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이거 진짜로 유망하다니까!"
재금 빌딩 지하 2층.
김철수와 천문석은 집하장을 지나서 창고 구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앞장서 걷는 김철수는 천문석에게 자신의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시작은 쿠팡맨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이세계에 물류 혁신을 이루는 거야!"
천문석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너 지금 동대문 게이트 소멸로 물류 대란 벌어진 거 알지?"
"..."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은 이세계 '거점 도시'들을 연결하는 유통망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
"..."
“당연하지 거점 도시에 있는 '게이트'를 통해서 물품을 공급하는 게 훨씬 싸고 빠르니까. 하지만. 이번 동대문 게이트 소멸로 이 싸고 빠른 공급망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 패러다임이 변하기 시작한 거지!”
“...”
“이제 유통의 시대가 온다. 게다가 지금 신동대문은 유통망이 붕괴한 무주공산이야. 지금 뛰어들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어!”
천문석은 문득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리온 길드의 면접을 보러 갈 때 듣기로도 신동대문은 물가가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지금 신동대문으로 물자를 나르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천문석은 가장 먼저 떠오른 문제점을 말했다.
"신동대문에서 헌터들과 일반인 모두 빠지고 있다던데?"
김철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동대문에서 절대로 빠지지 못할 헌터들이 있잖아?"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
"대형 길드?"
"맞아. 대형 길드와 대기업, 대형 임대 사업자 같은 신동대문에서 커다란 기득권을 가진, 덩치가 큰 조직들은 어지간해서는 신동대문에서 못 빠져나와."
김철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얘네들은 고래거든.”
"...!"
순간 천문석에게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고래는 연못에서 살 수 없다!’
고래처럼 커다란 대형 길드를 유지하려면,
연못 같은 작은 기득권이 아닌 바다같이 큰 기득권이 필요하다.
이미 다른 거점 도시의 기득권은 분배가 끝나고 균형이 유지되는 상태.
장철 헌터가 말한 대로 헌터 업계는 보수적이다.
기득권을 나눌 새로운 고래의 출현을 기존 거점 도시의 거물들은 반기지 않을 것이다.
신동대문에 거점을 두고 있는 대형 길드 같은 고래들은 규모를 유지한 채 거점을 옮길 수가 없었다.
즉, 신동대문에는 여전히 고정 수요층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재력과 커다란 덩치를 가진 수요층이!
'이거 되는 거 아냐?'
솔깃한 순간 떠오르는 의문.
"대형 길드가 직접 나르면?"
천문석의 질문에 김철수는 바로 대답했다.
"기회비용을 생각해봐. 직접 나르는 시간에 걔네들은 사냥하는 게 낫지."
맞는 말이었다.
대형 길드의 헌터들이 버는 돈을 생각하면,
이런 인력 자원으로 물자를 나르는 건 시간 낭비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점은 많았다.
위험 회피를 위한 리스크 비용.
공급하는 물건의 무게와 부피에 따른 유통비용.
...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나를 물자 그 자체다.
가격 상승 폭이 큰 식료품을 날라도,
수익률은 높아도 수익의 절대치는 크지 않다.
식료품 자체의 단가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쌀 20kg 한 포대를 5만원에 사들여서,
100만원에 판다고 하면 대충 20배 장사다.
20배, 2,000%!
엄청난 수익률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수익은 95만원이다.
지구에서라면 엄청난 수익이다.
하지만 게이트 너머 이세계에서는 일반적인 내연기관 차량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이세계에서 가장 사용하기 쉬운 이동수단은 인력, 사람의 힘이다.
그러나 인력은 한계가 명확하다.
철수형과 자신 둘이 아무리 노력해도 쌀 수백 포대를 한 번에 나를 수는 없었다.
한 사람당 5포대씩 총 10포대, 200kg의 쌀을 날라도 예상 수익은 950만원.
말이 끄는 수레를 이용한다면 나를 수 있는 양이 늘어나겠지만, 당연히 비용도 증가한다.
여기에 이동 거리에 따른 비용과 몬스터의 위험에 노출되는 리스크까지 생각해야 한다.
신서울에서 신동대문까지 나르는데 들어갈 시간과 비용 그리고 위험을 생각하면 아무리 계산해도 적자였다.
"...?"
순간 천문석은 의문이 들었다.
경영학과 화석인 철수형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뭔가 다른 게 더 있는건가?
