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네? 오리온 길드요? 신입 헌터 면접요?"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되물었고,
데스크 직원은 의아해하며 다시 질문했다.
"...신입 헌터 면접 때문에 오신 분 아니신가요?"
"저 이곳 13층 철수형. 그러니까 김철수 사무실을 찾아왔는데요?"
"네? 김철수 사무실요?"
데스크 직원이 다시 확인했다.
"13층이면 여기가 맞는데···. 오리온 길드 방문하신 거 아니세요?"
"오리온 길드는 모르겠고, 13층 방문한 거는 맞는데요. 13층 김철수 사무실 찾아왔습니다."
"..."
“김철수 사무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잠시만요···."
데스크 직원은 옆에 앉아 전화를 받는 상사를 불렀다.
“김 과장님.”
"...네 그렇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던 김 과장이 통화를 끝내고 데스크 직원을 봤다.
"뭐라고 했지? 채연 씨?"
“과장님 이분께서 13층 김철수 사무실 찾아오셨다는데···. 여기에 다른 사무실이 있나요?"
“뭔 소리야? 13층은 우리 길드가 전부 쓰잖아.”
김 과장은 고개를 돌려 천문석을 봤다.
"방문자님. 이곳 재금 빌딩. 13층 방문하신 거 맞으신가요?"
천문석은 옷깃에 집어둔 방문증을 내밀었다.
[13층 방문증]
"맞는데···. 이상하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천문석입니다."
"잠시만요. 혹시 모르니. 명단 좀 확인하겠습니다."
"네···."
김 과장이 방문객 명단을 확인할 때.
땡-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천문석과 비슷한 면접용 복장을 차려입은 남녀 십여 명.
이들을 본 데스크 직원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리온 길드 방문을 환영합니다. 신입 헌터 면접을 보러 오신 분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일제히 대답하는 사람들.
"잠시만요. 확인 좀 하겠습니다."
"김석기 님"
"네! 있습니다!"
"이혜진 님"
"넵! 왔어요!"
...
데스크 직원이 면접자 명단을 들고 한 명 한 면 확인을 시작했다.
"방문객 명단에는 없는데···. 누굴 만나러 오셨다고요?"
김 과장이 천문석에게 다시 질문했다.
"김철수라고···. 친한 형인데요."
"철수, 김철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김 과장이 기억을 되짚을 때.
면접자를 모두 확인하고 서랍에서 면접자용 출입증을 꺼내던 데스크 직원이 깜짝 놀랐다.
"앗!"
순간 울상이 된 데스크 직원.
데스크 직원은 다급히 상사를 불렀다.
"김 과장님!"
"왜? 채연 씨?"
데스크 직원은 입을 가리고 김 과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 저분. 면접자, 현장 실기 면접용으로 발급받은 게이트 임시 출입증이 여기 있어요! 면접 명단에서 누락됐나 봐요!"
"..."
데스크 직원은 뻘쭘하게 선인장 화분을 들고 서 있는 천문석을 눈으로 가리키며,
서랍에서 꺼낸 게이트 임시 출입증과 면접 명단을 김 과장 앞에 놓았다.
천문석이라는 이름이 인쇄된 게이트 임시 출입증.
임시 출입증을 보는 순간 김 과장은 김철수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오래전 후원자가 꽂은 그 사람이다!
팀장뿐인 지원 9팀을 만들고,
그 사람을 9팀장으로 발령낸 게 몇 년 전 일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2년이 훌쩍 넘어 잊고 있었다!
김 과장은 게이트 임시 출입증의 사진과 눈앞에 서 있는 천문석을 번갈아 봤다.
'김철수 지원팀장을 만나러 왔다고?'
티셔츠를 입고 졸린 듯 하품하는 출입증 사진,
면접용 정장을 차려입고 긴장한 눈앞의 사람.
옷은 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같은 사람이다.
김 과장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천문석입니다."
김 과장은 감을 잡았다.
후원자를 등에 업은 지원 9팀장이 낙하산으로 사람을 꽂았구나!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중간에 끼워 넣어서,
면접자용 게이트 임시 출입증은 나왔는데 면접 명단에서는 누락 된 거다!
전에도 이사급에서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낙하산을 꽂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문제가 됐었는데!
또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다니!
김 과장은 긴장된 얼굴로 서 있는 면접 대기자들과 선인장을 들고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낙하산을 번갈아 봤다.
여전히 청년 실업이 심각한 지금,
불공정한 낙하산에 사회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허술한 일 처리로 인터넷 구인·구직 게시판에 악평이라도 남는다면 좋을 게 없었다.
김 과장은 면접 대기자들이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면접 명단 누가 작성한 거야! 면접자를 누락하면 어떡해! 한분 한분이 소중한 지원자님들인데!"
김 과장은 면접 명단을 바로 수정해 데스크 직원에게 넘기고 낙하산을 바로 치워버리도록 지시했다.
"채연 씨. 면접자분들 모두 게이트 임시 출입증 착용하시도록 하고, 안쪽 면접장으로 모시도록 해요."
