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5화 (46/1,336)

#045

게이트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광화문 지하도로 검색대에 장갑 버스는 멈춰섰다.

멈춰선 장갑 버스 전체를 거대한 원통형의 광역 스캐너가 훑는 동안.

헌터부 공무원과 헌터 부대원 2인 1조로 구성된 검문팀 두 팀이 올라왔다.

한 팀이 태블릿과 스캐너를 들고 장갑 버스 안 사람들과 게이트 출입증을 확인하는 사이.

다른 팀은 장갑 버스 내부를 샅샅이 확인했다.

짐칸과 화장실, 샤워실을 눈과 마력 스캐너로 훑고,

무작위로 버스 좌석에 탐침봉까지 찔러 넣어 내부를 확인한다.

이때 면접자를 확인하는 헌터부 공무원이 천문석에게 다가왔다.

“손 펼치시고, 출입증 들어주세요.”

천문석은 손을 펼치고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스캐너를 향해 들어 올렸다.

띠릭-

[승인]

스캔 후 태블릿 화면에 나타나는 승인 글자.

“확인되셨습니다.”

원통형의 광역 스캐너는 이미 장갑 버스 전체 확인을 끝낸 상태.

검문팀이 내리자 장갑 버스 앞 차단기가 올라가고 장갑 버스는 지하도로로 들어갔다.

버스 안 면접자 한 명이 말했다.

"생각보다 검문이 간단하네요?"

"여기는 입구라 그래요. 동쪽 출구는 검문이 이 정도로 안 끝나죠."

"그런가요?"

"네. 그쪽은 헌터 한 명, 한 명을 스캔하고 차량도 세 차례 정도 스캔하죠."

이때 다른 면접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이계의 동식물, 몬스터 밀매, 허가받지 않은 아이템, 총기류 탄약 반출 문제로 거기는 엄청 빡세죠."

"맞아요. 얼마나 빡세게 검색하는지. 어떤 길드는 아예 이 안 게이트 지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죠. 게이트 지역에서 나오지만 않으면 세금도 거의 안 붙고 헌터부의 터치도 없거든요."

"아! 그렇군요···!"

질문했던 면접자가 탄성을 터트리자,

대답하던 사람 중 한 명이 의아한 듯 바라봤다.

"보통 헌터 지망생이면 이런 건 다 아는 내용인데···?"

질문했던 사람은 겸연쩍은 듯 웃었다.

"제가 공무원 시험을 몇 년 동안 준비하다가 이쪽으로 진로를 튼 지 얼마 안 돼서···."

"아. 그러시구나."

...

면접자들이 대화하는 사이 장갑 버스는 지하도로를 시계 방향으로 달렸다.

한참 후 지하도로 멀리 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가 보였다.

"다 왔네요!"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장갑 버스는 지하도로에서 출구를 지나 지상, 게이트 지역으로 나왔다.

순간 장갑 버스 창밖으로 드러나는 풍경.

버스 창밖으로 게이트 지역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광화문 게이트 지역은 중심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거대한 분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공간 왜곡 현상으로 공간이 확장된 거대한 분지, 게이트 지역.

이 순간 천문석도 뜨거운 여름 햇볕이 쏟아지는 게이트 지역을 보고 있었다.

재금 빌딩에서 봤던 하늘을 덮었던 분리 필드는 흔적도 없었다.

해가 떠 있고 구름이 지나가는 하늘.

게이트 지역의 모습은 서울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중앙으로 뻗은 도로 위에는 수많은 차가 지나가고,

거리에는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게이트 지역 밖 광화문 광장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과 다른게 하나 있었다.

게이트 지역 중심, 중앙 광장.

저 아래 넓은 중앙 광장 한가운데 그것이 있었다.

끝없이 물결치는 푸른 파도를 뚝 잘라 만든 것 같은,

수십 미터의 거대한 링!

