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5화 (36/1,336)

#035

서울이 뚫리는 초유의 사태!

몬스터 위기 경보가 내려졌던 날부터 열흘가량이 지났다.

시민들은 서울 안정화 권역이 끝장나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20년간 실전으로 단련된 대한민국 군대는 유능했다.

서울의 긴급 대응 헌터 부대가 움직여 급한 불을 끄는 사이.

경기도와 대전의 몬스터 전술 사단이 움직이고,

전국의 헌터 길드가 수도 서울로 집결했다.

제2 행안부, 일명 헌터부는 실적에 따른 막대한 게이트 이권을 약속했고.

한국에 소재지를 둔 모든 헌터 길드가 적극적으로 던전과 균열 대응에 나섰다.

위기 상황,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독점 운용하는 재금 그룹에 잘 보이려는 나라들도 많았다.

미군의 항공, 기갑 전력이 즉각 움직였고,

러시아와 유럽이 적극적 도움을 약속했다.

몬스터 전술 사단이 몬스터를 일정 구역으로 몰아넣고,

미군의 A-10 선더볼트 III의 어벤져 개틀링이 몬스터가 모인 지상을 갈아엎었다.

그리고 거대 괴수들은 대형 길드의 랭커와 군 특임대, 한국과 미군의 기갑부대가 투입되어 상대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지금,

서울 지역에 발생한 던전과 균열 대다수가 정리됐다.

아직 남아있는 던전과 균열이 있었지만,

이 지역에 대한 봉쇄 조치가 완성되며 1급 몬스터 위기 경보는 해제됐다.

통행 제한 조치가 풀린 거리에는 아직도 헌터 부대의 경계 병력이 순찰하고 민간 헌터 팀의 장갑 승합차가 줄지어 이동하곤 했다.

그러나 수색이 끝난 서울 거리 어디에서도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거리에는 전투 흔적을 지우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고,

건물과 도로 같은 시설물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이 시작됐다.

몇몇 건물이 안전진단 부적합으로 철거 결정이 내려졌으나,

다행히 천문석이 사는 류세연네 건물은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렇게 몬스터 위기상황이 마무리되고,

수도 서울의 사람들이 하나둘 땀 흘리며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5층 건물 옥탑방.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거실,

햇빛이 드리워진 소파에 누워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천문석.

키즈카페 부점장에서 잘리고,

이제는 백수가 된 천문석이었다.

천문석은 소파와 하나가 된 듯 미동도 없이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지난 열흘.

잠깐 외출해서 일을 처리한 시간 외의 대부분 시간을 이렇게 놀면서 보냈다.

천문석은 휴일의 햇살을 받으며 생각했다.

'노는 것도 익숙해지는 건가?'

잠이 오지 않지만,

계속 잠자고 싶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욱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얼핏 시계를 보니 오전 11:00.

예전 키즈카페 비정규직 부점장일 때 이 시간은 오전 근무를 끝마치고 오후 근무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꼬맹이들에게 쉴 새 없이 시달리는 키즈카페 업무 중,

오전 11 시는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때는 11시가 너무나 오지 않았고,

막상 11시가 되면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 가버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문득 다시 시계를 보니 아직도 11:00.

마음속으로 숫자를 한참 동안 세고 나서야 11:01으로 변한다.

천문석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강화 전투복과 정글도, 강화 해머 같은 빌린 장비는 제임스를 통해 장강 유통 대표, 꼬맹이 엄마 장민에게 모두 반납했다.

백곰에서 뽑아낸 마석도 장비를 반납할 때 같이 판매를 위탁했다.

이세영 선생님께 선물 받은 리볼버는 현역 장군의 보증을 거쳐 선생님께 소개받은 총포상에 영치한 상태.

전투 중 부서진 휴대전화는 류세연이 고쳐준다고 가져갔고,

몬스터 위기 상황을 겪었음에도 건물도 자신의 집도 크게 부서진 곳 없이 멀쩡했다.

건물 3층, 헌터 도장의 관장 할아버지가 필사적으로 도장과 이 건물을 지켜 내셨다던가···?