"네, 면접자분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알겠습니다!"
면접자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김 과장은 낙하산에게도 말했다.
"선인장 들고 계신 지원자님도 출입증 받고 따라가시면 됩니다."
"저기 저는 면접이 아니라. 철수형을 만나러 왔는데요?"
뻘쭘하게 서 있던 천문석이 대답하자.
김 과장은 내심 어이없었다.
이런 기본도 안된 낙하산이라니!
면접도 안 보고 자기를 꽂아준 사람부터 만나겠다고?
이렇게 채용되면 동기들에게 낙하산으로 찍혀 따돌림당한다.
게다가 오리온 길드가 낙하산을 꽂았다고 인터넷에 고발 글이 쏟아지겠지!
김 과장은 낙하산을 힐끔거리는 면접자들의 눈치를 보며 사무적인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김철수 님은 면접 후에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지원자님은 우선 면접에 충실하세요!"
"···."
딱딱한 말투에 천문석이 움찔한 순간,
데스크 직원이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나눠드릴 테니 바로 목에 걸어주세요. 오늘 면접은 이곳 사무실과 광화문 게이트 너머 현장에서 진행됩니다. 일정이 빡빡하니 통제에 잘 따라주세요. 길드장 님과 총괄 이사님 세 분 모두 면접장에 계시는데. 지원 총괄 이사님은 일정 지체되는 거 정말 싫어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면접자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데스크 직원은 한명 한명 이름을 부르고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건넸다.
"정준일 님?"
"네!"
"이인경 님?"
"여기 있어요!"
...
그리고 마지막 출입증.
"천문석 님?"
"네···?"
"여기 받으세요. 바로 목에 거시면 됩니다."
천문석은 얼떨결에 데스크 직원이 나눠준 플라스틱 출입증을 받고 경악했다.
[천문석 / 게이트 임시 출입증]
게이트 임시 출입증에는 놀랍게도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뭐지?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 이게···?"
천문석이 급히 질문하려는 순간,
데스크 직원이 인솔을 시작했다.
"면접자님들 바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면접자들이 씩씩하게 대답하고 일제히 움직였다.
“어? 저 잠시만···.”
천문석이 외쳤으나, 데스크 직원과 면접자들은 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문 막지 말고 움직이세요!"
"그 선인장, 가시 조심하세요."
...
천문석은 일제히 움직이는 면접자들에게 떠밀리듯 안쪽으로 이동했다.
곧 파티션으로 나눠진 넓은 사무공간이 나왔다.
겉모습은 일반회사 사무실 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다른 게 눈에 띄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들 사이사이,
청바지에 반팔티를 입거나 강화 전투복을 입고 로브를 걸친 헌터들이 보였다.
몇몇 헌터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봤는지 낯이 익었다.
이때 문득 뒤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내정자 있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요···?"
"오리온 길드면 그래도 대형 길드인데···."
...
따가운 뒤통수.
등 뒤 면접 참가자들이 소곤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데스크 앞에서의 일로 예민한 면접 참가자들이 오해를 하는것 같았다.
아니지···.
철수형이 같이 일을 하자고 했고,
면접 후 김철수를 만날 수 있다고 했으니···.
오해가 아닌가?
그럼 나 낙하산인 거야?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같이 알바하던 철수형, 김철수가 오리온 길드 직원이라고?
그것도 누군가를 낙하산으로 꽂을 수 있는 고위직?
오리온 길드면 10대 길드에는 못 들어가도 이름은 들어본 대형 길드다.
철수형이 알바를 하면서 대형 길드 직원 일도 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이건 재금 중공 사장이 취미로 키즈 카페 점장을 하는 격.
의도나 목적을 떠나서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크게 잘못 돼가고 있었다.
"저. 잠시만요!"
천문석이 면접자들을 인솔 중인 데스크 직원에게 다시 한번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말하려 할 때.
“다 왔습니다. 면접자분들은 여기 대기용 의자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면접장에 도착한 데스크 직원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천문석은 다급히 외쳤다!
“저 뭔가 잘못···.”
“잠시만요. 안에 길드장님께 우선 말씀드려야 해서.”
데스크 직원은 천문석의 말을 끊고 면접장 문에 노크하고 잠시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
이때 들으라는 듯 소리를 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저 사람. 내정된 거 티 내는 거야?”
"하- 면접 전에 인사라도 하려는 거야 뭐야?!"
"저 선인장 화분은 또 뭐래요? 선물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하-"
"혹시 드루이드 계열 각성자 아닐까요?"
"네?! 아니 이번 면접에서는 장비 지참하란 말 없었잖아요!"
“맞아요. 블라인드 면접이라 아무것도 지참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 이런 식으로 낙하산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건가요!?"
“이번에 떨어지면. 저는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저도 인터넷에 올릴 거에요!”
...
예민한 청년 구직자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쏟아졌다.
천문석은 스스로를 살폈다.
검은 정장에 흰 와이셔츠에 검은 구두,
눈앞의 사람들과 비슷한 면접용 복장이었다.
