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비정규직 천마 - #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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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천문석은 창고 안을 살폈다.
예전에 텅 비었던 창고는 오래된 자전거, 먼지가 내려앉은 책상과 의자 같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자물쇠도 잠기지 않은 이 창고는 별 가치 없는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곳 같았다.
천문석은 기억을 떠올려 창고 안을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창고 가장자리,
예전 지하 통로가 있던 위치에는 찌그러진 캐비닛이 있었다.
묵직한 캐비닛을 옆으로 밀자, 통로가 있던 곳에 벽이 생겨 있었다.
천문석은 강화 해머로 벽을 두들겼다.
턱, 턱-
빈 공간이 없는 시멘트벽을 두들기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손에 돌아오는 반향이 달랐다.
잠시 생각하던 천문석은 벽에 손을 올리고 옆으로 밀었다.
스르륵-
벽으로 위장한 육중한 콘크리트 미닫이문이 살짝 안으로 들어가며 옆으로 밀려나 통로가 나타났다.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입구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허술하게 관리되는 창고 안, 찌그러진 캐비닛 뒤 벽을 밀어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리라.
이 지하 통로 입구는 몇 겹의 심리 트랩으로 가려져 있었다.
천문석은 지하 통로 안으로 들어간 후 캐비닛을 다시 당겨 입구를 가리고, 미닫이문을 닫았다.
스르륵-
무의식중에 문을 닫고 있자니,
문득 학생일 때, 역사 선생님의 수업이 떠오른다.
항상! 꼭! 문을 닫고 다녀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선생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문 잘 닫는 습관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어! 등 뒤에 고블린, 슬라임, 들개가 따라붙었는데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문을 안 닫으면! 어떻게 되겠니?"
"...선생님 지루해요! 전투 이야기해주세요!"
역사 선생님은 야유하는 학생들에게 말했었다.
"이게 전투보다 더 중요해! 문을 제대로 안 닫았다가! 열린 문으로 들어온 몬스터한테 죽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야! 자 모두 따라 해봐!"
"..."
"문은 꼭! 닫고 다니자!"
"두 번 확인하자."
역사 선생님은 머리에 새겨넣으려는 듯 학생들에게 몇 번이나 문을 닫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
"문은 꼭. 닫고 다니자. 두 번 확인하자."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예전처럼 말하고,
웃음을 삼키며 닫힌 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손전등을 켰다.
손전등 불빛이 지하 통로 안쪽으로 쭉 뻗어 나갔다.
직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지하 통로는 너비 2미터, 높이 3미터정도로 넓었다.
천문석은 야시경을 끄고, 손전등 불빛을 보면서 앞으로 걸었다.
학교로 가고 있어서인가?
학창 시절 일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역사 선생님은 역사보다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전달에 열중하셨다.
한번은 각종 신고 방법 수업을 한 적도 있었다.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부터.
아르바이트비를 떼였을 때,
누군가 자꾸 에어컨을 끌 때까지.
잡다한 사건 사고를 어떻게 공권력을 이용해 해결하는지 가르치고 시험에도 냈었다.
그때도 특이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을 한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특이하신 분이었다.
한번은···.
툭-
이때 군화 아래 바닥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멈춰선 천문석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곳에 손전등을 비췄다.
"얼음?"
어이없게도 지하 통로 바닥에서 두툼한 얼음이 올라와 있었다.
바로 천장에 손전등을 비췄다.
그러나 3미터 높이의 천장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천문석은 지금 있는 곳 위에 뭐가 있나 생각했다.
"...!"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위는 학교 운동장이다.
균열의 푸른빛이 비치는 학교의 경계!
순간 느껴지는 불길함!
지금 이곳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문석은 불길함을 느끼는 순간 바로 움직였다.
당장 여기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빠르게 세연이를 데리고 이곳에서 도망치는 거다.
그러면 더는 이곳에 올 일도 없고,
균열을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천문석은 손전등을 앞으로 고정한 채 빠르게 걸었다.
한참을 걷자 문이 보였다.
천문석은 재빨리 문으로 다가갔다.
공영주차장에서 지하 통로로 걸어온 지 한참.
거리상 이 위는 학교 건물이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학교 건물 내부일 거다.
천문석은 입구에서처럼 문을 옆으로 밀었다.
"...어?"
그러나 미동도 하지 않는 문.
손전등으로 문을 비추자 그제야 보였다.
오른쪽 가장자리, 번호키가 달려 있었다.
입구에도 없던 번호키가 출구에 있다니!
문득 든 생각에 재빨리 '0119#'을 눌러보지만.
삐삐삐익-
문은 열리지 않았다.
"..."