천문석은 김철수에게 생각한 것을 이야기했다.
"철수형. 이 사업 아이템 흑자 나는 거 맞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천문석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앞장서 걷는 김철수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그리고 천문석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김철수는 창고 구석, 두꺼운 천으로 덮인 차 앞에 멈춰 섰다.
"맞아. 그냥은 절대 이익이 안 나지."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인력으로 나르는 건 답이 없고. 마력 엔진 차량은 차량 가격도 비싸지만, 연료인 정제 마석이 구하기도 힘들고 더럽게 비싸지. 게다가 말이 끄는 수레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말 관리가 엄청 빡세다. 그리고···."
김철수의 입에서 암울한 이야기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암울한 이야기와는 달리,
김철수의 자신만만한 미소는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김철수는 두꺼운 천으로 덮인 차를 때렸다.
텅-
"그래서 이걸 준비했다! 이 모든 문제점을 한 방에 해결해줄 물건! 우리 사업의 비전이자, 핵심 아이템!"
김철수는 열정적으로 외친 후 두꺼운 천을 확 잡아당겼다!
파라락-
단숨에 천이 벗겨지고,
모습을 드러낸 건 화물차였다.
화물차,
그것도 20년은 사용한 것 같은 중고 화물 탑차였다.
"..."
---
두꺼운 포장을 벗기자,
나타난 오래된 중고 화물 탑차.
"..."
'이 형이 장난치나?'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김철수는 열정적으로 외쳤다.
"이게 바로! 우리의 꿈을 이뤄줄 차다!"
"...화물차요?"
김철수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 외쳤다.
"이건 그냥 화물차가 아니다!"
"한 20년은 사용한···. 중고 화물차 같은데···?"
"야. 그럴 리가 없잖아! 게이트 전쟁 때문에 20년을 쓴 화물차는 진짜 거의 없어···. 아니 이게 아니라."
순간 천문석에게 말려 들어갔던 김철수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게이트 너머에서는 전자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구형 화물차를 기반으로 만든 거다. 이건! 그러니까···.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대충 복합엔진 화물차다!"
"...복합엔진 화물차?"
천문석이 되묻자,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수.
"맞아. 나랑 이름이 같은 친척분이 발명하신 복합엔진 화물차다!"
복합엔진이라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천문석은 가장 중요한 걸 바로 질문했다.
"철수형. 이 화물차 게이트 너머에서도 정상 작동합니까?"
"당연하지! 내가 직접 몰아봤어. 휘발유가 정상 점화하지 않는 신서울 권역 밖에서도 이 화물차는 정상적으로 움직여!"
텅-
김철수는 화물차를 두들기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네!?"
순간 경악한 천문석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세계에서는 석유가 정상 연소하지 않는다.
화약이 정상 연소하지 않아서 탄약이 무용지물이던 때와 비슷한 상황.
차이점이라면 화약 연소문제는 재금 공업에서 해결하고 마탄을 만들었지만, 석유 연소문제는 아직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안은 있었다.
정제 마석을 연료로 이용하는 마력 엔진.
대형 길드에서 운용 중인 장갑 버스나, 장갑 SUV 등이 마력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제 마석은 구하기도 힘들고 세금 80%가 붙어 진짜 더럽게 비쌌다.
지금 철수형은 눈앞의 화물차가 그 문제를 해결한 차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석은 바로 질문했다.
“철수형. 이거 설마 휘발유 연소문제를 해결한 겁니까?”
“그럴 리가 없지. 그거 해내면 노벨 화학상 받고 바로 재벌 됐지.”
“...그럼 이건?”
“나도 자세한 원리는 모르는데. 나랑 이름 같은 친척이 발명한 이 복합엔진은 이세계에서도 정상 작동하더라고. 아직 시제품이라 이거 한 대인데···.”
천문석은 김철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물차를 살폈다.
평범한 중고 화물 탑차처럼 생긴 차량.
얼핏 생각해도 떠오르는 의문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점을 모두 치워두고 한번 생각해본다.
'만약 이 화물차가 이세계에서 일반적인 화물차 반 정도의 성능만 낸다면?'
"...!"
나를 수 있는 화물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이동 속도도 빨라진다.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같은 거리를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다는 뜻.
즉 운송의 리스크가 줄어들고 수익의 규모도 확 커진다!
'이거 진짜 될 것도 같은데!?'