철수형이 말했던 키즈카페 퇴직금은 통장에 이미 꽂혔고,

조만간 정부 포상금과 마석 판매 대금도 통장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슥- 소파 쿠션 밑으로 손을 넣어 통장을 꺼냈다.

[10,028,090원]

으아아-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탄성!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숫자!

앞자리가 백만 자리에서 천만 자리로 올라간 통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이런 힐링 되는 기분이라니!

통장 잔고는 중학생 이후 유례없이 빵빵하고,

앞으로 들어올 돈으로 더욱 빵빵해질 예정이었다.

빵빵한 통장과 몬스터 사태로 인한 휴식.

천문석은 중학교 이후 오늘까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오래 쉬었던 적이 없었다.

월화수목금금금.

휴일 없는 삶에 익숙하던 천문석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아니 생애 처음 가지는 긴 휴가였다.

게다가 오늘은 휴일이었다.

보통 휴일 알바는 일당이 1.5배 이상이라 쉬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휴일에 쉬는 것 같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평일과 휴일.

다를 것 하나 없이 똑같은 하늘,

똑같은 시간인데···.

휴일의 하늘은 더욱 맑고,

휴일의 시간은 더욱더 달콤하다.

휴일 낮.

맑은 하늘, 달콤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소파 위에서 빈둥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천문석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류세연에게 침대를 빼앗기고 밀려나 자리한 소파였지만,

어째선지 이제는 소파가 침대보다 더 편했다.

텔레비전도 바로 앞에 있고 말야.

아! 그래서 아빠들이 퇴근만 하면, 소파에서 생활하는 건가?

작은 깨달음을 얻은 천문석은 능숙하게 소파 쿠션 사이로 통장을 넣고 리모컨을 꺼냈다.

천문석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서울이 뚫린 원인과 차후 전망, 이번 사태의 영웅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대문···.

-게이트 소멸···.

-원인 불명의 사태···.

-재앙급 마수 출현의 전조···.

-거대 괴수···.

-헌터 허무인···.

-던전 10개 클리어···.

-장강 유통의 헌터···.

...

휙휙 채널을 돌리면서 살피니 공중파 지상파 할 것 없이 이번 서울 사태에 대한 특집 방송을 하고 있었다.

두두둥-

천문석은 긴박한 음악이 들려오는 채널에서 멈췄다.

화면 반을 가린 자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울! 더는 안전지대가 아닌가?]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 전망은?]

뭔가 어이없지만, 흥미가 가는 주제였다.

채널을 고정하자,

전문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이번 서울이 뚫린 건 엄밀히 말하면 뚫린 게 아닙니다."

"뚫린 게 아니라면 어떻게 된 건가요?"

아나운서의 말에 전문가는 문서를 뒤적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게 사실은 뚫렸다기보다는 그동안 억제됐던 던전과 균열이 한 번에 발생했다는 게 맞습니다. 엠바고가 풀려서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사태의 원인은 ‘동대문 게이트 소멸’입니다."

"...'동대문 게이트 소멸' 말씀이신가요?"

"네. 사상 초유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동대문 게이트 소멸사태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무력화된 게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수위가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동대문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마력압이 낮게 유지되던 서울 동부 지역으로 마력이 집중되고 던전과 게이트가···."

"교수님 말씀은 집중된 마력이 던전과 균열을 발생시켰다는 말씀인 건가요?"

"네. 맞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민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각에서는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성급한 의견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전 세계 수백 개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정상 작동 중이고. 서울의 다른 게이트 안정화 장치도 정상 작동 중이거든요."

이때 아나운서가 탄성을 터트리며 질문을 했다.

"아! 그렇다면 서울 지역에 집을 가지신 분들은 걱정이 없겠군요?"

"네? 집이요?"

당황하는 전문가.

아나운서는 카메라를 슬쩍 바라보고 다시 질문했다.

"네 시청자 여러분께서 지금 제일 걱정하시는 게. 던전과 균열이 발생한 서울의 ‘집값’인데. 어떻게 될 거로 전망하시나요? 특히 소멸한 동대문 게이트 안정화 권역, 동대문, 성북, 중량, 광진구···. 지역에 집을 가지신 시청자분들이 걱정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지금 집값 전망 말씀하시는 거 맞나요?"

