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7화 (68/1,336)

#067

"이런 특급 돌머리 같으니라고!"

장철은 어이없어하며 조카에게 들이받힌 배를 만졌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카에게 묻는 장철.

"너 고등어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나랑 밥 먹을 때마다. 고등어만 먹었잖아?"

꼬맹이는 삼촌은 보지도 않고 한우 선물 세트를 꼬옥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있었다.

"한우조아조아조아!"

장철은 웃음을 참고 있는 장민을 봤다.

"얘. 고등어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대답은 꼬맹이에게서 들려왔다.

"고등어는 특급 헌터의 적이야!"

"..."

돌연 심각해진 표정의 장철이 장민의 입가에 귀를 가져가 작게 속삭였다.

"야···. 고등어 컨테이너! 그거 뭐야? 쟤가 좋아한다고 해서 보내준 거잖아?"

장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입은 싫어했는데 몸은 좋아했어요."

"...뭐?"

장철은 어이없어했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문석은 깨달았다.

꼬맹이를 절망시킨.

아무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냉동 컨테이너에 가득한 고등어.

그걸 보내준 사람은 꼬맹이 외삼촌 장철이었다!

7개월 동안 고등어를 먹은 특급 헌터 사건.

꼬맹이가 엄청 좋아하던 외삼촌, 장철도 이 사건의 공범이었다.

"..."

"..."

말을 잊은 천문석과 장철.

어쩐지 난감한 미소를 띤 장민.

세 어른이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사건의 실상을 모르는 특급 헌터는 한우 선물세트를 품에 안고 너무나 기뻐하고 있었다.

"한우조아조아조아!"

...

---

"우선 시원한 차 한잔 드릴게요. 오빠도 옷 갈아입고 오세요."

"난 차는 됐다. 던전에서 바로 와서. 손님도 왔는데, 좀 씻고 나올게."

장철이 방으로 사라진 후,

장민은 천문석을 거실 테이블로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 놓이는 아이스티 두 잔.

"한우 조아아아아-"

거실에서 꼬맹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랫소리를 들은 장민은 코끝을 찡긋하며 난감한 듯 웃었다.

"고기가 정말 먹고 싶었나 보네요···."

"...하하. 네···."

천문석은 그냥 웃었지만, 꼬맹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7개월 동안 고등어만 먹으면,

누구나 꼬맹이처럼 되는 게 당연했다.

장민은 천문석의 표정을 보더니 빙그레 미소지었다.

"사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문제였어요."

"네?"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매일 먹더니. 화장실도 잘 가지 못하고. 몸에 발진도 많이 올라오고 그랬거든요."

"..."

"오빠가 보내준 고등어를 오랫동안 먹으면서. 화장실도 잘 가고, 몸에 올라온 발진도 모두 사라졌어요."

"..."

장민의 말에,

천문석은 뭐라 대답 할수가 없었다.

장민은 이유 없이 매일 고등어를 준 게 아니었다.

꼬맹이가 고등어를 7개월 동안 먹은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혹시. 제가 실수한 건가요?"

천문석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장민은 고개를 저으며 거실을 가리켰다.

"아뇨. 저렇게 좋아하는데···. 제가 좀 심했던 것 같네요."

어느새 꼬맹이는 거실에 한우 상자를 세워두고 그 주위에서 기쁨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고기를 주려고요."

"그러시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고기를 줄 생각이에요."

순간 장민은 악당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을 덧붙였다.

"매일 두 잔의 녹즙을 마시고, 한 접시의 샐러드를 먹으면 말이죠."

"..."

나름 행복한 결말이었다.

이제 꼬맹이는 일주일에 두 번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매일 두 잔의 녹즙을 마시고, 한 접시의 샐러드를 먹으면 말이다.

"한우! 조아아아-"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특급 헌터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

특급 헌터 꼬맹이의 집.

71층 펜트하우스의 테라스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푸른 잔디가 깔리고 잘 관리된 나무와 덩굴이 자라는 테라스 정원.

엄청난 강풍 때문에 이런 고층에는 정원을 만드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사방을 뒤덮은 강화 유리와 공조장치로 정원에는 솔솔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테라스 정원 한쪽에 물이 흐르는 인공 시냇물이 있고,

이 시냇물 옆에는 커다란 대나무 평상이 나무 그늘에 놓여 있었다.

천문석과 꼬맹이, 장민과 장철 네 사람은 커다란 상을 가운데 두고 대나무 평상에 앉았다.

음식이 가득 차려진 커다란 상 한가운데,

구이용 화로에 놓인 석쇠 위에서 자글자글 소고기가 구워졌다.

특급 헌터는 구워지는 소고기를 보고 있었다.

"..."

말 한마디 없이 집중해서 소고기를 보는 꼬맹이.

꼬맹이는 결투를 앞둔 무사처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무릎에 올린 채 소고기만 보고 있었다.

너무나 진지한 꼬맹이의 분위기에 주위 어른들이 웃음을 삼킬 때.

