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4화 (25/1,336)

# 25

비정규직 천마 - #024

────────────────

#024

굳게 잠긴 지하 통로 출구.

이곳에서 무언가 단단한 것을 두들겨 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깡, 깡, 깡-

손전등 빛이 비춰진 벽으로 떨어지는 강화 해머!

까앙-

천문석이 강화 해머로 문 가장자리 틀 부위를 깨고 있었다.

여닫이문이라면 경첩 부위를 박살 냈을 텐데 이건 미닫이문이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혹시나 문틀 부위를 깨면 문을 통째로 들어낼 수 있나 확인하고 있었으나···.

겉면의 콘크리트를 좀 깨면 어김없이 촘촘히 박힌 철근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이곳 벽은 두꺼운 강화 콘크리트에 철근을 몇 겹으로 넣어 만든 것 같았다.

"...이런 미친놈들. 적당히 좀 만들지."

천문석은 결국 포기했다.

문틀 깨다가 해가 뜨게 생겼다.

천문석은 강화 해머를 전술 벨트에 걸면서 자신에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지하 통로를 나가 담을 넘어 학교로 들어가는 것.

그러나 이제 와 밖으로 나가 눈밭을 뚫는 건 말도 안 된다.

침식 현상으로 쏟아지던 눈은 더 강해졌을 테고,

냉기 포자 말고 어떤 몬스터가 더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천문석의 시선이 손에 들린 강화 해머와 도어락의 번호키를 오갔다.

영화를 보면 저 번호키를 쇼트 시키면 문이 열리고 그러던데···.

강화 해머로 아주 세게 때려도 비슷한 효과가 나지 않을까?

천문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강화 해머를 든 손에 힘을 줬다.

어차피 잠긴 문.

가만히 있느니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천문석은 해머를 어깨에 걸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힘을 모아 단숨에 내려치는 순간.

띡, 띡, 띡, 띡-

띠리잉-

스르륵-

문이 대뜸 열리고 해머가 떨어지는 경로로 누군가 튀어나왔다!

천문석은 깜짝 놀라서 해머 방향을 틀었다.

콰아앙-

간신히 방향을 튼 해머가 벽을 깨뜨리며 박혔다.

으아, 으아아-

벽에 박힌 강화 해머 아래,

우수수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뒤집어쓴 채 주저앉은 사람이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 아줌마.

전에 몇 번 본 것처럼 낯익은 얼굴···.

천문석은 곧 이 사람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사장이잖아!

하얗게 질린 얼굴의 이사장이 해머 아래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었다.

천문석은 순간 뜨끔했다.

몰래 지하 통로로 들어왔는데,

지하 통로 주인인 이사장을 만나다니!

게다가 번호키를 부수려다가 이사장을 작살낼 뻔했다!

천문석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저, 급해서···."

캬아아악-

그러나 이사장은 엄청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통로 안으로 달려갔다.

"...이건 또 뭐야."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재빨리 움직여 열린 문 안으로 냉큼 들어갔다.

잠긴 문을 이사장이 직접 열어주다니!

운이 좋았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문을 닫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발을 넣었다.

스르륵, 탁-

이 문을 열려고 그 고생을 하고도 문을 다시 닫으려 했다니!

주입식 교육에 세뇌된 몸이 자동으로 움직여 큰일을 낼뻔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들고 있던 구급상자를 문틈에 놓아 문이 닫히는 걸 막았다.

그리고 구급상자 안에서 다목적 패치, 진통제를 꺼내 전술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이미 전술 조끼 안에 구급약이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때 구급상자 옆에 손바닥만 한 납작한 금속 상자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보는 순간, 이사장이 떨어트린 상자라는 감이 왔다.

잠시 그냥 놔두고 갈까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상자가 없어지거나 하면, 이사장이 자신을 의심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떨어진 금속 상자를 주워 전술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돌려주면 되겠지.'

천문석은 몸을 돌려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학교에 들어왔다.

이제 세연이를 찾아서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보통이라면 학교에서 세연을 찾는 게 문제겠지만···.

이 학교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다.

세연이 어디 있을지는 짐작이 갔다.

교무실.

학교 안의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 보안 전화기가 있는 교무실에 모여있을 거다.

어려운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세연이를 찾아서 집으로 가면 된다.

천문석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계단을 모두 올라, 활짝 열린 문을 지나서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이 순간.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온 눈이 전신에 쏟아졌다.

"..."

