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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24화 (224/225)
  • 224화. 외전 (3)

    “오빠!!!”

    찻잔에 차가 채 식기도 전에 들리는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놀란 루카스는 하마터면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케엑! 켁!”

    옆에 앉아있던 스키르는 목에 찻물이 걸렸는지 켁켁거리고 있었고.

    “어우! 야! 언니 애 떨어질 뻔했다.”

    “어? 언니 임신했어?!”

    “아니, 있지도 않은 애가 떨어질 뻔했어.”

    도대체 어디서 소식을 들은 건지 넬라가 나타났다.

    “아니, 도대체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지!”

    “넬라. 화가 좀 많아졌네.”

    루카스의 등에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맞잖아? 왔으면 왔다고 할 것이지! 아니, 그리고 도대체 어디서 뭘 했기에 추적까지 전부 막아둬? 그리고 엘라임 님한테 뭐라고 했길래 오빠 위치를 말해주지 않는 거냐고!”

    속사포같이 와다다 쏘아지는 넬라의 말에 이젠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뭐…….”

    머쓱한 듯 루카스가 제 머리를 긁적이자, 넬라는 속이 터진다는 듯 제 가슴을 팡, 팡, 두드렸다.

    “넬라. 먼저 냉수 좀 마셔. 어?”

    보다 못한 폴라가 찬물 한 잔을 건네자, 그것을 받아 든 넬라가 단숨에 물을 들이켠 뒤 제 입을 거칠게 닦아냈다.

    “넬라. 혹시 요즘 용병단에서 일하는가……?”

    너무도 거칠어진 넬라의 태도에 놀란 것은 비단 폴라와 루카스뿐이 아니었다.

    “용병단은 무슨. 아오! 짜증 나.”

    소파에 털썩 앉은 넬라가 뒷골목에서 본 적 있는 듯한 몸짓으로 한쪽 다리를 소파 위에 척, 얹었다.

    “아니, 요즘 마탑 늙다리들이 어떤 줄 알아?”

    “…….”

    “그 인간들 진짜 싹 다 모가지를 따버릴 수도 없고! 아오!”

    “네, 넬라! 그런 언행은 옳지 않네.”

    스키르의 만류에 넬라가 눈을 부라렸다.

    “아, 아닐세. 계속하게.”

    팍 쪼그라든 스키르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깡패가 다 됐네.’

    넬라는 아카데미를 졸업하기도 전에 마탑에 들어갔다.

    그때가 아마 열일곱 살쯤이나 되었을까.

    넬라는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약초학을 엄청나게 발전시켰고, 연금술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넬라는 지금 제국의 한 축이나 다름없는 인물이 되었고, 로드리고 백작가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입지가 되었다.

    “넬라. 좀 진정해 봐.”

    “진정? 진정이 되게 생겼어?! 내가 오빠 위치 하나 알아내지 못하는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는데!”

    “네가 알아내려 마음먹었으면 진즉에 알아냈을 거야. 아무렴! 대마도사 넬라 로드리고인데.”

    “흠, 흠! 그건 맞지. 사실 오빠가 어디 숨어있는지 알아내려면 알아내긴 했을 거야.”

    “그럼, 그럼!”

    겨우 넬라를 조금 달랜 루카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때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넬라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도대체 뭐 때문에 숨어있냐고! 뭐 죄라도 지었어? 도대체 왜! 뭐 때문에!”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 그러니까 화 좀 그만 내.”

    “그럼 수정구는 왜 안 받는 건데?”

    “…….”

    “언니, 오빠, 엄마, 아빠까지 다른 사람들 연락은 모두 받았다며?”

    루카스는 나오려는 말을 애써 삼켰다.

    ‘네가 무서워서.’

    이 말을 입 밖으로 냈다가는 진짜 무슨 사달이 날지 몰라 두려웠다.

    그랬다. 루카스는 넬라가 무서웠다.

    마탑에 들어간 이후로 어찌나 애가 예민해졌는지 대마도사라는 칭호와 함께 대마녀 라는 칭호까지 붙었다.

