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천문석과 한경석이 개미굴을 기어가고 있을 때.
최후식은 통신 장비에 끼울 정제 마석을 꺼내고 있었다.
높은 등급의 마력 회로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인 정제 마석의 등급과 순도도 높아야 했다.
"이걸 쓰는 날이 오는구나."
최후식은 손에 든 상급 정제 마석을 살폈다.
길이 15cm, 폭 1.5cm.
마석을 정제해 사각기둥 형태로 고형화시킨 정제 마석.
재금 그룹의 고순도 액화 정제 마석보다는 순도가 낮다.
하지만 이 정제 마석이면 개미굴 광산에서 신서울의 오리온 길드 본사까지 통신을 연결할 수 있었다.
일주일 정도 사용 가능한 이 상급 정제 마석의 가격이 8억 원이고.
8억 원이라는 가격 중 세금이 80%가 넘는다.
몬스터 마석, 천연 마석 모두 헌터가 채굴 시 특별법에 따라 완전 면세지만,
완전 면세인 마석을 정제해서 정제 마석으로 팔 때는 엄청난 세금이 붙는다.
그래서 가끔은 마력 각성자들이 마석을 몰래 사들여 불법 정제한 후 팔기도 했다.
수십, 수백억이 넘는 최상급 헌터용 장비 가격을 생각하면 몇억 원의 정제 마석 가격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제 마석은 소모품이다.
대형 길드라도 소모품인 고순도 정제 마석을 펑펑 쓰기에는 부담됐다.
그래서 개미굴 광산의 비시즌, 채굴 작업이 없는 시기에는 통신 장비에 사용하는 정제 마석을 분리해 뒀었다.
최후식은 정제 마석을 통신 장비에 끼웠다.
잠시 후, 통신 장비의 에너지가 완충됐다.
그러나 통신 감도를 나타내는 안테나 칸에는 5칸 중 2칸만 불이 들어왔다.
깜빡이며 1칸과 2칸을 오가는 통신 감도.
상급 마수, 강철 와이번이 휩쓸고 지나가 마력장이 흐트러진 건가?
아무리 상급 마수라도 이 정도로 마력장이 흐트러질 리는 없을 텐데.
의아해하던 최후식은 통신기를 잡고 바로 통신을 넣었다.
"현장팀 최후식이다. 오리온 길드 들리나?"
-이사님!
-개미굴 광산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잡음 섞인 대답과 그 뒤로 부산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최후식은 가장 궁금해하던 것부터 물었다.
"면접 지원자들은 어떻게 됐나?"
-지원자 전원 신서울, 길드 본사에 도착했습니다. 구조팀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광산에 계십니까?
"그래. 광산에 세 사람 모두 있다. 나랑 한경석, 지원자 천문석. 셋 모두 무사하다. 그리고 이곳에 강철 와이번 나타났었다.
-...
순간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통신기.
-강철 와이번이요? 검치호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통신기 너머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철 와이번 내가 직접 확인했다. 지금은 사라진 것 같은데.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안전하니까. 급하게 오지 말고 준비 철저히 해서 와라.
-알겠습니다. 출발 전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았다."
통신이 끝났을 때, 유압문에 달린 스크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삐빅-
최후식은 스크린을 확인하고 바로 유압문을 열었다.
피이이-
문안으로 들어온 것은 페로몬 망토를 걸친 한경석이었다.
"벌써 채굴한 거야?"
한경석은 대답 없이 안으로 달려 들어와 장비 벽장을 다급히 열었다.
쿵-
벽장 안에 걸린 강화 전투복과 카멜레온 은신 망토, 무기들을 다급히 꺼낸다.
한경석은 페로몬 망토를 벗어 던지고 재빨리 장비를 착용했다.
"야! 뭐 하는 거야!? 왜 여기서 갈아입어?!"
최후식이 깜짝 놀라 외치자,
한경석도 다급하게 외쳤다.
"고블린! 고블린!"
"뭐?!"
어느새 강화 전투복을 입고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걸친 한경석이 땅을 가리키며 다시 외쳤다.
[고블린! 들어옴!]
최후식은 깜짝 놀랐다.
일반인도 겁만 먹지 않으면 상대할 수 있는 최하급 몬스터 고블린.
그러나 최하급 몬스터 고블린이 이런 굴속으로 흩어지면 위험등급이 급등한다.
고블린은 타고난 광부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굴을 뚫고 숨겨진 마을을 만들면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불어난다.
게다가 한번 마을을 만들고 수가 불어나면,
굴 곳곳에 도주로와 함정을 만들고 마비독으로 기습 공격을 한다.