눈을 가득 실은 바람은 천문석 주위를 한번 휘돌더니 활짝 열린 문을 지나 계단을 타고 지하 통로로 불어갔다.

천문석은 바람에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주위를 봤다.

어이없게도 봉쇄된 학교 안에 눈발이 거세게 날리고 있었다.

---

"이건 또 뭐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무의식중에 말한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봉쇄된 학교가 뚫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기도 잠시.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목적지는 교무실!

바로 헬멧에 달린 야시경을 켜고 손전등 불을 끈 채 계단을 달린다.

익숙한 계단을 지나 1층에 도착,

교무실로 달리는 길.

휘이잉-

후두둑-

1층 복도, 박살 난 창문에서 차가운 바람과 거센 눈발이 쏟아진다.

그리고 뚫린 창으로 스며들어오는 푸른 물결 같은 빛!

균열의 푸른 빛이 스며드는 학교 안에는 이미 눈이 쌓이고 있었다.

침식 현상이 건물 안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중요 거점인 학교가 이렇게 빨리 뚫릴 리가 없는데?!’

답답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말해보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세 도착한 교무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숙이고 교무실 문을 살짝 열었다.

푸른 빛으로 밝혀진 교무실 안.

운동장 방향으로 난 창 여러 개가 박살 났다.

뻥 뚫린 창에서 차가운 눈과 바람이 쏟아져 들어오고,

물결치듯 스며드는 푸른 빛으로 교무실 안 이 훤히 보였다.

사방으로 나뒹구는 책상과 의자, 널브러진 담요와 책.

누군가 다급히 도망친 듯 교무실 안은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교무실 중앙에 놓인 전기난로.

이 전기난로에 푸르스름한 불꽃 몇 개가 붙어있었다.

냉기 포자!

열을 먹는 냉기 포자가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천문석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교무실 안을 다시 살폈다.

다행히 교무실 안, 보이는 곳에 쓰러진 학생은 없었다.

천문석은 뒤로 조용히 물러나 비상 도구함을 열었다.

순간접착제, 쇠사슬 절단기, 플라스틱 테이프.

전동 드라이버, 몽키 스패너, 손전등, 담요, 핫팩, 발광 신호탄, 라이터, 기름.

...

천문석은 핫팩과 발광 신호탄, 고체연료와 라이터 같은 열을 내는 건 모조리 빼내서 전술 조끼에 담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교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담실 내부, 책상 아래, 캐비닛 안을 확인해야 했다.

별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 혹시나 류세연이 이 안에 고립되거나 쓰러져 있을 수도 있었다.

천문석이 불길한 생각을 삼키며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천문석은 움직이던 몸을 멈춘 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잘못 들었나 생각할 때.

꺄아아아-

비명이 들려오고.

전기난로에 붙어있던 냉기 포자가 바람을 탄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올랐다.

이 순간 천문석은 전술 조끼에서 꺼낸 발광 신호탄을 당겨 교무실 안으로 던졌다.

파스스스-

맹렬하게 불꽃을 쏟으며 빛을 뿜어내는 발광 신호탄!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냉기 포자가 발광 신호탄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사이 천문석은 교무실 문을 닫고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비명을 듣는 순간,

학생들이 교무실에서 빠져나갔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학생들이 어디 있을지도 짐작됐다.

봉쇄 중인 학교가 뚫렸다.

빠져나갈 곳은 1층 창문 아니면 옥상.

자신이 나온 지하 통로도 있으나,

그곳으로 나간 건 이사장 한 명뿐이다.

1층 창문 밖은 눈보라로 앞이 거의 보이지 않고 냉기 포자가 흩날리는 상황.

지금 이곳으로 나갔다가는 눈보라 속에 헤매다가 냉기 포자에 열을 뺏기고 동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갔을 곳은···.

탈출로가 있는 옥상이다!

천문석은 옥상을 향해 계단을 뛰어오르며,

전술 조끼에서 발광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고가의 각성 헌터용 무기를 빌려왔는데,

막상 나온 몬스터는 이런 무기가 통하지 않는 냉기 포자다.

결국, 지금 천문석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비상 도구상자에서 꺼낸 발광 신호탄이다.

이때 다시 한번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

그리고 보였다.

"만지면 안 돼!"

"패딩! 패딩을 벗어서 날려 봐!"

"쓰레기통! 그 쓰레기통으로 덮어!"

...

5층 계단 앞 복도.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냉기 포자.

