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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23화 (223/225)
  • 223화. 외전 (2)

    “디바노스에 있었어.”

    “디바노스?! 저~ 기 아래에 있는 그 섬?”

    루카스가 찻잔을 내려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거기서 무얼 한 겐가? 그 섬에 뭐가 있다고!”

    “맞아. 거기 꽃이랑 꿀 이런 것만 있지 않나?”

    “맞소. 거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지.”

    “맞아. 그랬다며? 그런데 이젠 골드 나인에서 운영하는 섬들이 훨씬 좋잖아.”

    “그렇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둘을 보며 루카스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죽이 저렇게 잘 맞았던 거지.’

    둘은 결혼식을 올린 직후 쉴 새 없이 싸워 댔다.

    오죽하면 한때 제국에 ‘원수끼리 결혼을 했다더라’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사실 싸움이라기엔 스키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쪽이었지만.’

    “그래서. 디바노스에선 뭘 했는데?”

    “뭘 하긴. 그냥 뭐, 쉬었어.”

    진짜였다. 루카스는 그저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쉬었다. 아주 푹.

    “……서운하군.”

    “엄청, 엄청 서운하네.”

    둘의 표정에 서운한 기색이 정말, 정말 역력했다.

    “미안해.”

    루카스도 알고 있었다. 사실 텔레포트 한 번이면 이곳에 돌아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디바노스에 터전을 잡고 살면서 매일같이 드나들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루카스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있으면 왠지 잘못될 것만 같아서.’

    너무도 큰일을 겪지 않았는가.

    게다가 전쟁 이후 시타타에 머물며 진짜로 큰일이 몇 번 더 생기기도 했고 말이다.

    “너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니지?”

    “그래. 리산드라 영애의 일은…….”

    그러자 루카스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 그래. 그 일은 네 탓이 아니야. 알지?”

    하지만 폴라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루카스의 손등에 손을 포갰다.

    “알아.”

    리산드라 영애. 루카스를 흠모하다 못해 미쳐버린 여자.

    ‘가지지 못한다면 없애버리겠어요.’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온갖 저주를 뒤섞어 루카스에게 퍼부었고, 참다 못한 루카스가 그 저주를 그녀에게 되돌려 줬다.

    ‘튕겨냈다고 해야 하나.’

    그 때문에 그녀는 아주 추악하고 더러운 꼴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사건이었고, 이와 비슷한 치정극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루카스의 가문인 로드리고 백작가의 재산을 탐내고 접근하는 영애들과 집안이 수없이 많았으며, 말 그대로 루카스 하나만 보고 돌진하는 이들도 많았다.

    “아직도 이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 심각해지는 것 좀 봐…….”

    “그러게나 말이오. 충격이 컸을 테지…….”

    둘의 억측이 어디까지 가든 사실은 사실이었다.

    루카스에게도 꽤 충격이었고, 부모인 로드리고 백작 부부에게도 충격인 사건이었다.

    “충격이 없진 않았지만,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니야.”

    “그럼?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은 건데!”

    “맞네! 우리가 자네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는가!”

    바락바락 소리치는 둘을 향해 귀가 아프다는 듯 제 귀를 슬쩍 감싼 루카스가 말을 이었다.

    “그냥. 쉬고 싶었어.”

    그리고 뒷말은 애써 삼켰다.

    ‘이게 내 마지막 휴식일 테니까.’

    ***

    루카스가 디바노스로 떠나기 전.

    [자기야~ 언제 올라 와?]

    루카스는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아모레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가한가?”

    [아잉~ 설마아~ 자기 보고 싶어서 그러지잉~]

    “지랄하지 마라. 주신이 보내서 온 거겠지.”

    [어머나! 자기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이상하리만큼 아모레는 제게 집착했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최근에 들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둘은 루카스의 전생, 아니, 그 이전 생에서도 만났던 구면이었다.

    “좀 닥쳐줬으면 좋겠군. 요데스.”

    [자기!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도대체 나를 언제까지 농락할 생각이었지?”

