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
천문석과 김철수는 다행히 늦지 않게 교육장에 도착했다.
광화문 광장에 접한 제2 행안부 12층 대강당.
헌터업 안전 교육이 행해지는 대강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흩어져 빈자리를 찾던 김철수가 외쳤다.
"문석아 여기 자리 있다!"
김철수가 찾은 자리는 맨 앞자리,
천문석은 철수에게 가며 강당 안을 살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것 같은 10대 후반의 사람부터,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강당 안에 모인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게다가 강당 곳곳에 동남아와 히스패닉계, 백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당 안 인원의 20% 정도가 외국인.
이렇게 여러 인종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교육을 받으러 온 이유는 하나였다.
마석 거래 시 완전 면세, 부산품 거래 같은 헌터업 활동 시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헌터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헌터업 안전 교육 수료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게이트와 게이트 너머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헌터들에게,
2년에 한 번 갱신되는 헌터업 안전 교육 수료는 수익과 직결되는 중요 사항이었다.
"문석아. 이거 받아라."
자리에 앉자 철수형이 건네주는 쇼핑백.
"이게 뭐예요?"
"요 앞 복도에서 나눠주던데?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쇼핑백 겉면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문구가 보였다.
[광화문 용역.]
[일용 헌터 일자리 당일 알선!]
[당일 임금 지급! 최저 수수료!]
[조립식 지게와 손수레 무상 대여!]
그리고 쇼핑백 안에는 '광화문 용역'이라고 인쇄된 장갑과 각반, 홍보 책자가 들어있었다.
"이 장갑이랑 각반. KS. 인증받은 거라고 엄청 강조하더라."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역시 대한민국!
빨리 빨리는 세계제일이다.
안전 교육을 받는 지망생들에게까지 미리 홍보품을 돌리다니!
이때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헌터업 안전 교육이 곧 시작됩니다.]
곳곳에 흩어져 대화하던 사람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갑 낀 두 손을 번쩍 든 강사가 강당으로 들어오면서 헌터업 안전 교육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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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낀 두 손을 번쩍 든 채 강당에 들어와 연단에 오른 강사.
강사는 연단에 서자마다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벼락같이 외쳤다.
"여러분 장갑! 반드시 껴야 합니다!"
뜬금없는 말에 교육생들이 웅성거릴 때,
강사는 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
순간 조용해지는 강의실!
장갑을 벗은 강사의 손에는 엄청난 봉합 흔적이 남아있었다!
강사는 두 손의 봉합 흔적이 잘 보이게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보통의 경우 위험에 처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앗!-
순간 실감 나게 소리치며 두 손을 앞으로 내미는 강사.
"보통 이렇게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막습니다. 경험이 있는 헌터들도 무의식중에 이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교육생들.
"그럼 아이템이나 동전, 약초, 기타 등등 신기한 걸 보면 어떻게 할까요?"
"..."
"생각이 있는 사람은 나뭇가지나 검, 창 같은 거로 만질 테지만. 혹시나 먹튀 당할까 봐, 재빨리 손으로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쾅-
순간 책상을 내려치며 외치는 강사.
"바로 장갑! 장갑입니다!"
강사는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높이 들었다.
"이 장갑은 코듀라 원단에 강철 심을 넣은 가장 기본적인 헌터용 안전 장갑입니다. 가격은 한 켤레에 9900원!"
강사는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9900원! 만원도 안되는 9900원 아끼겠다고! 목장갑 끼다가! 좆되는 헌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딸깍-
마우스 클릭음이 들린 순간 정면 스크린에 떠오른 만화풍의 그림.
피가 흐르는 손을 보면서 우는 김철수라고 적힌 헌터와 그 앞에 쌓여있는 지폐 더미가 보였다.
"이렇게 손가락이 잘리면!? 봉합 수술에 수백이 깨지고! 재활 치료에 몇 달이 걸립니다! 당연히 그동안은 일을 못 하죠? 예상 손실액은 거의 몇천만 원입니다!"
딸깍-
포션 그림과 그 옆에 놓인 더 커진 지폐 더미.
그리고 펑펑 우는 김철수 헌터의 그림이 다시 나타났다.
"혹시 포션으로 치료하면!? 재활 치료는 필요 없지만. 포션은 의료보험도 안 되니, 최소 천만 원 단위로 비용이 깨집니다! 당연히 몇 달에서 몇 년 동안 벌어둔 돈을 한 방에 날리는 겁니다!"
강사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쾅-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날까요?!”
쾅, 쾅-
“왜? 저 화면 속 김철수 헌터는 거지가 돼서 울고 있을까요?!”
쾅, 쾅, 쾅-
“이 모든 게 장갑을 안 껴서 그렇습니다!!”
강사는 봉합 흔적이 뚜렷한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며 열정적으로 외쳤다.
"그러니까 반드시! 꼭, 꼭! KS. 인증된 헌터용 안전 장갑을 끼셔야 합니다! 그럼 어떤 장갑을 껴야 할까요!?"
딸깍-
정면의 스크린에 수십 종류의 장갑들이 나타났다.
강사는 마우스 포인트로 스크린에 떠오른 장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제 헌터 경력 10년의 노하우가 녹아든! 초보 헌터부터 베테랑 헌터까지. 임무별, 가격대별로 좋은 장갑을 고르는 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첫 번째 강사는 한 시간 동안 좋은 장갑 고르는 방법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두꺼운 책자를 교육생들에게 돌렸다.
