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화 (10/1,336)

# 10

비정규직 천마 - #009

────────────────

#009

지난 한 달을 생각하며 마종권을 펼치던 천문석은 어느새 멈췄다.

하아-

천문석의 시선은 난간 너머 시가지에 있는 고층 빌딩을 향해 있었다.

고층 빌딩의 대형 전광판에서는 '각성 헌터'의 광고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을 초월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상 속 각성 헌터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허무인.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청년 헌터.

자신과 같은 23세의 나이에 대형 길드, 금성 길드의 길드장이자.

그 개인이 움직이는 중소기업이라는 청년 헌터 성공 신화의 주인공 허무인이었다.

허무인의 모습을 보던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하. 저거···. 전생의 나라면 십초지적도 안 되는데···."

그러나 의미 없는 헛된 상상일 뿐이다.

심법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의 천문석은 허무인은 커녕 지금 방금 각성한 헌터의 일초지적도 안됐다.

피지컬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면, 일반적인 기술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천문석은 상승 무공이라는 금덩이가 가득 담긴 상자를 유산으로 받았지만,

맞는 열쇠가 없어 상자를 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통을 터트릴 상황이었다.

눈앞에 금덩이가 있는데!

왜 꺼내지를 못하니!?

그러나 다시 한번 마종권을 펼치며 천문석은 웃었다.

전생과 현생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천문석.

천문석은 포기를 몰랐지만, 안되는걸 붙잡고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열리지 않은 상자 안에 가득한 금덩이,

배울 수 없는 상승 무공에 대한 미련을 웃음과 함께 날려 보냈다.

하하하-

무공을 익혀 각성 헌터로 헌터 업계에 들어간다면, 순식간에 엄청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을 것이다.

각성몽에 의지해 단순하게 무공을 흉내 낼 뿐인 헌터들에게 새로운 무의 지평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노동으로 단련된 젊고 건강한 육체.

무인의 육체는 아니지만, 잘 먹고 자란 이 육체는 전생의 육체보다 기반이 좋았다.

기억나지 않는 천마신공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애초에 스승님에게 낚여서 어? 어!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게 된 마도 18문.

어쩌다 보니, 배우게 된 천마신공.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천마일 뿐이다.

사실 처음부터 마공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위력이 세면 뭐한단 말인가?

결국, 끔찍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나 다른 무공은 좀 아쉬웠다.

마도 18문에 강제 차출돼 배운 사파의 무공.

천마의 경지에 오른 후 몰래 배워둔 정파의 무공.

한 호흡의 진기만 모을 수 있다면 그걸 다시 익힐 수 있을 텐데···.

이때 문득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휘이이-

천문석은 차가운 바람에 몸에 오른 땀이 식는 순간, 마지막 남은 아쉬움 마저 날려 보냈다.

하-

짧은 웃음과 함께 흩어지는 아쉬움.

그와 동시에 자신의 진정한 목적이 기억난다.

목적과 수단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

무공을 배워 각성 헌터가 되는 건 수단일 뿐이었다.

천문석.

전생 천마의 진정한 목적은 건물주!

전생의 무공은 되찾지 못했지만,

지금의 자신에게는 전생 천마의 기억이 있다.

피와 죽음이 가득한 수라장을 헤쳐나온 실전 경험과 기억!

모든 경험과 기억이 남아있는 건 아니지만,

이걸로도 넘치도록 충분했다.

비각성 헌터여도 괜찮았다.

천문석은 제대 후 군 경력과 인맥을 기반으로 헌터 업계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위로 치고 올라갈 자신이 있었다.

비각성 헌터로도 서른 이전에 건물을 살 자신이!

하하하-

천문석은 통쾌하게 웃었다.

10을 줬다가 7을 뺏어갔다 해도 여전히 3은 남아있다.

남겨진 이 3만으로도 충분했다!

미련을 털어버리고,

흥에 취한 천문석은 마종권에 몰입했다.

텅 빈 옥상,

전생 천마의 마종권이 크고 넓게 펼쳐졌다.

마종권.

기억에 남은 마지막 무공.

명문 정파와 마도 18문은 배운다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 생각하고,

어지간한 방파만 돼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무공이다.

마종권은 마도 지존, 천마가 알만한 무공은 아니다.

그러나 천문석은 마종권과 마종문을 아주 잘 알았다.

문득 거지꼴인 꼬맹이들이 잔뜩 모여 마보를 서는 기억이 떠오른다.

