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4화 (35/1,336)

#034

격변하는 상황,

사람들이 넋 놓고 앞만 보고 있을 때.

얼어붙은 대지에서 거대한 얼음기둥이 쑥 올라왔다.

얼음기둥은 균열의 빛이 뻗은 하늘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자라났다.

이 기둥에서 폭발하듯 천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얼음 가지들!

수천, 수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얼음 가지가 모든 것을 관통했다!

학교 안 건물들이 얼음 가지에 꿰뚫리고,

멈춰선 균열의 빛을 얼음 가지가 덩굴처럼 칭칭 휘감으며 자라났다.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가는 얼음 나무와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키는 얼음 가지!

잠시 후, 거대한 얼음 나무가 균열 침식이 일어난 모든 곳을 삼켰을 때.

쩌어엉-

너무나 거대해 오히려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음 나무에 꿰뚫린 모든 것,

거대한 건물부터 작은 눈송이까지.

모든 게 산산조각이나 땅으로 쏟아졌다!

얼음 가지에 꿰뚫린 건물들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하늘로 솟은 빛의 기둥이 알갱이가 되어 주저앉는다.

그리고 동심원을 그리던 빛마저 가루가 되어 땅으로 흩어졌다.

소리와 진동조차 전해지지 않는 고요 속.

얼어붙은 모든 것이 얼음 가루가 되어 땅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땅으로 쏟아진 엄청난 양의 얼음 덩어리들이 균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으으-

우으으으-

...

이 순간 거대한 하울링이 다시 들려왔다.

기쁨과 환희, 승리를 노래하는 하울링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하울링이 돌연 뚝 끊겼을 때.

대일 고등학교 운동장에 나타났던 균열은 사라졌다.

사라진 건 균열뿐만이 아니었다.

균열이 생겨났던 고등학교와 그 주변, 균열 침식이 진행됐던 대지는 텅 빈 공터가 됐다.

건물과 나무, 눈···.

모든 게 사라졌다.

이 텅 빈 공터 위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는 광경.

산 정상에서 이 모든 걸 내려다본 사람들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침묵을 깨는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빠···."

"문석아···."

류세연이 힘이 빠진 듯 땅에 주저앉았고,

이세영 교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어, 어어···? 균열 코어!"

그리고 각성 헌터의 절박하나 공허한 외침이 터져 나올 때.

이사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텅 빈 대지가 된 학교!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결론은 마찬가지.

모든 증거가 사라졌다!

지옥에 떨어질 뻔하다 살아난 이사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큭, 크큭-

이렇게 천막 안의 모두가 생각도 못 한 상황에 넋이 나가 있을 때,

누군가 살며시 입구 천을 열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지휘 천막 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

이 사람은 헌터용 강화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집에 가다가 산 입구에서 헌터 부대의 검문에 걸려 정상까지 올라온 사람.

천문석이었다.

‘이건 뭐지?’

천문석은 천막 안에 감도는 분위기에 의아해했다.

장례식장 같은 침통한 분위기,

심각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선 사람들.

모든 사람이 등을 보인 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불러봤지만,

천막 안의 누구도 천문석에게 관심이 없었다.

"..."

천문석은 가장 가까이 있는 넋이 나간 듯한 일병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등을 건드렸다.

"저기요?"

"어, 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여기 올라오면 바로 귀가 조치 해준다고 했는데···. 저 집에 가서 밥도 먹어야 하고 바쁜데···. 이제 가도 될까요?"

"네? 아니 아저씨. 이렇게 지휘 막사 안으로 막 들어오시면 어떡해요."

정신을 차린 일병은 선임병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천문석을 밀어냈다.

"아저씨 밖에서 기다리세요. 지금 여기 심각한 거 안보이세요? 아저씨 일은 처리하고 있으니 밖에서 기다리세요."

"정말···. 배고픈데···. 빨리 좀 처리해주세요······."

천문석이 힘없이 대답하고 천막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어?"

