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비정규직 천마 -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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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하-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돌머리 꼬맹이의 엄마 장민.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강단 있게 아이를 혼내고,
아이의 잘못에 사과부터 하던 모습에서 범상치 않음을 느꼈었다.
돈과 권력, 명예 무엇이 되었건 뒤가 든든한 사람들은 보통 편협하기 마련이다.
장민의 모습에서는 편협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심 감탄했는데···.
그러나 그 감탄도 꼬맹이 엄마, 장민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냉동 컨테이너라니!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때 꼬맹이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나 좀 몰래 들여보내 주면 안 돼? 앙꼬 뭐 하나 쓱 보고, 새 모래만 슬쩍 만지고 나올게."
꼬맹이는 어느새 땅에 그린 고등어 컨테이너 그림을 덧칠한 커다란 'X'자로 지우고,
그 위에 쪼그려 앉아 반짝이는 눈으로 천문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천문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무뚝뚝한 목소리.
"No!"
제임스가 건물 입구에서 나오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왜에에? 잠깐이면 된다니까! 새 모래 한 번만 만지고 올게!"
꼬맹이는 즉각 항의했다.
제임스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항의하는 꼬맹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지금 사장님께 물어볼까?"
"개미! 지렁이! 파리! 거미! 모기! 매미! 잠자리! ···"
꼬맹이는 갑자기 벌레 이름을 외치다가 소리쳤다.
"전부! 전부다! 먹일 거야! 잘 때 먹일 거야! 화장실에서 던질 거야! 신발에 몰래! 넣을 거야!"
움찔하는 여자 경호원과 무뚝뚝하게 차로 걸어가는 제임스.
에휴-
꼬맹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작별 인사를 했다.
"알바. 안녕···. 한 달 뒤에 꼭 보자. 앙꼬한테···. 아냐··· 됐어."
힘없이 작별 인사를 한 꼬맹이는 제임스를 따라갔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어린이 자동차를 몰아서.
천문석은 멀어지는 꼬맹이에게 말했다.
"잘 가라. 꼬맹이."
'한 달 뒤엔 내가 여기에 없겠지만 말야. 흐흐흐···.'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멀어지는 꼬맹이를 보던 천문석은 문득 깨달았다.
자동차!
저 정도 퀄리티의 장난감 자동차면 당연히 모터나 엔진이 달렸을 텐데?
저 녀석···.
"왜? 페달을 돌리고 있지?"
천문석이 의문을 가진 순간,
때마침 들려오는 목소리.
"으아아- 제임스. 자동차는 원래 이렇게 타기 힘든 거야? 다른 애들이 타는 거 보니까. 이렇게 힘든 거 같지 않던데? 내 거가 속도도 좀 느린 거 같고. 이상해. 이거 정말 최고급 맞아?"
"No pain. No gain."
"한국말로 하라니까!"
"..."
잠시 생각하던 제임스가 말했다.
"...비싼 건 원래 그렇다. 삼촌이 사준 최고급 자동차잖아."
"아···."
순간 꼬맹이는 이해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삼촌! 최고급 자동차라 그런지 엄청 힘든 거 같아! 으아악-"
돌머리 꼬맹이는 열심히 페달을 돌려 타고 온 SUV로 향했다.
그러나 힘이 빠지는지 점점 느려지는 어린이 자동차.
"..."
천문석은 천천히 멀어지는 꼬맹이를 한참 동안 봤다.
지난 한 달 동안의 키즈카페 알바 동안.
저 돌머리 꼬맹이를 악마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저 꼬맹이는 7달째 고등어를 먹고 있고.
최고급 어린이 자동차,
저 무거운 차를 열심히 페달을 돌려 타고 있었다.
"..."
어쩐지 땀을 뻘뻘 흘리는 꼬맹이가 조금은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천문석은 힘겹게 멀어지는 꼬맹이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잘 가라. 꼬맹이. 크큭크큽."
참을 수 없는 통쾌함에 웃음을 삼키며.
그리고 몇 시간 후.
천문석도 꼬맹이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으아악!
천문석은 마지막 소독 모래 포대를 내려놓으며 괴성과 함께 털썩 드러누웠다.
근육통에 비명을 지르던 육체는 연이은 강도 높은 노동에 파르르 경련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뒤질 것만 같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개연성 없는 영화처럼 고장 난 엘리베이터라니!
천문석은 100개가 넘는 소독 모래 포대를 계단으로 날라야 했다.
