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비정규직 천마 -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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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아. 병무청 홈페이지! 그 영상!"
어쩐지 신난 것 같은 철수형의 목소리.
"그거 원래 그래. 3차 징병 검사, 최종검사 상세 정보는 비공개인데. 면제자들이 병무청에 워낙 항의를 많이 하니까. 면제자들이 아이돌 영상을 보면 좀 덜 화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영상을 깔아 놓은 거야."
"..."
"징병 검사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면제자를 분석해서. 최적의 아이돌 홍보대사의 위로 영상을 보여주는 거지. 네가 여자였으면 남자 아이돌이 나왔을걸."
"...그게 효과가 있어요?"
크크큽-
철수형은 웃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효과야 있지. 예전에는 병무청만 욕을 먹었는데. 이제는 병무청이랑 아이돌 홍보대사가 같이 욕을 먹고 있거든."
"...그건 그냥 욕을 두 배로 먹는 거잖아요?"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혼자 타겟이 돼서 욕먹는 것보다 물타기 해서 같이 먹는 게 낫잖아? 그리고 홍보대사 아이돌 팬덤이 나서서 실드를 엄청 쳐준다."
철수형은 목을 가다듬으며 누군가를 흉내 내어 말했다.
"어디 면제자가! 우리 멋진 철민 오빠, 슬기 누나한테 화풀이야!?"
"..."
"병무청 직원들은 엄청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더라. 면제자랑 아이돌 팬덤이 서로 싸우느라 걸려오던 항의 전화 수가 뚝 떨어졌다나? 크카캌-"
배를 잡고 폭소를 터트리는 철수형.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신나게 웃고 있는 철수형을 봤다.
키즈카페 건물 입구,
자신 옆에 같이 쪼그려 앉은 철수형.
철수형은 어제 자신의 면제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전화해서 최종 징병 검사 결과를 묻더니.
지금도 어제 못 사준 점심밥을 사주겠다고 나타난 상태였다.
자신은 연이은 정신적 충격으로···.
어제 입은 옷을 다시 입고 출근했는데···.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이라니!
느껴진다.
철수형의 음흉한 속내가!
한참 동안 웃던 철수가 문득 천문석을 봤다.
그리고 어제부터 몇 번이나 한 이야기를 은근한 어조로 다시 한번 말했다.
"문석아. 너 진짜로 여기 정규직 할 생각 없냐? 이 키즈카페! 미래가 엄청 유망해! 장사 엄청 잘돼!"
이때 낯익은 보육교사가 이끄는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 한 무리가 나타났다.
일주일에 2번, 정기적으로 오는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다.
서로 손을 잡은 아이들은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며 걸어왔다.
와아-
와아아-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천문석 앞에 멈췄다.
"부점장님. 쉬고 계시나 보네요?"
“네. 안녕하세요.”
웃음 띤 얼굴로 인사하는 보육교사.
보육교사는 손을 잡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부점장님께 인사해야죠?"
짝짝-
보육교사가 박수를 치는 순간 일제히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아이들.
"안녕! 하세요!"
"안녕!! 하세요!!"
"안녕!!! 하세요!!!"
...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처음 겪는다면 당황할 상황.
그러나 천문석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천문석은 이 인사법을 '인사 당한다'라고 이름 붙였다.
인사를 ‘제대로’ 받아줄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 꼬맹이 식 인사.
"그래! 얘들아! 안녕!“
천문석이 인사를 ‘제대로’ 받았다.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대답한 것이다.
점점 커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뚝 멈췄고.
"그럼. 안에서 뵐게요."
보육교사는 웃음 띤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을 이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아무리 봐도 재밌어서 일부러 하는것 같았다.
이때 들려오는 철수형의 목소리.
"...봐라! 우리 고객님들이 얼마나 많냐?"
아이들이 보이자마자, 몸을 돌려 숨었던 철수형.
철수형이 멀어지는 아이들 무리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아주 유망해! 완전 돈 잘 벌어!"
"잘 벌어봐야 그게 내 돈도 아니고···."
재빨리 말을 가로채고 쏟아내는 말.
"너만 생각 있으면! 정규직으로. 그것도 그냥 직원이 아니라. 지점장! 내 자리 어떠냐?"
"아니. 지점장이 그렇게 형 맘대로···."
다시 한번 말을 가로채고 장담한다.
"걱정할 것 없어! 나 김철수다. 너같이 훌륭한 인재가 지점장이 돼야지! 내가 모든 걸 다 처리할 테니까. 넌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된다."
철수는 천문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철수형. 지점장이 꼭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야."
"..."
갈망으로 이글거리는 철수형의 눈동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꼭, 지점장직을 넘기고야 말겠다는 진심 어린 의지가!
그러나 철수형의 다크서클과 피곤에 절어있는 얼굴을 보면 전혀 혹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 달 동안 부점장으로 일한 천문석은 알고 있었다.
이 키즈카페는 관리직인 지점장과 부점장을 갈아서 운영된다는 것을.
