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기감을 퍼트렸다.
너무나 뚜렷한 와이번의 존재감!
빙글-
와이번은 천문석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비행하고 있었다.
바로 공격을 하던 전과는 달리 뜸을 들이는 모습.
몇 번이나 허탕을 친 와이번은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와이번이 그리는 원에서 거센 바람이 쏟아졌다.
휘이이잉-
마치 살기의 폭풍 속에 갇힌 듯.
날카로운 바람이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섬뜩한 살기가 내려꽂혔다.
천문석은 폭풍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바위 언덕을 반쯤 지났을 때, 살기의 폭풍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이 순간.
파아아아앙-
천천히 원을 그리던 와이번이 단숨에 내려꽂혔다!
몸을 숨길 장애물 하나 없는,
텅 빈 바위 언덕 위를 달리는 천문석에게로!
와이번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천문석은 돌연 몸을 숙이고 어깨를 흔들었다.
투둑, 툭-
최후식과 한경석을 땅에 내려놓은 천문석.
천문석은 땅을 박차고 폭풍을 뚫으며 외쳤다!
"와라-!"
와이번에게 마음을 둔 채,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른다.
혼백이 실린 고함이 와이번에게 닿자.
와이번의 시선은 천문석에게 고정됐다.
순간 천지를 진동시키는 와이번의 포효가 터졌다.
끼이이이익-
피어가 실린 포효에서,
살기가 형체를 가진 검처럼 쏟아졌다.
천문석은 돌연 멈춰서 빙글 몸을 돌렸다.
활강하는 와이번이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섬뜩한 살기가 천문석을 꿰뚫었다.
차갑고 뜨거우며,
섬뜩하고 저릿저릿한 와이번의 살기!
무형의 살기가 유형의 육체를 관통하자,
진짜 칼로 육체를 헤집는 듯한 고통이 솟아난다.
강철 와이번의 엄청난 위용!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순간,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건 두려움이 아니었다.
한낱 미물의 살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
천지를 태울듯한,
천마의 분노가 끓어오른다!
엄청난 분노에 몸을 헤집던 살기가 단숨에 흩어지고,
몸을 저릿저릿하게 때리던 피어마저 산산 조각난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혼백에 새겨진 전생 천마의 본질이 선명해진다.
그러나 현생의 영육에 천마의 분노를 태울 화로, 마공은 없다.
전생 천마의 화산 같은 분노는 힘이 되지 못하고 헛되이 흩어져 사라지려 했다.
이 순간 천문석은 끝까지 미뤄뒀던 방법을 사용했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뜻과 뜻을 잇는 수인을 짚어.
현생의 영육을 혼백에 새겨진 전생 천마의 본질로 잇는다.
한 사람의 본질을 규정하는 영혼육백(靈魂肉魄).
현생의 영육에 쌓인 내력은 일천하나.
혼백에 새겨진 전생의 본질은 수라장을 헤쳐 나온 천마!
천문석은 영육과 혼백의 본질을 이어,
천마가 정점에 달했던 순간.
극(極)!
백척장두에 다시 섰다.
그리고 한 줌의 일기일원공으로 진일보한다.
허공에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폭발하는 한 줌의 일기일원공!
폭발하는 일기일원공의 기세를 타고 단숨에 비상한다.
비상한 현생의 영육은 혼백에 새겨진 전생의 경지를 훔쳐냈다.
전생 천마의 깨달음.
생사팔문(生死八門).
한 줌의 일기일원공이 흩날리듯 사라지고,
훔쳐낸 전생의 경지가 현생의 영육에 닿는 순간.
천문석은 문득 눈을 떠 천지를 관(觀)했다.
어지럽게 얽히는 인과의 사슬이 그려내는 생과 사의 엇갈림.
훔쳐낸 경지로 천지를 가늠한다.
쏟아지는 살기.
몰아치는 바람.
천지를 울리는 포효.
그리고 눈앞의 현상 너머.
인과의 사슬.
생사의 엇갈림.
범인은 인지할 수조차 없는,
수천수만 가닥의 인과를 다만 바라보다가.
문득, 걷는다.
쿵, 쿵, 쿵-
단지 세 걸음의 보법.
그러나 이 세 걸음에는 전생 천마에게서 훔쳐낸 깨달음의 정수가 담겨있었다.