천문석은 의자에 앉아 일그러진 얼굴로 웃고 있는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이사장?"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번쩍 고개를 든 이사장과 천문석의 눈이 마주쳤다.

이사장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약탈자!"

천막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이고,

이사장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저 사람! 잡아! 저 사람 약탈자야! 나를 이렇게 만든 강도야!"

재빨리 반론을 외치려 할 때.

누군가 번개같이 달려와 팔을 잡았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잡은 손을 뿌리치려다가 굳어버렸다.

"오빠. 오빠. 오빠···."

창백한 얼굴,

덜덜 떨리는 차가운 손으로 팔을 잡은 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류세연.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외침.

"문석아!"

강화 전투복을 입은 이세영 교장이 한달음에 달려와 펄쩍 뛰어 천문석의 목에 팔을 둘렀다.

"너! 무사히 빠져나왔구나! 잘했어! 역시 내 제자야! 정말 잘 됐어! 으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이세영 선생님.

이 순간 천막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

그리고 류세연과 이세영 선생님, 두 사람의 외침이 쏟아졌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야?"

"네 덕분에 학생들은 모두 무사해! 정말 잘했어. 문석아!"

"오빠! 다시는 그러지 마! 또 그러면 월세 열 배, 아니 백 배 올릴 거야!"

"맞아. 문석아! 혼자 미끼가 되다니! 그러면 안 돼! 어려울수록 함께 힘을 모아서 헤쳐나가야지!"

...

천문석은 걱정이 가득 담긴 두 사람의 외침을 들으며 슬쩍 주위를 살폈다.

‘뭐지? 이 분위기는?’

감탄한 표정으로 탄성을 흘리고,

자신을 보며 소곤소곤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저 선생님이 말한 게 저 사람인가 봐?"

"학생들을 구하겠다고 미끼로 남은 사람?"

"냉기 포자 앞에서 무슨 깡이래?"

"각성 헌터 아닐까?"

"마력 각성자 아니면 냉기 포자는 상대하기 어렵지. 대응 장비도 없어 보이고."

"하-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대단하네."

...

어쩐지 호의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사람들.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자신을 버려두고 간 두 사람.

헛다리를 짚은 이세영 선생님과 류세연을 다시 만나면 터트리려던 분노가 즉각 사라졌다.

천문석은 허리를 쭉 펴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세연아. 선생님.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입니다!"

---

"약탈자야!"

"여기다 적으면 되나요?"

"네 거기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약탈자라고!"

"제 휴대전화가 부서졌는데, 제 동생 전화번호를 적어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적어주시면 동생분을 통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사람! 약탈자라니까!"

"다 적었습니다. 이제 집에 가도 되나요?"

"네 바로 가시면 되고, 차후 표창장과 포상금 지급은 적어주신 번호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약탈···."

천문석과 이인임 대위는 이사장의 끝없이 이어지는 '약탈자'라는 외침은 무시한 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주고받고 악수했다.

"감사합니다. 대위님."

"제가 더 감사합니다. 학생들을 구하려고 자발적으로 미끼 역할을 하시다니···."

이인임 대위는 감탄한 듯 웃으며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 용감하셨습니다. 후배님 행동을 선생님께 들으면서 감탄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이인임 대위는 천막 한쪽을 눈으로 슬쩍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세영 교장이 박찬석 준장과 군인들을 모아놓고, 자기 제자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자랑하고 있었다.

"약탈자···."

이사장의 외침은 이세영 교장의 목소리에 묻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제자 자랑을 끝낸 이세영 교장은 강화 전투복과 전투 장비를 벗고 천문석에게 걸어왔다.

천문석 앞,

이세영 교장은 어느새 조용해진 이사장을 보며 탄식했다.

"이사장. 저 새끼를 게이트 감방에 처넣어야 했는데···. 증거가 전부 날아가다니. 하-"

순간 이사장은 움찔했다.

증거가 사라진 이상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이세영 교장은 여전히 이사장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이때 이세영 교장에게 다가와 공손히 고개 숙이는 장군이 보였다.

"선생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이쪽 류세연 양에게 연락하면 될까요?"

