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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8화 (69/1,336)

#068

식사가 끝난 후.

장철이 몸을 일으키며 천문석에게 말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

이때 볼록한 배로 평상에 앉아 있던 꼬맹이가 벌떡 일어났다.

"삼촌! 내가 선물 준비했어! 내 선물 먼저 줘도 될까?"

꼬맹이의 말에 장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급 헌터가 우선이지. 선물 주고 와라."

"이쪽이야 얼른 와!"

천문석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거실을 걷는 꼬맹이.

꼬맹이는 거실을 가로질러, 이해할 수 없는 동그라미 그림이 붙어 있는 방문을 열었다.

"여기가 내 방이야."

꼬맹이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침대 매트리스 위,

네모반듯하게 개어진 이불과 베개.

텅 빈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있고,

벽에 자리한 낮은 책꽂이에는 두꺼운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보통 어린아이 방이 그렇듯 흐트러진 장난감, 아무렇게나 놓아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이거 네가 다 정리한 거야?"

꼬맹이는 책꽂이 옆에서 커다란 종이상자를 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계약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

"계약?"

천문석의 질문에 고개를 돌리는 꼬맹이.

"알바는 봤잖아?"

"뭐를 봐?"

"세발자전거 사면서 쓴 매매 계약서 말야···."

갑자기 침울해진 꼬맹이.

꼬맹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에휴- 심부름을 엄청 열심히 하는데···. 이상하게 아직 반의반의반의반도 못했대···."

꼬맹이는 머리를 번쩍 들더니,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꺼내서 펼쳤다.

책 안에서 나오는 익숙한 매매 계약서.

꼬맹이는 계약서를 꺼내 천문석에게 내밀었다.

"알바. 이것 좀 봐주면 안 돼? 이상하게···. 심부름 엄청 열심히 하는데 아직도 횟수가 엄청 많이 남았데! 진짜야?"

천문석은 계약서를 펼쳤다.

[자전거값으로 심부름 백萬번을 하겠습니다!]

짧은 계약 문구 아래 찍힌 꼬맹이 손도장.

전과 같았다.

"거기가 아니라. 뒤에다가 심부름할 때마다 ‘ㅡ’ 받았어."

천문석은 바로 뒷면을 살폈다.

뒷면에는 수많은 바를 정, '正'자가 그려져 있었다.

세발자전거를 산 모습을 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뒷면에 그려진 바를 정자는 수십 개가 넘었다.

천문석은 감탄했다.

"너 열심히 심부름했구나."

"맞아. 나 엄청 열심히 심부름했어."

천문석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

꼬맹이는 바로 질문했다.

"나 심부름 몇 번이나 더 해야 해? 삼촌한테 물어봤더니. 대답은 안 하고 이런 얼굴로 날 보던데?"

꼬맹이는 장철의 표정을 흉내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눈 가장자리를 손으로 잡아당기는 연민 가득한 표정.

“...”

장철이 저런 표정을 지을만했다.

꼬맹이가 아무리 열심히 심부름해도 엄마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백만 번이라니···.

하루에 열 번씩 심부름해도 일 년이면 3,650번이고,

십 년이 지나도 36,500번, 백만 번의 5%도 못 채운다.

천문석은 꼬맹이에게 진실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사기계약을 당했다는 진실을···.

그리고 장민은 장난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 이면에는 꼬맹이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다.

고등어 사건처럼 이번 심부름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생각에 빠진 천문석에게 다시 한번 질문하는 꼬맹이.

"알바. 장민이 시키는 심부름 몇 번이나 더해야 해? 다음 주에는 끝날까?"

"...!"

꼬맹이의 질문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오래전부터 품었던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꼬맹이는 장철은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엄마는 장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천문석은 꼬맹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장철 헌터님은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왜 엄마는 '장민'이라고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장민한테 엄마라고 부르면, 아빠 생각날 거 아냐?"

생각도 하지 못한 대답.

"...!"

순간 전율이 흐르고 머리끝이 솟구쳤다.

'설마···.'

뒤이어 나올 이야기를 예상한 천문석의 얼굴이 하얗게 변할 때,

꼬맹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야! 그만! 대답하지 않아도···."

천문석이 다급히 제지했지만,

꼬맹이는 계속 말했다.

"나는 아빠가 없거든."

