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화 (6/1,336)

# 6

비정규직 천마 -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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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식사가 끝난 거실.

류세연이 설거지하는 사이.

천문석은 삐딱하게 거실 소파에 누운 채 다리를 까닥이며 말했다.

"요알못! 요리 흙손! 패배자! 류세연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천문석의 놀리는듯한 말에 설거지 중이던 세연이 발끈했다.

"야!"

카카카-

아이들이나 할법한 유치한 말장난.

그러나 너무나 즐거웠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집에 거의 없었던 천문석이다.

그리고 그건 한층 아래 살던 류세연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남매처럼 같이 놀고, 같이 밥을 먹곤 했다.

그리고 처음 세연에게 라면을 끓여 줬을 때 자신에게 붙은 '요알못' 타이틀.

그 요알못 타이틀이 10년을 이어졌다.

10년!

생각해보니 정말 긴 시간이었다.

어느새 자신은 입대를 기다리는 휴학생이 되었고, 류세연은 고3 학생이 되었다.

이렇게 긴 시간 자신에게 붙어있던 요알못이란 타이틀이 마침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요알못 타이틀이 류세연에게 붙었다.

요알못 류세연이라니.

운동, 공부 모든 걸 잘하는 류세연은 이제 요알못이다!

드디어 세연에게 이겼다!

전생은 최고였다!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요리를 가르쳐준 전생의 스승님께 감사했다.

당시에는 미친 중이란 말을 수도 없이 속으로 삼켰으나, 역시 뭐든 배우면 쓸 일이 생기는 법이다.

설령 그게 전생이라 해도 말이다.

이때 설거지를 하는 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텔레비전 좀 켜봐. 한국말이 듣고 싶어."

"어."

대답한 후 반사적으로 리모컨을 찾는 천문석. 그러나 리모컨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사라진 상태였다.

천문석은 몸을 일으켜 직접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때마침 저녁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인천 송도에 열렸던 던전의 클리어 소식을 전하는 뉴스.

[어제 아침 송도에 열린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던전 클리어의 주역은 금성 그룹 산하의 금성 길드입니다. 하루 만에 던전 클리어를 해낸 금성 길드는 헌터 허무인씨가 이끄는···.]

"송도에는 언제 던전이 열린 거야? 요새 던전이 자주 열리네."

천문석의 혼잣말에 설거지 중인 류세연이 대답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거의 안 열리는 거야. 저 던전도 두 달 만에 열린 거지?"

"너 연수 가고 인천에서만 두 번인가 세 번 열렸어. 수도권에서 점점 많이 열리는 것 같은데···. 남부지방에서는 훨씬 많이 열렸고."

"그래도 그 정도면 양호한 거지. 영국에 있을 때는 사흘 동안 열 번! 한번은 근접 경보 떠서! 지역 주민들이랑 대피소까지 들어갔었다니까!"

어이없어하는 세연에게 천문석이 물었다.

"유럽은 여전히 난리인가 보네?"

고개를 끄덕이는 세연.

"런던이랑 파리같이 게이트가 안정화된 도시에는 공원이나 골목마다 난민촌이 있더라고. 던전이 안 열리는 게이트 안정화 지역으로 계속 사람들이 몰려드나 봐···."

세연의 말을 듣던 천문석이 깜짝 놀랐다.

"너? 난민촌에 들어간 거야?"

"내가 바보야? 난민촌을 들어가게? 런던 대영제국 박물관, 파리 에펠탑,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연수 코스 곳곳에 천막하고 임시 건물로 만든 난민촌이 있더라고. 유명한 헌터 길드 근처에도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기 지역 좀 수복해 달라는 시위대에···. 게이트가 안정화된 대도시는 전부 난리야. 특히 동유럽은 더 심한데···."

천문석은 이어지는 세연의 말을 흘려들으며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배웠던 역사를 떠올렸다.

게이트가 열렸던 대도시가 다시 부흥하다니.

새옹지마인 상황이었다.

20년 전.

21세기가 시작됐다고 ‘인식’됐던 그 날.

1999년 12월 31일에서 2000년 1월 1일로 넘어가던 자정.

세계는 새 천 년을 맞아 들썩이고 있었다.

새천년에 대한 기대와 노스트라다무스의 공포의 대왕, 밀레니엄 버그 같은 두려움이 공존하던 그때.

'게이트 사태'가 발생했다.

지구와 이세계를 연결하는 '게이트'가 세계 각지에 생겨나고,

세계 곳곳에 닫힌 공간 '던전'과 이세계의 틈 '균열'이 나타났다.

그리고 상상 속에나 존재하던 온갖 동물과 괴수들, 통칭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

처음 게이트와 던전, 균열이 생겨난 지역 대부분은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된 대도시였다.

대도시에 생겨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며 대도시의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대규모 피난민이 발생했다.

게이트가 발생한 대도시는 일부였지만,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된 대도시의 파괴는 연쇄적인 파급을 일으켰다.

때마침 그때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세기말이었다.

각종 종말론이 퍼져있던 세기말에 쏟아진 몬스터에 사회는 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세계 경제 그 자체인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었다.

