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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6화 (47/1,336)

#046

"어, 어? 엇!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하얗게 질린 김 과장이 비명을 질렀다.

"저게 왜 뽑혀!?"

순간 버스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꽂혔다.

김 과장의 외침대로였다.

게이트에 꽂힌 바늘,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부러질 듯 거칠게 요동치며 게이트에서 밀려 나오고 있었다!

순간 안간힘을 쓰던 천문석은 느꼈다.

하늘로 흘러나오는 영맥에 다른 힘이 뒤섞이고 있었다.

이 힘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느낌,

얼마 전 균열 침식이 진행 중인 학교에서 느꼈던 힘이다.

마력장!

엄청난 마력장이 제 몸에 박힌 족쇄,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밀어내고 있었다!

게이트 마력장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게이트의 존재감이 천지에 드리워진다!

균열 침식에서 이미 봤던 현상.

게이트 마력장이 세계를 침식한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자신의 부름에 안정화 장치의 영맥이 호응하자,

게이트 마력장이 안정화 장치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안정화 장치가 무력화된다!

천문석은 즉시 심상에 그려진 기경팔맥을 지우고,

혼백을 실어 일으키던 영맥의 흐름을 누그러트렸다.

그러나 한번 몰아치기 시작한 영맥의 흐름, 진기의 파도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게이트 마력장은 점점 강해지고,

안정화 장치는 여전히 부르르 요동치며 밀려 나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수인을 짚었다.

지권인(智拳印)!

극에 달했던 천마 신공의 불길마저 누그러트리던 지권인.

천문석은 무아지경 속에서 지권인을 펼쳐 칠정을 끊고 아상을 지우며 영맥과 호응했다.

지권인의 힘에 거칠게 파도치던 영맥의 흐름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요동치며 밀려나던 바늘이 천천히 멈추는 순간.

섬광이 번뜩이며 대기를 울리는 섬뜩한 굉음이 울렸다.

핑-

거대한 강철 현이 끊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쇳소리!

이 순간 안정화 장치, 바늘 끝에서 빛이 폭발하더니 다른 바늘로 이어졌다.

핑, 핑, 핑, 핑-

게이트에 박힌 모든 바늘을 잇는 빛의 선!

빛의 선이 거대한 원을 그린 순간.

바늘이 우왁스럽게 마력장과 게이트 링을 꿰뚫었다!

쿵, 쿵, 쿵-

대기를 뒤흔드는 진동이 시작되고,

게이트 링 중앙의 공간으로 거대한 바늘들이 쑥쑥 튀어나왔다.

천지에 날개를 펼치던 마력장과 게이트의 연결이 끊겼다!

천문석은 영맥과 이어진 혼백으로 다른 힘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영맥과는 전혀 다른 패도 적인 힘.

마력장!

마력장은 거대한 산악이 무너지듯 압도적인 감각으로 영맥과 연결된 천문석의 혼백을 짓눌렀다.

이때 천문석의 전신이 한번 부르르 떨리고, 선연한 기운이 전신을 달렸다.

천강흔!

천강흔이 혼백을 짓누르는 마력장을 상쇄하며 밀어냈다!

신화 속 거인이 무너지는 하늘을 들어 올리는 상황!

이 충돌의 여파가 천문석의 혼백을 때렸다.

컥-

무아지경이 깨진 천문석은 버스 좌석에 널브러졌다.

짧은 시간 급격히 소모한 심력에 깨질 듯 아픈 머리와 땀으로 흥건한 전신.

게다가 손은 무언가에 찔린 듯 따끔거렸다.

천천히 돌아오는 시야.

천문석은 가장 먼저 게이트 안정화 장치부터 살폈다.

‘설마 뽑힌 건 아니겠지!?’

분주히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 한가운데 보였다.

완전히 게이트 링을 파고든 바늘, 게이트 안정화 장치.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게이트에서 뻗어 나오던 마력장을 꿰뚫어 고정하고 있었다.

날개를 펼치던 마력장은 산산이 흐트러지고,

거칠게 파도치던 영맥은 어느새 잔잔해졌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무사했다.

"...!"

이 순간 천문석은 이해를 건너뛰어 깨달았다.

영맥을 품고 있던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원리를.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영맥을 쐐기 삼아 게이트의 마력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자신이 느낀 영맥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핵심!

만약 게이트 마력장을 통제하던 안정화 장치가 완전히 뽑혔다면?

게이트의 엄청난 마력장이 풀려났을 거다.

"..."

방금 2차 서울 게이트 사태가 일어날뻔했다.

그것도 내 손으로 일으킨 서울 게이트 사태가···.

---

모골에 송연해진 천문석은 식은땀을 흘리며 게이트를 살폈다.

정지된 게이트 주변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광장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 차들도 전부 이동을 멈춘 상태.

"잠시만. 잠시만! 안에서 대기하세요!"

김 과장은 장갑 버스 안 면접자들에게 다급히 외치고, 버스에서 내려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게이트를 파고들었던 바늘,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하나둘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궁, 궁, 궁-

다시 한번 대기를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고,

게이트 중앙의 빛이 천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게이트 주변을 살폈다.

