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8화 (49/1,336)

#048

쾅-

마른하늘을 울리는 벽력성!

"이건 또 뭐야?"

추이린, 재금 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하늘을 울리는 벽력성에 인상을 쓰다가 깜짝 놀랐다.

삐이이-

사방에서 울리는 경보음!

뜬금없이 벽력성이 터지자,

게이트 주위에 설치된 측정장치가 일제히 경보음을 울렸다!

"여기 수치가 이상합니다!"

"안정화 장치가 계속 진동합니다!"

"게이트에서 마력장이 뿜어지고 있습니다!"

“안정화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

다급히 외치는 연구원들.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부터 살폈다.

이상 현상에서 돌아와 정상 작동 중이던 게이트 안정화 장치, 바늘들이 일제히 부러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왜! 또 이래!"

평소에도 가끔 이상 현상을 일으켰던 게이트 안정화 장치지만 오늘은 유독 말썽이었다.

추이린은 하얀 막대, 마력 제어봉을 재빨리 들어 올려 바늘, 안정화 장치를 조율하려 했다.

휘이-

그러나 허공을 가르는 마력 제어봉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마력장이 아닌 공기 속을 움직이는 것처럼!

추이린은 등골을 달리는 소름을 느꼈다.

안정화 장치가 요동치고!

게이트에서 마력장이 쏟아지고 있는데!

지금 몸 주위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순간 문득 느껴지는 기이한 직감.

추이린은 직감이 향하는 곳을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본사 상층부의 명령으로 쌓아둔 상자들!

이 상자들에서 기이한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추이린은 마력을 일으켜 파동을 향해 쏘아냈다.

파동을 맞는 순간 씻은 듯 사라지는 마력!

"...!"

추이린은 직감했다.

이 파동이 게이트 마력장을 지우고 있었다!

마력장을 지우는 마력 파동이라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에 경악한 추이린.

추이린이 다급히 정체불명의 상자로 달려가려는 순간.

부러질 듯 요동치던 안정화 장치가 멈추고 상자에서 퍼져 나오던 파동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연구원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마력장도 안정되고 있습니다!"

"안정화 장치 진동 정상입니다!"

"게이트로 진입 중이던 열차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

이때 연구원 한 명이 우뚝 멈춰선 추이린에게 다가왔다.

"다행입니다. 추 수석님. 역시 고위 마력 각성자. 단숨에 게이트를 안정시키셨군요?"

"..."

그러나 추이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추이린은 대답 없이 천막 밖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금속 상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벽력성이 터지고 이상 현상을 일으킨 게이트 안정화 장치.

안정화 장치의 이상 현상을 저 금속 상자에서 퍼져나온 파동이 막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벽력성이 터지기 전에도 이상 현상이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울고,

게이트 마력장과 안정화 장치가 미친 듯 요동쳤다.

자신과 직원들이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도 이 상자가 막아낸 건가···?

"..."

시원한 답 없이,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문득 십여 일 전 일을 떠올렸다.

서울 사태가 일어난 그 날.

재금 그룹 본사에서 몇 년 만의 긴급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그룹 최고위층이 모두 모인 사장단 회의가 끝나고,

계열사와 협력 업체, 몇몇 길드까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울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최고위층의 회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사에서 재금 연구소에 내려온 지시들은 서울 사태와는 관련이 없었다.

본사의 이상한 지시들.

-광화문 안정화 장치의 방호 블록을 제거해라.

-연구소의 마력 각성자들을 광화문 게이트에 파견하라.

그리고···.

추이린의 시선이 눈앞에 쌓인 금속 상자에 닿았다.

가로세로높이 1미터, 정육면체 형태의 매끄러운 금속 상자.

마지막 지시는 이 금속 상자였다.

-배송된 금속 상자 12개를 광화문 게이트 주위 20미터 이내로 옮겨라.

추이린은 금속 상자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무 반응 없는 상자.

추이린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안정화 장치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

-오늘의 이상 현상을 예측한 듯 그룹 최상부에서 내린 지시.