생사팔문(生死八門).
생과 사가 교차하는 팔문을 넘나드는 전생 천마의 보법.
-한걸음에 생문을 훌쩍 뛰어넘어 스스로 사문으로 들어설 때.
콰아아앙-
천문석의 앞, 지근거리에 와이번이 떨어져 내리고!
-빙글 몸을 돌려 사문에서 생문으로 한걸음 내딛는 순간.
휘이이잉-
와이번의 강철같은 날개가 천문석이 있던 허공을 반으로 가른다!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
-생문과 사문. 생사에 양발을 하나씩 걸친 채, 성큼.
천문석은 돌진하는 와이번에게 오히려 한발 다가갔다.
끼이이익-
거센 포효를 내지르며 돌진하는 강철 와이번!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전신을 깔아뭉개려는 이 순간.
천문석은 어느새 손에 들린 박도를 가볍게 밀었다.
생사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팔문의 중심을 향해,
미풍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처럼 힘없이 나아가는 박도.
첨단이 부러진 박도는 단숨에 산산이 조각나고.
천문석도 흔적도 없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박도가 와이번과 닿는 순간.
엄청난 기세로 돌진하던 강철 와이번이 정지하듯 뚝- 멈췄다.
그리고 천문석의 발아래에서 솟구치는 새하얀 먼지구름!
휘이잉-
단단한 화강암 바위가 으스러진 바위 먼지가 솟구쳤다.
한 줌의 일기일원공으로 훔쳐낸 전생 천마의 경지로 삶과 죽음에 양발을 걸친 천문석.
천문석은 와이번의 무게와 돌진력을 화강암 바위로 흘렸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엄청난 거력에 단단한 화강암 바위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쏟아지던 힘을 되돌려 정지한 와이번을 때린다.
쿵-
되돌린 힘은 많지 않았다.
고작 5% 미만.
지금의 천문석에게는 이게 한계였다.
그러나 단단한 외부가 아닌 부드러운 내부를 관통하는 침투경(浸透勁)의 생경한 고통!
끼익, 끼이익-
하늘의 패자, 적이 없던 강철 와이번은 내부를 헤집는 생경한 고통에 울부짖었다.
피어가 실리지 않은 놀라움이 담긴 울부짖음.
그러나 아직 모자랐다.
와이번이 깜짝 놀란 이 순간,
천문석은 준비한 마지막 일수를 펼쳤다.
두 손이 맞닿아 박수를 치는 순간.
콰앙-
굉천수,
아무 위력 없는 허풍수의 일수가 터졌다!
---
콰앙-
엄청난 굉음과 섬광,
하늘을 놀라게 하는 굉천수!
굉천수는 허풍수라고 불리는.
화권수퇴, 겉만 요란한 무공이다.
그러나.
우레가 울고,
섬광이 터지고.
아주 작은 뇌전이 번뜩이는 순간.
천문석이 하나씩 쌓아 올린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다.
화르륵-
천지에 몰아치는 숯가루에서 치솟는 화염!
콰아아앙-
분진 폭발!
와이번 주위를 휘도는 엄청난 양의 숯가루가 폭발했다.
마법처럼 생겨난 화염이 와이번에게로 이어져,
와이번의 전신에 달라붙은 숯가루와 바짝 마른 낙엽이 단숨에 불타올랐다!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된 와이번.
끼이이익-
와이번이 엄청난 열기에 울부짖는 순간.
천문석은 마력광에 휩싸여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분진 폭발의 위력을 감쇄시키는 방검방탄복과 강화 전투복의 마력광.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
이 순간을 위해 쌓아 올린 수많은 조각.
와이번을 끈적한 이끼가 자란 나무로 유인하고,
위험을 감수한 채 숯이 잔뜩 쌓인 검은 땅으로 달렸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굉천수!
화권수퇴, 겉만 요란하다 말해지는 허풍수의 작은 번개로 산산조각난 분진, 숯가루를 점화시켰다.
천문석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하-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끼이이익-
당혹감과 놀람 그리고 작은 고통.
와이번의 울음에서 마수의 공격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보였다.
분진 폭발의 화염을 뚫고 나온 불타는 와이번.