옛 기억에 입가에 웃음이 그려질 때,

다시 한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뒷목을 잡고 쓰러져 부들부들 떠는 노도사.

천마수에 지면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던 놈들이,

마종권에 얻어터지면 당장이라도 뒤로 넘어갈 듯 분노했었다.

하하하-

기반이 되어줄 심공이 없기에 전생과 같은 위력을 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현생 알바인 자신에게는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천문석은 마종권에 마음을 모았다.

묵직한 걸음으로 구르듯 걸으며,

두 팔은 춤추듯 경쾌하게 바람을 가른다.

상승 무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할 단순한 무리가 펼쳐진다.

이 단순함은 하나를 들어서 하나를 알고.

한 걸음 걸어 한 걸음 나아가는 정직함이다.

이 정직한 움직임으로 육체를 깎고,

이 단순한 무리에 일념으로 모은 뜻을 싣는다.

어리석을 정도로 우직하고 정직하게 펼쳐지는 한 동작, 한 동작.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근육은 단단히 경직되어 파괴되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풀린다.

마종권이 이어지며,

육체는 매 순간 단련되고 깎여나갔다.

거대한 화강암이 정에 깎여 불상이 되듯이.

천문석의 육체는 점점 무인의 육체로 변해갔다.

이 순간 천문석은 마음으로 뜻을 세웠다.

심공을 익히지 못해도 괜찮다.

상승의 무리에 닿지 못해도 괜찮다.

내공이 없다면 외력으로!

상승의 무리에 닿지 못한다면,

평범한 무리에 혼을 싣는다!

천문석은 무아지경 속에서 몇 번이고 마종권을 펼치고 다시 펼쳤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끄어어억-

천문석에게 지옥의 근육통이 찾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노동으로 단련된 육체였지만.

노동과 무공은 달랐다.

아주 달랐다.

---

"내가 미친놈이지."

천문석은 한탄하며 키즈 카페로 출근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고장 난 갑옷처럼 삐걱거리는 관절.

매 발걸음.

발바닥에서 시작해 종아리, 허벅지, 복부, 등, 어깨, 팔을 타고 머리끝까지 찌르르 울리는 끔찍한 근육통!

으어어-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전신 근육통에 고통스러워했다.

어젯밤 옥상.

크게 흥이 오른 천문석은 몇 시간이나 마종권을 펼쳤다.

내기 한 점 실리지 않은 육체 본연의 힘,

외력만으로 펼쳐진 마종권은 천문석의 육체를 무인의 육체로 깎아냈다.

그리고 당연히 지옥의 근육통이 찾아왔다.

이때 몸에서 확 올라오는 화한 냄새가 느껴졌다.

고등학생 1학년 여름 방학.

처음 노가다 일을 다녀온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냄새다.

싸하고 동시에 화한 자극적인 냄새!

천문석의 전신에는 수십 장의 파스가 붙어있었다.

벌써 걱정이 되었다.

키즈 카페의 악마들.

이런 몸으로 오늘도 키즈 카페의 악마들을 상대해야 했다.

문득 하루 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과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철수형의 상태를 생각하면 도저히 못 할 짓이었다.

잠시 후, 천문석은 키즈 카페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입구.

알록달록 예쁘게 채색된 캐릭터가 그려진 입구가 지옥문 같았다.

천문석은 잘 떼어지지 않는 발과 근육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몸으로 오늘의 일일 퀘스트 장소 키즈 카페로 들어갔다.

...

그 날 키즈 카페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키즈 카페 한가운데 우뚝 선 천문석.

"하하하!"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

으아앙-

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는 꼬맹이!

키즈 카페 가운데 텅 빈 공간,

천문석은 거만한 눈으로 도망치는 꼬맹이를 내려다봤다.

"그 정도냐! 꼬맹이! 크크크."

이때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

천문석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한 손으로는 코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신발을 끼고 들고 달려드는 꼬맹이!

매서운 창처럼 다가오는 신발을 휙 피하고,

깜짝 놀란 꼬맹이를 두 손으로 잡아 번쩍 들어 올린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깨달은 꼬맹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으아으아-

"잘못···."

울먹이며 사과하지만,

이미 늦었다!

천문석은 손목의 파스를 꼬맹이의 이마에 문질렀다.

얍, 얍-

입으로 얄미운 효과음까지 내며 문지르는 손목!

으아아앙-

"매워, 매워!"

꼬맹이는 매운 파스에 엉엉 울면서 도망쳤다.