이때 화물차를 살피던 천문석의 뇌리가 간질간질해졌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색다른 아이디어가 생각날 듯 말 듯 했다.
이때 김철수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거 발명하신 친척분 소개로 일거리도 하나 계약했다. 한 5일에서 6일? 최대 일주일 정도 걸릴 일거리인데···."
"아니 무슨 계약을 벌써 해요···?"
천문석이 생각에 잠긴 채 대답하자,
김철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게 노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일거리라. 우선 계약부터 했다.”
“무슨 일인데 노리는 사람이···?”
“재금 그룹에서 받은 일거리거든.”
“...”
순간 화물차를 살피던 천문석이 굳었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천문석.
천문석은 의기양양하게 웃는 김철수에게 물었다.
"...철수형. 그 재금이, 저 재금? 재금 그룹? 얘네들!?"
천문석은 깜짝 놀라 하늘을 손가락질했고,
김철수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흐흐흐. 맞다. 그 재금이다! 우리의 성공은 이미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다!”
“...”
“이번 일 잘 처리하면! 재금 그룹의 '협력업체'로 선정하는 걸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했다!”
"...'협력업체'요? 아니 재금 그룹이 뭘 보고 우리를 협력업체로···?"
어느새 우리라고 말하는 천문석에게,
김철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원래 재금 그룹은 어지간한 일은 모두 외주로 돌리잖아? 그리고 여기 사무실 소개해준 친척이 그쪽 연구소에 끈이 있나 보더라고. 그리고 내가 직접 확인했는데. 재금 그룹에서 협력업체를 모으고 있는 것도 맞다!"
"...!"
재금 그룹!
압도적인 한국 재계서열 1위이자 세계적인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협력업체라니!
천문석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헌터 업계는 보수적이고 인맥 위주로 돌아간다.
장민 대표, 장철 헌터와 맺은 인연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었던가?
재금 그룹과 협력업체라는 관계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재금 그룹은 자신들이 생산한 마력 물품을 일반 유통 채널에 풀지 않는다.
자신들의 협력업체를 통해서만 푼다.
너무나 비효율적인 유통구조.
그러나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앉아서 꿀을 빠는 격이다!
재금 그룹에서 마력 물품을 받아서 마진을 붙여 팔기만 해도 고정수익이 떨어지는 거다!
무엇보다 재금 그룹과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헌터 업계 종사자들의 견제와 후려치기 등등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당연했다.
재금 그룹은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미친놈들이니까.
하지만 이 미친놈들은 내 편일 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배경이 된다!
게다가 재금 그룹의 일거리는 5일에서 최대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검혼이 담긴 검이 완성되고 최후식 이사를 만날 날짜,
장철 헌터가 시간을 비워두라고 한때.
두 약속 모두 그 뒤다.
시기가 아주 좋았다!
이 순간 천문석은 결정했다.
'쿠팡맨! 내가 해보겠다!'
그 전에 조건을 협의해야 했다.
천문석은 바로 김철수에게 물었다.
"철수형. 우선 한 건 해보고 같이 일할지 결정해도 될까요?"
김철수는 손가락을 쫙 펼쳤다.
"당연하지. 그리고 조건도 미리 말해줄게. 수익 배분 5:5로 하자."
김철수는 할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다.
대학 후배 천문석은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수많은 알바를 같이하며 알게 된 인성과 끈기!
몬스터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대범한 모습을 생각하면 천문석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김철수의 조건을 들은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사무실과 트럭, 일거리까지 모든 걸 준비하고 수익 배분이 5:5라고!?
"철수형 진짜로 5 대 5?"
깜짝 놀란 천문석에게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화물차 발명하신 분이 이번일 수익 50% 가져가시기로 해서. 더 정확히는 너랑 나랑 2.5:2.5야."
그래도 상상 이상의 조건이다.
천문석은 즉각 허리를 굽혀 공손히 말했다.
"김철수 사장님. 제가 뭐부터 하면 될까요?"
김철수는 거만하게 대답했다.
"천문석 부사장. 오늘 우리 할 거 많다. 우선 헌터업 안전 교육부터 받으러 가자."
"부사장?! 제 직급이 한방에 부사장입니까? 캬! 역시 김철수 사장님은 통이 크십니다!"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아부하듯 말하는 천문석과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수.
카캬카-
흐흐흐-
천문석과 김철수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헌터업 안전 교육을 하는 제2 행안부로 다급히 뛰어갔다.
시간이 간당간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