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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8화 (19/1,336)

# 19

비정규직 천마 -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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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휘이이-

문득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바람에는 매캐한 장작 연기가 섞여 있었다.

콜록, 콜록-

잠결에 들이켠 연기에 기침하며 일어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스승님?"

아주 오래전 헤어진 전생의 스승님.

스승님이 모닥불 뒤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신선 같은 하얀 수염과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하얀 피부, 검은 머리카락.

전혀 중 같지 않은 스승님.

스승님은 헤진 승복을 입은 채,

예전 그대로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었다.

부채를 부치면서.

휘이, 휘이-

부채질에 날아오는 모닥불 연기.

자신이 마신 연기는 저 부채질에 날아온 것이다!

"아! 뭐에요!"

어이없어하며 소리치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일어나라."

"네?"

"일어나라고."

"그게 무슨···."

두 번 반문하는 순간.

지팡이가 날아왔다.

으악!

깜짝 놀라 손을 들 때,

지팡이가 머리를 때렸다.

따악-

너무나 익숙한 소리가 울리자,

배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고통!

아니! 머리를 맞았는데?

왜? 배가 아파!

이 순간 천문석은 잠에서 깨어났다.

"...어?"

처음 본 것은 낯익은 여리여리한 인상의 여자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알바! 일어난 거야? 일어난 거 맞지!?"

반가워하는 외침 뒤로 어쩐지 울음기가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거봐! 장민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하면! 깨어날 거라고! 내가! 내가! 말했잖아!"

하아-

꼬맹이 엄마 장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깨어나셔서 다행이네요."

"여기는···."

천문석은 주위를 살폈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간이 병상 위였다.

주위에는 이런 병상이 줄지어 놓여있고,

그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와 의사, 환자를 나르는 군인들이 보였다.

병원인가?

천문석이 주위를 둘러보자 장민이 말했다.

"대학 병원에 임시로 만들어진 안전 캠프에요."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은 천문석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배에서 묵직한 통증이 올라왔다.

컥-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혀 배를 잡았다.

그렇지.

랩터와 싸우다가 상처를 입었지···.

천문석은 상처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어···."

피가 샘솟던 배,

허벅지만큼 부어올라던 정강이 모두 멀쩡했다.

보이는 것은 어쩐지 낯익은 검붉은 피멍뿐. 상처는 흔적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장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천문석을 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상처는 특급···. 선물로 저절로 치료됐어요."

"네···?"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는 천문석.

장민은 그런 천문석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 우선 인사를 해야겠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엄마 옆에서 같이 배꼽 인사를 하는 꼬맹이.

"특급 헌터는 고마워한다! 알바! 고맙다!"

장민은 공손히 배꼽 인사를 하면서 거만하게 외치는 아이를 보고 한숨 쉬더니,

한 번 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말썽꾸러기 아이를 구해주셨더군요. 하아- 이건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정말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저도 저···."

천문석은 돌머리 꼬맹이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보고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돌머리 꼬맹이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아이 엄마 앞에서 평소처럼 돌머리 꼬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대충 얼버무렸다.

"쟤랑···. 그 삼촌분께서 위험할 때 구해주셔서 겨우 살았습니다."

이때 배꼽 인사를 하던 꼬맹이가 허리를 펴고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우리 삼촌 이름 장철이야! 알바가 아주 맘에 든 데! 맘에 들면 선물 주겠지? 삼촌은 장민처럼 짠돌이가 아니니까···. 어쩌면 자동차 한 대 사줄지도 몰라. 내 거는 부서졌는데···. 알바는 좋겠다. 자동차 선물 받으면 나도 좀 태워주면 안 될까?"

"그게 뭔 소리냐?"

맥락 없이 이어지는 꼬맹이의 말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장민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보탰다.

"맞아요. 오빠 장철이. 알바 씨가 정말 맘에 든다네요. 꼭 한번 초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네요."

"아, 네. 하하-"

천문석이 어색하게 웃자,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삼촌은 바쁘다고 먼저 갔어. 급하게 할 일이 있데. 삼촌 원래는 맨날 노는데. 오늘은 좀 이상해."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이 뚫린 상황.

사방에 균열과 던전이 나타나고 있을 거다.

장철.

꼬맹이 삼촌 수준의 각성 헌터라면 지금 쉴 틈 없이 바쁠 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운이 좋았다.

밧줄을 끊으려는 타이밍에 각성 헌터가 나타나다니!

천문석이 새삼 안도할 때,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깨어났구나!"

"철수형?"

김철수가 웃으며 병상으로 걸어왔다.

엉망으로 엉킨 머리카락과 곳곳이 찢어진 옷을 입은 채.

"철수형. 어디서 싸우다 왔어요? 꼴이 그게 뭐예요?"

철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키즈카페 아이들, 지금 모두 돌려보내고 오는 길이야. 아이들 부모님들이 좀 놀랐더라고···."

철수는 뒷말을 흐렸지만,

천문석은 벌어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철 덧창을 열고, 애들을 구한 철수형.

