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13/14)

 게이트를 통과한 세 사람의 눈앞에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신선한 공기와 거울처럼 투명한 맑은 하늘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빛냈다. 마계의 어두운 하늘에 익숙해져 있었던 그들에게는 자극이 강했다.

  “저기! 신전이 있어! 들어가 볼까?”

  중앙에는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신전이 있었다.

  “네. 저기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빨리 가요!”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려는 프랑과 카이란을 세호가 막아섰다.

  “잠깐만 기다리십쇼. 혹시 모르니까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여기서는 카이란 님의 말을 따르는 게 좋겠어요. 한시가 급해요.”

  “들어가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 판단하는 쪽이 좋다는 거죠.”

  “다수결 몰라요? 진짜 왕자도 아니면서 명령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색하니까 원래 말투로 하면 안 될까요?

  ”명령이 아니라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저는 이 말투가 편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언제 왕자라고 고분고분했습니까?”

  말하다 보니 열이 오르는지 세호의 언성이 높아졌다.

  “애초에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당신이 선배를 속여서잖아요!”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프랑이 아니었다.

  “논점을 흐리지 마세요! 무능력하게 아무것도 못 하고 훌쩍거릴 때는 언제고….”

  “그런 적 없습니다!”

  카이란은 그런 두 사람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솔직히 처음에는 입만 열면 싸우는 두 사람이 조금 재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겹고 조금 한심하기까지 했다.

  “싸울 시간에 둘러보고 들어가면 될 텐데….”

  그러나 카이란의 중얼거림은 두 사람에게 닿지 않았다. 말려들면 자신만 손해라고 판단한 카이란은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얼마 후 한바탕 전쟁을 치른 세호와 프랑의 의견이 마침내 일치했다.

  “각자 움직이기로 합시다.”

  “좋아요. 그쪽 얼굴을 보는 것도 질리니 그렇게 해요.”

  서로에게서 등을 돌린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신전 입구는 하난데 바보들. 카이란은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유쾌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두 바보에 태람. 그리고 두고 온 두 사람까지 이들 사이에 있으면 왜인지 마음이 편했다. 만 년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안락함이었다. 카이란은 어쩌면 언젠가 태람이 말했던 신뢰 관계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관계가 동료. 태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겠지? 이왕이면 연인 관계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도 같이 가!”

  카이란은 바보들을 데리러 뛰어갔다.

*

  태람은 어딘지 도통 알 수 없는 공간을 걷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곳을 헤매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걷고 또 걸어도 똑같은 장소로 돌아올 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태람은 방향성을 잃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 그보다 나는 누구지?

  사방이 고요했다. 태람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영원히 방황하는 건 아닐지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서워. 아무나 나타나 주면 좋겠는데….”

  태람은 두려움을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한참을 걷던 태람은 기묘한 이끌림에 낯선 공간으로 들어왔다.

  그곳은 약간은 낡은 회갈색 건물이 쭉 늘어져 있었고, 나무도 곳곳에 열을 맞춰 심겨 있었다. 여전히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던 맨 처음의 공간보다는 조금은 사정이 나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 여기는 어딜까?”

  이곳에서도 혼자라는 생각에 태람이 살짝 실망한 찰나,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태람! 보고 싶었어!”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태람이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목소리의 주인공은 뒤에서 태람을 꽉 끌어안았다. 태람보다 더 체구가 큰 붉은색 머리의 남자였다.

  “당신 뭐야! 놔, 놔주세요!”

  갑작스러운 접촉에 겁을 먹은 태람은 몸을 비틀며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표정은 조금 상처지만 파닥파닥하는 태람도 귀여워! 이러면 안 되는데 조금 두근거리네.”

  “소름 돋는 소리 하지 말고 떨어져!”

  태람이 날카롭게 소리치자 왜인지 남자의 손이 느슨해졌다. 태람은 그 틈을 타 재빨리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

  “정말로 화내고 있어. 나를 싫어하는 태람이라니 재미없어.”