"다 구워졌네요."

장민이 긴 구이용 젓가락으로 잘 구운 소고기 등심 한 점을 들어 천문석의 앞접시에 놓아줬다.

“손님 먼저.”

그리고 장철, 꼬맹이 순으로 놓이는 소고기.

"먹자."

장철이 말하는 순간.

천문석과 장민, 장철 세 사람의 시선은 꼬맹이에게 향했다.

7개월 만에 고기를 먹는 꼬맹이.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꼬맹이는 상에 놓인 젓가락을 잡았다.

아이답지 않게 의젓하게 움직이는 젓가락.

꼬맹이는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여,

앞접시에 놓인 소고기 한 점을 들어 올렸다.

잘 구워진 소고기 등심 한 점.

꼬맹이는 사제가 의식이라도 치르듯 경건하게 움직였다.

처음, 기름 끓는 소리를 귀로 듣고.

다음, 짙은 갈색의 겉면과 육즙을 품은 연한 분홍색의 속을 눈으로 본다.

그리고 농후한 고기 냄새를 흠- 들이마신 후.

마침내 등심 한 점을 입에 넣고 천천히 꼭, 꼭- 씹는다.

바싹한 겉면과 촉촉한 속.

씹는 순간 뜨거운 육즙이 왈칵 터져 나왔다.

"..."

꼬맹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구운 소고기 등심을 씹었다.

꼭, 꼭-

천천히 소고기를 씹을 때마다,

꼬맹이의 눈에 차오르는 물방울.

꼬맹이는 세상에 마지막 남은 소고기를 먹듯.

경건하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구운 소고기 등심을 씹고 있었다.

어느새 꼬맹이를 보던 천문석과 장민, 장철의 분위기마저 변해있었다.

너무나 비장한 분위기에 말을 잊은 어른들.

"..."

"..."

장철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저 녀석···. 일곱 달은 고기 구경도 못 해본 사람처럼 비장하게 먹네···."

순간 천문석과 장민의 눈이 마주쳤다.

"..."

"..."

장민은 어쩐지 민망해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때 돌연 들려오는 노래하는듯한 외침.

"고기 조아!"

"한우 조아!"

짧은 외침 후,

꼬맹이는 불판에 놓인 고기 한 점을 먹었다.

"고기 조아!"

"한우 조아!"

다시 한번 외치고,

불판에 놓인 고기 한 점을 다시 먹는 순간.

꼬맹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장철은 조카의 이상 반응에 심각한 표정이 되어 질문했다.

"...야! 너 괜찮냐?"

꼬맹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끄덕였다.

"맛있어!"

"뭐···?"

"너무 맛있어! 아주 맛있어! 너무, 아주, 정말, 완전히, 최고로 맛있어! 이건 특급 소고기야! 이건 특급특급 한우야!!"

꼬맹이는 부족한 어휘력을 총동원해서 감탄하면서도 열심히 불판에 익어가는 소고기를 꼭꼭 씹어 먹었다.

"고기 조아조아!"

"한우 조아조아!"

"..."

심각한 표정이 된 장철이 장민을 봤다.

"...얘. 정말 괜찮은 거 맞냐?"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아마도···."

장민은 난처한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였고,

천문석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7개월 만에 먹는 고기,

꼬맹이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내 조카지만, 신기한 녀석이라니까. 하-"

장철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다가 문득 천문석을 봤다.

"아 깜빡하고 있었네."

"네?"

"그때. 랩터한테서 이 녀석 구해준 거 감사 인사 안 했었지? 한동안 정신없어서 연락도 못 하고."

"아, 괜찮습···."

천문석이 사양하기도 전에,

장철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조카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저 말썽꾸러기가 무사할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인 장철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아···. 이거, 나랑은 처음 대화하는 건가? 내가 첫 대화에 말을 놓은 건가?"

"맞아요. 그때는 정신을 잃었으니. 지금이 첫 대화에요."

장민의 말에 장철은 실수했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거 실수했네. 미안합니다."

천문석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말 놓으세요."

장철은 겉모습을 보면 자신과 20살 이상 나이 차가 났다.

거의 아버지뻘,

게다가 위기의 순간에 도움까지 받았다.

정중한 말이 오히려 어색했다.

"그럼 그럴까?"

"네. 그러시면 됩니다. 장철 헌터님과 장민 대표님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랬었나?"

장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장민을 보며 말했다.

"나야 뭐 그냥 헌터지만. 얘는 헌터 업계뿐만 아니라 곳곳에 인맥이 넓으니까 큰 도움이 될 거야. 부담가지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장민 대표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예를 들면 W.S. 인더스트리의 마력 무구 주문제작. 재금 공업에 특수 마탄 주문 같은 일도 제가 처리해 드릴 수 있어요.”

“하, 하. 네···.”

미국과 한국의 초거대 기업을 평범한 거래처처럼 말하는 장민.

그러나 저런 초거대 기업과 거래할 일은 없기에 천문석은 그냥 웃었다.

