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72화 (73/1,336)

#072

특급 헌터 집에 다녀온 다음 날 오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옥탑방을 나서는 천문석.

천문석은 철수 형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광화문 재금 빌딩으로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그냥 편하게 입고 휴대폰만 확실히 챙겼다.

"휴대폰 있고. 안테나 다 섰고. 배터리 완충이고. 보조 배터리 챙겼고."

몇 번이나 휴대폰을 확인하고 집을 나서던 천문석은 현관에 놓인 나뭇가지를 봤다.

특급 헌터가 준 나뭇잎이 잔뜩 달린 나뭇가지.

특이하게도 이 나뭇가지에 붙은 나뭇잎은 여전히 살아있는 듯 생생했다.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현관 밖에 놓인 화분 하나를 현관 안으로 옮기고 나뭇가지를 꽂았다.

마치 살아있는 나무처럼 생생한 잎이 달린 나뭇가지 화분이 완성되자,

어쩐지 삭막한 현관이 밝아진 것 같았다.

천문석은 화분에 물을 한 컵 준 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 273 버스를 타고 재금 빌딩이 있는 광화문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광화문 재금 빌딩 1층.

마침내 천문석과 김철수는 만났다.

"문석아!"

"철수형!"

몇 달 만에 만나는듯한 반가움!

"어! 너 머리!"

김철수는 깜짝 놀라 천문석의 빡빡이 머리를 가리켰다.

"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문석은 앞장서 걸어가며 말했다.

"철수형. 이야기가 아주 깁니다. 올라가서 이야기해요. 그보다 형 오리온 길드 알아요? 거기에 내 게이트 임시 출입증이 있던데?"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김철수는 의아해했고,

천문석은 바로 감을 잡았다.

이 형이 관련됐구나!

땡-

이때 천문석 앞에서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

“형! 엘리베이터!”

천문석이 엘리베이터에 타려 하자,

김철수가 제지했다.

"이거 아냐. 이건 안 간다. 저 안쪽 엘리베이터 타야 해."

"네?"

"따라와라."

김철수를 따라 로비 안쪽 긴 복도로 들어가니,

하역장과 연결된 화물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마침 문이 닫히는 화물 엘리베이터.

"잠시만요. 두 사람 탑니다!"

김철수가 버튼을 누르며 외치자,

화물과 함께 탄 사람이 화물을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 줬다.

"감사합니다. 어서 타자."

천문석과 김철수는 좁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전에 탄 엘리베이터와는 달리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곧 13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땡-

"총무팀! 그새 또 쌓아놨네!"

김철수는 투덜거리며 엘리베이터 앞 공간에 쌓인 상자들을 좌우로 밀어 길을 만들었다.

"문석아. 이쪽이다."

"..."

천문석도 김철수를 따라 상자를 밀어내며 전진했다.

상자를 밀어내자 복도가 나왔고,

김철수는 복도를 따라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이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가야 해."

벽을 따라 상자가 쌓인 어둑한 복도.

오리온 길드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같은 건물 내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천문석이 내심 어이없어할 때,

앞장서 걷는 철수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다 왔어. 저기 모퉁이만 돌면 된다."

그리고 복도 모퉁이를 지나 조금 걷자 튼튼한 강화 철문이 보였다.

김철수는 강화 철문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가 우리 사무실이다!"

"..."

철수형이 가리킨 문에는 이렇게 새겨진 명판이 붙어 있었다.

-지원 9팀-

그리고 그 아래 붙은 A4 용지에 적힌 글자.

[김철수 사무실]

"...지원 9팀요?"

천문석의 질문에 김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신경 쓸 것 없어. 여기가 우리 사무실이 맞아."

김철수는 문을 열며 자신 있게 외쳤다.

"들어와라. 이곳이 우리의 장대한 미래가 시작될 곳이다!"

천문석은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굳었다.

"...!"

뭐지···.

이건 새로운 장난인가?

천문석은 철수형의 사무실을 둘러봤다.