건물 3층, 키즈카페까지!
흐어억!
이때 키즈카페 입구에 다 죽어가는 비명과 함께, 모래 포대를 짊어진 사람이 나타났다.
천문석에게 점심을 사주겠다고 왔다가 같이 모래 포대를 나른 키즈카페 지점장, 김철수였다.
김철수는 모래 포대를 내려놓는 동시에 픽 쓰러지며 말했다.
"문석아. 나···. 너무 힘들다. 아무래도 죽을 것 같다···. 분명 키즈카페 일은 이렇게 힘들지 않다고 했는데···. 으어어. 오늘부터 그냥 네가 지점장 하면 안 될까···."
정신이 나간 듯 중얼거리는 철수형.
천문석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철수형. 이 정도로 안 죽습니다. 그럼 지점장님. 힘내세요."
"어···?"
순간 철수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
천문석의 퇴근 시간이었다.
"문석아···. 나를 버리고 가는 거냐···?"
힘없는 철수의 말에 키즈카페 입구로 걸어가던 천문석이 멈췄다.
'그렇지, 이대로 가면 아쉽지.'
천문석은 앞치마를 벗으며,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는 꼬맹이들에게 외쳤다.
"야! 지점장 철수형이 놀아준단다! 모두 모여라!"
짝짝짝, 짝-
박수를 치는 순간,
터져 나오는 환호성.
우와아아아-
꼬맹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와, 쓰러진 철수에게 달려들었다.
"끄어억- 그만! 올라 타지마···. 무거워···. 그만. 살려줘···! 문석아···!"
고통스러워하는 철수형의 외침을 뒤로하고 천문석은 재빨리 키즈카페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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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 휘이-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가는 천문석의 손에는 묵직한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흐뭇한 눈으로 쇼핑백을 보는 천문석.
이 쇼핑백은 퇴근하는 천문석에게 입구 데스크의 직원이 전해준 것이었다.
데스크 직원은 어떤 경호원같이 생긴 남자가 찾아와 '부점장' 앞으로 쇼핑백을 남겼다고 했다.
바로 감이 왔다.
낮에 소독 모래를 카트에 실을 때 왔었던 돌머리 꼬맹이와 제임스.
그리고 경호원같이 생긴 남자가 데스크에 맡겼다는 쇼핑백.
이 쇼핑백은 경호원 제임스가 맡긴 것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쇼핑백은 묵직했고,
이 무게만으로도 쉽게 보지 못할 선물이란 느낌이 들었다.
흐흐흐-
천문석은 즐거운 마음에 휘파람까지 불면서 걸었다.
이때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왔다.
천문석은 스마트폰 메시지를 보는 순간, 반색했다.
우체국의 등기 우편 배달 문자!
3차 징병검사 결과다!
천문석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날듯이 집으로 뛰어갔다.
드디어 최종 징병검사 결과가 오늘 도착한다.
입대!
다시 한번 삶이 완전히 변할 순간이 왔다!
집에 돌아온 천문석은 재빨리 샤워하고 쇼핑백부터 뒤집었다.
등기 우편이 도착하기 전에 선물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
쇼핑백 안에는 두 개의 상자와 한 장의 봉투가 있었다.
우선 봉투를 열자 직접 쓴 편지 두 장과 백화점 상품권 카드가 들어있었다.
정갈한 서체로 쓰인 편지.
삐뚤빼뚤한 꼬맹이 글씨체로 쓰인 편지.
글씨체만 봐도 누구의 편지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 엄마 장민과 돌머리 꼬맹이의 편지였다.
장민은 편지에서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하고 꼭 병원에 가보고 연락해 달라고 적었다.
그리고 꼬맹이 편지에 적힌 삐뚤빼뚤한 사과.
-알바. 미안합니다. 특급 헌터는 사과합니다. 선물도 넣었습니다. 예쁜 겁니다! 맛은 없습니다. 고등어처럼.
꼬맹이의 엉망인 편지를 보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지난 한 달, 악마 같은 꼬맹이에게 쌓인 분노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천문석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백화점 상품권 카드를 열었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반으로 접힌 카드를 열자 보이는 한 장의 상품권.
"이거 영이 몇 개야···?"
[1,000,000]
놀랍게도 한 장 들어있는 백화점 상품권은 100만 원권이었다.
경호원을 둘이나 데리고 다니더니···.
