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3화 (34/1,336)

#033

천문석···.

이세영 교장은 학교에 남은 제자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렀다.

순간 먹먹해지는 가슴.

천문석, 멍청한 제자가 미끼가 된 덕분에 몬스터를 만나지 않고 학생들과 무사히 침식지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탈출에 성공했지만,

언제나처럼 후회된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힘은 많지 않다.

탁 트인 설원에서 수십 마리 늑대의 공격을 받았다면 다치고 죽은 학생들이 많았을 거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이번에도 제자를 남겨두게 됐다.

그리고 제자가 있는 저곳은 냉기 포자의 이상행동으로 헌터 부대를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세영 교장은 눈을 감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선생님···.”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한 류세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이세영 교장을 불렀다.

“...”

대답 없이 생각에 잠긴 이세영 교장.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류세연이 다급히 전화기를 꺼낼 때,

이세영 교장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이인임 대위! 각성자용 장비 예비분 있겠지?"

"선생님? 뭘 하시려고···?"

이인임 대위의 물음에 이세영 교장은 빙그레 웃으며 학교를 가리켰다.

"저기. 학교에서 내 제자가 기다리고 있어."

"..."

이세영 선생님.

자신의 은사를 잘 아는 이인임 대위는 더는 질문하지 않고 바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중사! 각성자용 장비 준비해라. 강화 전투복과 소총수용 장비 일체! 발광 신호탄, 응급 배낭, 화기 배낭까지! 완전 군장으로 준비해라!"

명령을 받은 중사와 병사들이 급히 움직이자,

돌아가던 상황을 지켜보던 이사장이 깜짝 놀라 외쳤다.

"대위! 당신 미쳤어? 민간인한테 군용 장비를 내주겠다고!? 거기 당신들! 멈춰! 당장 신고할 거야! 군용품 유용으로 던전 노역형을 선고받을 거야!"

이사장은 발악하듯 소리 질렀다.

던전 노역형은 최악의 징역형.

장비를 준비하기 위해 움직이던 상사와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멈췄다.

"이 새끼가!"

분노한 이세영 교장이 이사장에게 다가가자,

이인임 대위가 재빨리 이세영 교장을 잡아 이사장에게서 멀찍이 떼어놨다.

"선생님 잠시만!"

재빨리 은사를 진정시킨 이인임 대위는 이사장에게 다가가 경고했다.

"지휘관의 긴급재량권입니다! 더는 지휘 행동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이사장이 다급한 얼굴로 외치려 했지만,

이인임 대위는 손을 들어 이사장을 제지하고 다시 명령했다.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바로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중사와 병사들이 천막을 나가려 할 때,

천막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대위. 그건 안 되겠는데."

천막이 열리고 군용 강화 전투복을 입은 군인과 양복을 입은 장년인이 들어왔다.

군용 강화 전투복 견장에서 빛나는 별!

별을 보고 깜짝 놀란 이인임 대위가 다급히 경례하고.

이사장은 양복을 입은 남자를 알아보고 희색이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박 의원님!"

박 의원은 이사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군용 강화 전투복을 입은 장군에게 이사장을 소개했다.

"박찬석 준장님. 이쪽 분이 균열 침식이 시작된 저 대일 고등학교, 대일 재단의 이사장이십니다. 이사장님께서는 헌터 부대의 균열 코어 회수 작전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

박찬석 준장은 아무 대답 없이 천막 안을 쓱 훑어봤다.

그리고 성큼성큼 이사장에게 걸어갔다.

병사들과 부사관, 장교들이 바짝 긴장해 부동자세를 취하고 일제히 경례했다.

"충성!"

천막 안에 퍼져 나가는 경례 소리.

박찬석 준장은 부동자세로 경례하는 이인임 대위를 지나쳤다.

"장군님. 제가···."

그리고 희색을 띤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이사장에게도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갔다.

박찬석 준장은 직선으로 막사를 가로질러 하얗게 센 머리카락, 작은 몸의 여자 앞에 섰다.

"..."

박찬석 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동안 자기 가슴에도 오지 않을 작은 키의 이세영 교장을 내려다봤다.

"넌 뭐야? 비켜봐! 내가 저 새끼 좀 때려줘야겠다!"

이세영 교장이 외치는 순간.

박찬석 준장은 다리를 붙이고 몸을 쭉 펴 부동자세를 취한 채 손을 들어 올려 경례했다.

"충성!"

순간 천막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하고,

냉기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침묵이 흘렀다.

침묵 속 박찬석 준장의 외침이 이어졌다.

"이세영 특임 소장님!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이사장을 쥐어박으러 달려가려던 이세영 교장이 멈췄다.

멈춰선 이세영 교장은 예리한 눈으로 자신 앞에 선 장군을 유심히 살폈다.