이런 고블린은 상대하기 까다롭고, 박멸하는 것도 매우 힘들다.
최후식은 재빨리 통신기로 길드에 지금 상황을 알렸다.
상황이 변했다!
최대한 빨리 고블린이 들어온 입구를 막고,
고블린이 흩어지기 전에 길드의 헌터들을 동원해 광산 안을 샅샅이 뒤져 처리해야 했다.
최후식은 바로 장비를 착용하며 지시했다.
"경석아! 저 안전상자 들어라! 굴 막을 자재 들어있다!"
다급한 상황.
최후식은 안전상자를 챙긴 한경석을 따라 은신처 밖으로 달려나갔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채굴 작업도 빠졌지만,
지금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천문석이 저 밑에서 채굴 작업 중이다.
유령 개미의 특성상 천문석은 마력 통신기도 없이 굴속을 기어가고 있다.
천문석이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고블린이 퍼져 나가면 유령 개미는 모두 사라진다.
몇 시간 동안 굴속을 기던 아이템 채굴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 다시 채굴 작업을 할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블린이 개미굴 안으로 퍼져 나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저지해야 했다.
"어디야?"
[중앙 통로!]
한경석과 최후식은 개미굴 광산을 관통하는 중앙 통로 방향으로 달려갔다.
---
"응?"
개미굴 속을 기던 천문석은 귀를 기울였다.
'뭔가 소리가 들릴 것 같은데?'
그러나 한동안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문석은 신경을 끄고 다시 열심히 기었다.
쓰윽, 쓰으윽-
역시 뭐든지 하면 느는 건가?
아까까지는 엄청 힘들었는데,
어쩐지 이제는 기어가는 것도 익숙해진다.
천문석은 힐끗 시계를 봤다.
이제 곧 3시간이다. 그런데도 저 유령 개미는 멈출 생각 없이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천문석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거 혹시 길을 잃는 것 아냐?
그러나 곧 걱정은 사라졌다.
최후식이 보여 준 개미굴 광산 지도와 이곳의 특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개미굴 광산은 뒤집힌 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다.
중앙의 거대한 줄기,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아래쪽으로 뻗은 수많은 가지.
가지 하나하나가 천문석이 지금 기고 있는 개미굴이었다.
혹시나 길을 잃더라도 몸을 돌려 위로만 움직이면 중앙 통로에 도착하고,
중앙 통로에는 개미굴 광산의 시작 거점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이 깔려 있었다.
게다가 유령 개미의 반짝이는 흔적을 따라 몇 시간을 이동했어도,
반대로 몸을 돌리면 오래 걸리지 않아 중앙 통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최후식 헌터의 말로는 유령 개미가 몇 시간 동안 개미굴을 기어가는 것 자체가 문을 열기 위한 일종의 마법적 의식 같은 거라고 했다.
지금 유령 개미를 따라 기어가는 이 굴은 실재하는 공간이 아닌 마법으로 확장된 공간인 것이다.
개미굴 광산은 여러모로 신기한 장소였다.
이때 줄이 축 늘어지고,
앞에서 기어가던 유령 개미가 멈췄다.
마침 천문석이 멈춘 곳은 좁은 굴 곳곳에 자리한 지름 2, 3미터 정도 되는 방 같은 공간이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넓은 공간으로 들어가 몸을 일으켰다.
3시간 만에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는 순간.
우두둑-
전신이 쭉 펴지며,
뼈마디에서 시원한 소리가 울렸다!
흐어어-
천문석은 탄성을 삼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순한 기지개 한 번에,
육체가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두 발로 걸어 다니도록 만들어졌다!
다시금 진리를 깨달은 천문석은 재빨리 팔다리를 움직여 스트레칭을 했다.
이때 갑자기 당겨지는 줄!
천문석은 바로 엎드려 굴속으로 들어갔다.
파르르-
손목에 묶인 줄에서 느껴지는 진동.
유령 개미의 이동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깜짝 놀란 천문석은 유령 개미를 따라 기어가는 속도를 높였다.
잠시 후,
앞쪽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끼에엑-
키키에엑-
비명 같은 고블린 외침!
순간 미끼와 연결된 줄이 축 늘어졌다.
유령 개미가 고블린에게 공격당했다!
상황을 짐작한 천문석은 다급히 앞으로 기었다.
잠시 후 예상대로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지름 1미터가량, 좁은 굴속에서도 몸을 완전히 일으킨 세 고블린!
유령 개미를 포위한 세 고블린은 단검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고블린의 단검은 유령 개미의 희뿌연 영체를 통과할 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겁쟁이 유령 개미는 단검이 떨어질 때마다 움찔움찔 놀라며 공격을 피하려 했다.