그 가운데 빛을 품고 있는 거대한 푸른 링을 보는 순간, 모두가 그 정체를 알아챘다.

광화문 게이트!

영상으로 수없이 본 너무나 유명한 게이트.

그리고 광화문 게이트를 꿰뚫은 수십 개의 바늘이 보였다.

광화문 게이트에는 바늘 수십 개가 꽂혀있었고,

이 수십 개의 바늘 위를 번뜩이는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게이트 링을 감싼 안정화 장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대한 바늘 모양의 기둥만 있었다.

“...저게 뭐죠?”

누군가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김 과장이 대답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입니다···.”

순간 김 과장에게 모이는 시선들.

“네?”

“저게 게이트 안정화 장치라고요?”

김 과장은 얼떨결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안정화 장치에 씌워진 보호 블록이 제거됐네요···.”

"저게 게이트 안정화 장치라고요?"

보호 블록으로 둘러싸인 안정화 장치의 사진과 영상만 봤던 면접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그러나 곧 면접자들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고 탄성이 터졌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

한국의 작은 공업사였던 재금 공업을 세계적인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으로 도약하게 하고.

게이트 사태로 붕괴하던 인류 사회에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준 물건.

게이트 안정화 장치!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보호 블록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장갑 버스는 높은 격리 장벽 지대를 빙글빙글 돌아 게이트가 있는 중앙 광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르릉-

장갑 버스가 중앙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바늘 같아 보였던 게이트 안정화 장치.

그러나 게이트가 너무 거대해서 작게 보였을 뿐,

안정화 장치는 바늘이 아니라 전봇대를 몇 개나 합쳐 놓은 듯 거대했다.

누군가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

"저걸···. 저렇게 큰 기둥을. 게이트에는 어떻게 꽂은 거야? 중장비도 못 썼을 텐데···."

"...가장 강한 헌터 수백 명이 피로 길을 뚫었다고 하잖아."

순간 버스 안 곳곳에서 이름이 튀어나왔다.

"태성 길드, 철벽 이태성 길드장."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

"하얀 번개, 추이린."

"강철 해머···."

...

세계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 성공.

서울 광화문 수복 작전.

역사에 흔적을 남긴 전설,

헌터들의 이름이 하나둘 불려진다.

한국 헌터 업계뿐만이 아닌 세계에 이름을 남긴 선배 헌터들의 이름이 이어지다가 문득 침묵이 내려앉을 때.

누군가의 탄성이 터졌다.

"1세대 헌터···!"

최초의 헌터.

그리고 게이트 안정화 장치.

시대의 전설 1세대 헌터들이 만들어낸 역사의 흔적을 직접 보는 지금, 헌터 지망생들은 깊은 감흥에 빠졌다.

“...”

침묵이 내려앉은 버스 안.

천문석도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광화문 게이트와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 인터넷, 교과서 수많은 매체를 통해 영상과 사진으로 봤고,

동대문 게이트의 경우 지나가며 직접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보호 블록으로 덮인 상태의 안정화 장치만 봤을 뿐,

보호 블록이 제거된 안정화 장치의 본체를 직접 보는 건 처음 이었다.

보호 블록이 제거된 게이트 안정화 장치의 실체를 직접 본 지금.

천문석은 경악하고 있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것이 느껴졌다.

영맥!

지난 한 달여.

그 무엇을 해도 느껴지지 않던 영맥이 여기서 느껴진다.

공기의 흐름, 바람.

바다의 흐름, 해류.

그리고 진기의 흐름, 영맥!

천지에 가득하나 오직 멈춰 있을 뿐인 진기.

이 진기에 흐름을 만들어줄 영맥이 여기에 있었다.

저기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쿵, 쿵, 쿵-

순간 미친듯이 요동치는 심장.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가까워질수록 심장 소리가 급격히 커진다.

천문석의 두 눈은 게이트 안정화 장치,

게이트에 꽂혀있는 바늘 같은 기둥들에 고정됐다.