그보다 다른 게 더 궁금해졌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철수를 봤다.
'철수형···. 도대체 정체가 뭐야?'
경영학과 화석 철수형은 언제든 자신을 지점장으로 채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철수형 자신도 비정규직 임시 지점장일 뿐이고,
이 키즈카페는 개인이 운영하는 지점이 아니라 본사 직영점이다.
당연히 지점장 선정은 본사 권한이고,
이 키즈카페 본사는 전국에 100개가 넘는 지점이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다.
지금 그런 프랜차이즈 본사를 자신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
도박 빚, 주식 투자 실패, 결혼 사기 등등.
온갖 흉흉한 소문이 꼬리처럼 붙어있는 경영학부 화석 철수형이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월급도 올려주고, 대학 장학금도···."
천문석은 끝없이 이어지는 철수형의 사탕발림을 흘려들으며 추론했다.
그러고 보니 이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도 김 씨인 것 같은데···.
'철수형···. 이 형 혹시? 재벌 3세. 뭐 이런 거 아냐?'
그러나 생각과 동시에 터지는 헛웃음.
하-
김 씨는 여전히 한국 1위의 성씨다.
같은 김 씨여도 친척이 아니라 남일 가능성이 더 컸다.
게다가 대학에 입학해 철수형을 만난이래,
천문석은 철수형과 몇 번이나 같이 알바를 했다.
-지하철 선로 공사.
-대형 하수관 청소.
-이동 생맥주 판매.
...
알바 전선에서 고생하며 같이 구르던 철수형.
대형 하수관 청소를 하다가 기절했던 철수형이 재벌이라니!
차라리 돌머리 꼬맹이가 재벌이란 게 더 그럴듯했다.
이때 특이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쿠우우웅-
"응?"
"어?"
천문석과 김철수의 고개가 엔진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어린이 자동차 한 대가 큰길에서 건물 공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철수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어린이 자동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헐. 저거 부가티 헌터 미니잖아? 이 동네에서 누가 저런 걸 타고 다녀···? 재벌집 아이인가."
이때 들려오는 익숙한 외침.
"특급 헌터가 왔다!"
끼이익-
건물 앞 공터.
부가티 헌터 미니는 빙글 180도 회전해 공터에 척- 멈춰섰다.
그리고 어린이 자동차를 멈춘 돌머리 꼬맹이가 자기 앞의 금발 머리 여자아이에게 외쳤다.
"...나 차 샀어! 너희 대장보다! 내 차가 훨씬 좋아! 앙꼬!"
천문석은 깨달았다.
페달을 돌려 힘겹게 어린이 자동차를 몰던 꼬맹이가 이제 제대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돌머리 꼬맹이와 앙꼬가 만났다!
불과 기름이 만나면 화염이 솟구치는 게 당연하다.
화재, 폭우 같은 자연재해는 피해야 하는 법!
천문석은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철수형.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죠."
"그래! 우리 밥을 먹으면서 좀 더 심도 있게! 이 키즈카페의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김철수는 벌떡 일어나 앞장서 걸었다.
"..."
천문석은 철수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전생을 자각한 지 이제 한 달.
그런데 지난 한 달은 좀 이상했다.
전생과 달리 평화로운 시대,
게다가 현재 자신은 마도 지존 천마가 아니라 휴학한 알바일 뿐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은 전생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스승님께 낚여서 천문사(天問寺), 마도 18문의 일파에 들어갔던 그때를.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고,
하루가 멀다고 사건이 터진다.
자석에 철가루가 붙고,
태양이 운석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마치 사건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인력이 주위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혹시···?"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의심스러운 용의자들을 봤다.
앞장서 걷는 철수형.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키즈카페.
어린이 자동차를 탄 돌머리 꼬맹이와 금발 아이.
아무래도 이 셋 중에 범인이 있는 것 같았다.
전생의 천문사처럼.
자신의 인생을 꼬이게 만드는 불가사의한 원인이!
이렇게 천문석이 삶을 꼬이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 깊이 고뇌할 때,
김철수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석아! 고기 먹자! 내가 오늘은 크게 쏜다! 오늘 점심은 고기다!!"
고기!
한순간에 고뇌를 털어낸 천문석이 성큼 철수를 앞지르며 외쳤다.
"철수형! 어서 가죠! 늦으면 자리 없어요!"
"그래! 얼른 가자! 우리 같이 고기를 먹으면서. 우리 키즈카페의 미래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야기해 보자!"
카카카-
크크킄-
신이 난 천문석과 김철수는 고깃집을 향해 뛰듯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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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형. 진짜 괜찮은 거 맞아?"
3번째 다시 확인하는 천문석.
김철수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가리켰다.
"다 먹고, 모자라면 더 먹어! 팍팍 먹어!"
치이이익-
순간 들려오는 기름 익는 소리!
소리에서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달궈진 철판에 가지런히 늘어선 두툼한 숙성 삼겹살.
