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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8화 (59/1,336)

#058

천문석이 빛의 문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빛의 문은 꺼지듯 사라졌다.

텅 빈 바위 언덕 위에는 회색 재와 검은 그을음, 타다만 나뭇조각 같은 격렬한 전투의 흔적만 남았다.

이때 아득히 먼 북쪽의 숲에서 거대한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우으으으으-

순간 허공에 흩날리는 눈보라!

휘이잉-

눈보라가 하늘 높이 날던 불붙은 강철 와이번을 한 바퀴 휘감는 순간.

끼이이익-

강철 와이번은 부력을 잃은 배처럼 추락했다.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강철 와이번!

강철 와이번은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검은 날개를 휘저었지만.

와이번의 거대한 육체는 다시 날아오르지도 바람을 타고 활강하지도 못했다.

끼이, 끼이익-

겁먹은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잇달아 터질 때.

휘이이잉-

거센 눈보라가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강철 와이번의 전신의 불이 순식간에 꺼지고, 단단한 금속질 비늘 위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꽈드득-

하얀 서리는 순식간에 두꺼운 얼음으로 자라났다.

끼이, 끼이익-

적의 정체를 깨달은 와이번이 버둥거리며 발광을 했지만,

두꺼운 얼음에서 순식간에 자라난 얼음송곳이 와이번의 육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쩡, 쩌저적-

얼음송곳에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이 단숨에 꿰뚫렸다!

강철 와이번은 엄청난 마력저항을 가졌지만,

이 얼음에는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마치 육체가 스스로 얼어붙는 듯한 모습.

순식간에 전신이 얼어붙은 강철 와이번은 숲속으로 처박혔다.

콰아앙-

끼익, 끼이익-

추락한 강철 와이번이 울부짖으며 발버둥 칠 때,

거대한 늑대들이 나타나 와이번을 찢어발겼다.

강철 와이번은 강철보다 단단한 비늘을 가진 상급 마수다.

그러나 서리혼을 되찾고 균열 코어의 힘마저 흡수한 서리 늑대들에게는 도망을 잘 치는 귀찮은 적일 뿐이었다.

얼어붙은 와이번은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조각나 서리 늑대에게 먹혔다.

우으으-

서리 늑대들은 짧은 하울링으로 승리와 복수를 노래했다.

서리혼을 잃고 힘을 잃었을 때 와이번에게 쥐어터졌던 복수를 끝냈다.

복수를 마친 서리 늑대들의 시선이 일제히 북쪽으로 돌아갔다.

도망을 잘 치는 와이번을 쫓아 이곳 먼 남쪽까지 온 서리 늑대들.

와이번을 처리했지만,

서리 늑대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리혼을 잃고 평범한 늑대로 영락한 시절 받았던 핍박.

근성의 서리 늑대들은 예전의 원한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전쟁 오크, 늪지 트롤.

외눈 오우거, 용암 거인···.

그리고 반드시 복수해야 할 두 강적!

황금색 줄무늬와 빛의 날개를 가진 도토리 숲의 악마!

통통한 몸, 까만 눈과 삼각형 부리를 가진 하늘의 제왕!

그러나 이 두 강적은 마지막이다.

그전에 복수할 대상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우으으으-

서리 늑대들은 잠시 하울링을 하다가,

다음 복수 대상을 찾아 둥지가 있는 북쪽 극랭지로 달렸다.

휘잉, 휘이잉-

바람처럼 숲을 달리는 서리 늑대.

서리 늑대의 궤적을 따라 생겨난 냉기 폭풍이 숲으로 뻗어 나갔다.

엄청난 냉기 폭풍에 나무가 얼어붙고,

두꺼운 얼음이 사방에서 자라났다.

서리 늑대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어느 순간 전진하는 서리 늑대 앞에 푸른 빛이 드리워졌다.

공간을 뛰어넘는 균열의 빛.

서리 늑대들은 극랭지로 이어진 균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서리 늑대들이 사라졌지만,

냉기 폭풍은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

서리혼이 만들어낸 냉기 폭풍이 숲으로 퍼져 나가자,

몬스터와 마수들이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우으으으-

크아아아-

숲이 진동하고 수많은 몬스터와 마수의 울음이 하늘을 뒤흔든다.

