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분지 외곽 도로를 돌던 장갑 버스가 중앙 광장으로 이어지는 직선 도로로 들어갔다.
중앙의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도로가 뻗어있는 게이트 지역.
게이트 지역은 에투알 개선문을 중심으로 도로가 뻗은 파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천문석은 손에 박힌 선인장 가시를 모두 뽑은 후 창밖을 구경했다.
도로 주위로 빼곡히 들어선 헌터 매장과 건 스미스, 대형 마트와 커피 전문점들.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구성의 건물들.
경복궁의 옛 모습은 멀리 보이는 한옥 건물 몇 채가 전부일 뿐.
광화문 안 경복궁 터는 이제 조선왕조의 궁궐이 아닌 헌터들의 게이트 지역이 되어있었다.
장갑 버스는 곧 게이트가 있는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중앙 광장을 둥글게 감싼 도로에 들어가자, 거대한 타워 크레인과 열차 선로가 보였다.
"저 열차 선로가 게이트 입구와 출구입니다. 게이트 출입은 모두 저 선로 위 열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도보, 차량 등을 이용한 게이트 출입은 금지되어있습니다."
김 과장은 중앙 광장의 선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천문석은 중앙 광장의 선로를 눈으로 훑었다.
열차 선로는 게이트 앞과 뒤에서 길게 뻗어 나와 광장 가장자리를 타고 돌아 원을 그리며 하나로 이어졌다.
원을 그린 열차 선로 동쪽과 서쪽에 열차 플랫폼이 하나씩 있었고,
게이트 앞쪽으로 이어진 선로 플랫폼에 대기 중인 열차가 보였다.
장갑 버스는 게이트 앞쪽,
입구 플랫폼 방향으로 이동했다.
플랫폼에 가까워지자 수많은 헌터들이 객차에 타는 모습이 보였다.
장갑 버스는 플랫폼을 지나쳐 열차 뒤쪽 길게 늘어선 차량 줄에 멈춰섰다.
화물 트럭과 장갑 SUV, 장갑 버스 같은 대형 차량이 한 대씩 타워 크레인에 들려 열차 트레일러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곧 천문석이 타고 있는 장갑 버스의 차례가 왔다.
삐, 삐익-
"천천히 움직이세요!"
호루라기를 불며 경광봉을 흔들며 신호하는 직원.
직원의 인도에 따라 지정된 위치에 장갑 버스가 정지하고 엔진을 끄자 타워 크레인이 내려왔다.
타워 크레인이 장갑 버스를 고정하자,
장갑 버스를 두들기는 진동이 느껴졌다.
"위로 올라갑니다! 안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타워 크레인이 장갑 버스를 들어 올렸다.
장갑 버스는 곧 열차 트레일러 위에 내려졌고 고정이 풀렸다.
잠시 후 버스 문이 열리고 헌터부 공무원과 헌터 부대원 2인 1조로 이뤄진 검문팀이 안으로 들어와 검문을 시작했다.
스캐너로 게이트 임시 출입증만 체크하는 형식적인 검문.
광화문 입구에서와는 달리 이번 검문은 순식간에 끝났다.
헌터부 공무원이 내리기 전에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수천 번 설명한 듯 고저변화 없이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계 법령에 따라서 도보 등에 의한 게이트 출입은 금지돼 있습니다. 열차가 게이트를 완전히 통과하여 멈춘 후. 라디오 방송을 듣고 열차에서 내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헌터부 공무원은 선로 끝 게이트를 가리켰다.
"버스 문에 전자 봉인 스티커가 붙습니다. 혹시라도 봉인을 훼손하고 중간에 내려서 게이트 안정화 장치로 접근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인가받지 않은 접근 시에는 경고 없이 사살합니다."
이때 누군가가 외쳤다.
"그런 멍청한 사람이 진짜 있습니까?"
와하하하-
순간 버스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그러나 헌터부 공무원은 무뚝뚝한 어조로 옆에 서 있는 헌터 부대원을 불렀다.
"김 병장님."
"지난달에 무단 접근이 23명 있었습니다. 게이트교 신도 13명, 게이트가 자신을 부른다고 주장한 헌터 5명, 새로운 안정화 장치를 시험해 보겠다는 마력 각성자 3명···. 전원 경고 없이 사격했고, 그중 사망자는···."
“...”
"그 정도면 됐습니다. 김 병장님."
헌터부 공무원은 웃음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진지해지자, 헌터 부대원을 제지했다.
"그럼 안전한 여행 하십시오."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린 후, 버스 앞쪽 문에 전자 봉인 스티커를 붙였다.