종말과도 같은 상황에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팔 수 있는 모든 걸 팔았다.

주식, 채권이 헐값에 쏟아지고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가 벌어졌다.

풋옵션, 매도 포지션 선물이 폭락하고 콜옵션, 매입 포지션 선물의 가치가 폭등하다가 이내 폭락해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화폐에 기반을 둔 현대 경제체제의 핵심은 '신용' 즉 믿음이었다.

폭락장에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가격은 내려가도 시장 그 자체, 국가 체계가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게이트 사태.

'신용'을 공급하는 '국가' 자체가 사라질 초유의 상황이었다.

어차피 죽으면 재산이 소용없는 것처럼.

국가가 망하면 '돈'은 그림이 그려진 종이일 뿐이고,

'금융 자산'은 장부와 전산에 숫자로만 존재하는 허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허상일 뿐인 화폐 금융 시스템은 실물 경제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일주일간의 금융시장 폭락 이후.

전 세계 경제가 한 번에 무너졌다.

몇몇 중진국은 단숨에 파산하고,

영국, 프랑스, 한국 같은 수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마저 뿌리째 흔들렸다.

IT 호황이던 미국과 한창 개혁개방에 시동을 걸고 WTO 가입을 추진하던 중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연이은 사건에 내전 직전의 상황까지 갔고,

중국은 몇 년 동안 이어진 혼란에 아예 나라가 쪼개지고 자치구가 반독립을 했다.

유럽과 남미, 동남아와 인도도 마찬가지 상황.

의외로 러시아와 아프리카, 일본은 선방했다.

러시아는 강추위에 몬스터마저 얼어붙었고,

아프리카는 거대한 대륙에 오히려 한 줌 몬스터가 삼켜졌다.

그리고 일본.

하-

일본을 생각하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일본에는 게이트가 열리지 않고, 던전과 균열만 생겼다. 당연히 게이트처럼 몬스터가 쏟아지지는 않았다.

이걸 일본인들은 신의 축복으로 생각했었다.

-21세기의 초강대국 일본!

-신의 선택을 받은 일본 열도!

-일본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

-일본을 안전보장이사국, 상임이사국으로!

-7개의 게이트가 열린 한국의 지옥 같은 상황!

...

천문석은 박제되어 지금도 돌아다니는 수많은 짤방들을 생각하며 웃음을 삼켰다.

역시나 세상사 새옹지마!

한 치 앞을 모르는 건 사람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게이트 사태 초기만 해도 일본은 자신들이 세계질서를 주도할 줄 알았을 거다.

왜 안 그렇겠는가?

게이트 사태 이후 시작된 전 세계적인 경제 붕괴.

주식, 채권, 옵션 같은 금융 자산은 펑- 거품처럼 사라지고,

식량과 석유, 강철, 시멘트, 무기 같은 실물 자산의 가치가 폭등했다.

그러나 실물 자산이 있다고 해도 공급할 물류가 마비된 아포칼립스 상황이었다.

아무리 가치가 폭등한다고 해도 수요자에게 공급할 방법, 물류가 마비됐다면 의미가 없었다.

식량은 썩어가고, 석유와 강철같은 자원은 먼지만 쌓였다.

결국, 사회 공급망이 붕괴하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몬스터를 피해 무작정 도망쳤다.

각국의 군대는 내부에서 쏟아지는 적,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몬스터와 난전을 벌였다.

대도시에서 펼쳐진 대규모 시가전 상황,

불리한 시가전임에도 군대의 화력은 순간적으로 몬스터를 압도했다.

그러나 현대화된 군대의 막강한 화력은 엄청난 보급으로 가능한 것.

전방과 후방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 제대로 된 군수 보급이 가능할 리 없었고, 전황은 빠르게 나빠졌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일본도 던전, 균열은 나타났지만, 대규모로 몬스터가 쏟아지는 게이트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바다로 사방이 막혀 있는 일본 열도는 유럽처럼 타국에서 몬스터가 유입될 걱정이 없었다.

일본은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을 거다.

2차 세계대전 유럽이 전화에 휩싸였을 때,

미국이 북미 대륙이라는 안전한 섬에서 막대한 물자를 생산해 대공황을 벗어나고 지구상 유일의 수퍼 파워가 된 것처럼.

일본은 게이트 사태로 박살 난 전 세계에 각종 물자를 공급하며 초강대국으로 일어서리라는 꿈에 부풀었다.

당시에는 일본만이 타국을 지원할 여력을 가진 유일한 나라였던 만큼 당연한 생각이었다.

바다에 떠 있던 수많은 선박이 안전지대를 찾아 일본으로 향했고,

각국 정부 인사들을 태운 비행기가 일본에 속속 착륙했다.

마치 일본에 새로운 UN이라도 생겨난 듯한 모습이 연출되고,

각국에 대한 지원방안과 대가가 논의됐다.

나라가 망하게 생긴 세계 각국은 평소라면 절대 불가능할 엄청난 이권과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를 일본에 약속했다.

새로운 21세는 일본이 주도해나갈 것만 같았다.

생각을 이어가던 천문석의 입가에 문득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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