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화 (4/1,336)

# 4

비정규직 천마 -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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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天問石).

전생을 깨달은 천문석은 전율했다!

내가 천마라니!

짧은 전율 뒤 천문석은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현생과 전생의 이름이 한자마저 똑같은 것도 이상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천마'라는 단어 그 자체.

천마(天魔)!

'천마'는 실존하는 인물의 명칭이 아닌 무협 세계관에서 태어난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전생이 '천마'라는 말은 전생이 '스머프', '둘리'라는 말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셋 모두 누군가의 전생이 될 수는 없었다.

당연했다.

'천마', '스머프', '둘리' 모두 창작물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의 인물이 아니니까.

그래서 천문석은 스스로를 의심했다.

거기에 더해 전생의 모든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 게 아니라, 선명하고 흐릿한 기억이 뒤섞여 맥락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을 키웠다.

이어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

-버려진 사당에 모여 사는 아이들.

-허름한 승복을 입은 스승님과의 여행.

-깊은 산맥 속 버려진 사찰을 홀로 청소하는 자신.

-어설프게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베다가,

다음 순간에는 천지가 무너질듯한 광포한 보법을 밟고.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채 마귀들을 쳐 죽이다가,

천지를 잇는 거대한 빛 속에서 스스로를 불태운다.

떠올리는 순간 압도되는 기억.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기억.

자신이 자각한 전생은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인 기억과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23세 청년인 천문석은 갑자기 떠오른 이런 기억들이 자신의 전생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천문석은 추론했다.

혹시···. 내가 능력을 '각성'한 건가?

21세기는 헌터의 시대.

헌터 중에서도 각성 헌터는 모두가 선망하는 대상이기에 천문석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이것이 각성 헌터가 각성 후 꾼다는 각성몽이라면 불과 하루 전 받았던 3차 징병검사에서 당연히 각성 반응이 나왔을 거다.

그렇다면 예전에 읽었던 소설을 꿈꾼 건가?

아니 어쩌면, 내가 전생이라고 생각하는 이 기억은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망상인 게 아닐까?

전생을 깨달은 천문석은 끝없이 의심했다.

전생의 기억 중 천마신공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천마가 천마신공을 잊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천문석의 의심은 점점 커졌다.

결국, 모든 게 백일몽일 뿐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 할 때,

한순간에 모든 의심이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

너무나 분명한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통-

이때 발밑에서 들려오는 소리.

생각에 잠겨 걷는 천문석의 발에 버려진 캔 하나가 걸렸다.

문득 고개를 내리니 캔에 인쇄된 얼굴이 보였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각성 헌터, 허무인.

걸음을 멈춘 천문석은 발에 걸린 캔을 집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탕, 탕탕-

천문석은 문득 캔을 던진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노동으로 단련된 팔.

뜨거운 여름날, 반소매 셔츠 아래로 뻗은 팔은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이 평범한 팔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느껴진다.

불처럼 뜨겁고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흔적!

따뜻한 피부가 아닌 불타는 얼음을 만지는 듯 상반된 기이한 촉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흔적.

자신만이 느낄수 있는 이 기이한 흔적은 팔을 타고 올라 몸통을 휘감고 머리와 발끝까지 전신에 뻗어있었다.

이 흔적은 전생을 깨달은 그 날,

자신도 모르게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다.

그리고 처음 이 흔적의 생경한 감각을 느끼는 순간, 천문석은 흔적의 정체를 바로 깨달았다.

천강(天罡)!

전생의 마지막 순간.

천마신공의 12성 대성을 이루었을 때, 하늘과 땅을 이었던 천강이 몸에 남긴 흔적이었다.

너무나 분명한 전생의 증거!

전생 천마의 몸에 새겨졌던 흔적이 어째서인지 전생을 자각한 그 날부터 현생의 몸에서도 느껴졌다.

하-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천강(天罡).

직접 만지고 느낄수 있는 명확한 증거 앞에서 모든 의심은 무너졌다.

천문석은 전생에 천마였다.

천마 천문석.

마공에 먹히기 전 스스로를 불태워 죽은 마도 18문의 지존.

그것이 전생의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이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혼잣말.

"지금은 3차 재검을 받고 입대를 기다리는 대학 휴학생. 그리고 키즈카페의 비정규직 부점장 겸 잡무 담당이지만 말야."

천문석은 웃었다.

전생 천마.

현생 알바.

이 놀라운 간극이라니!

전생과 현생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한국에서 23년을 살아온 평범한 청년 천문석에게 전생의 기억은 어쩐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일생 같았다.

천마와 알바.