하하하-

순간 천문석은 크게 웃었고, 그 주위를 둘러싼 꼬맹이들은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코를 잡은 채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떡해!

"으아. 무서워···."

"냄새! 냄새가 매워!"

"알바몬이 진화했어!"

...

악마 같은 꼬맹이들의 두려워하는 표정이라니!

근 한 달 만에 처음 겪는 역전된 상황!

전신에 화한 파스를 붙인 천문석은 냄새에 민감한 꼬맹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기쁘다.

병신같지만 너무나 기뻤다!

으하하하-

쿵, 쿵, 쿵-

천문석은 크게 웃으며, 안전매트를 소리 내 쿵, 쿵 밟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우와아-

순간 웅성거리던 꼬맹이들이 깜짝 놀라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쳐!"

"잡히면 안 돼!"

"파스몬이 온다!"

...

"이리 와라! 파스를 문질러 주마!"

천문석은 빼곡히 파스가 붙은 두 팔을 열심히 흔들어 냄새를 풍기며 흐느적흐느적 무섭게 꼬맹이들을 쫓았다.

우와아-

으아아앙-

크큭크카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소리 지르며 도망치는 꼬맹이들!

환호와 즐거움, 거만함이 뒤섞인 괴성을 지르며 뒤쫓는 천문석!

캬캬캬-

역전된 상황에 천문석은 너무나 즐거웠다.

오늘 천문석은 작은 악마들에게 괴롭힘당하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지옥의 악마들마저 두려움에 벌벌 떠는 진정한 천마였다!

크캬하카카-

천문석은 가슴이 터질듯한 기쁨을 담아 하늘을 찢는 괴성을 터트렸다.

순간 악마 꼬맹이들은 코를 잡은 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우와아아앙-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두려움에 벌벌 떨던 작은 악마들은 금세 진화했다.

"던져라, 던져!"

"죽어라. 파스몬!"

...

얍, 얍-

투두두둑-

얄미운 기합과 함께 사방에서 비 오듯이 날아오는 물건들!

탄성 볼,

나무블록,

플라스틱 장난감.

...

이놈들 접근을 하지 못하니 원거리 투석전으로 전환한 거냐?!

절망적 상황이다.

나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없는데, 저 작은 악마들은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천문석이 탄성 볼에 맞아가며 달리기가 느린 어린 아이에게 접근했으나,

어느새 큰 아이가 잽싸게 튀어나와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

"같이 도망가자! 내 손을 잡아!"

"어딜! 도망가려고!"

천문석이 아이를 낚아채려는 순간,

날아오는 그것!

"컥! 야! 어린이 젤리는 안돼!"

경악한 천문석이 외쳤으나, 바닥에 떨어진 어린이 젤리는 참사를 일으켰다.

“...!”

그리고 영악한 악마들은 파스몬이 어린이 젤리를 두려워하는 걸 눈치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어린이 젤리와 과자들.

"야, 야! 무승부로 하자! 그만해!"

천문석은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악마들은 거부했다.

얍, 얍!

"던져라!"

우히히히-

신난다!"

...

아이 특유의 새된 환호성과 즐거움 가득한 목소리가 금세 키즈 카페 안에 가득 찼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돌변한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꼬맹이들이 던지는 물건,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더럽잖아!'

아니 그보다 상황이 나쁘다.

이거 내가 다 치워야 하는 거잖아!?

"야. 그만 던져! 타임! 정지! 항복!"

그러나 잔인한 꼬맹이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천문석이 한참 동안 고통받고 있을 때, 구원의 기적 소리가 울렸다.

뿌우우웅-

"어린이 여러분! 기차가 이제 곧 출발해요!"

와아아-

"우리가 이겼다!"

"파스몬을 물리쳤다!"

꼬맹이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기차를 타러 달려갔다.

"..."

사방에 널브러진 탄성 볼과 블록, 장난감.

먹던 과자, 녹은 사탕, 으깨진 초콜릿과 어린이 젤리···.

꼬맹이들이 사라진 곳.

엉망이 된 키즈 카페 한가운데 천문석만 남겨졌다.

툭, 툭-

그리고 다리를 두들기는 누군가.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고개를 숙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화려한 금발을 땋아올린 여자아이.

"오늘은 왜 그러니?"

천문석의 물음에 금발 아이는 먹던 사탕으로 천문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You lose."

"..."

그리고 금발 아이는 기차를 향해 달려갔다.

"입영통지서는 언제 오는 거야···."

이 순간.

지금 당장이라도 입대하고 싶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