흔적만 남은 실개천 같은 느낌,

아주 미약한 영맥이 이 기둥들에서 느껴졌다.

물에 떨어진 단단히 굳은 물감처럼,

기둥에서 대기 중으로 풀려 나오는 미약한 흐름!

이 흐름은 너무나 미약하여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순간 천문석은 이 흐름을 혼백을 실어 마음으로 불렀다.

'와라.'

"..."

똑같은 햇볕과 공기,

변함없는 하늘과 대지.

무엇하나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천문석은 느꼈다.

거의 느낄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게 진동하는 몸!

눈에 보이지도 소리가 들리지도 않지만,

분명히 느껴진다.

부르르-

이 떨림은 멀리 게이트에 꽂힌 기둥.

안정화 장치의 영맥이 일으킨 공명이다!

너무나 미약한 공명.

그러나 영맥은 분명 호응하고 있었다.

혼백을 실은 자신의 부름에 영맥은 대답하고 있었다!

문득 마음속에 생겨나는 미혹.

'이렇게 미약한데 가능할까?'

‘운공중에 누군가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천문석은 순간 마음에 드리워진 미혹을 잘라냈다.

무공 수련이란 거대한 바위에 천 년 동안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떨어져.

마침내 거대한 바위를 깨뜨리는 물방울!

전심전력!

매 순간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부딪혀야 한다.

천문석은 단숨에 몰입했다.

비상은 언제나 한순간.

천시, 지리, 인화가 합쳐지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눈 깜짝하는 순간에 사라진다.

눈앞에 기회가 보이는 순간,

움켜잡아야 한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무공.

이 상황에 맞춘듯한 무공이 떠올랐다.

굉천수(轟天手)!

마른하늘에 날벼락.

뜬금없이 갑자기 떨어져,

사람을 놀라게 하는 날벼락 같은 무공.

심법의 수준은 별 볼 일 없지만,

뜬금없을 정도로 빨리 입문할 수 있는 무공이다.

심법을 운용해 단 한 번 벽력성을 울리기만 하면 굉천수의 입문에 성공한다!

심법의 위력과 수준은 낮으나,

마중물이 될 진기를 끌어 올리기에는 최고의 무공이었다.

천문석은 즉시 심상에 기경팔맥을 그리고,

혼백을 실어 굉천수의 구결을 운용했다.

물 없이 움직이는 펌프처럼 헛도는 심법.

천문석은 반개한 눈으로 게이트 안전장치를 관(觀)하여 불렀다.

'오라.'

쿵-

순간 철렁 내려앉는 마음!

공간을 넘어 영맥이 호응하고,

혼백이 실린 굉천수의 구결대로 흐름을 만드는 영맥!

너무나 미약한 흐름.

그러나 영맥의 흐름을 따라 천지간에 멈춰 있을 뿐이던 진기가 움직였다!

바람이 불고,

바다가 흐르듯.

진기가 영맥의 흐름을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너무나 느려 눈앞에서 보아도 알 수 없는 흐름.

그러나 진기가 영맥의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순간.

쿠르릉-

하늘이 울었다!

쿠르-

쿠르르-

쿠르르릉-

거대한 용이 하늘을 긁는듯한 굉음이 이어졌다.

풍선이 커다랗게 부풀듯,

미약했던 굉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던 진기의 바다에 일렁임이 일어나고,

파도가 천천히 거세지기 시작한다.

된다.

되고 있다!

굉천수!

하늘이 울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려 한다!

이제 단 한 번!

한 번의 벽력성만 울리면 된다!

으하하하하-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터트리며,

쏟아져 들어올 마중물을 기경팔맥으로 인도할 준비를 했다.

벽력성이 터지는 그 순간!

굉천수의 심법이 인도하는 폭포수 같은 진기가 쏟아져 들어오리라!

그러나 굉천수는 허풍수라고 불릴 정도로 극악의 효율을 가진 심법.

