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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19화 (219/225)
  • 219화. 희생 (2)

    언제나 방정맞게 흔들리던 기에스티오의 작은 지느러미가 파삭, 하며 부서졌다.

    “그래. 이 순간을 기다렸다.”

    루카스의 눈이 형형하게 빛날 때마다 주변은 살기로 얼어 붙었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상상을 수백, 수천 번 반복했지.”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기에스티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루카스의 발걸음이 여유로웠다.

    “어떤가.”

    “크억……. 어억…….”

    벌겋게 달아오른 기에스티오의 눈에 광기가 어른거렸다.

    “네 놈의 잘난 머리로 이것도 한번 빠져나가 봐라.”

    루카스의 행동은 옆에 서서 그 광경을 보던 바딤 역시 혀를 찰 만큼 잔혹했다.

    -사아아아…….

    그때 세이렌의 영역을 둘러싸고 있던 장막에서 일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

    밝은 빛에 당황한 것도 잠시.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 루카스가 의문을 품었던 때였다.

    “크윽!”

    바딤의 고통스러운 듯한 목소리에 루카스가 뒤를 돌아봤다.

    바딤의 몸이 시퍼렇게 질려가고 있었다.

    “바딤님!”

    루카스가 바딤에게 얼른 보호마법과 치유마법을 쏟아 부었다.

    “주, 죽을 뻔 했네. 하셀이라는 친구가 준 이게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죽을 뻔했어.”

    바딤이 팔에 차고 있던 조개로 된 팔찌를 들어 짤랑 흔들었다.

    “다행입니다.”

    세이렌 영역에 간다고 하자 하셀이 바딤에게 줬던 팔찌였다.

    “내 마법이 모두 무효화가 되었네.”

    바딤과 루카스는 바다에 내려오기 전 각자 보호 마법을 걸고 왔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얀빛이 터지고 루카스는 멀쩡했는데 바딤은 아니었다.

    “설마…….”

    드래곤에게만 통하는 무언가가 발동된 듯 보였다.

    “끝까지 발악을 하는구나.”

    루카스는 얼음에 갇혀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기에스티오를 향해 이죽거렸다.

    “그래. 끝까지 발버둥 쳐봐라.”

    루카스가 바딤에게 스크롤을 하나 건넸다.

    “먼저 가 계세요.”

    “그래도 괜찮겠는가?”

    “물론입니다.”

    자신 역시 드래곤들과 비슷한 수준의 마나를 지녔다. 게다가 물의 정령왕인 엘라임의 계약자였으니 여차하면 그를 소환해도 될 터.

    “그래. 알겠네.”

    바딤이 스크롤을 받아 들며 어딘가 찜찜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스크롤을 죽 찢어 사라졌다.

    “그래. 더 할 일이 혹시 남아있다면 지금 하거라.”

    루카스가 기에스티오를 옭아맸던 마법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며 말했다.

    “크어…….”

    기에스티오가 고통에 찬 신음을 한번 주욱 뱉어내고는 루카스를 올려봤다.

    “하래도.”

    루카스는 왠지 모르게 그가 하는 짓 모두를 끝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너 같은 인간…… 아니, 세이렌은 처음이다. 아니, 그냥 너 같은 존재 자체가 처음이라 해야 맞겠군.”

    “……저를 당장 죽이지 않으신 걸 후회하실 겁니다. 당신의 오만 역시 어디까지인지 저도 보고 싶군요.”

    루카스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내 오만일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네 놈의 수가 어디까지인지 꼭 봐야겠으니까.”

    처음으로 만난 엄청난 적수라는 생각 때문일까.

    이자가 쓰는 머리가 어디까지인지 정말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지요.”

    기에스티오가 피식, 웃었다.

    “제가 죽었더라도 이 수는 남아있었을 겁니다.”

    기에스티오의 지느러미가 다시 세차게 흔들렸다.

    -파스스스슷…….

    다시 한번 하얀빛을 뿜어내는 장막이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흩어지던 새하얀 연기가 흡수되기 시작하자, 기에스티오가 비명을 내질렀다.

    “젠장!”

    그제야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린 루카스가 기에스티오의 몸을 다시 마법으로 옭아 맸으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크아아아아아!!!”

    기에스티오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며 루카스의 마법을 부숴냈다.

    -콰지직! 콰직!

    루카스가 그 위에 마법을 얹고, 또 얹어도 기에스티오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젠장 할.”

    고대 마법. 그것도 흑마법 중에 가장 악하고 사악한 마법이었다.

    “네 놈이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나는 신이다.]

    “미친놈.”