게이트 주변 재금 연구소의 연구원들.

이들은 무언가를 들고 천천히 움직이며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의 다급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게이트도 처음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게이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심법을 익히는 데 실패했지만 아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초대형 사고를 칠뻔한 것이다.

천문석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봤다.

무형의 영맥을 유형의 안정화 장치 안에 넣어, 무형의 게이트 마력장을 통제하는 기술이라니!

'이런 게 가능한 거였어?'

직접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재금 그룹에는 이세계의 대마법사라도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게이트 너머 이세계에서 인류 수준의 살아있는 지적 생명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술을 직접 보고 있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이런 오버테크놀로지,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개발해내고.

전 세계 대부분의 게이트에 설치하고 운용하고 있다니···.

천문석은 안정화 장치를 보면 볼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게이트에 설치된 재금 그룹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

이 안정화 장치로 재금 그룹은 일반적인 기업 수준이 아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재금 그룹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대해선 아무런 특허 출원을 하지 않았다.

누구든 이 기술을 복제해서 특허를 낸다면 재금 그룹의 뒤통수를 갈길 수 있는 상황이다.

오래전 재금 공업이 마탄을 발명해 전 세계 특허를 신청했을 때와는 반대의 상황이다.

그러나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개발되고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누구도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복제하지도 원리를 파악하지도 못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지금 천문석은 지금껏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원리,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무형의 영맥을 유형화해 기둥에 담는 기술, 이것이 핵심이다.

무형의 기로 유형의 강기를 만들어내는 무공과 일맥상통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계통이 다른 힘이었다.

천문석은 이 상상력과 기술력, 실행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영맥을 유형화해 가공하다니!

이것도 대단하지만, 이걸 수십만 개나 만들어 전 세계의······.

어···?

수십만 개의 안정화 장치?

이 순간 천문석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지난 한 달의 삽질.

영맥이 조금도 없는 현생.

천지간에 기는 가득한데,

영맥만 없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천문석의 시선이 게이트 안정화 장치로 향했다.

수십만 개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는 영맥이 들어있다.

영맥!

천문석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영맥 말이다!

그래서 영맥이 없었던 거다!

재금 그룹이 전부 다 뽑아 써서!

"...!"

어이가 없었다.

천지간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던 영맥이 인위적인 결과라니!

재금 그룹, 이 미친놈들!

진실을 알게 된 지금 이 순간.

천문석은 분노보다 허탈함과 의문이 더 컸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영맥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뽑아낸 거야?!’

천문석은 허탈했지만, 곧 가슴속에 희망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영맥이 없는 현생에서 심법을 다시 쌓는 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서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광화문 게이트에 가능성이 있었다.

게이트의 마력장을 봉인하던 쐐기, 게이트 안정화 장치.

수도 없이 듣고, 영상과 사진으로 봤던 이 유명한 물건이 영맥을 품고 있었다.

현생에는 영맥이 없는 게 아니었다.

약수터에 커다란 말 통을 몇 개나 세워두고 약수를 받아가는 사람처럼.

재금 그룹이 엄청난 영맥을 뽑아내고 있어서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감도 안 잡힌다.

하-

그러나 허탈함을 담은 웃음이 터지고,

천문석은 빙그레 웃었다.

자신이 너무나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다는 걸 이 순간 깨닫는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수많은 영상과 사진들.

미디어를 통한 간접체험을 하고는 세상을 직접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세상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화면 속 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영상이 전하지 못하는 그 이상의 것이 세상에는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놀랄 게 너무나 많았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게이트와 안정화 장치를 봤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

평생 살아온 서울에도 이렇게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 게이트 너머 이세계는 어떨까?

두근-

상상하는 순간,

크게 뛰는 심장.

게이트 너머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천문석은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들었다.

심법을 다시 쌓고 완전한 무공을 되찾을 무언가가 있다.

게이트를 넘어간다면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 순간 천문석은 진심으로 결심했다.

'헌터 내가 해보겠다!'

이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손 괜찮으신 거 맞으세요?"

"네?"

"거기 손에 가시 박힌 것 같은데요?"

"..."

문득 고개를 내려 손을 보니···.

손에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개업 축하 화분 만세 선인장 가시가···.

"괜찮습니다."

천문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고, 선인장 가시를 뽑기 시작했다.

'...'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천강흔이 순간적으로 나타나 몸을 짓누르던 마력장을 흩어 버렸다.

엄청난 마력장을 흩어버린 천강흔은 작은 선인장 가시는 막지 못했다.

'천강흔? 이거 이름만 거창한 거 같은데?'

천문석이 피식 웃는 순간.

두근.

손에서 느껴지는 맥동.

천강흔은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뭐야? 항의하는 거냐?

천문석이 내심 어이없어하는 순간,

김 과장이 웃는 얼굴로 장갑 버스로 올라와 말했다.

"모두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종종 게이트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란 연락을 받았습니다. 게이트 바로 가동한다고 합니다."

도로 위에 멈춰있던 차들이 움직이고,

멈춰섰던 장갑 버스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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