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
돌 먹는 사람 있냐는 현지혜 강사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강당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나 곧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하하하-
강당 곳곳에서 웃음기 어린 대답이 들려왔다.
"그럴 리가요?"
"누가 돌을 먹어요? 하하-"
...
웃음 섞인 대답이 커진 순간.
쾅-
현지혜 강사는 돌연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네 맞습니다! 누가 돌을 먹어요? 당연히 안 먹죠! 그런데 마석은 먹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현지혜 강사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교육생들을 돌아보며 잇달아 외쳤다.
"마석은 에너지를 품은 '돌'입니다! 식료품이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 같은 '전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을 '배터리'를 먹는 사람은 없는데! '마석'을 먹는 사람은 매년! 매달! 매일! 계속 나와요!"
"왜? 마석을 먹을까요?"
질문을 던진 현지혜 강사는 스스로 대답했다.
“각성! 모두! 각성 때문입니다!”
"마석을 삼키고 병원에 실려 오시는 분들께 물어보면, 거의 전부 실수라고 하십니다!"
"2017년 어린이 삼킴 사고 건수가 492건인데!"
"마석 삼킴 사고 건수는! 지금 2020년 상반기에만! 3만 건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현지혜 강사는 광기마저 느껴지는 형형한 눈으로 교육생들을 훑어봤다.
"수십에서 수천만 원이나 하는 마석을! 한해 6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삼키고 있습니다!"
"환자분도 알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마석을 삼키는 이유는! 각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석을 삼킨 결과는 대참사로 끝납니다!"
딸깍-
순간 마우스 클릭 음이 들려오고.
현지혜 강사 뒤 스크린에 사진이 떠올랐다.
"마석을 먹은 부작용 사례입니다."
전신에 빽빽이 솟은 털.
배에서 튀어나온 손.
이마에 생긴 눈.
...
신체 일부가 변이된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아앗-
꺄아-
...
교육생에게서 비명이 터지는 가운데,
마석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진이 계속해서 넘어갔다.
딸깍-
현지혜 강사는 마우스를 움직이며 스크린에 뜬 사진들을 설명했다.
"... 전신에 가시가 돋은 29세 남성, 비각성 헌터 환자. 각성하겠다고 적금을 깨서 호치 마수 마석을 구매. 마석을 먹은 후 변이. 한강에서 투신 후 구조돼서 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사례. ...48세 여성, 비각성 헌터 환자. 미용 목적으로 광물 마석을 구입···."
"..."
순식간에 조용해진 강당 안 사진이 넘어가는 클릭 음과 현지혜 강사의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딸깍-
그리고 마지막 사진이 넘어가자,
현지혜 강사가 고개를 돌려 조용해진 교육생들을 바라봤다.
"...지금 보시는 증상들은 정말 양호한 증상들입니다. 증상이 심각한 분들은 차마 보여드리지 못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여러분이 헌터 업계에서 비각성 헌터로 일하면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현지혜 강사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마석 먹는다고 각성하고 그런 거 없습니다! 남중국과 필리핀, 티베트 쪽에서 자꾸 마석 먹고 각성했다는 기사가 뜨는데. 전문가 의견은 이분들은 자기가 각성했다는 걸 몰랐다는 게 중론입니다. 즉 '마석을 먹어서 각성했다가 아니라 각성했는데 마석을 먹었다.'입니다."
"..."
"모두 아시겠지만, 마석은 각성자 체내에서는 융합하지 않습니다. 각성과 각성몽 그리고 능력을 얻는 시간 사이, 각성자 별로 텀이 있습니다. 그 텀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마석은 영약이나 보약이 아닙니다. 절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딸깍-
현지혜 강사는 화면을 완전히 끄고 교육생들에게 말했다.
"자 모두 손을 들고! 저를 따라 해보세요!"
현지혜 강사는 들어 올린 손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외쳤다.
"마석은 영약이 아니다!"
-마석은 영약이 아니다!
"마석을 먹는다고, 각성하지 않는다!"
-마석을 먹는다고, 각성하지 않는다!
"마석은 배터리다!"
-마석은 배터리다!
"나는 마석을 먹지 않겠다!"
