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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22화 (222/225)
  • 222화. 외전 (1)

    “여보!”

    어딘가 단단히 짜증이 난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넓은 로비를 쩌렁쩌렁 울렸다.

    “…….”

    하지만 남자는 대답 없이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야!!!”

    “부, 부인! 그런 언행은 좋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당황한 남자가 제 부인의 옷깃을 슬쩍 잡고 만류해 봤지만, 화가 단단히 난 여자는 화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웃기시네. 언행? 어언~ 해앵~?!”

    “…….”

    “지금 언행이라는 말이 나와?! 엉?!”

    “그, 그게…….”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와 그를 몰아세우는 여자.

    크고 으리으리한 저택 로비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폭력!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마도구 사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마도구는 마도구 상점 주인이 이번 달 신상품으로 강력추천해 준 것으로……!”

    “콱! 그냥 이놈의 주둥이, 주둥이가 문제야. 어? 너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사 오는 거? 그래, 좋다 그거야. 그런데 왜 자꾸 아무 데나 둬서 애들이 만지게 하냐고!”

    와다다 쏘아붙이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지난번에도 네가 아무렇게나 둔 물건을 아들이 만져서 큰일 날 뻔한 거 몰라? 애 잘못됐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어!?”

    “부, 부인! 그 일은 내가 잘못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않소!”

    “우리 딸도 크게 다칠 뻔한 거 모르냐고!”

    “……내 자식들이기도 하잖소.”

    “그런 인간이 마도구를 아무 곳에나 둬?!”

    말을 하던 여자는 곧 주먹이라도 올릴 기세였다.

    “아빠! 엄마!”

    하지만 그녀는 멀리서 저를 부르는 앳되고 귀여운 목소리에 일단 말을 멈췄다.

    “이따 보즈그…… 스키르…… (이따 보자고, 스키르.)”

    여자가 이를 앙다물고 하는 말에 스키르라 불린 남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냈다.

    “아이구! 우리 딸~”

    그녀가 제게 총총 달려오는 딸을 향해 양팔을 넓게 벌리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을 꼭 닮은 밝은 갈색 머리에 남자를 닮은 은빛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딸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엄마아!”

    “그래, 그래. 우리 딸. 오늘도 공부 열심히 했어요?”

    “네!”

    “오늘은 어떤 거 배웠어요~?”

    “오늘은~ 선생님이랑~ 용…… 뭐였더라?”

    무어라 말을 하려던 아이가 당황했는지 눈을 위로 뜬 채 자신을 바라보자, 여자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벌써 까먹었어?”

    “응…… 말이 조금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야기는 알아요! 커다란 드래곤이랑 마족들이랑 싸운 이야기!”

    “아~ 용마전쟁? 그거 배웠어?”

    그러자 아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용마전쟁! 그거!”

    “아이구 우리 딸. 어려운 말인데도 한 글자나 기억했네? 정말 대견해!”

    제 엄마의 칭찬에 아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한 글자인데도요?”

    “그러엄! 엄마는 한 글자도 어려웠는걸?”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

    멀리서 조금 더 성숙한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이번엔 남자의 은백색 머리에 여자의 금안을 가진 십 대 초반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아마록~”

    여자가 상냥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자, 싱긋 웃어 보인 남자아이가 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마록. 뛰지 않는 것은 좋다만, 보폭이 너무 크구나. 성급해 보이지 않느냐.”

    “뭐래? 아냐. 좀 뛰어도 돼. 어차피 크면 뛰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거든.”

    “크, 크흠!”

    남자의 말에 곧장 반박한 여자가 제 아들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왜 자꾸 크는 거야~! 곧 엄마보다 더 커지겠다!”

    순식간에 커버린 제 아들이 못내 아쉬운 듯 여자가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하하. 그래도 제 또래들보다는 아직 작은걸요.”

    “아들. 걱정하지 말아라. 나 또한 너만 했을 때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떠냐. 그러니 걱정할 것 하나 없다.”

