 99만원짜리 리볼버 마탄을 누가 사냐? 중, 대형 마수용 바렛 마탄도 아니고."
직원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99만원짜리 마탄을 사용하는 리볼버면, 혹시 그 리볼버 아닐까요···?"
박호는 직원이 말하려는 게 뭔지 바로 감을 잡았다.
소총과 비교해 장점이 별로 없는 리볼버.
그런데도 몇몇 네임드 헌터들은 리볼버를 사용했다.
이유는 하나다.
게이트 전쟁 당시 리볼버를 사용한,
전설적인 1세대 헌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커맨더라 불리는,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
불리한 전황을 몇 번이나 뒤집어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지켜내고,
지금도 잡기 힘든 재앙급 마수를 게이트 전쟁 당시의 빈약한 자원으로 잡아낸 검은 폭풍.
전설적인 1세대 헌터,
검은 폭풍이 사용한 무기가 리볼버였다.
박호는 심각한 표정이 된 직원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 리볼버가 검은 폭풍이 쓰던 리볼버 같다고?"
직원을 흥분해서 외쳤다.
"제가 살펴보니 '재금 공업'이라고 파인 흔적이 있더라고요! 리볼버 상태를 보니 만든 것도 게이트 전쟁 즈음 인 것 같던데. 확인을 한번 해보면···."
순간 직원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발!
딱-
으악-
직원이 다리를 잡고 비명을 지를 때,
박호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너, 이 새끼. 손님이 영치한 무기를 우리가 왜 확인해!? 그게 우리꺼야?"
"아니···. 저는 그게 아니라···. 손님께 양해를 구해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가서 창고 정리나 해라!"
직원을 창고로 쫓아 보낸 박호는 혀를 찼다.
"저런 직업의식 없는 놈 같으니라고."
아무래도 사고 치기 전에 게이트 지역 사무소로 보내서 좀 더 빡세게 굴려야 할 것 같았다.
박호는 마탄을 탄약 상자에 담으며 생각했다.
‘검은 폭풍이 쓰던 리볼버.’
건 스미스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건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그 리볼버를 만들었다고 알려진 재금 공업에서는 어떤 확인도 해주지 않기에.
검은 폭풍이 사라지고 거의 매년 모조품이 나돌았다.
그리고 몇 번은 그 모조품이 경매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때 모조품을 만든 사람이 증거처럼 내보인 게 초고가의 리볼버 마탄,
한번은 발당 1000만원이 넘는 마탄 매입 전표를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당연히 마탄 가격은 아무 증거도 되지 못한다.
검은 폭풍의 리볼버는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딘가에 있겠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기에 홀려 패가망신한 사람이 하나둘이 아닌 것도 똑같다.
그래도 문득 생각하게 된다.
만약 진짜 검은 폭풍의 리볼버가 나타난다면?
재금 그룹이 아직 작은 공업사일 때 만든 리볼버,
당연히 그 기술력은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설적인 헌터 검은 폭풍이 사용했다는 상징성이 있고,
이 상징성에 기꺼이 지갑을 열 대형 길드의 헌터들은 많았다.
모조품이 경매에 올라왔을 때, 입찰가를 생각하면···.
"한 100억쯤 하려나···?"
박호는 피식 웃었다.
경매가는 100억 이상이겠지만,
검은 폭풍의 리볼버는 문화재청에서 노리고 있었다.
나타나자마자 문화재로 지정해 최고가의 보상금을 던져 주고 재빨리 가져갈 것이다.
"... 문화재 보상금 한도가 1억 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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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천문석은 바로 짐을 꾸렸다.
최대 7일 정도 걸리는 일.
장비는 오리온 길드에서 대여하고,
식료품과 기타 생필품은 철수형이 준비한다고 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챙길 게 많았다.
천문석은 예전 장기 알바를 뛸 때 쓰던 커다란 배낭을 꺼냈다.
그사이 류세연이 옷장에서 옷을 꺼내 탄탄하게 말고 있었다.