천문석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유령 개미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고블린 단검 공격.
그러나 이 단검이 유령 개미의 집게에 물린 미끼와 이어진 줄을 건드리고 있었다!
줄이 끊어지면, 3시간 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상황이다!
경악한 천문석은 미친듯이 기어갔다.
쓱, 쓱, 쓰윽-
끼에엑-
고블린이 유령 개미를 찌르느라 정신이 팔린 틈에 재빨리 장갑 낀 손으로 고블린 입을 가리고 덮친다,
체중으로 내리누르는 순간.
고블린 머리를 잡아 단숨에 비틀고 단검을 뺐었다.
쓰으윽-
천문석은 땅을 박차고 몸을 앞으로 던졌다.
단검을 고블린 등에 박으며 밀고 들어가면서 팔을 크게 휘두른다.
턱-
팔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
걸린 것을 낚아채 끌어당기며 비틀어 뽑은 단검을 박아 넣었다.
끼에-
단숨에 죽어 자빠진 세 고블린.
고블린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순식간에 죽었다.
천문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번개처럼 찌르는 단검!
단검이 적중하기 직전,
천문석은 깜짝 놀라 단검을 멈췄다.
희뿌연 빛에 휩싸인 커다란 개미.
유령 개미가 천문석을 보고 있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유령 개미의 집게부터 확인했다.
“...”
유령 개미는 집게로 물고 있던 미끼를 놓아 버린 상태였다.
3시간 동안 기어온 게 물거품이 되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한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하···. 시바."
---
겁쟁이 유령 개미.
유령 개미는 물 위에 비치는 상처럼 현실에 드리워진 허상이라고 한다.
사진을 때려도 사진에 찍힌 본체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유령 개미를 아무리 공격해도 유령 개미 자체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뒤를 따라 기어가는 사람을 본 순간.
겁쟁이 유령 개미는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 놀라,
물 위에 비친 상이 바람에 흩어지듯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3시간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일기일원공을 운공하며 되뇌었다.
'나는 흙이다. 나는 바위다. 나는 자연이다···.'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흘리고 숨소리마저 삼킨다.
순식간에 개미굴과 동화되는 천문석.
천문석을 보던 유령 개미는 더듬이를 움직이며 주위를 살폈다.
갑자기 눈앞에서 천문석의 기척이 사라져 놀란 모습!
그러나 곧 유령 개미 더듬이가 천문석에게 닿았고,
주위를 살피던 유령 개미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다시 고정됐다.
천문석은 재빨리 더듬이를 피해 뒤로 기어 다시 주변 환경과 동화되려 했다.
이 순간 유령 개미 더듬이가 닿은 육체에서 느껴지는 감각.
선연함!
어?!
천문석은 선연함을 느낀 순간 멈칫했다.
불처럼 뜨겁고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
얼어붙은 불꽃을 만지는듯한 기이한 느낌.
익숙한 감각, 천강흔!
천문석의 전신에서 천강흔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순간 유령 개미의 더듬이가 부르르 떨리고,
천강흔을 타고 흐르는 선연함이 몇 배나 강해진다.
이건 또 뭐야?
유령 개미와 접촉한 순간,
잊고 있던 천강흔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으로 선연한 기운이 흐른다.
생각도 못 한 상황에 천문석이 당황할 때.
구르르르-
개미굴이 진동했다.
그리고 천장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희뿌연 영체.
유령 개미 머리!
한 마리가 아니었다.
벽과 바닥, 사방에서 유령 개미들이 튀어나왔다!
수십, 수백 마리의 유령 개미가 튀어나와 천문석에게 접촉했다.
순간 천강흔의 존재감이 순식간에 강해졌다.
가끔은 있다는 것도 까먹는 천강흔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천강흔 속을 얼어붙은 불꽃이 흐른다.
냉기를 뿜어내는 얼음이 전신을 얼리고,
그 뒤를 따라 열기를 뿜어내는 불꽃이 움직여 전신을 녹인다.
냉기와 열기가 뒤섞인 기이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져 나갈 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
거대한 동공.
은은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동공이 보였다!
동공에는 수많은 유령 개미들이 있고,
그 중앙의 높은 단 위에는 찬란한 황금빛에 휩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황금빛을 뿜는 형상.
유령 개미들은 아이템과 보물, 잡동사니를 집게로 물어다 황금빛을 뿜는 형상에게 바치고 있었다.
흑요석 도끼.
먼지가 가득 쌓인 은색 패.
잘 말린 약초잎.
활짝 핀 꽃이 붙어있는 나뭇가지.
