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0화 (51/1,336)

#050

신서울을 빠져나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장갑 버스.

장갑 버스 안 지원자들은 합격이라도 한 듯 밝은 얼굴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장비가 더 좋네요?"

"제가 군대에서 쓰던 장비보다 2, 3등급은 좋은 장비네요."

군대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

"와! 김석기 님은 군 출신이신가 보네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혹시? 서울 헌터 부대?"

"설마 특임대에서 근무 하셨나요?

...

현장 면접 장소로 이동 중인데도,

소풍이라도 가는 듯 들뜬 모습.

천문석은 이들의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현장 면접이면 실전 아닌가?'

문득 시선을 내려 입고 있는 장비를 본다.

강화 전투복과 두꺼운 방검복.

강철 심을 박아넣은 안전 장갑과 안전 군화, 방탄 헬멧.

그리고 헌터용 무기 브랜드에서 제대로 만든 무기까지.

김 과장의 말대로라면 이 장비 세트는 몇억은 할 거다.

아무리 헌터 길드가 일반회사와 달라도,

이 정도 장비를 입혔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방식으로 현장 면접을 치른다는 것 아닌가?

천문석은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뜬 지원자들을 살폈다.

지금 웃고 있다고···?

뭐지?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는건가?

그러나 천문석은 곧 신경을 끄고 박도를 꺼냈다.

자신은 어쩌다 보니 이곳에 자리해 현장 면접까지 치르게 됐다.

당연히 철저히 준비한 다른 지원자들과 정보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웃고 들뜬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그 이유를 알아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삼류 무사에서 절정고수에 이르기까지.

경지가 어떻든 실전은 살 떨리게 무서운 것이다.

적이 아무리 가소로워도 방심하는 순간 훅 갈 수 있는 게 실전이다.

천문석은 박도를 무릎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헌터용 장비 풀셋을 입고 박도를 든 자신을 심상 공간에 구현한다.

그리고 적을 상상한다.

자신이 싸웠던 가장 강한 몬스터,

백곰 마수!

심상 공간.

천문석은 백곰 마수와 다시 마주했다.

교활한 마수가 천천히 발을 떼는 순간.

쿵-

심장이 크게 한번 뛰고,

서서히 끓어오르는 피!

심상 공간의 천문석은 박도를 앞세워 천천히 백곰 마수에게 다가갔다.

들끓어 오르는 열기로,

마음을 날카롭게 벼린다!

심상 공간의 전투가 이어질수록,

천문석은 일전을 앞둔 무인으로 변해갔다.

이때 김 과장이 버스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잠시만 주목해주세요. 현장 면접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배경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

동대문 게이트 소멸.

이 사건의 결과.

서울이 뚫리는 몬스터 위기 상황, 서울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의 빠른 판단과 헌터 부대, 민간 길드의 적극적인 대처로 피해는 최소화됐고 이미 피해복구는 시작됐다.

서울에서는 사건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게이트 너머 이세계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가장 큰 문제가 생긴 곳은 소멸한 동대문 게이트와 연결된 이세계의 거점 도시, 신동대문이었다.

동대문 게이트가 소멸하면서,

게이트를 통해 저렴한 운송비용으로 신동대문에 공급되던 생필품과 물자가 끊겼다.

이제 신동대문에 물자를 공급하려면 가장 가까운 거점 도시 신서울에서 날라야 했다.

그러나 신서울에서 신동대문까지는 마력 엔진 차량으로 7일 거리.

중간중간 거점 마을이 있지만 제대로 된 포장도로도 없고 곳곳에서 몬스터가 출몰한다.

게다가 아무리 하급이어도 정제 마석을 사용하는 마력 엔진 차량의 유지비는 엄청나다.

그렇다고 마력 엔진 차량이 아닌 마차를 이용한다면 운송 시간은 몇 배나 늘어나고 위험도도 크게 상승한다.

결국, 운송 시간과 운송 위험 상승으로 유통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다.

유통 비용 상승은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생필품은 누구나 써야 하기에 인건비 상승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람의 품삯 인건비가 오르면 다른 모든 게 오른다.

게이트 소멸, 유통 비용 상승에서 시작된 연쇄적인 물가상승이 시작됐고.