-자신조차 존재를 몰랐던 게이트 마력장을 지우는 파동 발생장치.

...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나 많았다.

추이린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의 사람들을 봤다.

이상 현상이 사라지고 수치가 정상이 되자,

재금 연구소의 엔지니어와 연구원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한 듯 기뻐하고 있었다.

하-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금 연구소.

마력 공학을 선도하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근무하고, 마탄과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개발한 연구소.

그러나 이건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일 뿐이다.

재금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충실히 지시를 따르는 중간 관리자일 뿐이다.

이곳 광화문 게이트뿐만이 아니라 동대문 게이트도 마찬가지다.

동대문 게이트가 소멸한 이유에 대해서도 감도 못 잡고 상부의 지시만 따르고 있었다.

하-

추이린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세대 헌터, 하얀 번개.

마도사라고까지 불리는 고위 마력 각성자.

전 세계 마력 공학을 선도하는 재금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추이린.

그러나 이런 추이린도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작동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게이트 마력장을 통제해서 균열, 던전의 발생을 막는다.'

간단해 보이는 원리,

그러나 여기에는 빠진 게 하나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이 엄청난 게이트 마력장을 통제한단 말인가?

이세계로 통로를 뚫고,

수십 수백 개의 균열과 던전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게이트 마력장!

이 엄청난 게이트 마력장을 통제하는 건 어떤 마력 이론을 가져와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마력장을 통제하는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있다!

이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실현된 무한 동력 기관처럼 말이 안 되는 물건이다.

추이린은 회한이 가득 담긴 눈으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바라봤다.

10년.

10년 전 추이린은 자신이라면,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해석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금 연구소에 들어왔다.

그러나 10년의 넘는 기간 동안 연구를 했지만, 의문만 쌓일 뿐.

안정화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것뿐만이 아니다.

추이린은 문득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재금 그룹 자체가 의문투성이였다.

작은 공업사 재금 공업에서 시작해서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으로 성장한 회사.

보통 게이트 안정화 장치 개발을 재금 공업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 전에 일어난 일이 하나 있었다.

마탄 개발.

한국의 작은 공업사였던 재금 공업은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 성공 이전에 마탄을 개발했었다.

마탄.

이세계의 화약 연소 문제와 몬스터 마석의 투사체 반발 문제를 해결한 마탄.

마탄을 발명한 재금 공업은 전 세계에 특허 출원을 했다.

재금 공업은 특허 출원을 하면서 마탄의 핵심 기술을 모두 공개했고,

인류적 위기 상황을 이유로 마탄에 아주 싼 라이센스 비용만 책정했었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의 작은 공업사, 재금 공업의 마탄 특허권을 정지시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게이트 전쟁이라는 세계적 재앙 상황.]

[마탄은 일개 기업의 특허가 아닌 세계인이 누릴 인류 공통의 자산, 공공재다.]

특허권이 정지되자 각국의 기업들은 엄청난 양의 마탄을 찍어냈고,

재금 공업이 책정한 라이센스 비용 몇 배의 이윤을 붙여 마탄을 팔았다.

공공재란 논리는 대외적으로 발표한 대의일 뿐이었다.

각국의 정치인과 대기업들은 한국의 작은 공업사 재금 공업의 뒤통수를 갈기고 이윤을 나눠 가졌다.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이들은 분노했지만,

게이트 전쟁 중에도 강대국은 강대국이었다.

가장 많은 게이트가 열리고 국토 남쪽 끝까지 밀려난 대한민국에서는 강대국들의 결정을 뒤집을 힘이 없었다.

재금 공업은 혁신적인 물건을 발명했으나 잊힌 수많은 발명가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

과거의 해프닝에 추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마탄의 라이센스 비용은 수십 수백 배 폭등했다.

마탄의 핵심 기술은 모두 공개된 상황,

당연한 듯 쏟아질 카피 제품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기술이 공개된 마탄이지만,

지금은 세계의 그 누구도 무단 생산하지 못한다.

