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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화 (20/1,336)

# 20

비정규직 천마 -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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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이미 해가 진 지 오래인 늦은 저녁.

어두운 산길을 달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타타탕-

타타탕-

먼 곳에서 점사로 사격하는 총소리가 들려오자, 산길을 달리던 사람은 몸을 낮췄다.

이 사람은 헌터용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야간 투시경이 달린 헬멧을 쓰고,

강화 섬유로 짜낸 헌터용 강화 전투복을 입었다.

전투복 위에는 타격력을 분산시키는 강화 패드가 장착된 방검복과 전술 조끼를 걸치고,

손, 발에는 헌터용 장갑과 군화, 강화 토시를 착용했다.

그리고 허리의 전술 벨트에는 두툼한 정글도와 강화 해머가 걸려 있다.

장비 대부분이 제대로 된 헌터용 장비 제작사에서 만든 장비들.

게다가 전술 벨트에 걸린 정글도와 강화 해머는 W.S. 인더스트리에서 제작한 무기였다.

W.S. 인더스트리는 미국의 세계 패권을 상징하는 회사다.

생산품 대부분이 금수품목으로 묶였고, 일부 우방국으로 수출 시에도 막대한 관세가 붙는다.

그런 만큼 이 정글도와 강화 해머는 정말 억- 소리 나게 비쌀 것이다.

'게다가···.'

천문석은 전술 벨트에 걸린 정글도와 강화 해머를 다시금 봤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정글도 검신과 해머 헤드에 새겨진 특이한 문양은 사진으로만 봤던 그것과 일치했다.

마력 회로!

놀랍게도 이 무기는 각성 헌터용의 마력 무구였다.

돈이 있어도 연줄이 없으면 못 구한다는 마력 무구!

이때 총소리가 멈추고,

천문석은 다시 산을 타며 새삼 감탄했다.

전투복에 방검복, 전술 조끼와 무기까지 장비했는데도, 오히려 몸이 가볍고 움직이는 게 편하다.

헌터용 강화 전투복의 운동능력 보조 기능 덕분이다.

제대로 된 헌터용 장비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다.

순간 꼬맹이 엄마 장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천문석이 착용한 헌터용 장비들은 모두 장민이 빌려준 거다.

꼬맹이 엄마 장민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었다.

류세연을 찾으러 안전 캠프에서 나가는 자신을 만류하더니,

전화 몇 통에 현재 상황을 파악한 장민.

게이트 안정화 권역인 서울 지역에 열린 수많은 던전과 균열.

세연이 다니는 학교에 열린 균열은 구조작업 도중에 발생했다고 한다.

매뉴얼에 따라 구조작업은 바로 중단되고 학교는 다시 봉쇄된 상황.

봉쇄된 학교에 남겨진 학생과 선생의 수는 10명 내외로 적었고,

발생한 균열도 당장은 이상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장민은 차분한 어조로 군 지휘관의 결정을 전했다.

"그 학교는···. 구조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고 하네요."

효율을 중시하는 군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서울이 뚫리는 초유의 사태.

군의 헌터 부대와 민간 헌터들 모두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을 거다.

자원이 한정적인 만큼, 더 급한 곳에 먼저 배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고개만 끄덕일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천문석이 감사 인사를 하고 학교로 출발하려 할 때,

장민은 다시 한번 천문석을 잡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장비를 좀 빌려드릴게요."

잠시 후 대학 병원 주차장에 무장 밴이 도착했다.

이 무장 밴에는 헌터 한 명을 무장시킬 장비가 실려있었다.

장민은 장비를 보여주며 말했다.

"주문받은 제품인데. 고객 인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우선 사용하세요."

"..."

척 봐도 고가의 헌터 장비.

이런 걸 별다른 담보도 없이 빌려주다니···.

장민은 엄청난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거절했겠으나, 지금은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안전지대 서울이 뚫린 상황.

천문석이 일부 군 경력자처럼 총기를 영치하거나,

헌터 업계 사람처럼 도검 무기류를 미리 준비해둔 것도 아니다.

지금 서울에서 제대로 된 무기와 방어구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천문석은 장민에게 감사하며 바로 장비를 착용했다.

"장철에게 메시지를 넣었는데···. 기다리긴 힘드시겠죠?"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류세연은 가족이다.

자기 가족을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장민은 천문석의 결심을 확인하고 말했다.

"알바씨. 조심하세요."

"알바. 조심해!"

"두 분도 조심하세요. 이 장비 감사합니다. 꼭 돌려드리겠습니다."

천문석의 대답을 들은 장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꼭 '안전히' 돌아와서. 그 장비들 돌려주세요. 저한테 알바씨가 잡은 랩터 두 마리 있는 거 아시죠? '담보'입니다."

장민의 말에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담보라 말하는 랩터 두 마리.

그걸로 지금 착용한 장갑 한 짝이나 살 수 있을까?