다음 순간 이세영 교장의 눈이 커지고, 기쁨을 담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너! 찬호구나! 그래 기억나! 그 얼굴! 그 눈! 그 목소리! 내가 분명히 기억해! 낙동강 전선 3차 역습 때. 통신선 들고, 내 뒤를 따라 뛰던 찬호 너구나! 수류탄을 기가 막히게 던졌던! 찬호! ..."

"..."

부동자세로 경례하던 박찬석 준장은 생각했다.

이세영 특임 소장님···.

방금 박 의원이 박찬석이라고 말했는데, 찬호라니요···.

그리고 통신선 들고 뛴 찬호는 누군가요···?

3차 역습 때 통신선 들고 뛴 건 호석인데···.

수류탄을 잘 던졌다고요···?

호석이는 중대 최악의 기름 손이었는데···.

...

박찬석 준장은 예전 모습 그대로 헛다리를 짚고 있는 옛 상관을 보며 웃음을 삼켰다.

저 말도 안 되게 잘 빗나가는 직감 덕분에 자신과 동료들은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평소 거의 100% 빗나가는 저 직감은 전투 상황에서는 반전된다.

예지와 다름없이 맞아떨어지는 직감!

박사과정을 밟다가 입대한 호석이는 신의 주사위를 속이는 전투 예지라고 이름 붙였었다.

박찬석 준장은 헌터위 소속 박 의원과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낙동강 전선에서 12차례의 역습을 성공시켰고.

재앙급 마수마저 잡아내 수천 명의 부하와 수많은 사람을 구해낸 옛 상관을 다시 보게 됐다.

박찬석 준장은 옛 상관의 모습을 눈에 새겨넣듯 살폈다.

평범한 선생님으로 시작해 특임 소장 계급까지 올라갔던 옛 상관, 이세영 특임 소장님.

이세영 특임 소장님은 군대에서의 눈부신 미래를 던져버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군복을 벗고 학교로 돌아간 이세영 선생님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변했다.

신체 노화마저 역행하는 최고 등급 각성자.

처음 1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관의 실제 나이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러나 힘을 과도하게 사용한 부작용으로 예전의 모습은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시간을 거스른듯한 눈부신 젊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자리한 얼굴.

이세영 특임 소장님은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이 아닌 평범하게 나이든 선생님 같았다.

아마 각성자의 힘도 많이 남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제자를 구하러 다시 한번 균열 침식지대로 들어가려 한다.

부하를 구하겠다고 힘과 수명을 깎아가며 몇 번이고 격전지로 다시 뛰어가던 그때와 똑같이 말이다.

옛 상관을 다시 보는 지금 이 순간.

박찬석 준장은 처음 낙동강 전선에 배속됐던 이등병, 햇병아리 신병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소장님이 달리시면,

우리는 뒤를 따른다!

박찬석 준장은 여전히 부동자세 중인 이인임 대위를 불렀다.

"대위!"

"대위 이인임!"

"선생님께 드릴 소총수용 장비와 내가 쓸 화력 지원 장비를 같이 준비하게! 당장!"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이인임 대위가 다급히 움직일 때,

박찬석 준장은 이세영 특임 소장, 옛 상관에게 예전처럼 말했다.

"소장님. 제가 뒤를 지키겠습니다!"

이세영 교장은 환해진 얼굴로 눈앞에 서 있는 옛 부하의 등을 팡, 팡- 두들기며 외쳤다.

"찬호! 역시! 넌 의리가 있어! 훌륭해! 역시! 내 부하야!"

"..."

---

천막 천이 살짝 열리고, 일병 한 명이 천막 안을 조심스레 살폈다.

중앙의 별, 부동자세로 서 있는 박찬석 준장을 중심으로 얼어붙어 있는 사람들.

민간인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박찬석 준장의 등을 팡, 팡 두들기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내 훌륭한 제자가 스스로 미끼가 되어 남은 거야! 대단하지 않냐? 걔가 학생 때부터···."

...

일병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부동자세로 굳어있는 선임병에게 귓속말했다.

"지금 산 입구에서 연락이 왔는데···."

"균열이랑 연관된 거야? 긴급한 거야?"

목소리를 한껏 낮춰 질문하는 선임병.

"긴급 사항은 아니고, 김 상병이 민간 헌터를 한 명 발견했다고···. 대위님께 보고 후 귀가 조치···."

"좀 기다리라고 전해."

선임병은 후임의 말을 끊었다.

보고를 받아야 할 이인임 대위가 부동자세로 장군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장군도 부동자세로 서서 교장 선생님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장군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곳.

저곳에 가서 민간 헌터의 귀가 조치 보고를 할 엄두가 안 났다.

이때, 각성자용 군용 장비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소총수용 장비와 화력 지원 장비 도착했습니다!"

