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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2화 (53/1,336)

#052

"쟤···. 뭐냐?"

고블린 무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 정상,

최후식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장판이 됐을 현장 면접.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석이 정면으로 고블린 무리로 뛰어들더니···.

미친놈처럼 피를 뒤집어쓴 채···.

무인지경으로 고블린을 박살 내고 있었다!

박도를 붕붕 휘두를 때마다,

갈대처럼 잘려나가는 고블린!

무기, 방어구, 머리, 사지···.

저 투박한 박도는 결코 멈추지 않고 무엇이든 쪼개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각성자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뭐 이렇게 잘 싸워!?"

최후식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다른 면접자들이 있는 공터 가장자리를 봤다.

고블린과 싸우는 다른 면접자들.

압도적인 아군의 존재는 불리한 전장에서조차 사기를 끌어올린다.

저 녀석이 고블린 무리를 아작내 기세를 죽이자,

다른 면접자들도 외곽에서 착실하게 잘 싸우고 있었다.

"하- 이게 아닌데···."

최후식은 탄식했다.

길드장에게 채용의 전권을 받아낸 최후식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장갑 버스 이동 중 주위의 몬스터를 쫓아내 소풍이라도 온 듯 방심하게 했다.

-최약체 고블린이라고 안심시키고 언덕을 넘는 순간, 수백의 고블린 무리를 보게 해 패닉에 빠뜨렸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고블린을 가둔 바리케이드를 날려버려 돌발적으로 전투에 뛰어들게 했다.

"..."

이 모든 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

면접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고.

난전 상황에서 제대로 정신줄을 잡고,

근성 있게 싸울 수 있는지 확인하려 한 것인데···.

이대로라면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고 현장 면접이 끝나게 생겼다.

저기 저 녀석!

생각도 못 한, 한 녀석 때문에!

최후식은 문득 물었다.

"...경석아 지금 탈락자 몇 명이냐?"

옆에서 들려오는 음성 변조된듯한 목소리.

[다리 삐끗. 한 명.]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깊게 눌러쓴 한경석이 짧게 대답했다.

최후식은 어이없어하며 말을 쏟아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쟤 중급 헌터야!? 뭔 칼을 저렇게 잘 다뤄? 이번에 신입 헌터 채용이잖아? 경력직 채용 아니지?"

[아님.]

"아니 그리고 고블린 놈들이 왜 일제 공격을 안 하는 거야?! 저기 저 고블린 놈들. 왜 차례대로 공격하고 차례대로 죽냐?"

[모름.]

"쟤 각성자냐? 쟤 뭐야? 야! 김민철! 야! 쟤 누구야?! 김 과장! 어딨어!?"

[김 과장. 저기.]

한경석이 손가락질하자.

멀리 떨어진 채 천문석과 최후식을 번갈아 보며 땀을 뻘뻘 흘리던 김민철 과장이 움찔했다.

김민철 과장은 바로 서류철을 들고 뛰어왔다.

최후식은 돌아보지도 않고 천문석을 가리키며 외쳤다.

"야! 쟤 누구야? 이력서랑 검사서 있지?! 빨리 줘봐! 빨리!"

김 과장은 떨리는 손으로 천문석의 이력서를 펼쳐 서류철째로 최후식에게 넘겼다.

최후식은 이력서를 읽어내려가는 순간 눈이 커다래 졌다.

"이름은 천문석. 어, 이거 뭐야? 왜 이거밖에 없어?"

재빨리 서류철 앞뒤를 넘겨 보는 최후식.

"야. 김민철 과장! 이거 뭐야? 이력서에 뭔 빈칸이 이렇게 많아? 어, 이력서는 자필 아냐? 이거 인쇄잖아. 그리고 헌터 포텐 검사서. 각성 가능성 검증서. 종합 체력 점수표···. 왜 아무것도 없어?"

"..."

김 과장은 땀을 뻘뻘 흘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졌다!

최후식 총괄이사는 단 한 번도 면접 시 서류를 보지 않았다.

노가다 반장 같은 성격과 외모의 최후식 총괄이사는 겉모습과 달리 대기업 과장 출신 각성자였다.

각성 전 대기업을 다닐 때 서류에 너무 치여 빈 A4 용지를 보는 것조차 혐오하는 최후식 총괄이사.

그러나 서류를 혐오하는 최후식 총괄이사는 대부분의 일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헌터 길드에 거의 없는, 엘리트 사무직 회사원 출신이었다.