    루카스가 히든 카드를 꺼내 들었다. 화난 척하기.

    [자기…… 자긴 정말 속이 좁구나? 아니, 도대체 그 이야기를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구우!]

    아모레는 루카스의 첫 번째 생에서 만났던 드래곤 중 하나였다.

    아니, 드래곤인 줄 알았던 신이었지.

    “신이나 되는 작자가 장장 이천 년이 넘는 시간을 유희할 수 있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머나, 자기야!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해? 그때는 지금처럼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아모레가 호들갑을 떨며 제 이마를 턱, 짚었다.

    “지랄. 지금 그 말이 변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알겠어. 자기 화 풀릴 쯤 되면 다시 올게.]

    루카스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치이…….]

    그제야 아모레의 우람한 근육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루카스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저 자식이 요데스였다니.”

    요데스 아르시나. 골드 일족이었던 그는 루카스의 오랜 친구였다.

    첫 유희를 함께 했으며, 마지막 유희 역시 함께였다.

    ‘도대체 왜 모든 생의 기억을 되돌려 줘서는!’

    주신이 원망스러웠다.

    잊어도 괜찮았던 지나가 버린 생의 기억을 모두 돌려받은 루카스는 한동안 혼란스러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젠장.”

    문득문득 지나간 생의 기억들이 치밀고 올라올 때마다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후.”

    게다가 주신까지 나서서 저를 매번 닦달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툭.

    갑자기 제 눈앞에 떨어진 양피지 하나를 본 루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또?”

    구겨진 양피지를 집어 든 루카스가 짜증스레 그것을 폈다.

    루카스는 이와 같은 의문의 밀서(?)를 몇 번이나 무시하고 불태웠었다.

    ‘확인하지 않으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상에 이변이 일어났었다.

    [이제 그만 살고 올 때 되지 않았나? 네가 사랑해 마지않던 귀여운 영혼을 내가 인질로 잡고 있는데.]

    “미친.”

    이번엔 색다른 협박이었다.

    “그러시든지.”

    루카스가 손에 들었던 양피지 조각을 마법으로 훅, 태워 버렸다.

    -툭.

    그러자 새로운 양피지 조각이 무릎 위로 툭, 떨어졌다.

    “아오!”

    저도 모르게 고성이 튀어나왔다.

    “후.”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루카스가 다시 양피지를 펴들었다.

    [지금 그 태도는 뭔가? 나를 아모레에게 고해바칠 때는 언제고?]

    “…….”

    주신. 그의 끈질긴 구애에 루카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럽니까? 아니, 그럼 신계를 계속 비워두실 생각이셨어요?”

    -툭.

    말을 마침과 동시에 또다시 떨어진 쪽지.

    [백 년도 못 참아주나?! 그대가 죽거든 가려 했네! 그때가 되면 나와 함께 신계로 갔으면 됐을 일 아닌가!]

    “하, 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십니까! 당신이 잠시 자릴 비운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서 그러십니까?”

    -툭.

    [마지막엔 내가 나서서 모두 처리하지 않았나!]

    “제가 거울에 가지 않았다면 풀리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사아아…….

    결국 눈앞에 하얀빛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루카스는 어지럽기까지 했다.

    “젠장 할 신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타라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걸 그랬나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사건은 모두 끝나버렸는데.

    [자네. 내가 진짜 서운하네.]

    마주칠 때마다 하는 똑같은 레파토리.

    “예. 그러시겠죠.”

    [어쩜 그렇게 일이 끝나자마자 나를 아모레에게 팔아넘길 수가 있는가?]

    “후. 같은 말을 또 반복하길 원하신다면…… 예. 해드리죠.”

    [내가 같은 말을 하자는 게 아니잖은가! 틀어져 버린 우리의 우정을 다시 돈독히 하려거든 자네가 어서 신계로…….]

    루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백 년도 안 되냐고 물으셨잖습니까. 자꾸 이러시면 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 년, 아니 만 년이라도 살고 갈 겁니다!”

    […….]

    루카스의 말에 주신의 입이 딱, 다물렸다.