잠시 후 사이렌이 울리고 채널을 맞춘 장갑 버스 내부 스피커에서 방송이 들려왔다.
위이이잉-
-게이트 진입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별도 방송 시까지 내부에 앉아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버스 좌석에 느긋하게 앉아서 밖을 구경했다.
객차와 트레일러 수십 개가 매달린 열차는 천천히 속도를 높여 선로가 깔린 중앙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투둥, 투둥-
열차를 타고 올라온 진동이 버스 안에서도 느껴질 때,
광장 주위를 둥글게 둘러싼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 도로에 가득한 차들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크게 한 바퀴 중앙 광장을 돈 열차는 게이트 앞쪽, 입구 선로 방향으로 진입했다.
투둥, 투둥-
진동의 간격이 느려지고 거대한 게이트가 천천히 가까워졌다.
이때 들려오는 방송.
-잠시 후 광화문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순간적인 현기증이 일어날 수 있으니 자리에 앉아 계십시오.
천문석은 시선을 앞으로 두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게이트의 모습이 점점 커졌다.
수십 미터 높이의 빛을 품은 거대한 게이트.
그리고 이 게이트를 꿰뚫은 위압적인 바늘, 게이트 안정화 장치.
이 압도적인 게이트 주변 곳곳에 간이 천막이 처져 있고,
천막 아래 측정 장비를 확인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재금 연구소의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다.
그리고 게이트로 이어진 선로 옆에 줄줄이 놓인 바리케이드와 화기 진지.
바리케이드는 언제든 선로를 차단할 수 있게 준비됐고.
화기 진지에는 개틀링이 열차를 향해 거치되어 있었다.
헌터 부대원들이 바리케이드와 화기 진지 곳곳에 흩어져 다가오는 열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선로 옆 거대한 신호등이 초록불을 밝히고 있는 게 보였다.
이때 방송이 들려왔다.
-1분 후 게이트 진입합니다.
열차는 천천히 그러나 일정한 속도로 나아갔다.
투둥, 투둥-
천천히 이어지는 진동.
천문석은 느긋하게 선인장 화분을 들고 좌석에 기대앉아 가까워지는 게이트를 봤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비록 심법을 익히는 데는 실패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게이트를 통과해 이세계로 넘어가게 됐다.
게이트 너머 이세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있을 거다!
점점 가까워지는 게이트.
그리고 게이트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을 때,
카운트 다운 방송이 들려왔다.
-게이트 진입. 카운트 다운 시작합니다.
-10, 9, 8··· 3, 2, 1.
-진입합니다.
카운트 다운이 끝나는 순간,
열차 선두가 광화문 게이트로 들어갔다.
투둥, 투둥, 투둥-
일정한 진동과 함께 길게 이어진 열차 객차와 트레일러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문석이 타고 있는 장갑 버스가 실린 열차 트레일러가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쾅-
정말 뜬금없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벽력성이 하늘을 울렸다!
“...어?!"
---
쾅-
벽력성이 터지는 순간,
장갑 버스가 실린 열차 트레일러가 게이트를 통과했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것 같은 아찔한 현기증.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껴졌을 때,
열차는 이미 게이트 너머 이세계를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똑같은 여름 한낮,
똑같이 뜨거운 여름 햇빛.
투둥, 투둥-
여전히 들려오는 기차 진동.
"우와아! 저기 좀 보세요!"
그러나 누군가의 탄성이 터진 순간.
시선을 돌린 모두는 압도됐다.
거대한 도시,
엄청난 규모의 도시가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광화문 게이트 너머,
전 세계에서 인프라가 가장 좋은 이세계 거점 도시.
신서울의 거대한 시가지가 창밖으로 펼쳐졌다.
우와아아-
동시에 터진 탄성!
장갑 버스 안의 모두가 신서울의 거대한 시가지에 압도되어 탄성을 질렀다.
단 한 명 천문석을 제외하고 말이다.
---
신서울을 본 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때,
천문석도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신서울이 아니라,
갑자기 울린 벽력성에.
'아니 시발! 이게 뭐야!?'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힘을 써도 울리지 않던 굉천수의 벽력성!
꽝이 떴다고 생각하고 다음 기회···.
게이트 너머 이세계에서의 기회를 노렸는데!?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쾅-
뜬금없이 벽력성이 울렸다!
천문석은 바로 영육과 혼백 사이,
심상 공간을 관조했다.
있었다!
마중물!
벽력성이 울린 순간 떨어진 한 방울 진기가 심상 공간에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어!’