서리혼을 되찾고 균열 코어마저 삼킨 서리 늑대 일족.

서리 늑대 일족의 복수가 일으킨 연쇄반응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신서울에서 아득히 먼 북쪽 극랭지에서 시작된 연쇄반응은,

어느새 동대문 게이트 소멸로 시작된 몬스터 연쇄 이동마저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해변에 가까워졌을 때 더 거대해지는 쓰나미처럼,

거대해진 연쇄반응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몬스터조차 움직이게 했다.

대형 몬스터와 상급 마수들!

서리 늑대가 만들어낸 몬스터의 쓰나미가 사방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

기이잉-

귀에서 쏘아진 이명이 머리를 울린다.

위이잉-

기이잉-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

양쪽 귀를 오가는 탁구공 같은 이명.

머리가 소리굽쇠처럼 진동하고,

오한이 든 것처럼 이가 다다닥 부딪혔다.

포션 쇼크에서 깨어나는 감각.

수없이 겪었으나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다.

최후식은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철 와이번!'

이때 볼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감촉!

최후식은 번쩍 눈을 뜬 순간 볼 수 있었다.

카멜레온 은신 후드를 내린 한경석의 맨 얼굴!

정말 오랜만에 맨 얼굴을 보는 한경석은 깜짝 놀라 굳어있었다.

문득 눈동자를 내리자 보였다.

"...!"

한경석은···.

자신의 볼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야! 이! 썅!"

순간 최후식 손바닥이 날아가고,

한경석은 다급히 점멸하려다 실패하고 뒤통수에 손바닥을 맞았다.

피이이-

찰싹-

흐어어어-

엄청난 고통에 최후식은 몸을 숙이고 신음을 흘렸다.

한경석의 뒤통수를 때린 순간,

손바닥에서 시작된 충격이 전신을 내달린다.

저릿저릿한 충격에 으스러질 것 같은 전신!

외눈 거인 레이드를 하고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던 그때의 감각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 씨! 왜 때려!"

으으윽-

한경석은 버럭 화내다가 고통스러워하는 최후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왜 그래? 어디 아파?"

"괜찮아···."

최후식은 통증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강화 강철 바닥에 깔린 두툼한 양탄자,

강철 벽에 자리한 장비 벽장, 소모품 보관 서랍장.

구석에 쌓여있는 안전 상자,

헌터용 마력 회로 통신기.

열린 구급상자와 깨진 상급 포션 앰플.

에어컨이 돌아가는지 쾌적한 실내.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유압식 안전문까지.

익숙한 실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개미굴 광산의 입구 거점이었다.

'무사히 들어 왔구나!'

안도한 최후식은 한경석에게 바로 질문했다.

"여기 거점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경석이 네가 옮겼냐? 천문석은? 와이번은 어떻게 됐어?"

"정신 차려 보니까 여기던데? 난 이사님이 옮긴 줄 알았는데. 천문석은 저기 있고."

한경석이 가리킨 곳은 벽에 놓인 야전 침대.

침대 위에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눈에 익은 체형, 천문석이었다.

최후식은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가볍게 손을 쥐었다.

쿵-

손에서 시작해 전신을 달리는 고통.

저릿저릿한 팔다리와 두근거리는 심장, 지끈거리는 머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나 최후식은 통증이 반가웠다.

갑자기 조우한 상급 마수, 강철 와이번!

사지 한두 개는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적이다.

지금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지만,

영구적인 손상 없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정도의 타격뿐이다.

정말 운이 좋았다.

문득 고개를 든 최후식의 시선이 야전 침대에 누운 천문석에게 향했다.

'천문석.'

최후식은 직감했다.

저 녀석이 자신과 한경석을 구해냈다!

최후식은 천문석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넌 언제 정신 든 거야? 천문석은 어때 괜찮아?"