    마녀. 그래, 다들 아는 그런 나쁜 뜻의 마녀 말이다.

    마탑 내에선 넬라를 마주치는 걸로 그날 하루의 운이 모두 끝장났다는 미신까지 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미, 미안. 미안해. 어째 네가 연락을 할 때마다 내가 수정구를 두고 나가는 바람에…….”

    “거짓말하지 마.”

    넬라의 차가운 눈빛이 루카스를 꿰뚫을 듯 이글거렸다.

    “아, 마, 맞다! 너희 주려고 가져온 게 있는데.”

    결국 루카스가 화제를 돌리고자 아공간 주머니를 품에서 꺼내 들었다.

    “오, 뭐, 뭔가!”

    그 장단을 맞추려 스키르 역시 어색한 목소리로 루카스를 거들었다.

    “애들도 오라고 해. 애들 선물도 있거든.”

    “야,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너 빨리 백작저로 가. 우리도 그쪽으로 갈게.”

    “그럴래?”

    그러자 모두가 넬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러든지.”

    넬라가 올렸던 한쪽 다리를 슥 내리고 손을 치켜들었다.

    “저녁 시간 맞춰서 다시 올게. 연구실 애들 조지다가 급하게 온 거라.”

    “그, 그래. 살살 하고.”

    폴라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자, 넬라의 손에서 빛이 일었다.

    -파앗!

    “후우…….”

    “하아…….”

    넬라가 떠나자, 방 안에 안도의 한숨이 가득 울렸다.

    “쟤는 어떻게 된 게 자꾸 성격이 나빠져?”

    “부인, 그런 말 마세요. 마탑 일이 얼마나 고되면 그 착하던 애가 저리되었겠습니까.”

    “웃기시네. 성격 나쁜 건 너도 인정한다는 말이잖아?”

    “크, 크흠!”

    둘의 대화를 듣는 루카스의 머리에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성격이 많이 더러워졌네. 우리 넬라가.’

    어릴 때 숫기가 없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애였다.

    그랬던 애가 마탑에 들어가서 무슨 일들을 겪길래 저리도 성격이 나빠졌나 싶었지만.

    ‘그래도 저게 낫지.’

    어디 가서 나쁜 일 당할 위험은 줄었으니 다행이었다.

    “하하. 그래도 넬라가 우리 엄청 생각하잖아?”

    “그건 그렇지.”

    “맞네. 넬라가 지난번에도 우리 아마록이 악몽을 꾼다고 하니 한달음에 달려와 좋은 선물을 주었지.”

    “아, 맞네. 하하! 그때 아마록 꿈에 매일같이 괴물이 나타났었지.”

    “알고 보니 그게 다 성장통이라고 하더군.”

    루카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있는 동안 어떤 수많은 일이 벌어졌는지 루카스 역시 이야기로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진 못했지.’

    아쉬운 부분이었다.

    폴라와 스키르의 아들과 딸이 매일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

    넬라가 마탑에 들어가 고충을 겪으며 성격이 더러워지는 것도 곁에서 보지 못했다.

    수정구 너머로만 듣고 보았던 모든 것들을 이들은 직접 보고 들으며 만지고 겪었다.

    ‘이들의 행복을 위해 내가 도망쳤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제 행복을 위해 도망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도 맞지.’

    마지막 휴식이니까. 꼭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 모습을 보니 이젠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저를 탐할만한 영애들의 수도 줄었을 것이다. 모두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이니 말이다.

    ‘뭐 가끔 늙다리에게 딸을 팔아 버리려는 미친놈들도 있겠지만.’

    그건 이전과 같이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넬라가 처리하려나.’

    무서운 ‘대마녀’가 집안에 있으니 걱정이 조금 더 덜어졌을지도.

    “뭐 해? 백작저로 가라니까.”

    멍하니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루카스를 깨운 폴라의 목소리.

    “그래. 가야지.”

