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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천마 -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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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늑대 몬스터를 처리한 후에는 더는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없었다.
천문석은 제대로 정비된 큰길로 달리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 정상에 도착한 천문석은 말을 잊은 듯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
하늘에서 하얀 솜털 같은 눈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7월인데···.
한여름인데···.
눈이 내리고 있다!
천천히 떨어지는 하얀 눈.
천문석은 문득 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을 잡았다.
눈과 닿는 순간 느껴지는 냉기!
그러나 손을 펴보면, 눈의 흔적은 없다.
천문석의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도 땅에 쌓이는 눈도, 눈이 녹은 물기도 전혀 없었다.
이 선명한 냉기가 느껴지는 눈은 무언가에 닿는 순간 냉기만 남기고 허상처럼 사라졌다.
이런 이상한 눈이 내릴 이유는 하나뿐이다.
천문석의 시선이 산 아래 보이는 고등학교로 향했다.
류세연이 있는 대일 고등학교 운동장,
물결치듯 푸른빛을 뿌리는 균열이 보였다.
푸른 균열 주위에 눈이 쏟아지고,
학교 운동장 곳곳 푸른빛이 닿는 곳에는 눈이 쌓이고 있었다.
"..."
감이 왔다.
푸른 균열, 저게 눈이 내리는 이유였다.
균열이 일으키는 이런 이상 현상에 대해선 이미 몇 번이나 배우고 들었다.
침식.
이세계의 틈, 균열이 현실 공간을 이세계와 같은 환경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이 균열 침식 현상이 완전히 진행되면, 저곳 균열의 영향권은 몬스터 순환 생태계가 된다.
게이트 너머 이세계가 아닌 지구에서도 끝없이 몬스터가 태어나는 '마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침식이 끝나고 완전한 마경이 만들어지는 데는 짧아도 한 달은 걸린다.
그러나 운동장 균열 뒤 세연이 있을 학교 건물에도 눈이 내리고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균열의 침식 현상으로 이세계와 같은 환경으로 변해가는 학교.
저곳에서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아니 침식 현상으로 공간 자체에 이상 현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학교는 긴급 봉쇄 중이지만,
안전 규격을 넘어서는 몬스터가 나오거나 공간 왜곡 현상이라도 발생하면 끝장이다!
최대한 빨리 학교에서 세연을 빼내 도망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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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석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책로를 직선으로 가로질렀다.
난간과 녹색 철조망을 넘고, 나무와 비탈을 지나 미끄러지듯 빠르게 산에서 내려간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학교에 가까워졌고,
학교에 가까이 갈수록 분명히 느낄수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기온!
이미 주위는 7월 여름 기온이 아니었다.
산 정상 선선했던 기온은 학교의 균열에 가까워질수록 빠르게 떨어져 어느새 초겨울 날씨가 됐다.
온도는 빠르게 낮아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의 양도 많아지고 있다.
아직 주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
언제 이곳도 균열 영향권에 들어가 눈이 쌓이기 시작할지 모른다.
마음이 급해진 천문석은 거의 달리다시피 해서,
학교 담장이 내려다보이는 산책로에 도착했다.
천문석은 멈춘 채 숨을 고르며 침식이 진행 중인 대일 고등학교를 살폈다.
야시경에 보이는 학교 안에는 이미 시야를 가릴 정도로 엄청난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 저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학교 건물은 비상 상황 매뉴얼에 따라 긴급 봉쇄된 상황.
평범한 방법으로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쏟아지는 눈을 지나서 건물 벽의 비상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인터컴의 유선 회선으로 연락하는 것.
몬스터 위기 상황 매뉴얼에 따라 옥상의 강화 강철 문은 잠겼다.
하지만 밖에서는 못 열어도, 안에서 열고 나오는 건 가능했다.
인터컴으로 연락을 받은 세연이 옥상 문을 열고 나오면 같이 대피하면 된다.
문제는 이미 학교 건물 밖에서 균열 침식이 진행 중이라는 것.
천문석은 학교에 펑펑 쏟아지는 눈과 이미 눈이 쌓여 만들어진 하얀 눈밭을 봤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저 눈을 지나야 한다.
저 눈은 평범한 눈이 아닌 균열의 침식 현상의 결과물이다.
지구의 '자연'현상이 아닌 이세계의 '마력'이 작용한 이상 현상이다.
지금은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저 눈 속에서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공간 왜곡이 일어난 상태라 며칠을 눈 속을 걸어야 건물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너무 위험했다.
그렇다면?
천문석의 시선이 학교 옆 교회로 향했다.
산을 움푹 파고 들어가 지어진 대일 교회 건물.
대일 교회 건물 앞, 넓게 펼쳐진 공영주차장이 보였다.
산과 접한 외진 곳에 있는 저 공영주차장은 사실상 교회의 전용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일 고등학교, 대일 교회, 공영주차장.