이인임 대위가 군용 장비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제자 자랑을 하던 이세영 교장은 재빨리 강화 전투복과 장비를 착용하며 이사장을 노려봤다.

검지로 이사장을 가리키더니,

세운 엄지로 목을 긋는 제스쳐를 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이사장. 너 갔다 와서 보자."

이사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박 의원을 찾았다.

그러나 시류 변화에 민감한 국회의원은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이미 사라진 상태.

이사장이 뒷걸음치기 시작하자,

박찬석 준장의 명령이 들려왔다.

"거기 대일 학원 이사장님. 내가 돌아올 때까지 편안하게 모시고 있도록. 중요 참고인이시다."

"알겠습니다!"

명령 즉시 병사 두 명이 이사장의 옆을 지켰다.

"이사장님. 잠시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 주시죠."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딱딱한 말투.

"..."

이사장은 힘이 빠진 듯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듯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였다.

끝장이다!

이제 방법이 없었다.

학교 곳곳에 등급보다 낮은 안전 장비를 설치했다.

안전 관련 비위행위는 가중 처벌 대상!

이게 드러나면 아무리 변호사를 잘 써도 최하 3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그래서 인맥을 이용해 증거인 학교 자체를 날려 버리려 했다.

마침 학교에는 침식을 시작한 균열이 있었고,

균열 코어를 원하는 군 지휘부와 자신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학교를 날려 버리고 균열 코어 지분과 국가 보상금, 보험금을 받는다면 오히려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부른 박 의원이 데려온 장군이 오히려 자신의 목을 겨눈 칼이 됐다.

이사장은 교장과 함께 장비를 착용하고 학교로 출발하려는 장군을 봤다.

박 의원이 데려온 박찬석 준장.

하필 저 장군이 이세영 교장과 친분이 있었다니···.

박찬석 준장이 이세영 교장과 같이 학교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이사장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이때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구우우웅-

천막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진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진동은 산 아래,

균열의 빛이 솟구치는 대일 고등학교에서 오고 있었다.

---

구우우우웅-

거대한 짐승이 고통에 울부짖는듯한 진동!

이 엄청난 진동에 천막이 파르르 떨리고,

테이블 위의 물건들이 우르르 땅으로 떨어졌다.

압도적인 힘!

진동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힘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떠는 각성자들!

"이게 무슨···!"

경악한 각성 헌터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균열에 시선을 줄 때, 균열의 푸른빛이 맥동을 시작했다.

쿵, 쿵, 쿵-

심장 뛰는듯한 맥동을 따라 퍼져 나가는 엄청난 힘의 파동!

박찬석 준장은 경악한 눈으로 이세영 교장을 봤다.

"소장님? 저거 설마 균열이···!"

이세영 교장은 바로 달리며 외쳤다.

"찬석아! 바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이인임 대위! 대응 태세를 최고단계로 올린다! 지금 상황, 바로 지휘부에 보고하도록!"

박찬석 준장이 재빨리 명령하고 이세영 교장의 뒤를 따라 달릴 때.

구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이 다시 한번 울리고,

맥동하던 균열의 푸른 빛이 폭발했다.

폭발한 균열의 빛이 섬광이 되어 밤하늘을 꿰뚫고,

이 섬광에서 동심원을 그리는 빛의 파동이 생겨나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궁, 궁, 궁-

빛의 파동이 닿는 순간, 두껍게 쌓인 눈이 폭발해 하늘로 흩날리고,

학교 건물과 주위의 주택, 산의 나무들이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흔들렸다.

이인임 대위는 경악했다.

설마! 균열 폭주?!

서울에 마경이 생겨나는 건가!?

모두가 몸을 덜덜 떨면서 다가오는 빛의 동심원을 봤다.

우으으으-

우으으으으-

...

이때 하늘을 떨어 울리는 엄청난 하울링이 들려왔다.

너무나 거대해 살아있는 짐승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

엄청난 하울링이 들려오는 순간.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던 균열의 푸른빛이 멈추고.

지진이 난 것처럼 대지를 뒤흔들던 진동도 그쳤다.

"...어?"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한 사람들.

그러나 이세영 교장과 박찬석 준장.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은 경악했다.

막사에서 뛰쳐나가던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학교를 바라봤다.

균열의 빛.

하늘로 솟아난 빛의 기둥과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던 균열의 빛은 멈춰 있었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얼어붙어 있었다.

빛이 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세영 교장은 이미 저런 현상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저건 빛을 얼린 게 아니라,

빛의 근원인 마력 자체를 동결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이 일어나기 직전에 들려온 거대한 하울링.

이세영 교장은 직감했다.

마력조차 동결시키는 몬스터!

까마득하게 높은 등급,

어쩌면 재앙 등급일지도 모르는 몬스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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