    루카스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래. 이따 저녁 식사에서 봐.”

    “그래.”

    ***

    공작저를 나선 루카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텔레포트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 정도 거리는 걸으며 주변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커다란 백작저의 대문이 눈에 들어오자, 루카스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오랫동안 나가 있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길어야 삼 년 정도만 나가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십 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있었다.

    ‘시간 빠르군.’

    이래서 인간들이 시간이 빠르다며 한탄을 하나 싶었다.

    대문에 가까이 다다르자, 저를 알아본 기사 둘의 표정이 환해졌다.

    “루카스님?”

    “진짜 도련님이십니까?”

    둘을 보며 온화하게 미소지은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어서, 어서 드시지요.”

    “백작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받는 환대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루카스의 걸음이 힘찼다.

    “그래. 수고가 많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화려해진 정원.

    곳곳에 심어진 수많은 꽃나무와 희귀한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껴 듣기 좋은 소릴 냈다.

    “루카스!”

    “아들!”

    누군가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한 것일까.

    저택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오는 제 부모의 모습에 루카스의 걸음이 빨라졌다.

    ‘저러다 넘어질라!’

    이제는 노쇠한 제 부모가 저를 반기려 달려오다 넘어져 다칠까 하는 걱정이 불쑥 앞섰다.

    -파앗!

    결국 루카스가 조금이라도 빨리 둘에게 다가서려 텔레포트했다.

    “뛰지 마세요.”

    “아들!”

    눈앞에 불쑥 나타난 루카스를 와락 끌어안는 블레인과 시비에.

    “어쩜! 어쩜!”

    블레인이 제 등을 때리며 눈물 지었다.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온 게야! 이 어미가 보고 싶지도 않았던 게야?”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독하구나! 어쩜 이리도 찾아오질 않았느냐!”

    사실 찾아오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어떤 피해가 생길지 몰라 참고, 또 참았다.

    “또 갈 게냐?!”

    시비에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또 떠난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그랬다간 이 늙은 어미가 어찌 될지 모르니!”

    이어진 블레인의 협박에 루카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그래서! 또 간다는 말이냐!?”

    블레인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요. 이젠 안 갑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어찌나 기쁜지 블레인의 입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우리 아들!”

    시비에가 루카스를 다시 한번 와락, 끌어안았다.

    “예. 안 갑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그래, 그래.”

    “나가면 고생이라고 하지 않느냐. 이것 봐라. 우리 아들 볼이 쏙 들어갔구나.”

    웃기는 소리였다. 루카스의 볼은 누구보다 탱글했다.

    ‘잘 먹었는데.’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으며 푹 쉬었다. 그러니 볼이 쏙 들어갈 리가 없었건만, 블레인의 눈에는 해골바가지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긴! 어서 들어가자. 이 어미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마.”

    거짓말이었다. 블레인은 흔하디흔한 토마토 스튜 하나 끓이지 못한다.

    “예. 어머니.”

    “어서 들어가자. 네게 못한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시비에 역시 루카스의 팔을 붙잡고 재촉했다.

    바로 문앞에 서서 어서 들어가자며 재촉하는 둘을 보니 루카스의 입에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아이들도 곧 올 겁니다.”

    “설마…… 공작가에 먼저 들렀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

    실수로 튀어나와 버린 말에 루카스는 시간이라도 돌리고 싶었다.

    “정말이냐? 그게 정말이야?”

    시비에의 눈 역시 커다랗게 뜨였다.

    “아니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렇지?”

    블레인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믿어도 되는 말이냐? 너도 알다시피 넬라는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다.”

    “……예. 거짓말 아닙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래. 이 엄마 믿는다?”

    “그래. 나도 믿는다?”

    시비에와 블레인의 눈이 다시 다정하게 변하자, 루카스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어차피 진실은 밝혀지겠지만, 상황은 모면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기억을 조작해서라도…….’

    사실로 만들면 되지 뭐.

    블레인과 시비에에게 팔을 붙들린 루카스가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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