박찬석 준장의 말에 류세연이 앞으로 나섰다.

"네. 제게 연락해주시면 돼요."

박찬석 준장은 류세연, 천문석과 악수를 했고, 흐뭇한 표정으로 제자를 보는 이세영 교장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였다.

"..."

절로 가슴이 철렁하는 광경이었다.

현역 장군.

그것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 서울 헌터 부대의 장군이 이세영 교장에게 공손히 고개 숙이고 있다니!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세영 교장의 인맥은 대단했다.

학교가 완전히 날아간 이상 더는 교장과 마주칠 일이 없지만,

엄청난 인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원한을 샀다는 실감이 났다.

인맥으로 사업을 키웠던 이사장은 힘 있는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생길 후환을 생각하면,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순간 이사장은 한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사장의 눈이 교장 옆에 선 청년에게 향했다.

천문석이라는 청년.

지하 통로로 불법 침입한 저 약탈자는 이세영 교장의 제자로 보였다.

지금은 군 지휘관이 자신의 주장을 뭉개버리지만,

검찰에 고소장을 내면 곤혹스러운 일들을 겪을 것이다.

이세영 교장과 저 제자를 거래 조건으로 딜을 한다면?

이사장은 바로 천문석과 함께 있는 교장에게 다가갔다.

"여긴 왜 오는 거야? 야! 오지 마!"

이세영 교장이 질색할 때,

이사장은 천문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

"앗!"

이사장이 말을 하기도 전에 깜짝 놀라는 천문석.

천문석은 이사장이 다가오는 순간 깨달았다.

이사장이 흘리고 간 금속 상자!

천문석은 전술 조끼에서 우그러진 금속 상자를 꺼내 이사장에게 내밀었다.

"이거 찾으러 오신 거 맞죠? 흘리고 가신 거 제가 주워 뒀습니다. 좀 찌그러지긴 했는데 안은 멀쩡할 거에요."

"..."

낯익은 금속 상자를 보는 순간,

이사장은 사색이 된 얼굴로 덜덜 떨었다.

"이게 왜···? 아니···. 나는. 난···."

자신도 모르게 횡설수설하며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질 치는 이사장.

"쟤는 또 왜 저래···? 어!?"

의아해하던 이세영 교장의 눈이 번뜩였다.

"문석아! 잠깐만!"

이세영 교장은 천문석이 내민 금속 상자를 재빨리 낚아챘다.

그리고 찌그러진 상자를 강제로 열었다.

으아악-

끄드드득-

악을 쓰며 힘을 주자 단단한 금속이 천천히 비틀리며 열렸다.

힘을 끌어올린 각성자가 간신히 여는 상자!

천막 안 사람들의 이목이 천천히 열리는 상자에 쏠렸다.

그리고 뚜껑이 완전히 접혀 상자 안이 드러나자.

"어···?"

"저거···! 저, 저!"

"아니! 저게 왜 저기 있어!?"

...

깜짝 놀란 사람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상자 안에는 투명한 빛을 뿜어내는 육각 기둥 모양의 수정들이 들어있었다.

하-

참을 수 없는 통쾌함을 담은 탄성!

“역시! 정의는 살아있다! 하하하!”

이세영 교장은 사색이 된 이사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선언했다.

"게이트 노역형 당첨이다! 하하하."

으아아악-

이사장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괴성을 질렀고,

이세영 교장은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이인임 대위는 빛을 뿜어내는 육각 기둥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손가락 굵기의 육각 기둥 3개.

저 육각 기둥은 마석을 정제해 만들어낸 '정제 마석'이다.

정제 마석은 마력 회로를 가동하는 연료.

이제는 비교적 흔해진 마석과 달리 정제 마석을 만드는 데는 긴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든다.

게다가 이 정제 마석의 정제방식이 눈에 익었다.

무색투명한 빛,

육각 수정 기둥 형태,

기둥 속에 들어있는 액화된 정제 마석.

이인임 대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재금 그룹에서 액화 정제한 고등급의 정제 마석이다!