평소처럼 여상한 말에 담긴 장민의 진심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꼭 '안전히' 돌아와 '담보'를 찾아가겠습니다."

천문석은 웃으며 학교로 출발했다.

그리고 꼬맹이의 어쩐지 실망한듯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장민···. 짠돌이."

자신도 모르게 터졌던 웃음.

하-

천문석은 안전 캠프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웃음 지었다.

인연이란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돌머리 꼬맹이,

엄마 장민,

삼촌 장철.

인연은 이어져 도움을 주고,

다시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지금 자신은 류세연을 찾으러 학교로 달려가고 있었다.

무쇠웍과 무쇠 칼이 아닌 고가의 헌터용 장비로 완전무장한 채.

천문석은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 장비와 무기라면 랩터 한두 마리 정도는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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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석이 오르는 산은 낮고 넓게 펼쳐진 동네 뒷산이었다.

이 동네 뒷산 너머에 세연이 다니는 대일 고등학교가 있다.

잘 정비된 산책로와 등산객이 다녀 만들어진 길이 뒤섞인 동네 뒷산.

천문석은 정비된 산책로가 아닌 수풀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달리고 있었다.

산으로 들어선 지 이미 한 30분, 구불구불 돌아가느라 시간이 지체됐지만,

천문석은 전투 한번 없이 산을 가로질러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학창시절, 낙동강 전선에 참전한 역사 선생님께 들었던 대로다.

몬스터는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끌리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이런 산이 오히려 몬스터에게서 안전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대로 지금까지 몬스터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바스락-

순간 수풀이 흔들리고 낙엽 바스라 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문석은 바로 멈추고 엎드렸다.

툭, 툭, 툭-

낙엽 밟는 아주 미세한 소리 후 들려오는 울음소리.

냐아앙-

수풀에서 나온 건 작은 새끼 고양이였다.

새끼 고양이는 낙엽 위를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와 천문석 앞에서 발라당 자빠졌다.

냐아, 냐야-

분홍색 배를 내민 채, 휘릭, 휘릭 작은 꼬리를 흔들며 우는 새끼 고양이.

"또 너냐···?"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주머니에서 칼로리 바를 꺼내 포장을 벗겨 새끼 고양이에게 줬다.

냠, 냠-

신나게 칼로리 바를 핥는 새끼 고양이.

천문석은 새끼 고양이를 스쳐 지나가며 생각했다.

저 새끼 고양이를 이 산에 들어오고 벌써 3번째 만나고 있었다.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하듯 매번 앞에서 나타나는 고양이.

비슷하게 생긴 형제들인가 했는데···.

어쩌면 진짜 공간이동을 한 걸지도 몰랐다.

각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어린이 대공원의 폭군 콩콩이, 국민대의 수호자 뽀미처럼 저 새끼 고양이도 각성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각성한 공간이동 능력으로 등산객에게서 간식을 강탈하는 건가?

어이없는 생각에 헛웃음을 삼킬 때,

바람 방향이 바뀌었다.

휘이이-

바람에서 훅 올라오는 노린내!

천문석은 생각하지 않고 몸부터 낮췄다.

순간 수풀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상체가 있던 위치를 휙- 지나갔다.

동시에 느껴지는 섬뜩한 전율!

휘이잉-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린 순간.

방검복이 무언가에 긁혔다.

그르르륵-

섬뜩한 강화 패드 갈리는 소리!

천문석은 옆으로 한 바퀴 구르며 정글도를 그었다.

정타가 아닌 견제를 위한 행동.

그러나 정글도가 적의 몸에 닿는 순간.

생경한 소리, 생경한 감각이 느껴졌다.

텅-

"어?"

자른다기보다 두들긴다는 게 어울리는 소리, 손에 느껴지는 강한 탄성과 딱딱함.

정글도는 늑대 털에 휩싸인 채 멈춰 있었다.

길고 촘촘한 늑대 털,

그 사이사이 짧고 뻣뻣한 가시 같은 털이 있었다.

길고 촘촘한 털에 속도가 죽고,

뻣뻣한 가시털에 막혀 정글도는 멈췄다.

정글도 칼날이 단단한 가시털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다.

마력 회로가 작동했으면 단숨에 잘랐겠지만,

각성자가 아니니 당연히 마력 회로는 작동하지 않았다.

깨에에···

이때 들려오는 울다 만듯한 울음소리.

칼을 맞는 순간,

깜짝 놀라 울려다가 멈춘 늑대의 시선이 느껴졌다.

"..."

늑대 시선에서 어이없어하는 감정이 읽혔다.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그렇게 보지 마라···. 지금 나도 어이없다."

순간.

크앙-

늑대가 울부짖으며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고,

천문석은 잽싸게 데굴데굴 굴러 공격을 피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끄어억-

땅바닥을 구르다 뾰족한 돌이 허리에 박혔다!

하필 강화 패드 사이에 박히다니!