-나는 마석을 먹지 않겠다!
...
끔찍한 사진을 본 교육생들은 어린아이처럼 강사의 말을 따라 외쳤다.
현지혜 강사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혹시라도 마석을 먹으면. '뭔가 잘못됐구나'라고 느끼기 전에 바로 주변 병원으로 달려가셔야 합니다."
이때 한 교육생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했다.
"초기에는 치료가 되는 건가요?"
현지혜 강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균적으로 마석이 비각성자 체내에서 융합하는데 2-5시간 정도 걸립니다. 보통은 내시경을 넣어서 뽑아내는데, 이게 안 되면 배를 가르고 위나 장 일부와 같이 절제해서 꺼내면 됩니다."
"..."
"마석 삼킴 사고가 너무 잦아서, 건강보험 적용도 되니까. 비용 걱정하지 마시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오세요."
강당 안 교육생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폭풍같이 진행된 마지막 교육이 끝났다.
마지막 강의 주제는 ‘마석 먹지 말자.’였다.
---
헌터업 안전 교육이 끝난 대강당.
천문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생각했다.
헌터업 안전 교육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머릿속에 남는 교육 주제는 세 가지였다.
-장갑 꼭 껴라.
-세금을 잘 내라.
-마석 먹으면 안 된다.
이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도움이 되는 교육이란 말인가?
게이트 전쟁을 치른 대한민국 공무원은 역시 유능했다!
하-
헛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김철수를 보며 물었다.
"철수형. 이제 사무실 갑니까?"
의자에서 일어선 김철수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아니. 사격 훈련받으러 가야 해."
"총도 없는데, 무슨 사격 훈련이요?"
"총. 오리온 길드에서 빌리기로 했어."
"...총을 빌려요?"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김철수가 강당 밖을 가리켰다.
"우선 저기서 교육 수료증 받고 가면서 이야기하자."
강당 밖에는 몇 개의 테이블로 이어지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헌터업 안전 교육 수료증을 받는 줄이었다.
천문석과 김철수도 줄을 서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확인 후 날짜 도장이 찍힌 수료증을 받았다.
"헌터 계좌는 1시간 후부터 개설 가능하시고, 이거 한 부씩 받아가세요."
천문석과 김철수는 제2 행안부 공무원이 나눠주는 헌터업 안전 교육 책자를 받았다.
그리고 제2 행안부 건물을 빠져나와 사격 훈련장으로 가는 길,
김철수는 설명을 시작했다.
"헌터 라이센스랑 사무실 소개해주신 친척분이 오리온 길드에서 총기와 헌터용 장비를 빌릴 수 있게 주선해 줬어."
"...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오리온 길드에서 헌터용 장비를 왜 빌려줘···?
천문석은 의아한 눈으로 김철수를 보다가 직설적으로 질문했다.
"철수형. 혹시 재벌 3세 뭐 그런 겁니까?"
"나도 내가 재벌 3세면 좋겠다. 우리 어머니·아버지 정말 훌륭하신 분인데···. 개털이시다."
하아아아-
김철수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랑 이름이 같은 친척 김철수. 그분 인맥이 쩌는 거야. 얼핏 들으니까 오리온 길드에도 인맥으로 이름만 올리고 월급 받고 있다더라."
"그 친척분이 재금 그룹 일거리 주선해준···?"
"맞아. 아는 사람이 재금 연구소인가에 있다더라고."
"혹시 그 친척분이 재벌 3세?"
"뭐···? 하하-"
김철수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너 그 사람을 못 봐서 그래. 그 사람은 재벌 뭐 그런 거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당장 우리 화물차 복합엔진부터가 그 사람이 발명한 건데. 어떤 재벌 3세가 화물차 엔진을 개발하고 있겠냐?"
듣는 순간 엄청난 설득력이 느껴졌다.
"하여튼 장비는 걱정할 거 없어. 광화문 게이트 넘어가면 거기 있는 오리온 길드에서 강화 전투복이랑 소총 빌리기로 이야기 끝났어."
문득 든 생각에 천문석은 바로 질문했다.