역시나 선물의 급이 달랐다!
천문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상자를 확인했다.
잘 포장된 큰 상자와 허술한 포장의 작은 상자.
천문석은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었다.
잘 포장된 큰 상자에서는 최고급 홍삼 진액이 나왔고.
돌머리 꼬맹이가 포장한 게 분명한 작은 상자 안에서는 구겨진 신문지가 나왔다.
“...”
구겨진 신문지에서는 고등어 비린내가 났다.
고등어를 매일매일 먹는다더니···.
"하- 꼬맹이 녀석. 이렇게 맥이는 거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며 웃을 때, 구겨진 신문지 사이로 푸른색이 얼핏 보였다.
"응?"
구겨진 신문지를 펼치자,
그 안에서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작은 병이 나왔다.
투명한 작은 병 안에는 선명한 푸른 액체가 담겨있었다.
"어? 이거···?"
천문석은 액체가 담긴 병을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니?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천문석은 재빨리 병을 위로 들어 올려 자세히 살폈다.
"설마···. 그냥 비슷한 거겠지···."
그러나 있었다!
투명한 유리병에 작게 인쇄된 황금색 글자.
재금 제약!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너무나 유명한 회사 이름.
완전히 밀봉된 정교한 유리병.
스스로 빛을 발하는 점성 있는 푸른 액체.
천문석은 깨달았다.
이 작은 유리병에 담긴 푸른 액체의 정체를.
포션!
그것도 보통 포션이 아니라,
재금 제약에서 만들어낸 헌터용 포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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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푸른색의 포션을 보는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생각이 쏟아졌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산하의 재금 제약.
재금 제약에서 만든 헌터용 포션!
비싼 포션,
희귀한 포션,
초고가의 포션.
포션, 포션, 포션···.
포션이라니!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이게 도대체 얼마짜리야?"
천문석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려다가 문득 멈췄다.
잠시 후 터져 나오는 헛웃음.
하-
천문석은 꼬맹이가 보낸 편지를 다시 한번 읽는다.
-알바. 미안합니다. 특급 헌터는 사과합니다. 선물도 넣었습니다. 예쁜 겁니다! 맛은 없습니다. 고등어처럼.
그리고 꼬맹이가 보낸 작은 상자를 다시 본다.
//
허술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
상자 속 고등어 비린내 나는 구겨진 신문지.
구겨진 신문지 사이에 들어있던 재금 제약의 헌터용 포션.
//
천문석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왔다.
꼬맹이는 직접 저 포션을 구겨진 신문지로 말아 상자에 넣어 포장하고 선물이라고 엄마에게 줬을 거다.
그리고 꼬맹이 엄마 장민은 이 상자 안에 포션이 들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자신에게 보냈을 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재금 제약의 헌터용 포션은 '우연한 사고'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천문석은 손에 들린 포션을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제 입었던 바지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곧 주머니에서 나오는 작은 종이.
이 종이에는 꼬맹이 엄마, 장민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병원에 갈 생각도 사례를 받을 생각도 없기에 주머니에 넣어둔 채 잊었던 쪽지다.
그러나 이제 연락할 일이 생겼다.
우연한 사고로 도착한 포션을 돌려줘야 하니까.
"하, 꼬맹이 녀석···."
천문석이 허탈하게 웃으며 전화를 걸려 할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순간 천문석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오늘 온다던,
3차 징병검사 결과다!
천문석은 전화를 받으며 날듯이 건물 1층으로 뛰어갔다.
예상대로였다!
전화를 건 집배원은 병무청에서 발송한 등기 우편을 가지고 있었다.
집배원은 등기 우편을 전해주며 슬쩍 천문석의 얼굴을 살폈다.
"병무청이라니. 입대하시나 보네요?"
천문석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하하. 다음 주면 입대할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요새는 입대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정말 부럽네요."
집배원은 축하의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천문석은 등기 우편을 들고 날듯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5층 옥상까지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왔는데도 가슴만 두근거릴 뿐, 숨은 조금도 차지 않았다.
천문석은 텅 빈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등기 우편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내용물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굳었다.
"...어?"
3차 징병검사 통지서 첫 장에 적혀있는 두 글자가 눈에 날아와 박혔다.
‘면제’
"..."
입대,
헌터 노하우 습득,
헌터 업계 인맥 다지기,
제대 후 중소 헌터 길드 가입.
그리고 건물주···.
앞으로의 인생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