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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화 (5/1,336)

# 5

비정규직 천마 -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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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뭐가 훌륭한 보상인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길옆 공원 방향.

"어?"

공원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비가 내리는 주택가 공원.

텅 빈 공원의 그네 위.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색이 바랜 녹색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대충 발에 걸친 채 그네를 흔드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

류세연.

한 달 전, 국가 핵심 인재로 해외 체험 연수를 나갔던 주인집 고등학생 딸, 류세연이었다.

"너 언제 돌아온 거야?"

천문석이 묻는 순간.

이얏!

류세연은 기합과 함께 그네를 크게 앞뒤로 흔들더니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단숨에 달려와 천문석이 든 봉투를 휙 낚아챘다.

"돼지고기에 맥주, 파, 두부, 마늘. 버섯. 오늘의 요리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봉투 안을 살피며 외치는 류세연.

"너. 뭐냐? 언제 온 거야?"

"와! 김치찌개! 정말 그리웠어!"

류세연은 대답 없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천문석을 놓아둔 채 봉투를 들고 달렸다.

"어서 와! 늦게 오면. 내가 다 먹어 버릴 거야!"

"야! 야! 거기서!"

깜짝 놀라 외쳤지만,

류세연은 전력 질주로 달려 금세 멀어졌다.

역시! 중장거리 달리기 선수 출신 다운 속도!

그러나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다면 하는 류세연!

천문석은 바로 세연을 따라 달렸다.

그리고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할 때쯤, 천문석은 자신의 옥탑방이 있는 언덕길 끝 건물에 도착했다.

순간 옥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이! 운동 좀 해야겠어. 뭐 이리 늦어!"

류세연은 손을 흔들며 외치더니 쏙 사라졌다.

그렇다. 세연의 말대로였다.

아이들에게 하도 시달리다 보니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목적지는 5층 건물 옥상, 자신의 옥탑방.

체력이 떨어지고 갑자기 달리기까지 한 몸에는 계단 하나하나가 너무 힘겨웠다.

천문석이 헉헉 숨을 몰아쉬며 옥상에 도착했을 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삐, 삑-

류세연은 어느새 옥탑방 도어락을 풀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야. 너 문은 어떻게 연 거야? 비밀번호 바꿨는데!?"

천문석이 분노를 담아 외칠 때, 방 안으로 들어간 류세연의 감탄성이 들려왔다.

"와! 언제 이렇게 치웠대? 한 달 전이랑은 딴판이잖아?"

류세연의 말대로였다.

잡다하게 이것저것 널려있던 방안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것도 전생을 기억한 후 달라진 일이었다.

평생 자신만의 것을 별로 가져본 적 없던 전생의 천문석.

그는 언제나 제 한 몸 훌쩍 떠나면 될 것 같은 삶.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미니멀리스트로 살았었다.

그리고 전생을 기억한 현생의 천문석도 성격이라도 변한 듯, 집안에 잡다하게 널린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결국, 천문석은 눈에 거슬리는 잡다한 물건을 싹 가져다 버렸다.

천문석은 열려있는 문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봤냐?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정리를 하면 이 정도다."

류세연은 대답 없이 방안 곳곳을 살폈다.

주방, 거실과 방이 분리된 12평 정도 되는 1.5룸 옥탑방.

책과 상자, 잡동사니가 사라진 널찍한 거실에는 텔레비전과 소파, 커다란 러그 하나만 남아있었다.

휑한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향하는 류세연.

"베란다도 치웠네?"

류세연은 텅 빈 베란다를 보며 반색했다.

전에는 베란다에 쌓인 짐으로 창문이 완전히 가려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탁 트인 창문 밖으로 비 내리는 저녁 시가지가 훤히 보였다.

"당연하지."

천문석은 짐짓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류세연은 혀를 차면서 천문석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게 진작 치웠어야지! 이거 봐 얼마나 좋아."

류세연은 방안과 화장실을 살피고 냉장고를 열어 검사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드라마 속 엄마가 자취방을 검사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세연과 알고 지낸 천문석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어느새 집안을 다 살핀 류세연이 칭찬하듯 천문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주 좋아! 정말 잘했어!"

류세연은 당연하다는 듯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연필을 꽂으며 선심 쓰듯 말했다.

"청소도 잘했으니. 오늘 요리는 내가 해주겠어!"