"..."

돌처럼 굳어진 천문석을 보고 깜짝 놀란 꼬맹이.

꼬맹이는 천문석을 손가락으로 꾹꾹 찌르며 외쳤다.

"알바! 왜 그래?!"

천문석은 잠시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하다."

천문석을 찌르던 돌머리 꼬맹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미안하다고? 왜?"

"그냥 미안하다···."

꼬맹이는 눈을 반짝였다.

"미안하면, 자주 와! 내일 어때? 내일도 오면 안 되냐?"

"..."

"모레와도 괜찮아! 우리 집 오기 힘들면. 내가 알바 집에 놀러 갈까?"

"..."

"맞아! 그게 좋을 것 같아! 우리 집 별로지? 가끔 천장이랑 바닥에서 무서운 소리도 난다니까!"

"..."

"알바 층간소음 알아? 천장이랑 바닥에서! 우으, 우으으- 하는건데 엄청 무서워!"

"..."

"알바 집에도 층간소음 있어? 우으, 우으으- 그래?"

"..."

...

꼬맹이는 그늘 한점 없는 모습으로 신나서 외치고 있었다.

천문석은 꼬맹이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

키즈 카페의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구한 용감한 영웅.

7개월 동안 고등어를 먹은 아이.

사기 심부름계약을 당한 불쌍한 피해자.

그리고···.

엄마가 슬퍼할까 봐,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아이···.

“...”

천문석은 문득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특급 헌터, 돌머리 꼬맹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집에 놀러 와라."

꼬맹이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정말!? 우와아-! 그럼 앙꼬랑 키즈 카페 친구들 모두 모아서 같이 놀러 갈게!"

"뭐?"

“키즈 카페 친구들이. 알바 엄청 보고 싶다고 했거든?”

“야, 취소! 취소!!”

"새로 온 알바들은 알바만큼 재미가 없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전화할까? 지금 가면 될까?"

"야, 취소라니까! 오지마!"

"앗! 선물!"

꼬맹이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외치더니,

단숨에 책꽂이로 달려가 꺼내던 종이상자를 활짝 열었다.

"알바! 내가 선물 준비했어! 이거 줄게!"

꼬맹이는 종이상자 안에서 눈에 익은 네모난 물건을 꺼내서 흔들었다.

"...어린이 젤리?"

순간 천문석은 뇌리를 간지럽히는 직감을 느꼈다.

천문석은 꼬맹이에게 걸어가 커다란 종이상자 안을 살폈다.

종이상자 안에는 어린이 젤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

키즈 카페에서 자주 본,

눈에 익은 어린이 젤리였다.

"...너 혹시 키즈 카페에서 애들한테 이 젤리 준 적 있냐?"

천문석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씩씩하게 외치는 꼬맹이.

"맞아! 내 친구 아빠가 젤리 공장하거든. 맨날 선물로 가져와. 내가 키즈 카페 애들한테 나눠줬어!"

“...”

키즈 카페 알바 한 달간의 의문이 이 순간 풀렸다.

어린이 젤리를 먹는 애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던 키즈 카페···.

어디선가 무한 공급되는 것처럼,

아이들은 매일매일 어린이 젤리를 쪽쪽 빨아 먹었다.

그리고 뒤이어 떠오르는,

키즈 카페 알바 한 달 동안 어린이 젤리를 닦던 기억.

벽, 바닥, 장난감, 탱탱볼···.

그리고 천장!

천장에 발자국 모양으로 찍힌 어린이 젤리를 닦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우드득-

허리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으으윽-

입에선 고통스러운 신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순간 들려오는 꼬맹이의 신난 목소리.

"알바! 이거 다 줄게! 내 선물이야!"

천문석의 시선이 어린이 젤리가 가득 담긴 상자를 밀어주는 꼬맹이에게 향했다.

드디어 키즈 카페 어린이 젤리 사건의 범인을 찾았다!

악마 같은 꼬맹이!

이 녀석이 범인이었다!

---

천문석에게 선물을 전한 후,

꼬맹이는 기절하듯이 잠들어 버렸다.

"지금은 낮잠 시간이에요."

꼬맹이가 잠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장민.

장민은 잠든 꼬맹이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히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머리카락을 정리한 후 배 위에 이불을 덮어줬다.