와이번은 다급히 바위 언덕을 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휘이이잉-
전신에 거센 화염을 두르고 있지만,
와이번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로 날아올라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었다.
처음 계획대로 와이번을 쫓아냈지만,
천문석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와이번은 접착액을 뿜어내는 이끼를 뒤집어쓰고, 바짝 마른 낙엽이 쌓인 숲과 숯이 가득 쌓인 검은 땅 위로 몇 번이나 굴렀다.
저 와이번의 전신은 기름이 뿌려진 장작더미나 마찬가지다.
이런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는데도 와이번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와이번을 놀라게 만들어 도망치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상급 마수, 강철 와이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터프한 녀석이었다.
파아아앙-
이때 거센 바람이 땅으로 불어오고,
폭발력에 날아가던 천문석은 땅 위를 굴렀다.
데굴데굴 땅을 구르기 시작하자.
와이번의 돌진력을 흘리고, 분진 폭발을 감쇄시킨 장비들이 하나씩 부서져 나갔다.
쩡-
와이번의 엄청난 힘을 흘린 박도가 모래처럼 무너져 내린다.
투드득-
방검복의 강화 패드가 으스러지고 강철보다 튼튼한 섬유가 삭아내린다.
파슥, 파스슥-
강화 전투복 곳곳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충전된 마력이 번뜩이며 사라진다.
장비가 모두 박살 난 채,
땅 위를 구르던 몸이 멈추는 순간.
천문석은 발로 땅을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쿨럭-
왈칵 쏟아지는 핏덩어리.
한 움큼의 피를 쏟아내자 거대한 통증이 전신을 달렸다.
육체의 통증이 아닌.
영육이 갈리고,
혼백이 흩어지는 끔찍한 고통!
생사팔문.
훔쳐낸 전생의 경지가 영육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 방법으로 세 마리 검치호를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었음에도 미뤘던 이유.
전생의 경지를 훔쳐낸 반동이 돌아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펴고 고통을 관(觀)했다.
고통과 자신을 분리하면 고통은 한낱 미망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건 인간에서 멀어지는 길이고,
혼백에 새겨진 경지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일이다.
하늘의 저울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법.
천문석은 산과 바다, 자연이 쏟아지는 비와 몰아치는 폭풍을 맞이하듯 고통을 받아들였다.
빗방울이 모여 못을 이루고,
못이 수원이 되어 강을 만든다.
그리고 수많은 강이 흘러 거대한 바다로 모인다.
빗방울이 거대한 바다가 되는 너무나 당연한 ‘인과’.
이 고통은 하늘이 내리는 벌이 아닌 ‘인과’였다.
현생의 영육에 쌓은 경지가 아닌,
혼백에 새겨진 전생의 깨달음을 훔쳐냈기에 발생한 '단절을 잇는 인과'.
하늘의 저울은 천문석이 만들어낸 '결과'와 '원인'을 잇는 '인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과를 잇는 끔찍한 고통이 영혼육백을 스쳐 지나가는 이 순간.
천문석은 문득 생각했다.
신체 보조 기능을 잃은 강화 전투복.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힌 방검복.
모래처럼 무너진 박도.
...
‘설마 부서진 장비를 전부 다 물어줘야 하나?’
'이거 할부로 하면 얼마씩 내야 하는 거야?'
하-
자신도 모르게 웃는다.
무공은 천 년 동안 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그러나 오늘 떨어진 물방울은 바위보다 단단한 와이번을 깨뜨렸다!
생사 대적에 승리한 이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망가진 장비 걱정이라니!
천문석은 헛웃음과 함께 통증이 달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순간 코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코피.
천문석은 코피를 닦아내다가 흠칫 놀랐다.
진원(眞元)!
선천지기가 담긴 진원이 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진원은 금세 멈췄다.
'뭐. 이정도야.'
내심 감내할만하다고 생각하며,
천문석은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만 같은 몸.
실제 고통인지 하늘의 인과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몸이 움직이기는 했다.
저 멀리 강풍에 밀려난 최후식과 한경석 두 사람이 보였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
최후식에게 걸어간 천문석은 생각지도 못한 걸 봤다.
강풍에 밀려난 최후식은 검치호 송곳니를 포장한 끈을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역시 프로 헌터!