  축 늘어진 남자를 보니 태람은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콕콕 찔렸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남자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순박한 인상이 강아지 같네. 조금 귀여울지도?

  “그렇게 갑자기 달려들면 누구라도 놀라죠.” 

  “그럼 내가 싫어서 밀어낸 건 아니지?”

  “싫다, 좋다를 판단할 만큼 당신을 알지도 못해요.”

  조금 기운을 차릴 뻔했던 남자는 선을 긋는 듯한 차가운 태람의 말에 다시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신선해서 좋았는데 서운하다. 역시 나는 나를 기억해주는 네가 좋아.”

  “당신은 저를 알고 있나요?”

  “응!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있어. 이거 힘들게 찾아냈으니 받아줘.”

  남자가 주머니에서 동그란 빛의 덩어리를 꺼냈다.

  “그게 뭐데요?”

  “위험한 건 아니야. 나를 믿어주면 안 돼?”

  태람은 떨떠름하긴 했지만 적어도 눈앞의 남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사람 같지는 않았다. 

  “알았어요. 주세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예쁘니까 받을게요.”

  “응! 여기 있어. 지금의 너한테 꼭 필요한 거야.”

  남자는 바로 태람에게 동그란 빛의 덩어리를 넘겨줬다.

  “따뜻하네요.”

  빛의 덩어리는 태람의 손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어때?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이 학교에 오고 싶어서 밤을 새워 공부했던 일, 대학 시험을 본 일, 합격했을 때 기뻤던 일 등 여러 가지 정보가 태람의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왔다. 참으로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기억났어요, 저는 이 대학교의 학생이었어요.”

  “다행이네. 내가 제대로 찾았네.”

  안심했는지 방긋 웃는 남자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아하? 이런 식이구나.”

  태람은 남자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저기! 당신은 이름이 뭐예요?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응.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마. 그때는 꼭 나를 기억해줘.”

  태람이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남자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왜일까? 많이 아쉽네.”

  태람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서성이다가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아직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 빛의 덩어리가 자신에게 큰 도움을 될 것 같았다.

  “일단 그 빛의 덩어리를 찾는 걸 목표로 하자.”

  기운을 차리고 마음 가는 대로 걷다 보니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한 장소에 도착했다. 방 안에 있는 책꽂이에는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여기저기를 헤매면서 지쳤던 태람은 잠시만 여기에서 쉬기로 있다. 마침 소파도 있어서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책들인데 되게 재미있네.”

  태람은 이 책 저 책을 꺼내 보며 뒹굴뒹굴했다. 그가 한참 책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화려한 이목구비의 검은색 머리의 남자였다. 그는 태람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태람 선배! 여기 있었군요.” 

  “누구세요? 저를 아세요?”

  태람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표정이 사라지니까 남자의 인상이 차가워졌다. 태람은 모처럼 잘생겼는데 아깝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긴 했는데 그래도 힘드네요.”

  

  태람은 슬픔에 잠긴 남자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가 슬퍼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구구절절한 변명이 튀어나왔다.

  “미안해요. 제가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원래도 사람 이름을 못 외워서 매번 구박을 받았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게 누구였더라. 어떻게 이런 걸 잊지? 저 정말 기억력이 안 좋은가 봐요.”

  “괜찮습니다. 기억은 앞으로 채워 가면 되니까요.” 

  “어…. 엄청 상냥하네요. 그러니까….”

  “이세호입니다. 말 놓으세요. 선배는 늘 그러셨으니까요.”

  적극적인 남자의 태도에 태람은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그래야지.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잘생긴 후배를 잊을 리가 없는데….”

  “칭찬 감사합니다.”

  남자가 다정하게 웃으니 태람은 방 안의 공기가 맑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게 스포츠였다면 저건 반칙이라고 생각하며 얼굴에 오른 열을 손바닥으로 식혔다.