같은 너비로 말아 차곡차곡 쌓아놓은 옷들.
류세연은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7일이라고 했지? 이거면 충분할 거야. 바로 넣으면 돼."
천문석은 류세연이 말아놓은 옷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속옷과 양말, 수건을 챙길 때,
류세연이 세면도구와 구급상자를 들고 왔다.
플라스틱 백을 펼쳐 비누와 치약, 칫솔과 면도기를 가지런히 넣는 류세연.
류세연은 구급상자를 열어,
지퍼백에 약을 나눠 담기 시작했다.
두통약에서 소화제, 설사약, 밴드와 소독약까지.
류세연은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약을 나눠 담고 유성 매직으로 지퍼백에 약 이름을 적었다.
펼쳐진 플라스틱 백에 지퍼백에 담긴 약을 하나씩 챙기고, 펼쳐진 플라스틱 백을 접은 후 지퍼를 잠갔다.
"자 여기 세면백 겸 구급백."
천문석은 류세연이 건네주는 플라스틱 백을 배낭 안에 넣으며 묘한 감흥을 느꼈다.
지금 류세연이 하는 건.
류세연이 어린 시절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천문석이 해주던 일이었다.
자신이 챙겨주는 구급백을 받아 넣던 초딩이 훌쩍 자라 이제는 자신을 챙겨주다니.
어느새 이렇게 컸단 말인가?
왠지 모를 흐뭇함에 류세연을 보니,
과자가 가득 담긴 종량제 봉투를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도 가져가."
류세연이 건네준 건 홈런볼과 새우깡 같은 과자들과 사탕과 초콜릿, 칼로리바. 그리고 실버타운에 들어간 할머니에게 받아온 육포였다.
수학 여행가는 류세연이 가져가던 과자들.
몸은 훌쩍 자랐지만,
류세연의 초딩 입맛은 여전했다.
“지금 수학여행 가는 줄 아냐?”
어이없어하며 류세연이 건네주는 물건들을 받는 천문석.
천문석은 현관에 놓인 배낭 옆에 과자가 가득 담긴 종량제 봉투를 내려놨다.
"7일 정도 걸린다고?"
류세연은 현관에 놓인 배낭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피며 물었다.
"최대 7일 아마 5, 6일 정도면 돌아올 거야."
“...”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돌아보니,
류세연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천문석을 보고 있었다.
"...위험한 일은 아니지?"
망설이듯이 말하는 류세연.
오래전 천문석이 장기 노가다 알바를 간다니까,
자기가 돈줄 테니까 가지 말라던, 초딩 때와 똑같은 표정이다.
천문석은 문득 웃었다.
게이트를 넘어가는 헌터 일에 100% 안전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안정화 권역인 서울의 일자리도 마찬가지였다.
건설현장, 사무실, 학교···.
어디에서 일하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위험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헌터뿐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크고 작은 위험 속에서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천문석은 불안해하는 류세연의 어깨를 툭 치며 안심할 이야기를 했다.
"걱정마라. 지금 신서울 주변에 헌터 엄청나게 깔렸다더라."
"그래?"
얼굴이 확 밝아진 류세연.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놀아. 학교가 박살 나서 사실상의 방학이라니. 엄청 부럽다!"
"뭐 좀. 그렇긴 하지."
류세연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석은 웃고 있는 류세연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미리 말해두긴 했는데. 혹시 네 전화로 내 전화 올지도 몰라. 전화 오면 메모 좀 받아줘."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류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배낭을 번쩍 들어 천문석에게 건네줬다.
“...”
“뭐해. 빨리 받아. 어서 가야지?”
"...야 지금 이 밤에 가긴 어딜 가? 내일 간다니까!"
"아···."
순간 귀 끝이 새빨개진 세연.
이런 허당 같은 모습이라니!
천문석의 본격적인 헌터 시작 하루 전날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다음 날.
최초의 정식 헌터 임무,
이세계 쿠팡맨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