거점 도시 신동대문의 물가 전반이 폭등했다.

두루마리 휴지 한 개의 가격이 3만 원이 된 어이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신동대문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헌터들은 두 번 놀랐다.

빠르게 오르는 생필품과 헌팅 소모품 가격에 한번 놀라고,

뚝뚝 떨어지는 마석과 부산품 매입가격에 다시 한번 놀랐다.

비용은 몇 배로 올랐는데 버는 돈은 오히려 확 줄어든 상황.

헌터들은 분노했고.

소매 상인들은 울상을 지으며 화난 헌터들에게 설명했다.

"이거 예전 가격으로 거래하면, 운송비도 안 나와요."

헌터와 소매 상인 모두가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곤란한 상황.

그렇다고 유통 상인들이 큰돈을 번 것도 아니었다.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재고로 가지고 있던 물건값이 올랐지만, 물건은 팔려야 돈이 된다.

신동대문의 헌터들은 비싼 돈을 내고 생필품을 사지 않았다.

신서울이라는 거점 도시가 7일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동대문의 헌터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급, 하급 헌터들은 이렇게 물가가 오르고 마석과 부산품 매입가가 폭락한 신동대문에 남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미 익숙해진 사냥터를 떠나는 건 아쉽지만,

어차피 길드에 사용료를 내고 사냥터를 이용하던 처지였다.

신동대문의 중, 하급 헌터들은 신서울로 줄줄이 이동을 시작했다.

거리에서 중, 하급 헌터들이 무더기로 사라지자,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소매업자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졌으나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상급 헌터들도 하나둘 떠나자.

이들과 고가의 장비와 소모품, 상급 몬스터 부산품을 거래하던 상인들도 신동대문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헌터와 일반인이 연쇄적으로 떠나가자 신동대문의 임대료가 순식간에 폭락했다.

이세계 개척 도시에 대해서는 개척에 공이 있는 길드, 기업, 개인의 지분을 인정해준다.

신동대문에 있는 건물의 상당수를 중, 대형 길드와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급감하는 임대료 수익과 허리를 받쳐줄 중, 하급 헌터가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었다.

신동대문은 골드러쉬가 끝난 금광촌이 순식간에 유령마을이 됐던 것처럼 급격히 쇠락하고 있었다.

상권이 죽어가는 신동대문.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신동대문 주위의 몬스터 생태계는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이제 안정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이 안정은 엄청난 수의 중, 하급 몬스터를 수많은 헌터들이 지속적으로 사냥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허리를 받쳐줄 헌터들이 사라지자 중, 하급 몬스터의 활동 반경이 커졌고,

신동대문 주위의 안정된 몬스터 생태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초식 동물, 소형 몬스터.

중형 동물, 중형 몬스터.

그리고 강대한 마수들과 대형 몬스터들까지.

복잡한 먹이사슬로 연결된 몬스터와 동물들이 연쇄적으로 움직였다.

가뜩이나 헌터들이 줄어 골머리를 썩이던 대형 길드는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중급, 하급 몬스터까지 처리해야 했고.

아무리 대형 길드라고 해도 인력의 한계로 중급, 하급 몬스터를 전부 막아내는 건 무리였다.

결국,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다시금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신동대문 주변의 마을과 도시, 거점들은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몬스터에 난리가 난 상황.

그리고 그 몬스터 중 상당수가 신서울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오리온 길드의 개미굴 광산에 접근하는 몬스터 무리도 연쇄 반응으로 이동 중인 몬스터 무리 중 하나였다.

...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겁니다."

김 과장의 설명이 끝나자,

누군가 엉거주춤 일어나서 물었다.

"현장 면접 상대가. 그 몬스터 무리인가요···?"

김 과장이 바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번 현장 면접은 동대문 게이트 소멸의 연쇄 반응으로 이동 중인 몬스터 무리 소탕입니다."

"..."

질문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김 과장은 버스 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다른 궁금하신 점 없으신가요?"

"..."

소풍 가는 것 같던 들뜬 분위기는 어느새 싹 사라진 상태.

지원자들은 굳은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궁금하신 거 없으신가요? 뭐든지 물으셔도 좋습니다."

김 과장이 다시 물었지만, 면접자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

그리고 한참 후 버스 곳곳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장 면접이 몬스터랑 전투라고요···?