그런 최후식 총괄이사에게 차마 자신이 낙하산의 이력서를 가라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이때 들려오는 목소리.

"김 과장. 이 녀석 수상한데···. 경석아 네가 보기엔 어떠냐?"

[제가 봐도 수상한데. 쑤셔볼까요?]

갑자기 한경석은 정상적으로 말하더니 성큼 김민철에게 다가가며 손을 움직였다.

한경석의 카멜레온 은신 망토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커다란 쿠크리 단검!

으아악!

깜짝 놀란 김 과장이 뒤로 물러설 때.

툭-

어느새 김 과장의 등에는 섬뜩한 쿠크리 단검이 닿아있었다.

[지금 쑤실까요?]

한경석은 김 과장의 뒤를 잡은 채,

쿠크리 단검으로 등을 꾹꾹 누르며 즐거운 어조로 말했다.

"..."

최후식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야! 이 미친놈아! 같은 길드원을 쑤시긴 뭘 쑤셔! 너 암살자 각성몽 꾸고. 완전 이상해졌어! 그거 당장 집어넣어!"

[쳇.]

한경석이 혀를 차는 순간.

뒤통수를 향해 휘둘러지는 최후식의 손바닥!

휘잉-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주먹이지만,

한경석은 어느새 점멸로 멀리 도망쳐서 말했다.

[손바닥. 곤란.]

"하- 저 뺀질이 새끼."

최후식은 어이없어하다가 김 과장을 봤다.

"야.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사실대로 말해봐."

"...그게 사실은···."

김 과장이 사실을 말하려 할 때,

최후식의 헌터용 통신기가 진동했다.

부르르-

최후식은 통신기를 잡았다.

"왜? 뭐야?"

-이사님. 랩터 잡아둔 거 어떻게 할까요? 와! 쟤 엄청 잘 싸우네요!? 고블린 팍팍! 죽어 나가요. 이대로면 전투 끝나겠는데. 랩터, 지금 던집니까?

그렇다!

고블린만으로는 시험이 시시할 것 같아서 랩터도 잡아뒀었다.

원래 계획은 난장판에 랩터를 던져 넣어서 더 난장판으로 만드는 거였는데···.

"...잠깐 기다려봐."

최후식은 다시 고블린 무리를 살폈다.

잠깐 대화한 사이에 고블린 무리가 있던 공터가 휑해졌다.

죽은 고블린은 많지 않은데···.

고블린 무리 전체가 완전히 겁을 집어먹었다.

공터 가장자리 바위 언덕과 강으로 우르르 도망 다니는 고블린 녀석들.

이 녀석들 이미 집단으로서의 결속력이 완전히 무너졌다!

최후식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빨리!?’

원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공터 중앙,

박도 한 자루로 고블린 무리를 작살내던 천문석이라는 지원자.

"..."

박도를 들고 단지 걷기만 하는데.

같은 극성의 자석이 가까이 온 것처럼 고블린 무리는 싸우지도 않고 도망친다.

"...아니. 몬스터 무리의 기세를 벌써 꺾은 거야?"

아무리 고블린이 약해도 몬스터다.

그것도 한두 마리의 개체도 아니고 200마리가 집단으로 뭉친 고블린 무리!

고블린 개체를 잡는 것과 고블린 무리의 기세를 꺾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무리의 기세를 꺾으려면 전투의 맥을 짚는 본능적인 전투 감각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비슷한 능력을 각성했던가···.

'어···?!'

순간 최후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전투 감각!"

최후식은 깨달았다.

엄청난 대어가 걸렸다!

최후식은 천문석은 뚫어지게 봤다.

느껴지는 포텐은 한경석을 봤을 때 이상!

200여 마리의 고블린 무리에 뛰어들어갈 정도의 담력과 엄청난 칼솜씨는 그저 덤일 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전투 감각이다!

전투의 맥을 짚는 전투 감각은 '커맨더'의 전유물!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

태성 길드의 이태성 길드장.

...

이들이 커맨더였다.

수천, 수만이 뒤엉키는 전장의 맥을 짚어 패배가 예견된 전투조차 승리로 이끌고!

수천의 몬스터가 쏟아지는 대규모 레이드의 핵심을 짚어 레이드를 성공시키는 능력!

대형 길드를 넘어선 천외천.

3대 길드에서도 전략 자원으로 키우는 인재!