이것만 봐서는 신입 채용에 응시한 면접자였다.
그러나 손에 들린 선인장 화분!
누가 선인장 화분을 들고 면접장에 온단 말인가?!
"..."
헌팅 장비인 선인장 화분?
이 선인장 화분은 개업 축하 선물일 뿐이다.
드루이드 계열 각성 헌터?
자신은 그냥 아는 형 만나러 온 일반인일 뿐이다.
내정? 낙하산?
지금 자신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오해가 겹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내렸다.
목에 걸린 게이트 임시 출입증.
여기에는 이름과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름 천문석,
티셔츠를 입고 하품하는 사진.
둘 다 자신이 맞았다.
"..."
의문이 줄줄이 이어진다.
-왜 내 이름으로 출입증이 나와 있지?
-철수형이 진짜 오리온 길드 직원이란 말인가?
-같이 일하자는 건 면접을 보고 오리온 길드에 들어오라는 건가?
모든 게 말이 안 됐다.
누군가를 낙하산으로 꽂을 정도로 고위직인 대형 길드 직원이 왜 키즈 카페 일을 했단 말인가?
차라리 김철수 재벌설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유혹하듯 들려오는 목소리.
'어쩌면···. 모든 게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철수형이 진짜로 오리온 길드, 대형 길드 면접에 꽂아준 거라면?’
“...”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혹.
그러나 천문석은 선인장 화분을 든 채 면접장 앞에 뻘쭘하게 서 있었다.
철수형의 새 일을 축하하고,
진짜 재벌인지 슬쩍 알아보고,
제대로 눈도장을 찍으려 했는데···.
"..."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완전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천문석의 발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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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석이 오리온 길드 면접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김철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땡-
로비 뒤쪽 화물 집하장에 도착한 화물용 엘리베이터.
김철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이어진 긴 통로를 걸었다.
"얘는 왜 안 올라오는 거야? 안전 교육 시간 다 됐는데."
김철수는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며 바쁘게 걸었다.
로비 데스크에 방문객이 왔다는 사실을 몇 다리 건너 전해 듣자마자,
자신과 천문석의 헌터업 안전 교육 신청을 했다.
그러나 10분이 지났는데도 천문석이 나타나지 않아서,
김철수는 로비로 직접 내려온 것이다.
"천문석이라고 13층 방문자 여기 있나요?"
로비 데스크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천문석 방문객님. 아까 전에 위로 올라갔는데요?"
"아, 감사합니다. 서로 엇갈렸나 보네요."
김철수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으며 다시 천문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아니! 아직도 전화가 안 돼!?"
김철수는 어이없어하면서 로비 통로 끝 화물 엘리베이터에 탔다.
13층을 누르며 김철수는 오늘 할 일을 생각했다.
천문석을 만나면 바로 헌터업 안전 교육을 받고,
수료증이 나오자마자 광화문 너머 게이트 지역으로 넘어가 게이트를 통과한다.
보통 게이트 출입증을 받으려면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이건 손을 써 뒀다.
오리온 길드의 치사한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대신에.
그쪽에서 천문석의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아 주기로 한 것이다.
벌써 5일이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천문석의 게이트 임시 출입증이 오리온 길드에 도착했을 거다.
천문석을 만나면 치사한 이웃, 오리온 길드로 가서 게이트 임시 출입증을 받고 일정대로 진행하면 된다.
김철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키즈 카페 일로 자신이 소개하는 일자리에 대한 천문석의 믿음이 뚝 떨어진 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광화문 게이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트를 넘어가 이세계의 신도시를 보면!
후배의 마음속 뜨거운 열정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되살아날 것이다!
게이트야말로 미래의 신산업!
청년 창업 성공의 길은 이곳에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대박!
아니 초대박을 칠 것이다!
땡-
이때 화물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도착했다.
김철수는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다가 어이없어했다.
화물 엘리베이터 앞 공간에 빼곡히 쌓인 상자들.
분명 오리온 길드 총무팀에서 한 짓이다!
"아. 그 새 여기다가 상자를 또 쌓아놨네. 왜 자꾸 내가 쓰는 화물 엘리베이터 앞에다가 상자를 쌓아놓는 거야! 자기들은 공간도 넓으면서! 왜 좁은 여기다가 쌓아놔!"
김철수는 분노하면서 빼곡히 쌓인 상자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와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복도 끝, 정면으로는 보이지 않고 한 번 꺾어 들어간 곳에 김철수의 사무실이 있었다.
김철수 자신과 이름이 같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먼 친척 형에게 아주 저렴하게 얻은 사무실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데 문 앞에 떨어진 A4지 한 장이 보였다.
"어? 또 떨어졌네? 이거 누가 일부러 떼는 거 아냐? 텃세인가?"
김철수는 바닥에 떨어진 A4 용지를 주워 테이프를 문질러 문에 다시 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쿵-
튼튼한 강화 철문 명판 아래,
김철수가 붙인 A4 용지가 흔들렸다.
-지원 9팀-
[김철수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