재금 공업의 뒤통수를 때렸던 강대국과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어느 국가, 어떤 기업도 마탄의 특허를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

재금 그룹에서 전 세계 독점 공급, 운영 중인 게이트 안정화 장치 때문이다.

마탄 특허 공개로 뒤통수를 맞은 재금 공업은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뒤이어 개발된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특허도 신청하지 않았다.

재금 그룹은 금과 이권을 받고 전 세계에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받은 금과 이권은 엄청났지만, 국가적 위기상황임을 고려할 때는 합리적이었다.

이렇게 안정화 장치가 설치된 국가 중에는 재금 그룹의 뒤통수를 때렸던 강대국들도 있었다.

재금 그룹은 원한을 잊은 호구처럼 행동하는 것만 같았다.

-안정화 장치의 특허 신청도 하지 않았다.

-뒤통수를 친 국가들에게도 합리적인 비용을 받았다.

-합리적인 비용 지급마저 깎으려는 국가에는 우선 설치도 해줬다.

이렇게 게이트라는 급한 불을 끄고 난 후.

세계 각국과 대기업, 수많은 연구소는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역설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특허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기에.

마탄 때처럼 재금 그룹은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재금 공업이 재금 그룹이 될 정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전 세계 어떤 기업이나 연구소도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모방은커녕 그 작동원리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몇몇 강대국의 부추김을 받은 나라와 기업, 시민단체가 재금 그룹을 압박했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핵심 기술을 공개하라는 요구.

이번에도 논리는 마탄 때와 같았다.

[게이트 안정화 기술은 일개 기업의 소유가 아닌 인류 전체가 향유할 공공재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난 재금 그룹이 있는 한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압박 조치들.

호구처럼 안정화 장치를 설치해준 재금 그룹은 이번에도 압박에 굴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압박이 들어온 순간,

압박이 들어온 국가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멈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들은 군사력을 동원한 강경 대응을 했다.

그러나 재금 그룹 최고위직조차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어이없게도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재금 그룹과 연구소 내부에 작동원리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안정화 장치를 유지보수는 했지만, 가동을 멈춘 안정화 장치를 재가동 시키지는 못했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가 있어도 표적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면 맞출 수 없다.

결국, 안정화 장치의 재가동에 실패하고.

3번의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졌다.

"..."

그 후 게이트 안정화 장치뿐 아니라,

제대로 지급한 적 없는 마탄 라이센스에 대해서도.

전 세계 어떤 국가나 단체도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10년,

재금 그룹은 메가코프, 초거대 기업이 됐다.

---

상념에 잠겼던 추이린은 문득 고개를 들어 게이트를 파고든 안정화 장치를 봤다.

바늘로밖에 보이지 않는 쐐기,

게이트 안정화 장치.

"..."

인류는 저 안정화 장치로 게이트를 통제 이세계로의 통로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게이트와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정체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마력장을 지워버리는 파동 발생장치까지 나타났다.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연구소장 바로 밑 직급인 자신도 들어본 적 없는 물건.

의문을 풀기 위해서 게이트 전쟁 후 재금 연구소에 들어왔는데.

연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누군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해줄 사람은 없는 걸까?

"...!"

이 순간 추이린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재금 그룹 밖에 있을 때는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

마탄의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만들어낸 '사람'.

이 순간 추이린은 고위 마력 각성자의 예지에 가까운 직감으로 깨달았다.

마력장을 지우는 파동 발생장치!

이것도 그 '사람'이 만든 물건이다!

그 '사람'이라면 게이트와 균열, 던전 그리고 이세계까지.

이 모든 것의 원인과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를 알고 있을 것이다.

추이린은 얼굴도, 이름도, 성별도 모르는 그 '사람'이 미치도록 만나고 싶었다.

재금 그룹 최상부와 전 세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 힘으로 윽박질러서라도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다.

하-

추이린은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추이린의 힘과 권력, 명성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전 세계 그 어떤 권력자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그 '사람'은.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오너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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