"시바, 시바!"

천문석은 고통을 참으며 잽싸게 허리에 박힌 돌을 잡았다.

그리고 일어나는 동시에 투척!

깨앵-

돌진하는 늑대 얼굴에 돌이 맞는 순간.

정글도를 앞세워 밀고 들어간다!

뾰족한 물체를 피하는 건 야생의 본능!

정글도에 움츠러든 늑대가 주춤할 때,

오히려 성큼 다가간다.

그러나 주춤한 건 늑대의 페이크였다.

주춤했던 늑대는 타닥- 옆으로 뛰어 정글도를 피하고 입을 벌리며 바닥을 박찼다.

크아앙-

포효와 함께 훅 들어오는 늑대!

섬뜩한 붉은 송곳니!

목표는 정글도를 든 왼쪽 손목이다.

붉은 송곳니가 손목을 물어뜯기 직전,

거친 바람 소리가 났다.

후웅-

돌진하는 늑대 머리 옆.

사각에서 날아온 오른손의 강화 해머가 늑대 머리를 갈겼다!

텅-

기대와는 다른 충돌음.

해머에서 타이어를 때린 듯 둔탁한 탄성이 느껴졌다.

북슬북슬 탄성 있는 늑대 털이 해머의 타격력을 죽인 것이다.

깨에-

뛰어오르던 늑대는 해머에서 전해진 충격에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네 발로 선 늑대.

크르르-

늑대는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좌우로 비틀거렸다.

천문석은 한걸음 성큼 들어가 늑대를 발로 걷어찼다.

늑대가 비틀거리면서도 발을 피하는 순간,

다시 한번 수직으로 떨어지는 강화 해머!

텅-

머리에 제대로 해머를 맞은 늑대는 픽 쓰러져 혀를 내빼고 파르르 경련했다.

털이 쿠션 역할을 했지만,

뇌에 전해진 연이은 충격에 늑대는 정신을 못 차렸다.

"..."

천문석은 강화 해머를 봤다.

"이걸 맞고도 한방에 안 죽네···."

늑대를 낚아서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사각에서 회심의 일격, 해머 정타를 두 번이나 때렸는데도 늑대는 아직도 살아있다.

아마 조금만 시간을 주면 이 늑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다시 달려들 거다.

이놈 뭐가 이리 튼튼해?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며 땅에 쓰러진 늑대 심장 부위에 정글도를 올리고 해머로 내려쳤다.

콰앙-

깽-

땅에 고정돼 타격력이 온전히 전해진 정글도가 단숨에 털을 가르고 가죽을 뚫고 심장을 찢었다.

이제야 늑대는 죽었다.

천문석은 죽은 늑대를 자세히 살폈다.

실제 몸길이는 1.5미터 정도.

야생의 늑대라기보다는 커다란 들개나 대형견 정도 크기다.

그러나 전신에 난 엄청난 두께의 털이 몸집을 2, 3배 크게 보이게 했다.

천문석은 정글도로 늑대의 털을 헤집어 봤다.

방금 전투에서도 느꼈지만, 특이했다.

고무 같은 탄성이 느껴질 정도로 푹신푹신한 긴 털, 멧돼지의 뻣뻣한 가시 같은 억세고 짧은 털이 섞여 있었다.

푹신푹신한 쿠션털이 타격력을 죽이고,

억센 가시털이 절삭력을 막아내고 있다.

이 늑대는 흡사 복합장갑을 두른 듯 방어력이 대단했다.

게다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붉은 송곳니와 날카로운 발톱, 엄청난 생명력까지.

이 늑대는 몬스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지금 있는 곳은 동네 뒷산이다.

서울 동네 뒷산에 늑대가 돌아다닐 리 없으니 당연히 몬스터일 거다.

"랩터가 아니라···. 이번에는 늑대인 거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면서도 내심 웃었다.

지금의 자신은 현질한 최고수준의 장비를 입은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 장비라면 이런 늑대 2, 3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다.

랩터 2마리 상대하다가 끔살 당할 뻔한 낮과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천문석이 자신감을 충전하고 있을 때,

산 위쪽에서 하울링이 들려왔다.

우으으으-

그러자 응답하듯 산 곳곳에서 터지는 하울링.

우으으으-

우으으으-

"어···?"

순식간에 동네 뒷산 전체를 울리는 늑대 몬스터의 하울링.

얼핏 들어도 한두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최소 수십 마리의 늑대무리가 이 산에 있었다!

"선생님. 몬스터는 인간이 많은 곳으로 간다면서요···."

우으으으-

"아니. 서울 동네 뒷산에 뭔 늑대가 이렇게 많아···."

우으으으-

천문석이 말할 때마다 대답하듯 울려 퍼지는 하울링.

늑대 몬스터 수십 마리의 하울링이 점점 가까워졌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의 늑대 몬스터 무리.

"..."

구하러 왔다가,

도망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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