    “예. 아버지.”

    저를 닮은 듯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스키르가 만족스레 웃었다.

    “아, 그보다 손님이 찾아오신 것 같던데요.”

    “손님?”

    “예. 아마 기사가 곧 알리러 오겠지만, 조금 전 정원에 누군가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인 중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공작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루카스님이십니다.”

    그러자 둘의 표정이 동시에 환히 밝아졌다.

    “루키가?!”

    “루카스가?! 어서, 어서 모셔 오게!”

    그들의 말에 아마록이라고 불렸던 남자아이 역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 저와 르윈의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그분이요?”

    “그래. 바로 그분이셔.”

    폴라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루키!”

    “루카스!”

    넓은 정원 가운데 선 반가운 사람.

    둘의 부름에 루카스가 바라보던 꽃에서 시선을 떼고 몸을 돌리자, 그의 검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오랜만이야.”

    정원에 한가득 핀 장미처럼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폴라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너! 도대체 이게 몇 년 만인 줄은 알아?!”

    눈가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채 루카스를 타박하는 목소리에는 그리웠던 마음이 뚝뚝 묻어났다.

    “알아. 9년인가.”

    “10년이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야 온겐가!”

    “하하. 이제 그 늙다리 같던 말투가 딱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네. 스키르.”

    이제는 제법 중후해진 목소리.

    새까맣던 흑발 역시 군데군데 흰빛이 비쳤다.

    “너…… 진짜 멋있어졌다.”

    “멋있긴. 나도 곧 마흔인데.”

    “야.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말아줄래? 짜증 나니까.”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마록. 멋지게 자랐구나.”

    루카스가 어깨를 한번 툭 두드리자, 얼굴을 붉힌 아마록이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대부님을 뵙습니다.”

    “르윈. 너도 얼른 인사 드려야지?”

    제 엄마인 폴라 뒤에 쏙 숨은 르윈을 달래는 스키르.

    그러자 르윈이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얼른 인사하고는 다시 쏙 숨었다.

    “녀석도 참…….”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구나. 르윈.”

    루카스의 부드러운 말에 르윈이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녀는 무슨. 아직 한참 멀었지.”

    “아! 그보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자네에게 해줄 말이 많아.”

    “그래. 들어가자.”

    하지만 루카스가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둘의 닦달이 이어졌다.

    “이번엔 좀 오래 머물 거지? 응?”

    “그래. 지난번에 르윈이 태어났을 때도 수정구로만 만나지 않았는가. 대부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겠는가?”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그래. 들어가는 건 지금도 하고 있잖아. 이것 봐. 걷잖아?”

    “그래. 폴라의 말이 맞네. 나도 다리를 열심히 놀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서 대답해 보게.”

    둘의 속사포 같은 말에 루카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들어가서 이야기해. 나 다리아파.”

    “얼씨구? 다리가 아프긴 왜 아파? 여기까지 텔레포트해서 온 거 다 아는데.”

    “…….”

    “우리 여보 말이 맞네. 어차피 텔레포트해서 온 거 아닌가? 그런데 다리가 왜 아픈가!”

    “너 그거 다 운동 부족이다? 걷지도 않고 매번 텔레포트로만 다니니까 조금만 서 있어도 다리가 아프고 그런 거야!”

    “…….”

    루카스는 이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어쩜 이렇게들 잔소리만 늘었는지.’

    인간으로 산 지도 벌써 사십여 년 가까이 지났지만, 루카스는 아직도 인간들의 빠른 변화가 어색했다.

    ‘전생엔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겪는 일이니 아주 가까운 일이 되었다.

    “그래. 알겠어.”

    “그러니 여기 좀 지내면서 나와 함께 운동도 하고 그러세!”

    “그래. 아, 맞다. 집엔 다녀온 거야?”

    폴라의 말에 루카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헤엑! 너 지금 집에도 안 들르고 여기 먼저 온 거야?! 백작님 아시면 어쩌려고!”