열기를 뿜는 작은 화로.
나무 덩굴로 만든 커다란 바구니.
치렁치렁한 붉은 술이 달린 창.
여덟 개의 돌조각을 엮어 만든 목걸이
바람을 휘감은 고검.
빛나는 보석을 품은 운석.
...
유령 개미들이 바치는 수많은 물건의 형상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틈 하나 없이 굴 안에 가득 채워진 유령 개미들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떨림이 멈추는 순간.
유령 개미들은 거대한 물살이 되어 흘러내렸다!
천문석은 수많은 유령 개미의 물결에 휩쓸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
"어, 어어! 뭐야!?"
계곡에서 쏟아지는 급류처럼 굴속을 미끄러지는 엄청난 수의 유령 개미 무리!
천장과 벽, 바닥.
어디를 봐도 유령 개미뿐이다!
물처럼 흐르는 유령 개미들은 반짝이는 가루를 흩날렸고,
반짝이는 가루에 맞은 굴 전체는 하얗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하얗게 반짝이는 개미굴 속을 워터파크 슬라이드처럼 미끄러져 내려가는 천문석.
천문석은 수많은 유령 개미에 휩쓸려 순식간에 개미굴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천문석이 기었던 거리는 이미 넘어섰고,
최후식이 보여 준 개미굴 광산 지도의 가장 깊은 굴을 넘어가는 거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이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아니 그보다 통로가 왜 안 끝나?’
천문석이 내심 어이없어할 때.
정면 멀리 막혀있는 굴이 보였다.
막혀있는 굴, 막다른 곳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는 유령 개미!
"어, 어? 어!"
천문석이 당황할 때,
유령 개미는 반짝이는 가루를 흩날리며 벽과 충돌했다!
충돌의 순간 천문석은 느꼈다.
유령 개미의 반짝이는 가루가 전신을 휘감고,
두근- 천강흔이 맥동하자 육체가 단숨에 흐릿해진다.
처음에는 하늘을 나는 부유감이,
다음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낙하감이 느껴진다.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몸에 힘을 빼고 충돌에 대비했다.
쿵-
착지 순간 일기일원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회전 낙법으로 데굴데굴 굴려 충격을 흘린다.
땅 위를 구르는 몸에 부딪히는 오돌도돌한 무언가들!
천문석은 한참 동안 데굴데굴 구르다가 벌떡 일어났다.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유령 개미들이었다.
빛나는 유령 개미들이 허공을 가르고 떨어져 내려 녹아들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유령 개미들이 사라지자,
거세게 맥동하던 천강흔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천문석은 우선 주위를 살폈다.
습기 없이 바짝 마른 공기가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동공이 보였다.
동공 전체를 감싼 은은한 빛에 주위가 훤히 잘 보였다.
동공 중앙에는 텅 빈 높은 단이 있고,
그 주위로 평평한 석재가 깔린 바닥이 있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유령 개미와 접촉했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영상.
이곳은 유령 개미가 아이템과 잡동사니를 바치던 영상 속 그 장소였다!
그러나 중앙의 높은 단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툭-
천문석은 문득 발에 느껴지는 감촉에 시선을 내렸다.
어디선가 굴러와 발에 부딪힌 작은 돌 같은 무언가.
천문석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때 몸에 닿던 오돌도돌한 그것들이었다.
천문석은 손을 내려 발에 닿은 것을 들어 올렸다.
“...?”
은은한 빛 아래 드러난 동그란 그것은.
"도토리···?"
작은 도토리였다.
"개미굴 안에 무슨 도토리야?"
천문석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1미터정도 높이로 쌓여있는 도토리 무더기가 사방에 있었다.
지금 발에 닿은 도토리는 저 도토리 무더기에서 굴러온 것이었다.
참나무숲도 아니고 동굴 속에 무슨 도토리란 말인가?
의아해하며 도토리 무더기로 가까이 가는 순간.
보였다.
도토리 무더기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수많은 아이템과 잡동사니!
검, 창, 방패, 우산, 도끼, 갑옷, 피리, 나뭇잎, 바구니, 항아리, 돌무더기···!
천문석은 직감했다.
유령 개미 저장창고, 보물방이다!
도토리가 곳곳에 쌓여있는 게 이상했지만,
아이템이 있는 보물방에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헌터가 되면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균열을 닫아 균열 코어를 획득한다.
대규모 레이드에 성공해 분배를 받는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엄청난 아이템을 얻는다.
...
꿈에 그리던 대박의 순간들!
그런데 헌터가 되기도 전에 그 날이 왔다.
아이템을 얻는 순간!
초대박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