평소라면 당연한 일.

그러나 천문석은 깜짝 놀라 류세연을 말렸다.

"야! 스톱! 요리는 내가 할게!"

"뭐? 삼촌이 요리한다고?"

류세연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천문석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삼촌 요알못이잖아? 괜히 음식물 쓰레기 만들지 말고 나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아?"

천문석은 코웃음이 나올뻔했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류세연의 불신 어린 표정.

그동안의 전적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예전의 요알못, 천문석이 아니었다.

전생에 천마···.

아니 천마인 건 상관이 없고 그 전.

어린 시절 함께 여행하던 스승님.

스승님은 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미식가였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미식가인 만큼 요리도 잘했던 스승님.

천문석은 스승님에게 머리통을 맞아가며 요리를 배웠었다.

물론 전생에 김치찌개를 배웠던 것은 아니지만, 요리의 기본은 똑같았다.

지금이 자신의 요리 솜씨를 보일 때렸다.

천문석은 불신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세연을 툭 싱크대에서 밀어내고 요리를 시작했다.

밥솥에 밥을 올리고, 봉투 속 재료를 늘어놓은 후 손을 씻고 식도를 꺼낸다.

우선은 재료 손질부터.

간결한 동선!

재빠른 움직임!

보이지 않는 속도로 파와 두부, 버섯, 돼지고기를 다듬는다.

타다다다닥-

경쾌한 도마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천문석을 바라보던 세연의 눈빛이 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지! 이건 뭐야!? 님! 이거 어떻게 된 거임?!"

깜짝 놀란 세연의 외침에 천문석은 거만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요리 금방 되니까. 거기 밥상 펴고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라."

"어···. 알았어."

세연은 얼빠진 표정이 되어 거실에 상을 폈다.

익숙한 솜씨로 상 위에 반찬 그릇을 놓고 냉장고 안의 밑반찬을 담는 세연.

“삼촌.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세연은 갑자기 할 일이라도 생각났는지 소리치고 집에서 나갔다.

이 사이 천문석은 재료 손질을 끝내고 요리를 시작했다.

커다란 냄비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볶는다.

고기가 익고 지방이 녹아 기름이 나올 때 들어가는 다진 마늘.

다진 마늘이 기름에 튀겨지며 고소한 향이 풍길 때.

송송 썬 잘 익은 김치와 고춧가루를 듬뿍 넣는다.

차아아아-

돼지고기, 다진 마늘, 김치가 식용유에 튀겨지듯 볶아지며 매콤하고 짭조름한 냄새를 퍼트렸다.

이제 육수를 넣을 차례.

천문석은 넉넉하게 냄비 안에 물을 붓고 마법의 조미료 다시다를 크게 한 숟갈 넣었다.

이제 찌개가 끓어오를 동안 반찬을 준비한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계란후라이를 하면서 동시에 석쇠에서는 김을 굽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

무공은 익히지 못했지만,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움직임은 점점 경쾌해졌다.

그 경쾌한 움직임이 요리를 하는 지금 이 순간 드러나고 있었다.

접시 위에는 순식간에 계란후라이와 완벽하게 구워진 김이 쌓였다.

그리고 천문석이 다진 파와 참기름, 간장, 깨로 양념장을 만들어 내는 순간.

치이익-

뽀그르르-

밥솥에서 김이 솟아오르고 동시에 냄비 뚜껑이 들썩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타이밍!

어느새 싱크대 옆으로 돌아온 세연이 경악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뭐지! 재수인가? 요알못 오빠가! 요리 타이밍을 맞췄다고?!"

"삼촌이라니까!"

천문석은 은근슬쩍 기어오르는 세연의 말을 정정하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뽀그르르르-

기름기 가득한 붉은 국물이 끓어오르는 순간.

화악- 올라오는 뜨거운 김과 침샘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

맛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김치찌개는 A급이다!

천문석이 A급 김치찌개에 파와 두부를 넣을 때,

불쑥 냄비 위로 내밀어지는 숟가락.

"으아아- 김치찌개 그리웠어!"

세연이 탄성을 터트리며 찌개를 떠먹으려 했다.

탁-

순간 숟가락을 저지하는 국자.

천문석은 국자로 세연의 숟가락을 일어내며 거만하게 말했다.

"어디! 차려지기도 전에! 내 작품에 숟가락을 올려!"

쳇!