    “저런……! 큰일이 아닐 수 없구먼. 백작님도 백작님이지만, 부인께서 아시는 날엔…….”

    루카스의 고갯짓에 둘은 화들짝 놀라며 저택 뒤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에 시선을 옮겼다.

    “시타타가 아무리 발전했어도 소문은 여전히 빠른 거 알지?”

    폴라와 스키르는 떠들썩한 용마전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을 올렸고, 이곳 시타타에 터전을 잡았다.

    바로 로드리고 백작저 코앞에 말이다.

    “갈까? 지금이라도 가라면 갈게.”

    “……먼저 차라도 한잔 들고 가서 인사드리게.”

    “그래. 아무리 소문이 빨라도 아직 저기까진 안 갔을 거야.”

    폴라와 스키르가 얼른 말을 집어넣으며 루카스가 떠나는 것을 막았다.

    ‘이렇게나 좋을까.’

    고작 자신이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행복해하는 둘을 보니, 루카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너희 잠깐 보고 가려고 했으니까 닦달하지 마.”

    “그래. 알겠어.”

    “아! 이번에 그 소식 들었는가?”

    둘은 저택으로 향하는 그 짧은 길에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시타타에 새로 들어온 무역상이 저지른 만행부터 시작해 노예선이 몰래 들어왔다가 크게 처벌받은 이야기까지.

    시타타는 발전을 거듭해 커다란 도시로 성장했지만, 그만큼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마치 하루가 꼬박 지난 것만 같은 피로감을 느낄 때쯤 겨우 응접실 소파에 앉은 루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어? 한숨을 쉬네?”

    폴라가 입꼬리를 씰룩였다.

    “힘들어? 고작 이만큼 걷고?”

    “아니, 아니야.”

    루카스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우리가 벌써 피곤한 건 아니지?”

    “어휴. 아니지.”

    폴라가 루카스를 약 올리고 있었다.

    루카스는 그걸 알면서도 오랜만에 찾아온 제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하며 달게 받는 중이었고.

    “부인. 너무 그러지 마시게. 다리가 부러져 못 오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오?”

    “…….”

    “그래. 그건 아니니 다행이지……. 그럼 다리를 콱! 부러뜨리면 못 가려나?”

    “어허! 부인. 그런 험한 말은 하지 말래도!”

    둘이 시선을 교환하며 헤죽거리는 모습을 보니 또 밉지만은 않았다.

    “그래. 둘은 잘 지낸 것 같네. 나는 이만 다리 부러질까 무서우니 일어나 볼게.”

    루카스가 둘의 장난에 장단을 맞추려 소파를 짚고 일어 나려는 시늉을 하자, 폴라가 한 손을 척, 내밀어 그를 막았다.

    “스읍! 어딜!”

    “하하. 그럼 차라도 좀 내주지 그래? 이거 원…… 공작가가 손님 대접을 이리 해서 쓰겠어?”

    “안 그래도 차는 내오는 중이네. 자, 그래서 어디에서 무얼 하다 이제 온 겐가?”

    둘이 자리에 앉으며 눈을 빛내자, 루카스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차가 오면 그때 말해주지.”

    “호오…….”

    루카스의 발언에 흥미롭다는 듯 눈꼬리를 접은 스키르가 앞에 놓인 벨을 울리려던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서 들게!”

    다기를 든 사용인의 등장을 이리도 반길 수가 있을까.

    사용인의 눈에 잠시 의아함이 스쳐 지나가고, 따뜻한 김이 나는 찻잔이 모두 차려졌다.

    “자, 이제 말해보게.”

    루카스가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며 뜸을 들였다.

    “얼른! 너 매번 수정구로 이야기할 때도 만나면 얘기해 준다며 뜸을 들였잖아.”

    “그래. 어서 말해보게! 우린 지난 십 년간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야겠으니.”

    찻잔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든 루카스가 싱긋 웃으며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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