커다란 책상 두 개가 오른쪽 벽에 붙어 있는 사무실.

책상이 놓인 대략 너비 2미터쯤 되는 공간을 제외하면.

사무실 안 모든 공간에 A4 용지 박스, 청소도구와 두루마리 휴지, 세제 같은 비품과 서류가 담긴 상자가 가득 쌓여있었다.

“저기 창문 보이지? 저기서 광화문 게이트 지역도 보인다. 방어 설비만 보이지만 말야. 하하-”

“...”

철수형이 가리킨 창문은 1미터 정도 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상자로 모두 가려져 있었다.

천문석의 표정을 본 김철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이 사무실 아는 친척분한테 싸게 빌리다 보니까···. 좀 그래. 하하-"

천문석은 사무실 안에 가득한 상자들을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철수형···. 여기 혹시 원래는 오리온 길드 사무실인가요?"

"너 어떻게 알았냐?"

김철수는 깜짝 놀라더니 상자가 쌓여 보이지 않는 안쪽 벽을 가리켰다.

"저기에 오리온 길드 창고로 이어지는 문이 있어. 원래는 여기랑 한 사무실이었는데 벽을 만들어서 쪼갠 거야."

천문석은 천장까지 쌓인 점보 롤 휴지를 가리켰다.

"그럼. 이건 오리온 길드 비품···."

"맞아. 자기들 창고는 꽉 찼다고. 오리온 길드에서 보관해 달라고 하더라고. 좀 치사하긴 한데. 우리가 받는 편의가 많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순간 천문석은 간질거리는 뇌리를 느꼈다.

오리온 길드에서 받는 편의!

“게이트 임시 출입증?!”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철수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맞아. 오리온 길드에서 너랑 나랑 게이트 임시 출입증 발급받는 걸 도와주기로 했거든. 이게 대형 길드는 쉽게 발급받는데, 우리처럼 헌터 라이센스를 물려받은 사무실은 까다롭게 굴더라고. 그리고 다른 편의도 받았는데···."

"...!"

순간 천문석은 예지에 가까운 직감을 느꼈다.

-게이트 임시 출입증.

-문밖에 붙어 있던 명판, 지원 9팀.

-오리온 길드에서 쓰던 철수형의 사무실.

...

수많은 의문을 풀어줄 답이 머릿속에서 맞춰진다.

그러나 이 답에는 하나의 조각이 모자랐다.

오리온 길드의 김 과장은 분명 '김철수'를 알고 있었고, 면접 후 만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때 문득 떠오른 한가지 생각!

‘김철수가 한 명이 아니라면?’

천문석은 눈앞의 철수 형에게 바로 물었다.

"철수형. 이 사무실을 빌려줬다는 친척분 말인데요···."

"어, 왜?"

"혹시···. 형이랑 이름이 같나요?"

김철수는 깜짝 놀라 외쳤다.

"어, 너 어떻게 알았어!?"

뒤이어 머리에 떠오르는 문에 붙어 있던 지원 9팀이라는 명판.

"...그 친척분 오리온 길드 지원 9팀장이신가요?"

"이야! 너 완전 귀신이다! 맞아!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맞아. 그분이 헌터 라이센스하고 이 사무실도 소개해주고, 일감도 연결···."

"...!"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리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오리온 길드와 엮인 일들은,

모두 겹치고 겹친 우연이었다.

자신이 구른 건,

그냥 재수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문득 드는 생각.

‘진짜로 정말로 그 모든 게 우연이었을까?’

순간 꿈틀거리는 촉!

천문석은 창문 너머 하늘을 봤다.

고블린, 검치호, 와이번.

그리고 개미굴 광산.

...

자기가 겪은 모든 일들!

혹시 이것도 하늘이 준비한 시련, 마장, 장애 뭐 그런 게 아닐까?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져가서일까?

이번에도 하늘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이때 갑자기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궁, 궁, 구웅-

사무실을 울리는 무거운 진동!

"어?! 철수형 이거?"