재금 그룹에서 정제한 고등급 마석은 일반 유통이 안 된다.

저런 고등급 정제 마석은 국가에서 수매해 비축하거나,

군대와 학교 같은 중요 거점에 공급하는 전략 자원이었다.

저 고등급 정제 마석은 지금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학교의 강화 철문과 강철 덧창 같은 안전 설비의 마력 회로를 돌리기 위해서, 학교 안 시설에 고정돼 있어야 할 물건이니까.

일련번호와 마력 지문을 확인해야 정확하겠지만,

얼핏 봐도 저 정도 양이면 3년 이상 뒤로 빼돌려 모아온 거다.

"구린 구석이 이거였나···."

이인임 대위는 내심 혀를 차며 이사장을 봤다.

안전시설 등급에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고등급 정제 마석을 빼돌린 것이다.

이세영 선생님 말씀대로 이사장의 노역형은 확정이다.

저 정도 양을 빼돌렸으면 징역 5년형 이상.

학생들에게 초래한 위험을 생각하면 5년의 징역은 짧았다.

그러나 사실 징역 기간보다 징역을 치를 장소가 중요했다.

중요 거점 시설에 대한 안전 관련 범죄.

게다가 전략 자원 등급인 고등급 정제 마석에 관련된 부정행위다.

이런 경우 징역은 일반 감옥이 아닌,

게이트나 던전 감옥에서 노역형으로 치른다.

게이트, 던전 노역형의 수형 기간중 사망률을 생각하면,

5년의 게이트 노역형은 사실상의 사형 선고나 다를 게 없었다.

정제 마석의 빛이 뿌려지는 천막 안,

수많은 사람의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주저앉은 이사장에게 닿았다.

이때 이사장은 검게 죽은 얼굴로 덜덜 떨면서 자책하고 다시 자책했다.

-학교가 사라졌을 때 몸을 피했어야 했다!

-아니 구조됐을 때 이곳에 올라오지 말았어야 했다!

-오래전 이세영 선생을 학교에 채용하지만 않았더라면!

...

수많은 실수에 대한 자책이 이어졌다.

보통의 범죄자가 그러하듯.

이사장은 잘못을 후회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들킨 실수를 후회하고 있었다.

이때 이인임 대위가 이사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대일 재단 이사장님. 정제 마석 유용,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하도록 하겠습니다. 몬스터 위기 상황에서 부여된 특별 경찰권으로 체포가 진행되며 변호사를···."

"..."

이인임 대위는 현행범으로 이사장을 구속했고,

박찬석 장군은 자신이 타고 온 헬기에 구속된 이사장을 태워 돌아갔다.

그리고 천문석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천문석과 류세연은 이인임 대위가 내준 장갑 지프를 타고,

거리 곳곳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지나 몬스터 수색 작업이 끝난 건물로 돌아왔다.

천문석은 건물 옥상, 자기 집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정말 긴 하루였다!"

그렇다 정말 긴 하루였다.

몬스터 위기 경보가 발생한 점심때부터 지금까지.

단지 13시간 지났다!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체감은 22일은 지난 것 같았다.

천문석은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반바지에 짧은 티를 입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시간.

계획대로 뜨거운 김치찌개를 먹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천문석은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창문의 강철 덧창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에어컨을 켰다.

그리고 침대로 쓰러지려다가···.

"..."

어이없어했다.

"쟤는 언제 들어온 거야? 아니···. 자기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자는 거야···?"

천문석의 침대에는 젖은 머리카락에 수건을 둘둘 감은 류세연이 있었다.

대자로 엎드려 침대 전체를 가린 채···.

류세연은 꿀잠을 자고 있었다.

"..."

분노의 딱밤을 날리기도 힘들고,

들어다가 아래층 텐트에 버리고 오는 것도 귀찮았다.

마음속으로 오늘의 일을 되새기며.

‘류세연! 딱밤 11대 적립이다!’

천문석은 거실 소파에 쓰러져 잠들었다.

마침내 긴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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