세 건물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그리고 이름만큼이나 관계도 밀접했다.
대일 학교 재단 이사장, 엄마.
대일 교회 목사, 아빠.
구청장, 아들.
엄마 학교.
아빠 교회.
아들 주차장.
일가족이 만들어낸 합작품을 보며 천문석은 웃었다.
저 공영주차장은 학교 재단 건물과 부지를 구청에서 사들여 만든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이전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었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 이해당사자의 사정으로 기존 건물의 뼈대를 유지한 채, 간단한 리모델링만 했었다.
천문석은 예전 공영주차장 리모델링 공사에서 직접 일했었다.
그리고 주차장에 있는 지하 통로를 우연히 알게 됐다.
천문석은 문득 웃었다.
교회 목사와 학교 재단 이사장이 외부로 나갈 필요 없이 편하게 주차장을 오갈 수 있게 만든 ‘지하 통로’.
교회, 학교, 주차장.
세 건물은 그 ‘비공식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비공식 = 비밀’ 지하 통로인 만큼,
안전 규격에 의한 강화 철문은 당연히 설치되지 않았다.
강화 철문은 매년 안전 검사를 받으니까,
저런 비밀 지하 통로에 설치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국가 재정이 이렇게 헛되게 쓰이는구나 탄식했었는데···.
몇 년이 지나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천문석은 내심 감탄하며 할 일을 생각했다.
이제부터 할 일은 간단했다.
1. 교회 앞 공영주차장으로 간다.
2. 지하 통로로 학교 건물로 들어간다.
3. 류세연을 데리고 지하 통로를 빠져나온다.
4. 집에 간다.
간단한 게 맘에 들었다.
그리고 뭐가 있을지 모를 저 침식 현상, 눈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아주 맘에 들었다.
마음의 결정을 한 천문석은 바로 교회를 향해 달렸다.
...
천문석이 사라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휘이잉-
여름답지 않은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점점 많아질 때.
터덕, 터덕-
산책로에 나타나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흙과 나뭇잎, 굳은 피로 엉망인 털.
다쳤는지 땅에 끌리는 다리.
걸을 때마다.
어떤 놈은 켈룩- 이고,
몇몇 놈은 파르르 경련한다.
나타난 그림자들은 어디서 쥐어터지고,
산비탈에서 데굴데굴 오랫동안 구르고 온 듯한 몰골을 한.
늑대 무리였다.
산책로에 도착한 늑대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천문석이 학교와 교회를 살피던 장소였다.
킁, 킁, 킁-
늑대 무리는 열심히 땅에 남겨진 냄새를 맡다가.
휘이이-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늑대 무리의 머리가 일제히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늑대 머리가 향한 방향,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는 교회가 있었다.
천문석이 달려간 대일 교회가.
순간 늑대들의 눈에 번뜩이는 붉은 광채가 나타났다.
섬뜩한 붉은 눈의 늑대 무리는 일제히 교회 방향으로 움직였다.
절뚝, 절뚝···.
쓰윽, 쓰윽···.
힘겹게 다리를 끌면서 천천히···.
그러나 절대 멈추지 않는 늑대들이 적의 뒤를 뒤쫓았다.
---
천문석은 산책로 난간을 넘어 축대에서 멈췄다.
축대 바로 앞, 교회 건물 옥상이 있다.
그리고 길게 뻗은 옥상 끝,
공영주차장 건물이 보인다.
간단하게 동선을 체크한 천문석은 바로 뛰었다.
탁-
천문석은 옥상에 내려선 후 바로 달리며 주위를 살폈다.
옥상에서 건물 안으로 내려가는 문마다 두툼한 쇠사슬과 경화제로 잠겼고 수색이 끝났다는 봉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회 건물 곳곳, 문마다 쇠사슬과 봉인 스티커가 보였다.
유능한 대한민국 군대는 이 교회의 건물을 모두 수색해 사람들을 구조하고,
혹시라도 몬스터가 숨어들지 않도록 입구마다 봉인 처리까지 끝낸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유능해서 학교에 있는 세연이도 구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 녀석 늦게 왔다고 성질부리는 거 아냐?
천문석은 잡생각을 하며 옥상 끝까지 달렸다.
옥상 끝에서 10미터 앞, 마치 교회 건물인 것 같은 공영주차장이 보였다.
이제 옥상에서 내려가 저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천문석은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했다.
이때 보였다!
학교 앞 운동장.
하얀 눈이 쏟아지는 푸른 균열 주위, 눈 속을 무언가가 날고 있었다.
파스스-
오래된 가스등처럼 푸르스름한 불꽃.
푸른빛을 뿌리는 작은 불꽃이 쏟아지는 눈발 사이를 날고 있었다.
천문석은 보는 순간 불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람을 탄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리는 푸른 불꽃.