천문석이 깜짝 놀라자,

김철수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저거 그저께부터 계속 저런다. 원래 오리온 길드 애들 좀 이상해. 며칠 전에도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서···. 아니다. 그냥 신경 쓰지 마라.”

철수형은 어쩐지 해탈한 스님처럼 말했다.

“...”

천문석은 문득 철수형과 같이했던 예전 알바들이 떠올랐다.

급여는 만족스러웠지만,

근무 환경이 빡세고 여러 사건·사고가 터졌었다.

대형 하수관로 청소.

통신 중계기 까치집 제거.

생맥주 기계를 메고 해변에서 맥주 팔기.

...

그리고 얼마 전 끝난 키즈 카페 알바까지···!

감이 온다.

...이번 일도 예전 못지않을 거라는 감이!

게다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김철수 재벌설은 오보임이 밝혀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거 그냥 축하만 하고 얼른 집에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천문석이 고심할 때,

김철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본 김철수는 반색했다.

"어, 오늘은 진행한다네? 문석아 바로 가자."

"네? 어디를 가요?"

"헌터업 안전 교육. 일정 확정이 안 돼서 연기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진행한다네. 너 교육도 내가 신청했어. 어서 가자. 가면서 내 사업 아이템도 설명해줄게."

잘됐다고 생각한 천문석은 김철수를 따라 바로 이동했다.

헌터 계좌를 만들려면 헌터업 안전 교육 이수는 필수다.

어차피 나온 길, 안전 교육을 받고 은행에도 들려서 헌터 계좌를 신청하는 거다.

“철수형. 교육 장소가 어딘가요?”

“저기 광화문 광장 맞은편 제2 행안부 건물 대강당에서 한다네. 몇 번 연기하더니, 인원이 좀 많은가 본데?”

헌터업 안전 교육을 받으러 목적지인 제2 행안부 건물로 이동하는 길.

화물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김철수는 열정적으로 앞으로의 사업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게이트 너머, 거점 도시 신동대문 난리인 거 알지?"

"동대문 게이트 소멸요?"

천문석이 서울 사태를 일으킨 원인을 말하자,

김철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우리를 도왔다니까! 마침 사업을 시작하려니까 이렇게 되다니! 지금이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적기다."

“그건 또 무슨 말···?”

천문석의 의문에 김철수가 눈을 반짝였다.

“너도 알지? 지금 동대문 게이트 소멸로 동대문 게이트랑 연결됐던 거점 도시 신동대문의 물가가 폭발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리고 내가 며칠 전에 말했잖아. 신서울 주변에 마수와 몬스터 나타나고, 이상 현상 발생해서 헌터들이 죄다 몰려가고 있다고. 지금 신서울 일대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헌터가 바글바글하다!”

“...?”

“모르겠냐? 지금 신서울 주변은 엄청나게 안전해! 우리 사업 아이템을 시작하기에는 절호의 기회인 거지!”

천문석은 의아한 눈으로 김철수를 보다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사업 아이템이 뭔데요?"

천문석의 질문에 김철수는 눈을 빛내며, 화물 엘리베이터의 지하 2층 버튼을 눌렀다.

"직접 보여줄게."

화물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아래로 이동해 지하 2층에서 멈췄다.

땡-

지하 2층에는 대형 트럭에 바로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는 화물 집하장이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레일을 깔고 트럭 화물칸에 커다란 나무상자를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안 보이네. 저 안쪽으로 가보자."

김철수는 집하장 안쪽으로 걸어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김철수가 우뚝 멈춰서 손가락으로 집하장 한곳을 가리켰다.

"저거다!"

김철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화물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열린 화물칸에서 택배 상자를 내리는 화물차, 택배용 탑차였다.

"...화물차요?"

천문석이 반문하자,

김철수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냥 화물차가 아니다. 저게 바로 우리 사업 아이템이다!"

"...네?"

천문석이 얼빠진 표정이 되는 순간,

김철수는 뜨거운 열정을 담아 외쳤다.

“쿠팡맨! 우리는 이세계 최고의 쿠팡맨이 될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