"총기류는 허가 따로 받아야 할 텐데···? 그거 듣기로는 엄청 빡빡하다던데요?"
"아 그거 확인해 보니까. 한국에서 사용 허가받는 게 빡세지. 게이트 지역하고 이세계에서만 사용할 총기는 간단한 사격 훈련 수료증만 받으면 된다네."
순간 천문석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균열 침식이 일어난 학교,
그곳에서 이세영 선생님께 선물로 받은 리볼버가 있었다!
그 리볼버는 광화문에 있는 건 스미스에 영치중인 상태.
천문석은 오늘 할 일에 한 줄을 추가했다.
-사격 훈련 수료.
-헌터 계좌 개설하기.
-영치중인 리볼버 찾기.
뭔가 일이 톱니가 맞듯 착착 맞아 돌아가고 있었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
천문석과 김철수는 바로 사격 훈련장으로 이동 2시간의 사격 훈련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일정을 확인했다.
"내일 출발해야 한다고요?"
"어제 갑자기 연락이 왔더라고."
"아니 무슨 일정을 그렇게 급박하게 짜요?"
"재금 그룹이잖아."
"아···."
천문석은 순식간에 납득했고,
김철수는 다시 한번 당부했다.
"내일 11시에 여기서 출발할 거니까. 10시까지는 사무실로 꼭 와야 한다. 바로 게이트 넘어가서. 12시에 재금 그룹 신서울 지사에서 물품 인수해야 한다."
"철수형. 9시까지 올 테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사무실을 나선 천문석은 바로 은행으로 향했다.
장민이 준 헌터용 수표를 입금하려면 은행에 헌터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헌터 계좌를 개설하는 건 간단했다.
신분증과 헌터업 안전 교육 수료증을 제출하니 바로 헌터 계좌를 열 수 있었다.
은행 직원이 천문석에게 카드와 통장을 건네주며 설명했다.
"고객님 헌터 계좌는 모든 은행에서 '1인 1계좌'라는 것 알고 계시죠? 혹시 헌터 계좌를 다른 은행에서 개설하시면, 이 계좌에 부여된 세제 혜택은 효력이 정지되니. 반드시 개설 전에 확인을 먼저 하셔야 합니다."
설명이 끝난 후,
은행에서 전용 앱을 설치해주고, 생체 인증을 진행했다.
천문석은 장민 대표에게 받은 헌터용 수표를 바로 헌터 계좌에 입금했다.
신용 카드 크기의 작은 플라스틱 카드, 헌터용 수표.
헌터용 수표 겉면의 LCD 창에는 숫자가 표시되고 있었다.
[22,123,122원]
이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금액은,
장민 대표에게 위탁 판매한 마석과 랩터 두 마리 대금이었다.
천문석은 헌터 계좌용 전용 앱을 실행하고 헌터용 수표를 휴대폰에 접촉했다.
곧 앱에 헌터용 수표에 들어있는 금액이 표시됐다.
[22,123,122원]
계좌 이체를 선택하고 지문을 인식시키자 앱에 뜬 헌터 계좌 잔액이 올라가고,
헌터용 수표에 표시되던 숫자는 ‘0’이 됐다.
헌터 계좌 잔액을 포함한 은행 예금액은.
총 32,151,212원!
'예금이 3천만 원을 넘다니!'
한 번도 도달해본 적 없는 엄청난 금액에 천문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단지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은행 앱에 표시되는 숫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힐링시켰다.
은행원은 웃고 있는 천문석에게 설명했다.
"헌터분들이 거래를 하실 경우. 보통은 휴대폰이나 헌터용 통신기의 근거리 통신 기능으로 직접 송금을 하는데. 이게 여의치 않을 때는 이 헌터용 수표를 이용해서 현금처럼 지급할 수 있습니다."
은행원은 천문석에게 빈 헌터용 수표 10개 한 묶음과 수표책 한 권을 건넸다.
무선 통신망이 깔리지 않은 이세계에서 사용하기 위한 신용 지급 수단이었다.
은행을 나온 천문석은 마지막으로 이세영 선생님의 리볼버를 영치중인 광화문의 건 스미스로 향했다.
그리고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됐다.
“네?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