장민은 장난스럽게 코끝을 찡긋하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K.A. 나이트 아머 구입도 주선해 드릴게요."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전략 등급의 마력 무구이자,

마도 공학의 집결체 나이트 아머.

나이트 아머는 일반적인 마력 무구와는 차원이 달랐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이트 아머를 생산하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사용되는 나이트 아머는 단 한 국가에서만 생산된다.

여전히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국가.

미국.

그리고 최신예 전투기처럼.

나이트 아머 생산은 기업에서 해도,

판매는 미국 연방정부에서 결정한다.

미국의 최우방, 한국에도 나이트 아머 기갑사단은 한 개 사단뿐이다.

“...”

전차나 전투기를 개인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나이트 아머도 개인 구입은 불가능한 거 아냐?!

천문석은 바로 질문했다.

"...나이트 아머가 개인이 살 수 있는 건가요?"

장민은 코끝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안 되죠."

"그렇죠? 하하-"

농담이라고 생각한 천문석이 웃을 때,

장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적합성 검사와 신원 조회, 신원 보증을 거쳐야 살 수 있죠."

"..."

천문석은 농담인가 싶어서 장철을 봤다.

장철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신원 보증인은 내가 해줄게."

“저는 초장기 할부를 해드릴게요.”

장민이 장난처럼 가볍게 말을 이었다.

"..."

말문이 막힌 천문석은 무의식중에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나이트 아머면 도대체 얼마야?

아마도 전투기보다 값이 싸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나이트 아머의 연료는 최고등급 정제 마석이다.

연료가 최고등급 정제 마석이라니!

하루 치 연료값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나올 것이다.

어차피 다른 세상 이야기,

천문석은 생각을 멈추고 장민을 봤다.

그보다 장민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강철 와이번과 싸운 후 개미굴 광산에 들어가며 기억한 것.

상급 포션.

꼬맹이가 선물로 준 재금 제약의 상급 포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천문석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민 대표님."

"네?"

장민은 긴 구이용 젓가락으로 소고기를 구우며,

언제나처럼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예전에 제임스를 통해서 선물을 보내셨을 때. 거기에 포션이 같이 딸려 왔었습니다. 재금 제약의 상급 포션인 것 같은데···."

장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천문석을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네."

"그 포션 아마도 랩터와 싸웠을 때, 저한테 쓰신 게 아닌지···."

천문석의 시선이 장철에게로 움직였다.

장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열심히 고기를 먹는 꼬맹이를 가리키며 웃었다.

"맞아. 그때 저 녀석이 네 바지에서 상급 포션을 꺼내더라. 바지에 상급 포션이라니···. 하하- 처음에는 너도 허무인 같은 재벌 3세인 줄 알았다."

장철의 말을 들은 천문석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징병검사에서 최종 불합격 처리되고,

제정신이 아닐 때 상급 포션을 주머니에 넣었던 것 같았다.

그 포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게 사용됐다.

"저 그 포션···."

천문석이 말을 꺼내는 순간.

장민이 가볍게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어느새 장민의 얼굴은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표정이 돼있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몬스터 앞에 나선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장민.

장민의 시선이 장철에게로 움직였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지···.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어렵지···."

장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꼬맹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포션 쟤가 선물한 거 아냐?"

"맞아요. 선물은 선물일 뿐이에요."

장민은 빙그레 웃었고,

특급 헌터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특급 헌터는 알바 선물이 엄청 맘에 들어! 전에 준 그거 삼촌 방에 많아! 내가 더 가져다줄까?"

꼬맹이는 너무나 소중한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소고기를 꼭꼭 씹어먹으며 외쳤다.

"..."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장민이 톡 앞접시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보다 얼른 식사하세요. 배고픈 특급 헌터가 고기를 모두 먹어버리고 있네요."

장민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석쇠에 소고기는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장민은 구이용 젓가락으로 구워진 소고기를 천문석의 앞접시에 올려주고 빠르게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알바! 지금 가서 가져올까?"

꼬맹이는 소고기를 씹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장민과 장철의 어쩐지 호기심어린 시선이 모일 때.

천문석은 대답했다.

"됐어. 그거 별로 맛없더라."

"맞아. 나도 먹어봤는데 고등어처럼 맛없어. 그리고 낮이 갑자기 밤이 되더라고!"

꼬맹이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대답했고.

장철은 어이없어하고 장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포션 한입 먹은 게 너였냐? 그렇지···. 너 밖에는 범인이 없지."

“맞아. 내가 범인이야.”

꼬맹이는 당당히 자수하고,

잘 구워진 소고기 등심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천문석의 앞접시에 자신이 집은 등심을 놓는 꼬맹이.

꼬맹이는 신나서 외쳤다.

"이 고기가 삼촌 거보다 훨씬 맛있고! 훨씬 훌륭해! 알바도 어서 먹어!"

“그래. 고맙다.”

마음의 짐을 던 천문석은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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