"이 책자 뒤로 돌려주세요. 제가 그동안 수집한 장갑 브랜드별 품질 평가서입니다. 모조품 확인법도 있으니 반드시 확인하고, 장갑 구입하셔야 합니다. 참고로 이 장갑들 전부 제 돈으로 사고 사용한 것들입니다."
책자를 돌린 후 강사는 이름도 말하지 않고 퇴장했다.
"..."
폭풍처럼 진행된 장갑 강의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교육생들.
"...철수형. 원래 헌터업 안전 교육이 이래요?"
천문석의 질문에 김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헌터업 안전 교육은 처음이라···."
“...”
“아니 그보다 왜 자꾸 예를 김철수 헌터라고 하는 거야···. 기분 이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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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강사는 최기태라는 이름의 기획재정부 조세총괄정책관이었다.
“기획재정부 최기태 정책관입니다. 헌터분들과 지망생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칠판에 이름을 적은 최기태 강사는 바로 헌터업의 세금 체계와 경제 구조를 설명했다.
20년 전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와 마수, 마석이 나타난 이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여러분 마석과 부산품 매입 가격이 너무 싸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몬스터 부산품 가격이 오르면 반대로 화폐 가치가 떨어집니다. 결코, 좋아하실 일이 아닙니다."
최기태 강사는 칠판을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만티코어 수정 뿔 가격 10배 상승 100억원, 물가 100% 상승.]
"만일 만티코어 수정 뿔 가격이 10배 상승해서 10억에서 100억이 되고, 물가가 100% 상승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물가가 상승하면, 화폐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사실상 화폐의 가치가 1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반으로 줄어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10억원의 수익이 50억원이 됐으니 이득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생각하실 게 있습니다."
[돈!]
최기태 강사는 칠판에 ‘돈!’이란 글자를 커다랗게 쓰고 손으로 때렸다.
탕-
그리고 폭풍 같은 설명을 쏟아냈다.
"돈! 물가가 상승하면 ‘모든 돈’이 영향을 받습니다. 당장 받는 ‘돈’, 미래에 받을 ‘돈’뿐만 아니라."
"은행에 예금한 돈!"
"금고 속에 있는 돈!"
"땅속에 몰래 묻은 돈!"
"그야말로! 모든 ‘돈’이 영향을 받습니다!"
“모든 물건에는 가격이 있다고 하죠? ‘돈’에 붙는 가격, 그게 바로 ‘물가’입니다! 물가가 오른다는 건! 돈값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물가가 오르면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어떤 형태의 돈이든 그 즉시 가치가 떨어집니다!"
"몬스터 부산품 가격이 상승해도! 물가 상승이 더 빠르면! 기존에 보유한 돈의 가치는 훅훅 떨어집니다!"
"은행에 100억원이 있었다? 네, 물가가 오르면, 이 돈의 가치도 뚝뚝 떨어지게 됩니다."
"땅에 몰래 묻어뒀다? 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
천문석은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헌터들이 생산하는 부산물의 가격유지는 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에 성공하고,
소수의 헌터들이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생산하기 시작한 대한민국 헌터업 초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엄청난 자금이 대한민국에 쏟아졌다.
당연했다.
대한민국은 치안이 빠르게 잡혔고,
헌터들의 활동도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활발했다.
그때의 한국 헌터들은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미친 속도로 생산했고,
헌터들이 생산한 몬스터 마석과 부산물은 각국 정부와 기업에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팔렸다.
결국, 시장에 풀리는 엄청난 돈에 한국 전체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물가가 그야말로 요동을 쳤다.
이걸 잡기 위해 당시 정부와 경제학자들은 별의별 방법을 다 썼다고 한다.
그때 당시 기획재정부 신입 공무원이었다던 최기태 정책관은 당시의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하나둘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포션 재료인 트롤 피가 중국에서 정력제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서 단시간에 30배 폭등한 적이 있었는데···."
천문석은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1시간 후 최기태 조세총괄정책관의 마지막 말과 함께 두 번째 교육이 끝났다.
"...그래서 여러분은 꼭 세금을 잘 내셔야 합니다! 세금을 잘 내시는 게 인플레이션을 막고 여러분 자신의 ‘돈’을 지키는 길입니다!"
두 번째 강의의 결론은 세금을 잘 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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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마지막 강사가 들어왔다.
가죽가방을 든 마지막 강사는 들어오자마자 칠판에 글자를 적었다.
-현지혜.
-마력 각성자.
-재금 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오오오오-
희귀한 마력 각성자,
게다가 재금 의료원의 과장!
강당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현지혜 강사는 손을 들어 교육생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제 교육 시간이 2시간인데. 잘 들어주시면, 한 시간 안에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순간 교육생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현지혜 강사는 바로 교육을 시작했다.
"헌터분들과 지망생분들께 현직 의사인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입니다!"
강사는 들고 들어온 가죽가방에서 금속 상자를 꺼내더니 안에서 하얀 돌, 마석을 꺼냈다.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마석···!”
“마석입니다!”
...
강의실 곳곳에서 외침이 들려오자,
현지혜 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이건 몬스터와 마수의 체내 혹은 광산에서 나오는 마석입니다. 마석의 석은, 돌 석(石) 자입니다. 이 마석이 돌같이 보이시나요?"
"네-!"
"아주 비싼 돌 같네요."
하하하-
강의실 곳곳에서 웃음기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현지혜 강사는 미소지으며 하얀 마석을 교육생들을 향해 내밀었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질문했다.
"혹시 여기 계신분 중에 돌 먹는 분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