삼겹살 아래 쭉 펼쳐진 잘 익은 김치.
김치 아래 놓인 마늘과 버섯.
뽀글뽀글 된장찌개.
명이 나물, 상추, 샐러드가 가득 담긴 그릇이 상 위 깔려있다.
그리고 얼음이 동동 뜬 냉면,
앞접시에 가득 담긴 파채까지!
제대로 된 고깃집!
게다가 두께가 느껴지는 숙성 돼지고기라니!
김철수를 보는 천문석의 눈에 존경의 빛이 감돌았다.
"철수형! 존경합니다!"
철수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면제가 뜬 중생에게! 오늘 내가 삼겹살을 내리노라!"
"넵! 감사! 감사합니다!"
"중생은 맛있게 먹으라!"
"네엡! 감사! 또 감사!"
"많이, 많이 먹으라!"
"네에엡! 감사···!"
"그럼 지점장을···."
"No."
천문석은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냉정하고 단호한 녀석."
"철수형. 신성한 삼겹살 앞에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우선 먹고 이야기하자."
두 사람은 잘 익은 숙성 삼겹살에 명이나물을 올리고 파채를 듬뿍 곁들여 쌈을 쌌다.
그리고 먹으려 할 때.
드르르륵-
스마트폰이 울렸다.
천문석과 김철수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가 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으로 움직였다.
위이잉-
상 위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은 김철수의 것이었다.
"근무 시간도 아닌데···. 웬 전화야."
철수는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깃집에는 천문석 혼자 남아 고기를 먹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김철수.
키즈카페 지점장님은 프랜차이즈 본사의 비정기 점검팀이 왔다는 연락에 키즈카페에 돌아간 상태였다.
크크큽-
천문석은 자글자글 잘 익은 숙성 삼겹살과 얼음이 뜬 시원한 냉면을 번갈아 먹으며 생각했다.
역시!
이 키즈카페는 천문사처럼 마가 낀 게 분명했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기를 먹는 날,
본사 점검팀이 오다니!
철수형은 자기가 사주고도 고기 한 점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하루라도 빨리 마가 낀 여기 키즈카페에서 벗어나는 게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입대라는 계획이 어긋난 이상.
이제 최대한 빨리 차선책을 선택할 때였다.
천문석은 철수형이 사준 고기를 먹으며 새로운 인생계획을 설계했다.
'2, 4년제 헌터 대학에 편입하면 어떨까?'
그러나 헌터 대학들은 교육부 소관이 아닌 제2 행안부 소관이다.
즉 정부의 교육비 지원을 받지 못해서, 학비가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비쌌다.
게다가 입학자 대부분이 헌터 길드의 추천 입학, 거액의 기부 입학이다.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는 일도 있다고는 하는데···.
엘리트 체육인이나 각성자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선택할 길은 하나다.
가장 빠르게 헌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길!
일용직 헌터!
일명 '짐꾼'으로 헌터업 경력을 쌓는다!
순간 머릿속으로 할 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1. '헌터업 기초안전보건 교육' 이수.
2. 헌터 구인, 구직 사이트에 등록.
3. 새벽 게이트 인력시장에 출근.
'총'보다 '지게'와 더 친해야 한다는 일용직 헌터, 짐꾼!
그러나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거운 걸 나르는 건 예전 노가다를 할 때부터 잘했다.
얼마 전에도 소독 모래 100여 포대를 건물 3층까지 계단으로 나르지 않았던가?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는 짐꾼 계의 전설이 되리라!'
"...."
호기롭게 외쳐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천문석이 전혀 즐겁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
다시 한번 스마트폰이 울렸다.
띠링-
"어? 뭐야? 나도 부르는 거야?"
가슴이 철렁해진 천문석이 스마트폰을 내려다 볼때.
띠링-
띠링-
띠링-
...
고깃집 안의 모든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똑같은 알림음으로.
"어?"
"재난 문자인가?"
...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향하는 순간.
건물 밖 도로에서 사이렌이 들려왔다.
애에에에엥-
"뭐야?"
"오늘 민방위 날인가?"
"어라? 시간이 안 맞는데···."
...
돌연한 상황에 고깃집 안이 웅성거릴 때,
굳은 얼굴의 천문석은 젓가락을 든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
손에서 시작된 떨림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쿵, 쿵 가슴을 울리는 심장.
돌덩이라도 짊어진 듯 뻣뻣하게 굳는 근육.
한기를 뒤집어쓴 것처럼 주뼛 솟아오르는 머리카락.
현생에서는 처음 겪는 감각.
그러나 본능과 전생의 기억으로 알 수 있었다.
생사가 검 끝에 올라선 감각!
천문석이 알 수 없는 직감에 고깃집 밖, 도로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이렌이 끊기고, 급박한 목소리의 방송이 들려왔다.
[실제 상황입니다! 현 시각! 서울 전 지역에 1급 몬스터 위기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
천문석은 직감했다.
게이트 안정화 권역,
서울이 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