세연이 혀를 차는 순간, 울리는 밥솥의 취사 완료 소리.

띠띠띠, 띡-

자신의 예상대로.

모든 게 완벽한 타이밍에 끝났다!

천문석은 김치찌개를 상 위에 올리고, 밥솥을 열어 김이 펄펄 오르는 새하얀 쌀밥을 밥그릇에 담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두 사람이 어렸을 적부터 같이 밥을 먹던 상에 저녁 식사가 차려졌다.

김치찌개와 계란후라이, 구운 김, 정갈한 반찬들.

그리고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오는 윤기 나는 쌀밥.

어느새 상 앞, 자신의 자리에 앉은 세연이 외쳤다.

"셰프! 이제 먹어도 되는 겁니까?"

천문석은 김치찌개에서 큼지막한 고기와 두부를 듬뿍 떠서 세연의 앞접시에 올려주며 대답했다.

"아유. 우리 류세연 어린이. 외국 가서 한국 음식 먹고 싶었어요? 많이 먹어요."

"아재 멘트 극혐! 이게 이십 대의 입에서 나올 멘트란 말인가!"

야유하듯 투덜거리는 세연.

그러나 김치찌개를 먹는 순간 세연의 눈이 커졌다.

총이라도 맞은 듯 경악한 표정.

세연은 숟가락으로 탁! 상을 내려치더니 맞은편의 천문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런 젠장! 이거 뭐야···!?"

흐흐흐-

뒤에 나올 말을 예상한 천문석이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웃을 때,

류세연은 분한 어투로 외쳤다.

"이거 맛있잖아!"

"크하하하"

천문석은 승리의 웃음을 지었고 세연은 밥과 김치찌개, 계란후라이를 먹으며 연신 감탄했다.

"흐어어. 맛있어!"

그리고 방언 터지듯 쏟아지는 감탄사!

"이건 무슨 맛이란 말인가!?"

"쫄깃한 살코기! 그리고 사르르 녹아드는 지방!"

"이것이야말로 돼지고기의 참맛!"

"거기에 다진 마늘의 감칠맛과 잘 익은 김치의 풍미까지!"

"이 김치찌개는 최고야!"

"피쉬앤칩스는 비교도 안 돼!"

"정어리 파이는 역시! 음식에 대한 모독이었어!"

"으어어- 맛있어!"

한 달 동안 외국에 나가 있던 세연은 평소보다 빠르게 뜨거운 밥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밥을 먹던 세연은 문득 천문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요알못 삼촌 요리가 맛있다니···. 한 달 동안 요리 연습을 한 건가? 젠장!"

천문석은 괴로워하는 세연을 가리키며 엄격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제 요알못은 류세연 너다!"

"헉! 내가 요알못이라고!?"

천문석은 과장되게 괴로워하는 류세연을 보며 맥주 한 캔을 따서 쭉 들이켰다.

카-

평소보다 열 배는 맛있는 맥주!

승리 후 마시는 맥주는 역시 최고였다.

쏴아아-

창밖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빗소리.

최고로 맛있는 맥주.

뜨거운 밥과 김치찌개.

그리고 같이 밥을 먹을 사람까지.

오늘 저녁은 평소보다 더 만족스러운 A급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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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탄하던 천문석은 문득 상 위를 봤다.

류세연의 앞접시에 수북하게 쌓인 돼지고기.

그런데도 류세연은 국자로 김치찌개에서 돼지고기를 골라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세연이 놀리듯 말했다.

"돼지고기 맛있어! 냠냠!"

분노한 천문석이 외쳤다.

"야! 이런 사마외도···. 아니 사파의 종자 같으니라고! 돼지고기만 골라 먹지 마라!"

"어허. 식사는 전투다! 각개전투! 몰라?"

뻔뻔한 세연의 대답에 천문석은 한탄했다.

"돼지 같은 녀석···."

순간 세연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

"꿀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여고생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란 말인가?

그러나 천문석은 곧 제정신을 차렸다.

한 달 만에 만나서 깜빡했지만,

류세연은 원래 이런 애였다.

예전부터.

"비켜! 내가! 먹을 거야!"

"앗!"

천문석은 잽싸게 세연이 든 국자를 빼앗아 찌개를 가득 담았다.

그리고 예전에 자신이 세연에게 했던 말대로 전투적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는 전투다!

각개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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