천문석은 어이가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 번호키를 누르게 달아놓는단 말인가!?
"시바···. 이거···. 해머로 깨면 열릴까···?"
지하 통로의 천문석이 잠긴 문에 난감해할 때,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에 번호키를 달아놓은 이사장은 교무실에 있었다.
---
시작은 한 학생의 말이었다.
"교장 선생님. 이거 좀 신기한데요?"
"응? 뭐라고 했니?"
의아한 얼굴의 이세영 교장이 돌아보자,
한 학생이 교무실 유리창에 물을 떨어뜨렸다.
"이거 보세요! 바로 얼어요!"
똑, 똑, 똑-
유리창에 떨어진 물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나뭇가지처럼 쑥쑥 자라났다.
이세영 교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떨어져! 뒤로···."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 류세연이 창에 물을 떨어뜨리던 학생을 낚아챘다.
컥-
학생이 땅바닥을 구르고,
떨어진 물병이 하늘을 나는 순간.
그르륵-
얼음 가지가 폭발적으로 자라나 공중의 물병을 꿰뚫었다.
순간, 꿰뚫린 물병에서 쏟아진 물이 얼음 가지를 타고 유리창으로 흘렀다.
하앗-
기합이 터지고 류세연의 죽도가 얼음 가지를 내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죽도는 얼음 가지에 닿는순간,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피해!"
이세영 교장이 탁자를 집어 들며 외쳤고,
죽도를 놓은 류세연은 학생의 뒷덜미를 잡고 재빨리 뒤로 빠졌다.
콰아앙-
이때 유리창이 깨지고,
얼음 가지를 타고 흐른 물이 강철 덧창에 쏟아졌다.
기이이익-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물이 쏟아진 강철 덧창 전체에 순식간에 성애가 내려앉아 얼어붙었다.
끼이이익-
강철이 뒤틀리는 소리에 이세영 교장은 경악했다.
학교에 시공되는 높은 등급의 강철 덧창에는 마력 회로가 들어가 있다.
열 자체를 먹는 냉기 포자가 직접 닿았다고 해도, 이렇게 순식간에 뚫리지는 않는다!
아니, 애초에 마력 회로가 들어간 높은 등급의 강철 덧창 뒤에 있는 유리창에서 얼음이 자라난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이유를 아는 게 아니었다.
이세영 교장은 탁자를 들고 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애들아! 밖으로! 교무실에서 나가! 옥상으로 달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학생들 대부분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교장 선생님이 고함에 의아해하는 학생들의 시선이 창문을 향해 모인 순간,
얼어붙던 강철 덧창이 산산조각이나 떨어졌다.
콰아앙-
휘이이잉-
뻥 뚫린 창으로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하얀 눈보라와 함께 쏟아져 들어왔다.
"세연아! 애들 데리고 옥상으로 달려!"
이세영 교장은 눈발이 쏟아지는 창문을 탁자로 막으며 외쳤다.
으악-
캬아악-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학생들이 비명을 지를 때, 류세연은 바로 움직였다.
엄청난 냉기!
그대로 나가면 끝장이다.
교무실 캐비닛을 열고 안에 걸린 두툼한 방한 점퍼를 비명 지르는 학생들에게 던졌다.
교사용으로 비축된 훈련용 방한 점퍼다
"정신 차리고! 그거 받아!"
“눈! 눈이 쏟아져!”
"으악! 창이 뚫렸어!"
“꺄아아악.”
...
그러나 패닉에 빠진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연은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 가장 크게 소리 지르는 학생,
총을 달라고 주장하던 혁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멱살을 잡고 그대로 이마로 받았다.
끄어억-
끔찍한 비명이 터지고, 주위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때 세연이 빠르게 지시했다.
"그거! 점퍼 하나씩 챙기고! 바로 옥상 계단으로 뛰어가! 문 열고 나가지는 말고 옥상 문 앞에서 기다려! 혼자 나가면 끝장이야."
세연은 교무실 문을 발로 열고 멱살을 잡은 혁재를 문밖으로 던지려 했다.
으아아악-
그러나 비명을 지르며 먼저 도망치는 사람이 있었다.
이사장이었다.
"뭐야···?"
어이없어하기도 잠시.
교무실의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고 방한 점퍼를 하나씩 든 채 교무실에서 도망쳤다.
이제 교무실에 남은 건 탁자를 들어 창문을 막고 있는 이세영 교장과 류세연뿐.
"세연아! 빨리 옥상으로 도망가!"
세연은 대답 없이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난장판이 된 교무실.
이 안에 흐트러진 물건들을 쓱 둘러 보자,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류세연은 바로 널브러진 담요를 몇 개 챙기고,
20리터 대형 생수통을 뽑아내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바로 교장 선생님이 탁자로 막고 있는 창으로 달렸다.