용감한 행동이지만,

키즈카페 안에 아이들이 있던 부모들은 못마땅할 수 있었다.

잘못해서 열린 창으로 랩터가 들어왔으면 대참사가 일어났을 테니까.

"철수형. 괜찮아요···?"

천문석의 걱정이 담긴 물음에 철수는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좋다."

"네?"

철수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본사 점검팀. 그 거지 같은 놈들이 매뉴얼 위반이라네? 애들 끌어 올릴 때도, 밧줄 당길 때도 숨어있던 놈들이!"

하-

철수는 어이없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 잘렸다."

순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아니! 자르려면 나를 잘라야죠! 왜 형을 잘라요! 철수형! 당장 내가 본사에 말해 볼게요!"

철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아니! 뭐가 돼요! 이런 부조리에서 눈을 돌려서는···."

"너도 잘렸어. 인마."

"..."

"..."

천문석과 김철수의 시선이 마주 닿았다.

다음 순간 동시에 터져 나오는 시원한 웃음.

크큭크-

카카칵-

철수는 웃으며 말했다.

"너 퇴직금으로 3달 치 월급 받는 거로 했다."

"아니. 무슨 알바, 그것도 한 달 일한 사람한테 퇴직금을 줘요?"

어이없어하는 천문석에게 철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놈들 숨어있었잖아?"

철수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입에 지퍼를 채우는 제스쳐를 했다.

천문석은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짐작했다.

본사 점검팀은 몬스터 앞의 어린아이를 내버려 뒀다.

아무리 매뉴얼에 따랐다고 해도 욕을 먹을 상황이다.

게다가 업종이 키즈카페인 이상 이미지 타격뿐 아니라 실제 입을 피해도 엄청날 거다.

본사에서는 입막음 대가로 3달 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주기로 한 것이다.

새삼 감탄한다.

이렇게 능숙한 수완이라니!

"역시! 철수형!"

천문석이 감탄하자, 철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번뜩였다.

"퇴직금은 월급 계좌로 바로 들어갈 거야. 당분간 쉬고 있어. 이 일은 내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괜찮은 일 찾으면 다시 연락할게. 마침 좋은 사업아이템이 생각났다."

"철수형. 고마워요."

철수는 천문석의 어깨를 툭 치더니 장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장철 헌터님께는 감사드린다고 꼭 전해주세요."

그리고 철수는 꼬맹이와 악수했다.

"너 정말 용감했다. 멋있었어."

"특급 헌터는 원래 멋있어."

꼬맹이는 의젓하게 철수와 맞잡은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이거 받아라."

철수는 웃으며 꼬맹이에게 종이쪽지를 건넸다.

"이건 뭔데? 전화번호?"

번호가 적힌 종이를 받고 고개를 갸웃하는 꼬맹이.

"그거 앙투안 전화번호···."

순간 꼬맹이는 깜짝 놀라서 외쳤다.

"앙꼬! 번호야? 앙꼬가 나한테 전화번호 가르쳐 주래!?"

철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꼬맹이는 몸을 돌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흐흐흐흐-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들썩이는 어깨와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에 꼬맹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졌다.

천문석은 꼬맹이 웃음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알바에서 잘리고,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건 처음이다.

하나의 일이 마무리되고,

무언가 매듭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키즈카페 알바는,

어차피 조만간 그만두려고 했었다.

3개월 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는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게다가 키즈카페의 아이들 모두가 무사히 부모에게 돌아갔다.

모든 게 잘됐다.

끝이 아주 좋았다.

하하-

천문석은 홀가분하게 웃으며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키즈카페는 이제 끝이다.

잠시 쉬다가,

헌터업 경력을 시작하면 된다.

짐꾼으로 말이다···.

급 침울해지려 할 때, 장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씨. 장철이···."

이때 천문석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은 류세연이었다.

"잠시만 전화 좀···."

천문석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야! 너 어디야? 삼촌이 지금 병원에 있는데···."

-오빠! 나 학교에 갇···! 어? 병원 그게 무슨···.

류세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중간에 뚝 끊겼다.

갑자기 끊긴 통화,

무슨 상황인지 바로 짐작이 갔다.

"게이트 침묵···."

천문석은 갑자기 통화가 끊긴 스마트폰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

텔레비전에서는 공중에서 촬영한 학교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어쩐지 눈에 익은 학교 건물.

강화 덧창과 철문으로 완전히 봉쇄된 학교 건물 앞 운동장.

이 운동장에 공간을 찢어낸 듯한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균열!

이세계와 연결되는 틈, 균열이었다!

"저곳은···."

어쩐지 눈에 익은 학교.

텔레비전에 나오는 학교는 예전에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였다.

저 고등학교는 지금 류세연이 다니고 있는 학교다.

그리고 방금 세연에게서 걸려온 학교에 있다는 전화.

천문석은 깨달았다.

류세연이 있는 고등학교에 균열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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