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21화 (221/225)
  • 221화. 다녀왔습니다. (完)

    주신.

    그의 위대함은 온전히 힘을 되찾지 않은 몸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아아악!]

    그가 손짓하자 물이 갈라졌고.

    [제, 제발! 제발!]

    그가 무어라 입을 뗄 때마다 거대한 기에스티오의 몸이 구겨지고 터져나갔다.

    “내 너를 사랑했거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신의 얼굴이 고통스러운 듯 일그러졌다.

    [크아아아악!!!]

    “어찌하여 내게 이런 실망을 안겨주느냐.”

    잔잔하고 고요한 목소리에 뚝뚝 묻어나는 안타까움이 듣는 이의 마음마저 안타깝게 만들었다.

    “아이야. 나의 가여운 아이야.”

    한 걸음.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거늘.”

    한 걸음.

    “어찌하여 네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 하였느냐.”

    마지막 한 걸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 끝까지 방관자로 남으려 했건만…….”

    그가 기에스티오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구나.”

    그가 손을 내밀자, 기에스티오의 몸이 작은 공처럼 구겨지더니.

    -파스스…….

    이내 사라졌다.

    “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가 작게 탄식했다.

    “당신이셨군요.”

    루카스의 말에 뒤를 돌아본 그가 싱긋 웃었다.

    “그래. 나다.”

    그와 눈을 마주친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조금 전까지 죽을 뻔하며 마음속으로 그를 얼마나 욕했던가.

    ‘소멸이나 해버리라고 했었는데.’

    그가 진짜 소멸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어떻게 돌아오신 겁니까.”

    “아쉽게도 온전히 돌아온 건 아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너와 여기 함께 있지 않았느냐.”

    “……?”

    “내가 바딤이다.”

    “…….”

    바딤이라니?

    “하하. 어쨌건 차원을 넘어 돌아오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그다음이 문제더구나.”

    “하.”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바딤의 그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서 저희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거 아닌가!

    “그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희의 도움을 좀 받았지. 네 알의 도움도.”

    “……어쩐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차원에서 온 건 둘째치고 그렇게나 오래 사는 드래곤이라니?

    “아. 그런데 내가 했던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다.”

    “……그게 진짜였다는 말입니까? 삼만 년을 사는 드래곤도?”

    “그래.”

    “……그럼 저희는 너무 짧게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주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희는 내가 가장 순수한 영혼을 고르고 골라 만들어 낸 생명체다. 이곳의 드래곤들은 대부분 다음 환생 없이 신이 되지. 그쪽은 좀 다르고.”

    “저는 원치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 너희를 만들어 낸 것도 내 뜻인데 그다음도 내 뜻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이기적인 발상이었다.

    “이기적이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신이란 원래 이기적인 족속들이니까. 나 역시도 그렇다.”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쯧쯔. 저 아이도 가여운 아이지.”

    주신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파멜라에게 닿았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전생을 안다.”

    파멜라에게 닿았던 주신의 시선이 루카스에게 옮겨왔다.

    마치 그녀의 처분을 묻는 듯이.

    “이 아이의 전생이 어떠했든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당신 말대로 가여운 아이이니 마지막 기회를 주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루카스 역시 제 몸을 날려 자신을 구한 파멜라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주신이 아니었더라도 엘라임에게 직접 데려가 치료를 부탁했을 것이다.

    “그래. 그게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지.”

    다른 누군가가 저런 말을 했더라면 소름이 돋았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주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랄까.

    “가여운 것…….”

    파멜라에게 다가간 주신이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사아아아…….

    따뜻한 빛이 일었다.

    그러자 파멜라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 아이의 전생은 어렵게 아이를 얻은 어미였지. 풍요의 여신인 케샤에게 빌고 또 빌어 얻은 아이였다.”

    그가 파멜라의 머리를 찬찬히 쓸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 탓이라고 생각했군요.”