    “백 년, 아니 백 년이 뭡니까? 이제 앞으로 육십 년이면 저는 죽을 거 아닙니까?”

    [크, 크흠.]

    “하, 설마 천계에 무슨 수를 쓰신 건…….”

    루카스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그랬다간 천계의 천사들이 모두 도륙해 버릴 겁니다.”

    [그, 그건 안 될 말일세! 알겠네, 알겠으니 그 눈 좀 좋게 뜨게.]

    “그리고 자꾸 아마록의 영혼을 두고 협박하시는데…….”

    [협박이라니! 당치도 않네! 자네도 참.]

    “환생의 길을 열어주시든지 그게 아니라면 뭐 신으로 만드시든지 그건 알아서 하시고.”

    주신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네.]

    루카스의 눈에 의심이 가득 깃들었다.

    ‘아마록의 영혼을 두고 나랑 상의할 게 뭐가 있어?’

    어이없는 방문 이유 아닌가.

    [자네도 알다시피 기쁨의 여신이 소멸했지 않은가.]

    “그래서요?”

    [그 자리에 아마록을 앉히면 어떨까 싶은데…….]

    “그걸 왜 저랑 상의합니까? 알아서 하실 문제 아닙니까.”

    루카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아마록이 기쁨의 신이 되든, 슬픔의 신이 되든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지옥에 떨어트리는 것도 아니고.’

    시큰둥한 루카스의 반응에 주신이 다시 입을 뗐다.

    [흠. 사실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 문제이긴 하네만, 나는 기쁨 자리엔 여신이 앉는 것이…….]

    그러자 루카스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전생의 기억은 있겠지요?”

    주신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자, 루카스의 입꼬리가 더욱 말려 올라갔다.

    “그게 더 재밌겠군요.”

    아마록이 기쁨의 ‘여신’이 된다니!

    [하지만 새로운 기쁨 자리에 오른 아마록이 날뛰면…….]

    “그럴 리가요.”

    루카스가 싱긋 웃었다.

    ‘날뛰면 더욱 좋겠지.’

    사실 드래곤은 성별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었지만, 아마록은 조금 남달랐다.

    유희를 나설 때에도 여성체가 아닌 남성체를 항상 고집했으니까.

    [그런가?]

    “예. 물론입니다.”

    그러니 루카스에겐 이 일이 너무도 재밌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야 뭐.]

    그걸 알 리가 없는 주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날뛰어 줘라. 아마록.’

    조만간 신계가 발칵 뒤집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지는 루카스였다.

    [그럼 자네는 언제쯤 올 생각인가?]

    “자꾸만 언제 뒈질거냐는 질문을 하시는데, 그거 듣는 인간 입장에서는 기분이 꽤나 나쁩니다?”

    [……알겠네.]

    “그리고 저는 꼭 남성체로 부탁드립니다.”

    [아, 자네가 앉을 신의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네. 물론 남성체라네.]

    “그렇다면야 뭐.”

    루카스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그래도 혹시 마음이 바뀌거든…….]

    루카스가 눈을 치켜뜨자 주신이 입을 딱, 다물었다.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걸세. 자네가 신이 되는 그 날 나는 바로 지상에 내려와서 유희를 즐길 생각이니 그렇게 알게!]

    “주신의 자리만 아니라면야 뭐.”

    루카스는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얼른 가보시죠. 언제까지 여기 이렇게 있으실 겁니까?”

    주신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려던 때 루카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이제 지상에선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서운하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조만간 다시 보지.]

    “싫습니다.”

    [그, 그래도!]

    “싫어요.”

    [서운하네!!!]

    주신이 고개를 홱 돌리고 사라지자, 루카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생각했다.

    ‘여기에 있다간 주변이 또 쑥대밭이 되겠어.’

    변덕스러운 신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른다.

    ‘떠나야겠군.’

    저들이 마음을 조금 접을 때까진 떠나 있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서럽다. 서러워.”

    그렇게 루카스는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잠시 떠나기로 했다.

    그들의 온전한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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