  “선배가 읽고 있는 그 책은 민아 선배가 쓴 책입니다. 기억 안 나세요?”

  “민아?”

  “민아 선배랑 선배 사이를 질투한 적도 있었는데….”

  “미안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괜찮습니다. 전부 기억하게 될 겁니다. 이걸 받아주세요.”

  남자는 태람에게 동그란 빛의 덩어리를 넘겨줬다. 태람은 이번에는 경계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받았다. 아까처럼 새로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왜 민아를 잊고 있었을까? 우리 그렇게 친했는데….”

  아쉽게도 자신의 후배라고 주장하는 눈앞의 잘생긴 남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기억나지 않았다. 태람은 그래서 더 미안했다.

  “미안해. 아직도 네가 기억이 안 나.”

  “괜찮습니다. 아…. 더 있고 싶은데 안 되나 봅니다. 전투가 끝나고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못하게 되었네요.”

  남자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사라져가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선배! 다시 만났을 때 만약 제가 선배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래도 먼저 다가와 주세요!”

  “그, 그럴게!”

  남자의 필사적인 외침에 태람은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꼭 그렇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은 저 동아리 방에 가면 선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주치면 싸우게 될 걸 알았지만 그래도 매번….”

  남자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가버렸어.”

  태람은 붉은색 머리의 남자가 사라졌을 때 느꼈던 서운함보다 더 큰 감정을 느꼈다. 아주 큰 상실감이었다. 

  “기억을 되찾으면 다시 볼 수 있는 거겠지?”

  다음으로 태람이 도착한 장소는 익숙하게 느끼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아주 화려한 중세 유럽풍의 방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인 자신과는 도무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장소라 그저 입을 벌리고 감상만 할 뿐이었다.

  “와…. 진짜 크다. 저게 다 얼마야.”

  “태람 님은 정말 가격 매기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태람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말도 안 되는 미인이 서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성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민트색 머리의 남자. 긴장해버린 태람은 그만 말을 더듬고 말았다.

  “정말 보고 싶었어요. 태람 님.”

  “당신도 저한테 기억을 주시러 온 거죠? 앞에 두 사람도 그렇고 왜 그렇게 잘생겼어요? 혹시 다들 요정이세요?”

  “요정이요?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아쉽게도 모두 인간이에요. 아…. 한 마리는 아닌가?”

  “저 알 것 같아요. 방금 말한 사람. 아니 마리. 그거 붉은 머리 쪽이죠? 조금 개 같은.”

  “카이란 님이 개 같기는 하죠. 기억을 잃어도 태람 님은 귀엽네요.”

  “네? 아니…. 그런 말 종종 듣긴 하는데 그게…. 당신이 더 예뻐요!”

  “고마워요. 프랑이라고 불러주세요.”

  남자는 알 수 없는 열망이 담긴 눈빛으로 태람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얼굴에 닿아 오는 열렬한 시선에 머쓱해진 태람이 자신도 모르게 목 뒤를 쓸어내렸다.

  “태람 님과 평생 이곳에 갇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둘게요. 다시는 실수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태람은 안 그렇게 생겨서 상당히 무서운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이걸 받아주시겠어요?”

  남자 역시 앞에 두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태람에게 빛의 덩어리를 넘겨줬다.

  “고마워요.”

  태람은 가족에 대해 기억해냈다.

  “저 진짜 이상한 애네요. 왜 하필 가족들의 얼굴을 잊고 있었죠…. 제가 뭔가 큰 잘못을 했었나 봐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잘못한 사람은 한 명뿐이거든요.”

  남자는 태람을 돌아보며 서글프게 미소 지었다.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돌아갈 시간인가 봐요.”

  남자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또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예쁘지만 여전히 슬프게 웃는 남자를 태람은 위로해 주고 싶었다.

  “다음에 만나면 저한테 미안해 하지 말아요.”