전문가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 집값. 더 정확히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는 않을까요?"

전문가는 잠시 당황하다가 서류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게이트가 소멸한 동대문 게이트 권역은···. 우선 광화문 게이트와 다른 게이트를 재설정해서 안정화 권역 안으로 넣은 상태라, 지금 당장은 큰 영향이 없긴 한데···."

"아. 그럼 앞으로도 서울 집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군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당장은 재설정했지만···."

"맞습니다. 지금 전문가분께서 핵심을 짚어 주셨네요."

"네? 핵심이요···?"

"광화문 게이트 ‘재설정’ 말입니다. 이걸로 지금 이야기가 많거든요. 사실 경기도에 사시는 시민분들이 그동안 불만이 많으셨습니다."

"..."

아나운서는 시선을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경기도권 시민분들이 안정화 권역을 넓혀달라 주장할 때, 정부에서는 지금 코어와 마석 수급 상황에서는 경기도까지 안정화 권역을 넓히는 게 힘들다고 했었거든요."

"네 맞습니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 들어갈 균열 코어와 마석 정제 상황을 보면 지금도 간당···."

아나운서가 전문가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경기도 시민분들은 그런 정부 발표가 과장이 섞였다는 게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고 말씀하시거든요. 동대문 게이트가 사라졌는데도 광화문 게이트를 조정해 동대문 게이트가 커버하던 서울 동부 지역을 안정화 권역으로 유지한 게 그 증거라는 거죠."

"..."

"경기도권 시민분들은 광화문 게이트뿐만 아니라 다른 서울 게이트를 모두 조정해서 안정화 권역을 경기도 전체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시고 계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에서 그렇게 진행을 할까요?"

"시민분들 모두가 아시겠지만, 게이트 안정화 장치는 재금 그룹이 전 세계 독점 운영 중입니다. 안정화 권역 전망을 알려면 마석 정제 현황과 균열 코어 수급 상황을 우선 확인해야 하는데···."

전문가는 서류를 들어 올려 그래프를 짚으며 마석 정제 수율과 균열 코어 가공 같은 전문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나운서는 바로 전문가의 말을 끊었다.

"교수님. 일반 시청자분들께서는 복잡한 이야기는 잘 모르십니다. 좀 더 쉽게 결론만 설명 가능할까요?"

"네? 그게 무슨···."

아나운서는 당황하는 전문가에게 더욱 직설적으로 질문을 했다.

"교수님께서 전망하시기에는 안정화 권역이 넓어질까요? 그러니까 안정화 권역 바로밖에 있던 경기도권 부동산 가격이 오를까요?"

아나운서의 질문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눈을 번쩍 뜨고 누웠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부동산 호재 중 최고의 호재!

서울 광역 안정화 권역 편입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게 미칠 파급력은 엄청났다.

경기도의 안정화 권역 편입은 부동산 매물 증가로 이어지고, 역으로 서울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불러일으킬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게이트 안정화 권역이 경기도권으로 크게 늘어나면,

잠시 누그러들었던 온갖 이슈들이 다시 튀어나올 거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회 이슈들.

-이민 제한, 난민 쿼터, 해외 원조, 불법 체류자, 영주권 획득 요건.

-외국인 부동산 소유 제한, 외국인 투자 제한, 투자 이민 재개.

-1차 게이트 사태 시 국외 탈출자의 국적 회복 문제.

-게이트 공공재론, 각성 동물 투표권.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 국회의원 만들기 운동 등등.

수많은 이슈가 이 질문, 안정화 권역에 엮여 있었다.

아나운서는 지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을 한 것이다.

아나운서의 이 질문은 겉보기에는 너무나 속물적이나,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당장 천문석부터가 안정화 권역 내 건물주를 꿈꾸고 있지 않은가?

천문석은 볼륨을 올리고 텔레비전에 집중했다.

그리고 전문가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띠리리릭-

찰칵-

도어락이 열리고 불청객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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