익숙한 손길로 잠자리를 봐주는 장민.

어쩐지 처음으로 보는 것 같은 다정한 모습이었다.

이때 꼬맹이가 잠꼬대하듯 말했다.

"한우 조아···."

순간 장민의 입가에 생겨나는 미소.

장민은 꼬맹이 귓가에 입을 가져가 작게 속삭였다.

"고등어가 더 맛있어."

"아니야. 고등어 싫어···."

"고등어가 더 좋아."

"아니라니까. 고등어 싫어···."

"특급 헌터는 고등어를 좋아해."

"아닌데···. 아닌데···. 고등어는 특급 헌터의 적인데···."

"특급 헌터는 고등어를 먹으면 더 강해져."

"...특급 헌터는 강해지면 뭐든지 할수 있어···."

...

꼬맹이는 자신도 모르게 잠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감탄했다.

어린아이들이 반찬 투정을 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다.

그러나 꼬맹이는 고등어를 원수 보듯이 하면서도 7개월 동안 열심히 먹었다.

그 이유를 지금 보고 있었다.

장민 대표는 말썽꾸러기 꼬맹이의 심층의식마저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만족스럽게 웃는 장민은 암막 커튼을 반쯤 쳐서 꼬맹이 방을 어둑하게 만들고 천문석에게 말했다.

"오빠랑 셋이서 커피 한잔해요."

"네. 잠시만."

천문석은 선물로 받은 어린이 젤리를 다시 상자 안에 넣고 장민을 따라갔다.

---

천문석은 장철, 장민과 커피잔을 놓고 테라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장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헌터 할 거 맞지? 랩터 잡은 거 보니까 재능있어 보이던데?"

"네 맞습니다."

천문석의 말을 들은 장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움을 좀 주고 싶은데. 내가 팀을 깨고 혼자 활동한 지가 오래돼서···. 소개장을 써줄까 하는데."

"소개장이요?"

천문석이 되묻자 장철은 바로 대답했다.

"헌터 업계는 보수적이라 아직도 인맥과 소개로 움직이거든. 요즘 젊은 사람들은 헌터 업계로 들어오려고 입대까지 하는것 같던데···. 이게 헌터 업계는 또 사람이 없어서 난리야."

헌터 업계에 구인난이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구인난이요?”

천문석의 의아해하는 얼굴을 본 장민이 장철의 말을 받아 설명했다.

"오빠 말이 맞아요. 보통 일반적인 헌터 길드 같은 경우는 구직자가 더 많지만. 몇몇 길드는 사람, 더 정확히는 믿을만한 사람이 없어서 난리에요."

천문석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헌터가 대한민국 유망직종이 된 지 십 년. 헌터일을 하겠다고 입대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런데 인력난을 겪는다고?

"...그런가요?"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자,

장민은 더 자세히 설명했다.

"특정 마수와 몬스터의 서식지와 사냥법, 고가의 약초가 자라는 군락지 위치, 몬스터 광산···. 이런 큰 가치를 지닌 정보를 다루는 길드들이 있어요."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장철과 장민이 말한 길드들은 믿을 만한 사람,

즉 정보를 유출하지 않을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보증하는 사람만을 채용하는 것이다.

장철이 소개장을 써주겠다는 말은.

자신이 천문석을 보증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천문석의 시선이 장철에게 향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철.

"감을 잡으셨나 보네요?"

장민이 웃으며 말하자,

장철이 다시 질문했다.

"어때 소개장 써줄까? 이런 길드가 오히려 알짜야. 한 2, 3년? 좀 오랫동안 도제식으로 배워야겠지만, 궤도에 오르면 오히려 대형 길드보다 낫다. 아니면 대형 길드도 소개해줄 수 있는데···."

천문석은 문득 장민을 봤다.

장철의 말이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민.

"그런데 이런 길드는 처음에는 좀 힘들 거에요. 노하우가 곧 수익이라 노하우를 잘 안 풀거든요. 대형 길드도 장단점이 있어서···."

천문석도 나름 헌터 업계에 대해서 알아봤지만, 지금 같은 내용은 전혀 몰랐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헌터 업계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

천문석은 지금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는 헌터 업계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는 업계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장철 헌터와 장민 대표.

천문석이 고민하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조언을 듣기에 제격인 선배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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