쏟아져 들어온 폭포수 같은 진기 대부분은 흩어져 사라진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단 한 방울!

심상에 그려진 기경팔맥에 떨어질 단 한 방울의 진기면 충분했다!

천문석은 심상에 그려진 기경팔맥에 물고를 틔워줄 단 한 방울의 진기를 기다렸다.

쿠릉, 쿠르릉-

쿠릉, 쿠르-

쿠르-

"...어?"

그러나 벽력성이 터지고 폭포수 같은 진기가 쏟아지기는커녕, 우렛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돌변한 상황에 천문석이 의아해할 때,

버스 앞쪽 김 과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러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게이트의 마력장이 강해져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입니다!"

"..."

김 과장은 돌연한 우렛소리에 놀란 면접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신 외쳤다.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특별 관리 대상입니다!"

"재금 그룹의 엔지니어와 헌터 업계에서는 마도사라고 부르는 재금 연구소의 고위 마력 각성자들이 24시간 상주해 있으니 전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앗! 저기 하얀 막대기를 들고 있는 분 보이시죠?!"

"재금 연구소의 추이린 수석 연구원이십니다! 하얀 번개란 이름으로 불리는 마력 각성자! 1세대 헌터십니다!"

“...”

"추이린 수석 연구원께서 직접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조정하시려나 보네요!"

김 과장의 외침에 깜짝 놀란 면접자들.

"추이린이라고!"

갑자기 튀어나온 유명한 1세대 헌터의 이름에 면접자들이 버스 창에 달라붙었다.

"저 여자가 재금 연구소, 수석 연구원이야?"

"하얀 번개! 추이린!"

"20대 같은데? 1세대 헌터라기에는 너무 어린 거 아냐?"

"1세대 헌터에 마도사급 마력 각성자잖아!"

"그렇지. 저 정도 급이면 노화도 역행해!"

"헌터 지망생이 추이린 수석 연구원을 모른다고?!"

...

사방에서 쏟아지는 목소리.

헌터 지망생들이 선망의 눈길로 추이린 수석 연구원을 볼 때.

천문석도 추이린 수석 연구원을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다.

경악한 얼굴로!

추이린 수석 연구원이 하얀 막대를 움직이자.

게이트에 꽂힌 바늘들,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건반처럼 빠르게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바늘들.

바늘의 움직임이 이어지자,

굉천수의 부름에 호응하던 영맥의 흐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잦아드는 우렛소리!

천문석은 재빨리 혼백에 실리는 굉천수의 구결에 집중했다.

이야얍!

천문석이 안간힘을 쓰는 순간.

쿠르릉-

영맥의 흐름이 다시 거세지고,

우렛소리가 다시 커졌다!

으으윽!

뒤지게 힘들지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천문석은 단 한 번 벽령성을 터트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이야야야얍!

쿠르르르릉-

"이상한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천둥소리가···. 계속 커지잖아?!"

"저기!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점점 빠르게 움직여!"

...

우렛소리가 다시 살아나고,

버스 안 면접자들이 불안해할 때.

천문석은 안간힘을 다해 굉천수의 구결에 몰입했다!

이때 다시 한번 김 과장의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기! 재금 연구소의 다른 선임 연구원들도 나서고 있습니다!”

순간 확 잦아드는 우렛소리!

쿠르-

천문석은 다시 한번 힘과 정신을 끌어올렸다.

이야으크윽!

쿠르-

쿠르르-

쿠으-

쿠르르-

쿠르르릉-

쿠르-

...

터질락 말락!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는 우렛소리!

벽력성은 터질듯 터질듯 안 터졌고,

천문석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이 들었다!

이때 김 과장이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김 과장이 리액션 할 때마다 몇 배로 힘들어지는 상황!

'야! 그만! 그만해!'

천문석이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른 순간.

경악한 김 과장의 비명 같은 외침이 버스 안을 울렸다.

"어, 어? 엇!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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