한경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도 방금 깼어. 이사님이 아니면. 쟤가 우리를 데려온 건가? 쟤는 뭘 어떻게 했는지 강화 전투복이 걸레가 됐어. 내가 쟤한테 상급 포션 먹였고. 지금은 포션 쇼크로 기절 중."

"몸은 어때?"

"신기한 거 말고는 다 멀쩡해."

"신기한 거?"

고개를 돌리는 최후식의 앞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무언가.

양팔을 위로 들고 있는 가시가 박힌 식물, 선인장.

한경석이 내민건 선인장 화분이었다.

"...이거 선인장 화분 아냐? 선인장 화분이 여기 왜 있냐?"

한경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거 그냥 선인장 아냐. 이거 봐봐!"

한경석은 손가락으로 선인장 가시를 가리켰다.

"선인장 가시? 그게 왜?"

"자세히 봐봐!"

최후식은 선인장 가시를 자세히 봤고 곧 한경석이 말하려고 하는 걸 알아챘다.

선인장에 빼곡히 박힌 가시.

이건 가시가 아니라 고블린 마비 독침이었다.

고블린 마비 독침이 가득 꽂힌 선인장 화분.

"그래서···. 이게 신기한 거냐?"

최후식이 어이없어하자,

한경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성적으로 외쳤다.

"당연하지! 이 선인장 살아있어!"

“...”

간만에 은신 망토를 벗고 얼굴을 마주 보고 정상적으로 말하나 했더니 한경석 얘는 여전히 4차원이었다.

‘그럼 당연히 선인장이 살아있지!’

최후식은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학생 시절의 학폭 후유증이 암살검 각성몽으로 지워졌나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반말로···.

“왜?”

최후식이 빤히 쳐다보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한경석.

그러고 보니 이 녀석 한경석이란 이름도 자기 오빠 이름이다.

“...”

대인전으로는 한국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 암살검 한경석.

그런 암살검이 학폭 후유증으로 얼굴을 드러내지도 자신의 본명을 사용하지도 못하다니···.

'어? 그런데 이 녀석 나한테는 맨날 개기잖아?'

최후식은 문득 의심이 들었다.

이 새끼, 이거 그냥 컨셉아냐?

그러나 고블린 마비 독침이 꽂힌 선인장을 들고 좋아하는 한경석을 보니 화를 내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최후식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다.

“그래. 신기하다.”

최후식은 한경석을 지나쳐 야전 침대에 다가갔다.

지금은 한경석보다 천문석이 중요했다.

야전 침대에 누운 천문석.

구멍 난 안전 장갑과 안전 군화.

방검방탄복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헬멧은 바이저가 날아가고 금이 갔다.

천문석은 곳곳에 구멍이 뚫린 강화 전투복을 입은 채 야전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행히 팔다리 손가락 모두 멀쩡하고 겉으로 보이는 큰 상처도 없었다.

최후식은 안도하는 동시에 감탄했다.

강철 와이번!

상급 마수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마수에게서 무사히 도망치다니···.

그것도 포션 쇼크로 기절한 두 명을 데리고!

이건 상급 헌터도 해내지 못할 엄청난 일이다.

천문석이 이걸 해냈다!

헌터 라이센스도 받지 못한 애송이가 기절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강철 와이번에게서 무사히 도망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후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군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강철 와이번이 나타났는데 모두 멀쩡하다고?"

"모두 멀쩡한 건 아냐."

"뭐?"

깜짝 놀란 최후식이 천문석의 전신을 다시 살피려 할 때,

한경석이 천문석의 헬멧을 가리켰다.

"헬멧."

"헬멧? 머리?!"

최후식은 천문석의 헬멧을 다급히 벗겼다.

머리에 상처라도 있다면 바로 이송해야 했다.

천문석의 헬멧이 벗겨진 순간,

굳어버린 최후식.

최후식은 한경석이 말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렇다.

모두 멀쩡한 건 아니었다···.

세세한 과정은 알 수 없었지만,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천문석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최후식은 자신의 정수리를 만지며 깊은 탄식을 했다.

하-

장년의 자신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20대에 저렇게 되다니···.

최후식은 헬멧을 벗은 천문석을 애잔한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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