그러나 저건 식물도 불꽃도 하다못해 바람에 날리는 것도 아니었다.
저건 열을 먹는 몬스터의 일종이다.
냉기 포자!
이세계의 극랭지에서 나타나는,
열을 내는 모든 것에 달라붙어 열기를 흡수하는 몬스터다.
저 푸른 불꽃, 냉기 포자는 열을 내는 불꽃이 아니라 열을 먹는 불꽃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고 대입 시험에도 나와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냉기 포자'는 게이트 전쟁 당시 정치인과 재벌, 유력인사들이 도망쳤던 안전지대 제주도에 처음 나타났었던 몬스터다.
8월의 제주도에 내리는 폭설 속에서 파티를 벌였던 정치인, 재벌, 유력인사의 자녀 수십 명이 저 냉기 포자에 당했다.
줄줄이 병원에 실려 가던 정치인, 재벌 2세들.
몇몇은 심한 동상에 걸려 죽고, 살아남은 이들도 몇 년 동안 저체온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 사실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었다.
낙동강 전선과 호남평야를 사수하느라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안전한 제주도에서 파티라니!
저 냉기 포자는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양당이 참패하는데 일조한 역사적인 몬스터였다.
냉기 포자를 확인한 천문석은 옥상에서 내려가며 흐뭇하게 웃었다.
운이 좋았다!
혹시나 해서 눈밭을 피했는데···.
피해간 눈밭에 저런 몬스터가 있었다니!
어쩐지 오늘은 계속 운이 좋을 것 같았다.
땅에 내려선 천문석은 바로 공영주차장으로 달려가며 생각했다.
천문석이 도착한 공영주차장은 잠겨있었다.
---
"...아니. 이게 왜 잠겼어!"
천문석은 굳게 닫힌 강화 셔터와 잠겨있는 사무실 문에 깜짝 놀랐다.
주차장 같은 차량이 있는 곳은 봉인 처리를 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곧 잠긴 문에 봉인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한번 들어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강화 셔터.
이때 문득 기억나는 게 있었다.
몬스터 위기 경보 상황, 대응지침!
천문석은 예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사무실 문에 달린 도어락을 올렸다.
그리고 키패드에 긴급 번호를 입력했다.
[0119#]
철컥, 바로 열리는 문.
사무실로 들어가자, 발광 도료로 적은 안내문이 벽에 붙어있었다.
///
-교회 전 건물의 수색과 봉인 처리는 끝났습니다.
-대피 인원을 위해 이 주차장은 '안전지대'로 설정됐습니다.
-긴급 상황이므로 이 주차장의 타인 차량 사용 시에도 면책됩니다.
-차량 사용 후, 안전한 장소에서 제2 행안부 - 헌터부 앱에 꼭 신고해주십시오.
(차량 수거 후 차주 보상 처리를 위한 절차입니다.)
-1011 헌터 부대, 이인임 대위.
///
종이가 붙은 벽 아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열쇠들.
열쇠 옆에는 구급상자와 신호탄 등이 들어있는 비상 도구상자 몇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쌓여있는 전투 식량 상자들.
혹시나 이곳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존 물품들이었다.
역시 대한민국 군대!
20년간의 실전으로 단련된 군대는 사소한 것에서도 유능했다.
천문석은 승합차 차 키를 몇 개 꺼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우선 잠긴 주차장 입구 강화 셔터를 확인했다.
생각대로 안쪽에서는 열 수 있도록 잠금 기어만 내려놓은 상태다.
천문석은 잠시 생각했다.
봉인 처리를 하지 않아 기어만 올리면 바로 출입이 가능한 주차장.
게다가 이 주차장은 군대가 전체를 수색한 안전지대, 세이프티 존이다.
그렇다면 안전한 퇴로 확보를 위해 이 안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다.
천문석은 바로 사무실에서 가져온 키를 눌러 승합차를 찾았다.
삑, 삑, 삑-
띠리릭, 철컥-
몇 번의 시도로 찾은 승합차.
천문석은 승합차에 구급상자와 비상 도구상자를 하나씩 싣고, 차를 운전해 주차장 지하로 내려갔다.
승합차는 지하 주차장 구석, 창고 앞에 멈췄다.
이 창고가 비공식 지하 통로가 있는 장소였다.
바로 시동을 끄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구급상자와 비상 도구상자를 들고 내린다.
탁-
차 문을 닫고 다시 한번 계획을 점검한다.
-창고 안 지하 통로로 학교로 들어가 세연을 찾는다.
-세연과 같이 이 주차장으로 돌아와 상황을 확인한다.
-도로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승합차를 이용해 안전 캠프까지 이동한다.
승합차를 쓸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이 같이 나와도 함께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천문석은 구급상자와 비상 도구상자를 들고 지하 통로가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