    “그래. 어리석었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아이를 모질게 대했다. 아주 모질었어. 아이는 결국 일곱 살이 된 해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아이가 지금 이 아이의 동생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운명의 신은 가혹하지. 때문에 이 아이는 아무리 원해도 제 동생과 함께할 수 없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어딜 가든 모진 대접도 피할 수 없게 되었지.”

    “…….”

    “그러니 이 아이에겐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불행할 것이다. 가혹한 운명이지.”

    안타까웠다.

    전생에 지은 죄가 파멜라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전생의 그녀 역시 어리석지 않았습니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닙니까.”

    그러자 주신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운명의 신이 존재하는 이유다. 다른 이들은 아주 가혹하고 혹독한 시련 속에서 제 아이를 지키려 기꺼이 제 한 몸을 바치지.”

    “…….”

    “그런 이들은 다음 생에 더 좋은 운명을 하사받곤 한다. 그게 바로 인간과 다른 모든 종족들로 하여금 선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지.”

    어려운 이야기였다.

    “케샤는 가혹하지. 하지만 공정하다.”

    모든 것에 뜻이 있다는 것일까.

    “그러니 너 역시 이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느냐.”

    그의 표정이 일순 장난스럽게 바뀌었다.

    “신이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널 특히 아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 그러니 네게 두 번이나 새롭게 살 기회를 주지 않았겠느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보였다.

    “……압니다. 하지만 그게 꼭 지금이어야만 합니까.”

    그러자 주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역시 약속했지 않았느냐. 이번 생을 마치거든…….”

    그러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약속만 지켜주신다면 저는 좋습니다.”

    “주신의 자리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루카스가 손을 척 들어 말을 잘랐다.

    “그건 싫습니다.”

    그러자 그가 쳇, 하고 작게 혀를 차더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안 넘어간다.’

    혹 신이 되더라도 주신은 절대 사양이었다.

    “타라스도 소멸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돌아가실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없긴.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돌아갈 수는 있겠지.”

    “……?”

    “하지만 나도 조금 쉬고 싶어서 말이야.”

    그가 싱긋 웃었다.

    “아모레에겐 비밀이다. 그 아이가 안다면 나를 삶아 먹으려 들게야.”

    그러더니 몸을 오소소 떨었다.

    ‘주신도 아모레는 무서워하는군.’

    하지만 그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신계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알겠습니다.”

    루카스의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은 넘어가자.’

    아직은 처리할 일들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가자꾸나.”

    그가 다시 바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진짜 바딤님이셨군요.”

    “그렇대도. 어서 남아있는 호박파이를 더 먹고 싶군!”

    순식간에 바뀐 말투와 그의 표정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먼저 돌아가 계십시오. 저는 이곳에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뭐. 알겠네.”

    -파앗!

    바딤의 모습을 한 주신이 사라졌다.

    “후.”

    크게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주변을 둘러봤다.

    “마지막 일들을 해볼까.”

    할 일이 태산이었다.

    ***

    세이렌 영역에 남은 루카스는 먼저 파멜라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뒤 드워프들을 찾아 나섰다.

    다행인 것은 그들 모두 무사했다.

    투르캄은 루카스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눈물까지 보였으니 말 다 했다.

    ‘그 와중에도 맥주를 찾다니.’

    사실 투르캄이 아니었더라면 기에스티오가 아구아와 내통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목숨 걸고 해준 일이니…….’

    그들을 먼저 안전히 이주시킨 루카스가 다음엔 부서진 용광로를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이렌들 역시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새로운 왕이 필요하겠지만…….’

    그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가.

    더 이상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마족들의 이주였다.

    ‘이것만 마치면 며칠은 푹 잠만 자고 싶군.’

    세이렌 영역에서 할 일을 모두 마친 루카스가 마족들이 머물고 있는 에스테릴 사막으로 향했다.

    ***

    “이게 무슨…….”

    하지만 도착한 에스테릴 사막엔 마족들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질 않았다.

    “로드.”

    그때 뒤에서 들려온 하셀의 목소리에 루카스가 뒤를 돌아봤다.