입을 떡- 벌린 천문석은 환호성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터트리려 할 때는 터질락 말락 애만 태우던 마중물이!
그냥 버스 좌석에 앉아 게이트를 통과하니까.
뚝-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빗방울처럼!
굉천수,
뜬금없이 터지는 날벼락 같은 무공은.
그 이름 그대로 벽력성,
한 방울의 마중물조차 뜬금없이 떨어뜨렸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드디어!
드디어!!
심법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게 됐는데!!!
천재일우의 기회!
천문석은 바로 심상 공간에 집중했다!
심상에 기경팔맥을 구현하고 마중물을 살살살- 굴린다.
불면 날아가는 깃털처럼,
미풍에도 꺼질듯한 촛불처럼.
천문석은 애지중지 온 마음을 담아 마중물을 살살살- 기경팔맥으로 조심조심 굴리고 굴려 기해혈에 심었다.
순간 촉촉이 젖어 드는 기해혈!
바짝 메마른 대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진기.
미약하기 그지없는 시작이나,
이것은 장도를 향한 첫걸음일 뿐이다!
기해혈은 그 이름 그대로 기의 바다가 될 것이다!
이제 마중물을 떨어뜨렸으니,
땅에서 물을 끌어 올릴 펌프, 심법을 택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무공의 심법이 스쳐 지나간다.
강맹한 사파 심법,
현묘한 정종 심법.
섬뜩한 마공 심법,
괴이한 사교의 주술공.
그러나 모든 무공은 치우침과 단점이 있다.
처음 무공을 창안했을 때는 치우침이 없어도,
세대를 걸쳐 무공이 전해지고 발전하며 그 안에 쌓이는 치우침.
칠정을 태우는 마공,
강맹함을 위해 육체를 깎는 사공.
명경지수, 감정을 억누르는 정종 심법,
혼백을 태워 괴이의 힘을 빌리는 주술공.
천문석이 아는 모든 무공에 단점과 치우침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심법을 익힐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
천마신공의 12성 대성,
전인미답의 경지를 밟은 그 순간 얻은 심득.
전생의 심득을 담아 만들어낸,
아직 이름조차 없는 무명 심법!
실제 익히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수없이 심상 공간에 구현했던 무명 심법을 지금 이 순간에 운공한다!
천문석은 무명 심법을 운공하며 영혼육백을 관조했다.
마공의 극에 달하고,
마침내 그 극을 뛰어넘는 순간.
전생 천마의 영육을 불태운 천강의 불꽃이 혼백에 남긴 흔적이 느껴진다.
천강흔(天罡痕)!
하늘의 중심 북두칠성(罡),
두 발로 딛고 일어선 대지.
하늘과 대지를 하나로이었던 천강흔처럼.
천지인(天地人)!
하늘(天元)과 대지(地氣)를 하나로 잇는 사람(人).
이 사람을 영육과 혼백 사이,
기경팔맥이 그려진 심상 공간에 구현한다.
머리로 하늘을 이고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우뚝 선 사람!
사람이 똑바로 서서 반듯하게 걷기 위해서는 두 발이 필요하듯.
정사마에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위해선 심법이 두 개 필요했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두 다리가 되어줄 심법 두 개를 만들었다.
아직 이름조차 없는 두 심법이 운공 되자,
심상 공간에 구현된 천지인, 사람이 걷는다.
첫 운공은 심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심법의 이름은 그 본질을 규정한다.
심법이 탄생하는 지금.
천문석은 자신이 만든 두 개의 심법에 이름을 붙였다.
천지를 잇는 심법.
그렇기에 부른다.
천원공(天元功),
지기공(地氣功).
이름 붙인 순간 직감했다.
이게 아니다.
순간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이름!
일원공(一元功)!
일기공(一氣功)!
이름 지어 본질을 규정하는 순간,
벼락 치듯 깨달음이 이어진다.
한 몸이나 둘로 분리돼 있기에 자유자재로 걸을 수 있는 다리 같은 심법!
칠정을 태우는 마공처럼 빠르게 쌓이지도.
육체를 깎아내는 사공처럼 강맹하지도 않다.
한 걸음 내디뎌 단지 한 걸음 걸을 뿐이고,
하루 수련해 단지 하루 강해질 뿐인 심법!
느리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만큼 나아갈 뿐인 심법!
대지(地氣)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이,
우직하게 정진해 마침내 하늘(天元)에 닿기를 소망하는 심법!
이 심법은 둘로 나뉘었으나 본질은 하나!
그렇기에 이 심법에 붙일 이름도 하나다.
일기일원공!
一氣一元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