커맨더!

저 정도 전투 감각과 포텐이면 제대로 경험만 쌓으면,

수많은 몬스터가 뒤엉키는 대규모 레이드의 커맨더를 맡을 수도 있었다.

각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각성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좋다!

각성몽을 꾸는 순간 내재된 잠재력, 포텐이 한 번에 터진다!

이글이글 독기가 흐르는 눈을 가졌지만,

다른 사람 얼굴조차 보지 못하던 학폭 피해자 한경석.

그러나 한경석은 암살자의 각성몽을 꾸고 포텐이 터진 순간 완전히 변했다.

암살검, 한경석.

이제 한경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몬스터에게 근접해,

몬스터의 광기 어린 눈에 웃으면서 단검을 쑤셔 박는다.

탁월한 전투 감각을 가진 저 지원자도 마찬가지다.

각성몽을 꾸는 순간, '전투 감각'이 포텐을 터트릴 것이다!

어쩌면 역대 최고의 커맨더.

전투 감각을 넘어 전투 예지에 달했다던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 같은 능력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전투 예지!

검은 폭풍이라니!

최후식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율했다.

게이트 전쟁이 끝난 후,

정부의 비밀 임무를 맡고 사라졌다는 검은 폭풍.

검은 폭풍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던 게이트 전쟁 당시의 무기와 허술한 병력자원으로 재앙급 마수를 몇 마리나 잡아냈다.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지켜낸 검은 폭풍이 없었다면,

서울 수복 작전 전에 생산기반이 무너져 나라가 작살났을 거다.

그런 커맨더의 자질,

'전투 감각'을 지닌 지원자가 나타났다!

그것도 커맨더가 절실한 오리온 길드에.

최후식은 천문석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면접은 양방향이다.

면접관이 면접자를 살피듯.

면접자 또한 면접관과 회사를 살피고 판단한다.

저 정도 자질을 가진 지원자가 아무 생각 없이 면접에 참여해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줄 리 없었다.

지금 저 천문석이라는 지원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정도 자질을 지녔다.

-너희는 어떤 조건을 제시할 건가?

하-

최후식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오리온 길드는 다른 대형 길드는 상상도 못 할 깜짝 놀랄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인위적인 각성!'

김경욱 길드장과 최후식에게는 끈이 있었다.

인위적인 각성이 가능한 '각성 스팟'의 비밀의 공유하는 천외천의 인물들과의 끈이!

최후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지금 티오가 어떻게 되더라···. 검의 숲, 무림 던전, 공룡 산란장···. 태성 아니면 금성 길드 차례 같은데···. 아 깐깐한 녀석들 차례네. 그 형한테 연락을 해봐야 하나···.'

이때 다시 한번 통신기가 울렸다.

부르르-

"...왜? 나 바쁘다 간단히 말해!"

-후식이 형! 랩터 어떻게 하냐니까요? 전투 곧 끝나겠어요!

"아! 미안 깜빡했다. 그냥 공터로 던져라."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최후식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 면접은 대박이다.

호박 아니 커다란 보석 원석이 굴러들어왔다!

'어떻게 저 원석을 다듬어야. 포텐이 최고로 터질까?'

최후식이 즐거운 상상에 잠길 때.

바위 언덕 위에서 대기 중이던 7, 8팀 헌터들은 팔다리를 꽁꽁 묶은 랩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어떡하래? 랩터 던지래?"

"이사님한테 연락 왔어. 바로 던지래."

“저쪽 쟤한테 던지자. 저 녀석 엄청 잘 싸우던데. 랩터 어떻게 상대하나 보자.”

“난 랩터 2분 안에 잡는다는 것에 100만 원 건다!”

“랩터는 고블린이랑 다르지. 난 5분에 150만 원!”

헌터들은 내기 돈을 걸며 팔다리를 묶은 밧줄에 칼집을 넣고, 랩터를 바위 아래 공터로 던졌다.

끼이이익-

랩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떨어질 때.

파드드득-

숲이 흔들렸다.

"어?!"

헌터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파바박-

바위 언덕 뒤, 숲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단숨에 공중의 랩터를 낚아챘다.

콰지직-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랩터가 산산조각이나 땅으로 쏟아졌다.

이 순간 갑자기 쏟아진 살기에 번쩍 고개를 든 최후식.

최후식은 산산조각난 랩터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

검치호!

8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송곳 호랑이.

마수, 검치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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