  “네?”

  남자의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아까부터 자꾸 제 눈치를 보니까 알 수밖에 없잖아요. 잠깐이었지만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이렇게 예쁘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악인일 리도 없고…. 아무튼 전부 용서할게요. 그러니까 미안할 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막 사라지려던 남자가 소리쳤다.

  “태람 님! 저한테도 가족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태람 님도 저한테 죄책감 가지면 안 돼요!”

*

  태람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말하는 참새가 빛의 덩어리를 내밀었다.

  “으악! 새, 새가 말을 해….”

  태람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양손으로 눈을 마구 비볐다. 정체불명의 생물은 여전히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가능성의 파편을 품은 아이야. 너는 참 재미있구나. 그만 무서워하고 이것을 받거라.]

  “고, 고맙습니다?”

  그 빛에 닿은 순간 태람은 온전히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잊고 있던 모든 것이 생각나며 세호와 프랑, 카이란에게 고마워졌다. 그리고 자신을 쭉 도와주었던 작은 친구에게도.

  “노랑아. 그 안에 있지? 고마워. 정말로.”

  노란 새는 무뚝뚝한 표정에서 원래의 애교 있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태람은 단번에 노랑이가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

  “노랑아! 너 맞지?”

  [나다삑. 네 덕분에 이 세계는 독립된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삑. 그동안 고마웠고, 건강해라삑.]

  “뭐? 야. 그러니까 꼭 마지막 같잖아.”

  태람이 뭐라고 더 말하려는 순간, 공간이 흔들렸다. 

*

  “돌아왔어?”

  정신을 차리니 태람은 왕궁에 있는 귀빈 방의 침대 위였다.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는 불안할 뿐이었는데 이제는 원래 세계에 있는 자신의 방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태람아! 나 기억나? 카이란이야!”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순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태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태, 태람 님! 어디 편찮은 곳은 없으시죠?”

  “그딴 짓을 저질러 놓고, 선배한테 말을 걸 생각이 듭니까?”

  “태람 님은 상냥한 분. 기억을 잃었으면서도 저의 죄를 용서해주셨어요. 그리고 당신이랑은 상관없잖아요!”

  “선배 일인데 왜 상관이 없습니까!”

  “왕자일 때도 생각했지만 정말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네요. 당신과 태람 님은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적어도 당신보다는 깊은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이란은 그런 두 사람을 보더니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이게 바로 싸우면서 정든다? 아니다. 배틀 연애였나?”

  “카이란! 그,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겁니까?”

  

  세호가 치를 떨며 기겁했다.

  “아밀이 환상에서 말했었어. 다투면서도 사이좋은 관계를 그렇게 부른대.”

  “대단히 편중된 지식입니다. 끔찍하니까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십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연애가 들어갔다는 게 기분이 나쁘네요.”

  “둘은 계속 놀고 있어. 나는 태람이한테 갈게!”

  카이란이 무서운 속도로 태람 쪽으로 달려왔다. 그 뒤를 세호와 프랑이 따라왔다.

  “카이란 님! 새치기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프랑의 말이 맞습니다. 카이란은 너무 제멋대로입니다.”

  “역시 두 사람 친한 거 맞지?”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것 봐. 호흡이 딱딱 맞잖아.”

  개판이 되어가는 상황. 태람은 이 난장판을 정리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 싸우고, 이쪽에 앉아봐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네요.”

  태람의 한 마디에 티격태격하던 세 사람이 그를 보며 웃어주었다. 잘생긴 애들이 모여 있으니 흐뭇했다.

  

  노랑이가 말했다. 이제 책 속의 세상은 독립된 하나의 세계가 되었다고.

  내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세상이 진짜가 되었다. 두 번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소중한 인연도 생겼고, 말이지.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만 태람은 앞으로 그려나갈 나날들이 기대되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만 신중하게….

  ”함부로 소설 쓰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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