"세연아! 위로! 애들 따라서 위로 도망쳐! 구조팀 옥상으로 올 거야! 거기서 버텨!"
"선생님. 손 떼고 이 담요로 누르세요."
세연은 맨손으로 탁자를 누르고 있는 교장 선생님 손에 담요를 떨어뜨리고, 창문 턱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깨진 창과 탁자 틈에 담요를 쑤셔 넣어 막기 시작했다.
"그걸로 소용없어. 냉기와 바람이 너무 강해! 어서···."
이세영 교장이 다시 한번 도망치라고 말하려 할 때,
세연은 틀어막은 담요에 대형 생수통을 기울여 물을 부었다.
"어···?"
허술하게 틈을 막았던 담요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굳었다.
담요 사이사이 틈으로 물이 흐르다 굳어 고정되고,
창문을 막던 탁자는 얼어붙은 담요 틀에 고정됐다.
"선생님. 손 떼세요. 창 전체를 얼릴 거에요."
"..."
이세영 교장이 손을 떼자,
세연은 담요로 탁자 전체를 덮고 물을 뿌렸다.
잠시 후 깨진 창은 얼어붙은 담요로 완전히 막혔다.
"..."
새어 들어오던 바람과 흩날리던 눈발이 멈춘 교무실 안.
이세영 교장은 순식간에 창을 막은 세연을 새삼스럽게 봤다.
평범한 학생이라기에는 너무나 침착한 모습.
게다가 생각도 못 한 방법으로 뚫린 창을 막았다.
이세영 교장은 문득 든 생각에 류세연에게 물었다.
"너 혹시 각성자니?"
세연은 두툼한 방한 점퍼를 입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려서부터 아는 삼촌···. 아니 오빠한테 이것저것 배워서 그래요. 그보다 빨리 가죠. 선생님. 여기 오래 못 버텨요."
세연은 교무실의 다른 창을 가리켰다.
뚫린 창 옆, 몇 개의 창에 하얀 성애가 올라오고 있었다.
교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침식 현상, 눈과 냉기에 다른 창도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세연의 말대로 저 창들은 머지않아 뚫릴 것이다.
그리고 교무실을 시작으로 점점 많은 창이 깨져나갈 것이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래. 바로 가자."
이세영 교장은 세연이 건네주는 방한 점퍼를 받아 재빨리 입었다.
그리고 보안회선 전화기로 지금 상황을 전하고 교무실 밖으로 나가려다 멈췄다.
"..."
이세영 교장은 문득 든 생각에 교무실 바닥을 봤다.
얼음에 깨진 강철 덧창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이세영 교장은 흩어진 강철 덧창 조각을 주워 단면을 살폈다.
순간 섬뜩한 이갈리는 소리가 교장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사장. 이 새끼가."
파괴된 단면을 보니 이제야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안에서 물을 부었다고 깨져나간 유리창과 강철 덧창.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학교 같은 중요 시설에는 마력 회로가 들어있는 높은 등급의 강철 덧창이 설치된다.
그런데 이 깨진 단면에는 마력 회로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학교 같은 중요 거점 시설에 설치해서는 안 되는 저급품을 설치한 거다.
처음부터 저급품을 쓴 건지, 아니면 중간에 교체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다.'
문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주도한 이사장의 성격이라면 분명 정상제품과 저급품을 같이 시공했을 거다.
평소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기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오늘 보여준 이사장의 이상한 행동들이 맞물리면서 한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사장이 강철 덧창만 저급품으로 바꿨을 리 없다.
이것도 큰돈이지만, 더 큰 이권은 따로 있었다.
정제 마석.
강철 덧창과 강화 철문에 설치된 마력 회로를 돌리기 위해 학교에 공급되는 정제 마석!
비교적 구하기 쉬운 마석과 달리 마석을 정제해 만드는 정제 마석은 귀했다.
마력 회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제 마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제 마석은 과거의 전시 비축유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세계 모든 나라가 정제 마석을 엄격히 관리한다.
이사장이 이 정제 마석을 빼돌렸다면?
의심하는 순간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때 류세연이 생각에 잠긴 교장의 손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빨리!"
이세영 교장은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세연아 잠시만!”
이세영 교장은 교무실 안쪽으로 달려가 발광 신호탄을 닥치는 대로 챙겼다.
그리고 세연과 함께 옥상 계단을 향해 달렸다.
이세영 교장은 달리며 다짐했다.
어떻게든 이사장을 작살 내겠다고.
그러나 이사장을 응징하는 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은 학생들을 안전하게 학교에서 탈출시키는 게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