전생과 현생의 간극을 생각하던 천문석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다시 한번 웃었다.

전생의 천마 천문석은 죽은 후 현생의 알바 천문석으로 다시 태어났다.

전생의 죽음과 현생의 삶, 그사이에는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가 있다.

그러나 천국이나 지옥이 있는지, 어떻게 다시 태어난 것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각인된 것처럼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으니.

죽음 직전, 하늘과 땅, 천지를 천강의 불꽃이 잇는 순간이었다.

천지인(天地人)이 하나로 이어졌을 때,

천문석은 너무나 명백한 천의(天意)를 느꼈다.

그리고 천의를 느낀 순간.

천문석은 하늘, 천지만물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영혼육백이 불타는 고통을 뛰어넘은 압도적인 경외감!

그 순간, 전생의 자신은 절절한 기원을 담아 하늘에 소원했었다.

'오랜 꿈인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천문석은 자신의 기원이 하늘에 닿는 걸 느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기원이 하늘에 닿았다고 기원을 들어주는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난 천문석은 부잣집 아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천문석이 중학생이던 무렵, 부모님은 소식이 끊겼고,

그때부터 천문석은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생활을 시작했다.

온갖 알바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던 날들.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세 보증금을 몰래 빼간 아버지 친구 행세를 한 사기꾼.

-문득 나타나 별것 아닌 세간살이를 가져간 친척들.

-후견인을 자처하며 보조금을 훔친 사람까지.

...

그러나 삶이 쉽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천문석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은 그냥 주어지지만,

삶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

천문석은 열심히 살았고, 또한 즐겁게 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기당한 천문석을 위해 뛰어다니던 사회복지사.

-혼자 사는 자신이 엇나갈까 안절부절못하던 담임 선생님.

-전세 보증금을 날린 자신에게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은 집주인.

-집에 갈 때면 남은 거라며 새로 구운 피자를 챙겨주던 알바 가게 사장님.

...

고통과 고난이 계속되어도 순간의 웃음과 기쁨에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게 삶이었다.

그리고 천문석의 삶에는 즐거운 순간들이 넘치도록 많았다.

대학교에 들어가고는 좀 힘들어졌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철수형을 만났다.

철수형, 경영학부 화석 김철수.

몇 년째 대학을 휴학 중인 화석 중의 화석인 철수형의 인맥은 정말 넓었다.

그런 철수형이 소개해주는 고소득 일자리들은 문석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키즈카페 알바는 영 별로였지만,

키즈카페 알바도 길어야 이번 주까지였다.

이번 주 안에 3차 징병검사 결과가 나오고, 다음 주 자신은 군대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계획이 시작될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장대한 계획이!

흐흐흐-

장대한 계획 끝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천문석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이때 길을 걷던 천문석의 눈에 단골 마트가 보였다.

첫눈에 띈 것은 단골 마트의 매대에 붙어있는 행사품목.

[돼지고기, 파, 두부, 양파. 버섯···.]

행사품목을 보는 순간.

계시라도 받은 듯 오늘의 저녁 요리가 떠올랐다.

천문석은 눈을 번뜩이며 마트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묵직한 마트 봉지를 들고나온 천문석은 희희낙락했다.

"돼지고기 목살이 반값이라니!"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가 김치보다 많은 사치스러운 김치찌개다!

흐흐흐-

전생 천마 천문석은 맛있는 저녁을 생각하며 즐겁게 집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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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마트 봉지를 흔들며 집으로 향하는 천문석.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 목살을 듬뿍 넣어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볶듯이 끓인 김치찌개!

생각만으로도 시원한 맥주 한잔이 당기는 그 맛이 입안에 감돈다.

게다가 이 모든 건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성과.

어쩐지 때려 부수는데 특화된 전생 천마보다 스스로 일해서 먹고사는 현생 알바인 자신이 더 훌륭하게 느껴졌다.

'일해서 먹고산다.'

이 말은 얼마나 위대한 말이란 말인가!

이거야말로 현생의 자신을 정의하는 말이었다.

툭-

이때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

천문석은 하늘을 보았다.

해가 지기에는 이른 저녁.

그러나 하늘에 구름이 깔리며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걸음을 빠르게 했다.

비가 오기 전에 집에 도착해 오늘의 퀘스트 보상을 획득해야 했다.

오늘의 일과를 끝낸 퀘스트 보상은.

'돼지고기가 가득한 김치찌개와 새하얀 쌀밥 그리로 차가운 맥주 한 캔!'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마음.

천문석은 자랑스러움을 담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산 스스로를 칭찬했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어울리는. 훌륭한 보상이다!"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훌륭한 보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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