감탄한 천문석은 검치호 송곳니를 챙기고, 최후식을 들쳐 메려다가 포기했다.
업었다가는 모래처럼 몸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천문석은 최후식의 찢어진 강화 전투복을 손에 감고 끌었다.
쓰르륵-
매끄러운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는 최후식.
다음은 한경석 차례.
한경석은 어느새 기능이 돌아온 카멜레온 은신 망토로 새하얀 바위와 동화된 상태였다.
다행히 머리를 가렸던 후드가 걷혀,
하얀 바위 위로 드러난 한경석의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한경석은 목 아래는 카멜레온 은신 망토로 덮여있어 머리만 뚝 떨어진 것 같은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런 한경석의 손에는 어째선지 자신의 선인장 화분이 잡혀있었다.
고블린과의 싸움 이후 검치호, 와이번까지 격전을 치렀는데도 선인장 화분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역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선인장 화분인가?
내심 웃으며 다가가던 천문석은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한경석의 맨 얼굴을 봤다.
"..."
한경석은 단정한 얼굴로 입가에 침을 흘리며 기절해 있었다.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쩐지 몸이 작고 가볍다 했더니,
얼굴이 드러난 한경석은 류세연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겉모습은 갓 스물이나 넘었을까?
그러나 각성 헌터는 겉모습만으로는 나이를 예측할 수 없었다.
천문석은 삐걱거리는 몸으로 걸어가 한경석의 카멜레온 후드를 잡았다.
그리고 최후식과 한경석 두 사람을 잡고 끌었다.
으아악-
쓰르르륵-
업는 것도 아니고 끄는 건데도 전신이 삐걱거린다.
절로 신음이 나오는 엄청난 부하!
강화 전투복이 망가져서인지 두 사람을 업고 달렸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뒤질 것 같아도 한 걸음만 떼면 어떻게든 움직일 수는 있다.
천문석은 양손에 최후식과 한경석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개미굴 광산 입구로 걸어갔다.
어느새 빛으로 만들어진 문은 사라졌지만,
문이 있던 위치로 가까워지자 다시 문이 나타났다.
푸른 빛으로 이뤄진 커다란 원이 그려지고 원에 접한 직사각형의 문이 생긴다.
원과 직사각형의 문 사이 공간,
빛의 도형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도착했을 때는 완전한 빛의 문이 만들어졌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전신을 찍어누르는 듯한 통증.
천문석은 빛의 문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천문석은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득 뒤를 돌아봤다.
고블린과 싸웠던 공터를 내려다보는 바위 언덕 정상.
이곳에서는 주변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아직도 밝은 대낮.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숲을 마찬가지로 거대한 강이 관통하고 있었다.
이 숲 곳곳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높게 솟은 나무가 부르르 진동하다가 불쑥 쓰러진다.
그리고 저 멀리 북쪽 하늘,
자신이 쫓아낸 불붙은 와이번도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고블린, 검치호, 와이번.
실패한 레벨링 디자인을 한 게임처럼 단계를 몇 개나 뛰어넘어 만난 몬스터들.
그러나 이 순간 천문석은 직감했다.
저 숲속에 와이번 이상으로 강력한 놈이 있다!
그러나 그건 나중에 걱정할 일이다.
영혼육백을 옥죄는 고통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쓰러져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고통.
전생의 경지를 훔쳐낸 반동이 예상 이상으로 컸다.
‘인과’를 잇기 위해서 하늘의 저울은 ‘고통’과 ‘진원’ 이상의 무언가를 더 원하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뭘 더 가져가려고?'
어이없었지만 지금 걱정해봐야 할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이 문을 통과해 개미굴 광산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다.
하늘이 뚫린 곳은 별로다.
천장이 막힌 아늑한 동굴에서 편하게 쉴 것이다.
천문석은 최후식과 한경석을 빛의 문으로 밀어 넣고,
빛의 문을 통과해 개미굴 광산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빛의 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천문석은 잊고 있던 걸 기억했다.
‘천강흔 이 쓸모없는 녀석···.’
'아, 상급 포션 먹어 둘걸···. 어! 꼬맹이가 줬던 상급 포션!? 그거 설마!'
빛의 문을 통과한 천문석은 꺼지듯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천문석의 몸.
천강흔이 하늘의 인과를 이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