-현장 면접은 길드 선배랑 대련 아니었어요?

-한두 마리도 아니고··· 몬스터 무리라니.

-지금 우리가 몬스터 무리랑 싸워야 한다는 거야?

-이게 말이 돼요?

-아니 무슨 현장 면접이 이래요···.

-총도 아니고···. 창으로 싸우라고요!?

-전 대검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쓰던 대검이 보여서···.

...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질 때.

쾅, 쾅, 쾅-

"야! 나다! 민철아! 열어라!"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중인 장갑 버스 문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피이잉-

유압이 빠지고 장갑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강화 전투복에 먼지를 뒤집어쓴 헌터가 달리는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총괄이사님!"

김 과장이 바짝 긴장해 인사하자.

투구 바이저를 올린 최후식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버스 안 면접자들을 봤다.

"너희가 이번 기수 지원자들이구나?"

"..."

"반갑다. 나. 최후식이다. 오리온 길드 현장팀 총괄이사."

"..."

갑자기 달리는 버스로 뛰어 올라온 사람의 자기소개에 면접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최후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면접자들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현장팀 총괄이사? 지금 갑자기 나타나 뭐 하는 건가 싶지? 내가 누군지도 전혀 모르겠고?”

“...”

최후식은 바짝 긴장한 면접자들을 향해 씨익 웃었다.

“사실 나도 그렇다. 총괄이사? 헌터 길드가 무슨 이사야? 길드가 회사도 아니고. 하하-”

최후식이 웃음을 터트리자,

버스 곳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하하하-

최후식은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 정체가 뭐냐면. 오리온 길드의 대빵들. 요즘 애들이 집행부라고 한다지? 길드 집행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김민철!"

최후식이 돌연 외치자,

김민철 과장은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네! 총괄이사님!"

"내가 우리 길드에서 얼마나 높냐?"

김 과장은 바로 대답했다.

"엄청 높으십니다!"

“그래?”

최후식은 몰랐다는 듯 눈썹을 찡긋 이며 버스 안의 지원자들을 가리켰다.

"내가 얘들 전원 합격시킬 만큼 높냐?"

최후식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바로 대답하는 김 과장.

"그렇습니다! 총괄이사님께서. 이번 채용의 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한마디만 하시면! 전원 합격 가능하십니다!"

깜짝 놀란 면접자들의 눈이 커질 때.

최후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버스 안을 돌아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들었지?"

“...”

"나 엄청 높은 사람인가 봐."

하하하-

이번에는 아무도 따라 웃지 않고 긴장된 표정으로 최후식을 봤다.

최후식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 모두 일어나서 주먹 들어라."

"네!"

버스 안 면접자들이 일제히 외치고 벌떡 일어나 주먹을 들어 올렸다.

최후식은 주먹을 들고 말했다.

"오리온 길드 구호 가르쳐 줄 테니까. 모두 따라 해라."

"네!"

"넵!"

"네···."

다양한 대답이 터져 나올 때,

최후식은 주먹을 흔들며 외쳤다.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생각지도 못한 구호에 당황한 표정이 된 면접자들.

"...네?"

"피바람···."

...

그러나 최후식은 계속 주먹을 흔들며 외쳤다.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최후식의 구호는 점점 커졌고,

장갑 버스가 부서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쿠웅-

팡, 파아앙-

단단한 장갑판을 울리는 진동!

소리 폭탄을 터트린 것처럼 흔들리는 공기!

면접자들은 최후식이 엄청난 수준의 각성 헌터라는 걸 깨달았다.

각성 헌터의 압도적인 위용에 질린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둘 구호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

그리고 어느새 모두가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를 때.

최후식이 운전기사를 향해 손을 저으며 외쳤다.

"여기 세워라!"

끼이익-

피이잉-

장갑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는 순간.

최후식은 고함을 지르며 뛰어내렸다.

"악- 피바람을 불러일으키러 가자!"

"악- 피바람을 불러일으키자!”

홀린 듯 고함을 따라 지르는 면접 참가자들.

십여 명의 헌터 지망생은 피 끓는 격정에 휩싸여 최후식을 따라 장갑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오리온 길드의 현장 면접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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