    “마족들은 다 어디에 있지?”

    “바딤님께서 모두 이주시키셨습니다.”

    “그들을 모두?”

    “예.”

    “하.”

    루카스가 바삐 움직이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바딤이 한발 앞서 일을 처리해 주었다.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눈에 밟히는 몇몇이 있었다.

    “마족들 중 하나가 이걸 좀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하셀이 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건넸다.

    “이건…….”

    “예. 야스탄이 남긴 물건이라고 합니다. 루카스님께 꼭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애걸하던지…… 쯧. 귀찮아서 혼났습니다.”

    상자를 받아 든 루카스의 표정이 복잡했다.

    “그래. 고맙구나.”

    상자를 열지도 않고 품에 넣은 루카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안 열어보셔도 되겠습니까?”

    “그래. 아는 물건이다.”

    “아.”

    전생에 자신이 야스탄에게 주었던 물건이었다.

    물건으로만 본다면 아주 단순하고 보잘것없는 물건이었지만, 야스탄은 왜인지 이걸 참 좋아했다.

    텅 비어버린 숲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공허하면서도…….

    “잔잔하군.”

    “예?”

    루카스의 뜬금없는 말에 하셀이 되물었다.

    “아니다.”

    작게 고개를 저은 루카스가 하셀을 향해 싱긋 웃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게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

    장난스레 웃은 루카스가 다시 한번 숲을 바라보곤 몸을 돌렸다.

    “드디어 모두 끝났구나.”

    “예.”

    “고생했다.”

    “고생은요. 로드께서 고생하셨죠.”

    루카스와 하셀이 마주 보며 웃었다.

    “며칠은 잠만 좀 자야겠다.”

    “저도 몇 달은 잠만 좀 자고 싶습니다.”

    “넌 안 되지. 피해를 입은 이종족이 몇인데 드래곤 로드씩이나 되는 이가 잠을 잔다는 말이냐.”

    “……로드는 정말 나쁩니다.”

    하셀이 눈을 흘기며 입술을 삐죽였다.

    “여태 로드 대접은 다 받으셔 놓고 이제 와서 발 쏙 빼시기 있습니까?”

    “누가 해달래?”

    그러자 하셀이 분한 듯 발을 한번 쿵 구르고는 등을 홱 돌렸다.

    “앞으로 더 수고해라. 그럼 나는 간다!”

    루카스가 하셀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어, 어!”

    하셀이 얼른 몸을 돌려 루카스를 잡으려 했지만, 때는 늦고 말았다.

    -파앗!

    ***

    오랜만에 돌아온 백작저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곳곳에 부서지고 무너진 담벼락 하며, 쑥대밭이 된 뒤편 숲까지.

    “꼴이 엉망이군.”

    먼저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루카스가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게 뭐가 잘 어울린다고.’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한번 정리한 그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씨익 웃었다.

    ‘어색하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피곤해서인지 뜻대로 되질 않았다.

    “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크게 숨을 내뱉은 루카스가 방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며 걸었던 복도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래. 제대로 살겠다 다짐했었지.’

    그 다짐이 흔들리기도 했었고 말이다.

    ‘모든 게 끝나고 나니…….’

    지나왔던 모든 험했던 길이 별거 아닌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언제 끝나나 매일 고통스러워했었지.’

    인간의 몸에서 눈을 떴던 그 순간이 잊히질 않았다.

    낯선 천장과 저를 보며 웃는 인간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눈물까지 짓는 그들을 보며 루카스는 있지도 않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더랬다.

    그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랬던 그가 지금은 이렇게나 바뀌어 있었다.

    제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했고, 제 안전은 뒤로한 채 그들을 먼저 보호했다.

    아마록을 잃으면서도 제 뒤에 선 그들에게 온 신경이 쏠렸었다.

    “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이 있는 지하층까지 도착해 있었다.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루카스가 커다란 문을 힘주어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드디어 돌아왔다.

    사랑하는 이들의 품으로.

    -THE EN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