냉기 포자를 피해 바닥을 구르는 여학생.

패딩 점퍼를 벗어 냉기 포자를 날려 보내려는 남학생.

금속 쓰레기통을 든 채, 덜덜 떨면서 안절부절못하는 여학생.

천문석은 바로 난장판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건드리지 마! 뒤로! 빠져!"

외침과 동시에 천문석은 바로 발광 신호탄을 당겼다.

파스스스스-

발광 신호탄에서 불꽃이 우수수 쏟아졌다.

순간, 바닥을 구르는 여학생에 다가가던 냉기 포자의 방향이 바뀌었다.

냉기 포자는 불꽃을 쏟아내는 발광 신호탄으로 움직였다.

천문석은 달리면서 신호탄을 벽으로 던지고, 바닥을 미끄러져 여학생을 낚아챘다.

캬아아악-

패닉에 빠진 듯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치는 여학생.

천문석은 발버둥 치는 여학생을 거칠게 일으켜, 패딩을 든 채 넋이 나간 남학생에게 밀어 보냈다.

앗-

깜짝 놀란 학생이 밀쳐진 여학생을 잡는 순간.

천문석은 한 학생이 들고 있는 금속 쓰레기통을 빼앗아 불꽃을 뿌리는 신호탄과 냉기 포자를 동시에 덮었다.

파스스스-

냉기 포자와 신호탄이 금속 쓰레기통에 같이 들어갔다.

이제 신호탄에서 열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안전했다.

"어, 어어···."

천문석은 넋이 나간 채 자신을 보는 학생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상태가 가장 좋아 보이는 한 명에게 다가가서 바로 질문했다.

"너 류세연 아냐? 이 학교 3학년. 좀 이상한 여학생. 게으른데 성적이 좋고, 운동도 좀 하고. 요리는 못하고, 러브 시그널이라고 연애 예능 광팬인데..."

이때 계단 위에서 작은 생수병이 날아왔다.

휘익-

잽싸게 날아오는 생수병을 피하자,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오빠!"

외침과 동시에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와 달려오는 녹색 추리닝.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류세연!

"세연아! 무사했구나!"

천문석이 반가움에 외치는 순간.

"애들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순식간에 달려온 류세연은 분노로 가득 찬 고함과 함께 날카로운 로우킥을 갈겼다.

파앙, 딱-

으아아악-

“...”

천문석은 황당함에 말을 잊었다.

바닥에 쓰러진 류세연.

강화 패드를 향해 로우킥을 갈긴 세연은 다리를 붙잡은 채 쓰러져 고통스러워했다.

"...너 지금 뭐 하냐?"

천문석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세연을 봤다.

헌터용 전투복에 방검복, 강화 패드까지 착용한 사람에게 로우킥을 갈기다니···.

이럴 때면 얘가 진짜 천재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으윽! 내 다리! 뭐야! 오빠! 뭐 입은 거야?!"

"오빠가 아니라. 삼촌!"

천문석은 세연의 말을 정정하고, 멍한 표정의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이게 다야? 친구들 더 없어? 선생님은?"

이때 위쪽 계단에서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터 부대에서! 마침내 왔군요!"

"네···?"

문득 고개를 드니,

익숙한 얼굴의 선생님이 있었다.

"이세영, 역사 선생님?"

천문석이 말하는 순간.

전 역사 선생, 현 교장 이세영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너! 이인임이구나! 그 강화 전투복! 요즘 군용 강화 전투복이 많이 바뀌었네···? 그래도 그 눈! 그 목소리! 내가 전부 기억해! 너 선생님이랑 후배들을 구하러 온 거구나! 군대에서 잘나간다더니! 역시! 역시 훌륭한 내 제자야! 내가 제자는 잘 가르쳤다니까!"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

선생님 이인임이라니, 그 사람은 누군가요···.

야시경을 썼는데 어떻게 제 눈을 보신 건가요···.

게다가 두 마디 만에 제 목소리를 알아들으셨다니···.

이세영 선생님이 쏟아내는 끝없는 헛다리를 들으니 기억난다.

예전 이세영 선생님의 직감은 맞지 않았다.

뭐든 짐작만 하면 틀리고,

로또 번호 2개 이상을 맞춘 적도 없었다.

사다리를 타면 항상 꼴등이고,

학생들의 거짓말에는 언제나 속으셨다.

여전히 이세영 선생님의 직감은 맞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