    고대 흑마법사 중에 하늘에 도전하던 자들이 연구했던 마법. 페디오스 마법이었다.

    페디오스 마법에 필요한 것은 십 만의 영혼과 순수한 천사의 날개 한 쌍. 그와 함께 신의 영혼 조각이었다.

    “그 짓을 하다니.”

    고대에서도 십 만의 영혼 이외에 다른 것들을 모을 방법이 없어 실현되지 못했던 마법이었건만, 기에스티오는 지금 그 짓을 해내고 만 것이다.

    [힘이 넘치는구나.]

    거대해진 기에스티오의 얼굴이 루카스를 내려봤다.

    “네 놈은 진짜 곱게 죽기는 글렀구나.”

    루카스의 잇새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새로운 신의 탄생. 그것도 악신의 탄생이었다.

    ***

    손을 덜덜 떨며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네는 파멜라.

    “드디어……!”

    그것을 받아든 기에스티오의 얼굴에 환희가 차올랐다.

    “드디어, 드디어!!!”

    주머니에 든 것은 마왕 야스탄이 여태 긁어모았던 영혼들이 응축된 영혼석이었다.

    “멍청한 야스탄! 이걸 두고도 쓰지 않았다니!”

    이로써 부족했던 영혼을 모두 충족시킨 기에스티오는 가슴에 무언가 가득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신이 될 수 있다.’

    아구아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누구에게 겁을 먹은 건지는 몰라도 아구아는 뒤로 내뺀 것이 분명했다.

    ‘분명 그 머저리같은 아모레겠지.’

    지금 주신의 자리는 공석이다.

    ‘내가 잘난 네 놈들의 신이 되어주지.’

    타라스가 소멸하며 남겼던 작은 영혼의 조각 역시 손에 넣었다.

    또한 타라스가 강림하며 함께 강림했던 천사들의 날개 역시 야스탄이 잘 모셔둔 덕에 그 또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건만!’

    혹시 몰라 긴 세월 동안 바다에 살며 물에 빠진 인간들의 영혼을 모았던 것이 신의 한수였다.

    ‘인간들의 영혼 따위는 쓸 일이 없을 줄로만 알았건만!’

    언젠가부터 인간들이 물에 빠진 척 연기를 해 세이렌을 잡아가기 시작하자, 기에스티오는 특명을 내렸었다.

    물에 빠진 인간들의 영혼을 모두 거두라고 말이다.

    “아주 잘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잘 융합하기만 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쓰지 않으실 거죠……?”

    파멜라를 잘 구슬려 얻어낸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영혼석은 물속에서도 빛을 내지 않았다.

    “물론이지. 물론이야.”

    이제 드워프들을 시켜 이것을 가공할 일만 남아있었다.

    “방어막을 갖추는 데만 쓸 거다.”

    “……알겠어요.”

    파멜라는 더 이상의 희생은 원치 않는다며 빌고 또 빌었다.

    그에 기에스티오는 ‘절대 그럴 일은 없다.’며 파멜라를 달래고 또 구슬렸다.

    ‘네년이 알고 있을 줄 알았지.’

    영혼석을 품에 꼭 안은 기에스티오가 파멜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고맙구나.”

    누구보다 인자한 웃음이었다.

    ***

    -콰아아아앙!

    기에스티오가 손을 한번 휘저을 때마다 엄청난 굉음이 일었다.

    “끄아아악!”

    멀찌감치 멀어져 있던 세이렌들 역시 폭발에 휩쓸려 비명을 횡사했다.

    “젠장 할!”

    루카스는 방어막을 펼친 채 몸을 웅크렸고.

    -콰콰쾅!

    기에스티오가 창을 내질러 루카스의 방어막을 깨부수려고 할 때마다 주변이 움푹 패이고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기에스티오의 묵직한 음성이 바닷속을 가득 울렸다.

    [분명 후회할 거라고.]

    그리고 기에스티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당장 죽였어야했나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하지만 내가 죽었다면 더욱 완벽했겠지.]

    ‘그래. 차라리 다행이다.’

    하지만 기에스티오의 말처럼 페디오스 마법은 육신이 없을 때 더욱 완벽히 발동되는 마법이었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르냐에 따라 위력이 결정되는 흑마법. 페디오스 마법은 수많은 희생을 밑거름으로 삼는 마법이었기에 그만큼의 위력이 발동되는 것이었다.

    시전자의 육신까지 바쳐진다면 더욱 위력이 더해졌을 터다.

    [그래. 이번 수는 네가 이겼군.]

    “주둥이 나불거리지 마라.”

    루카스가 제 팔에 있는 아모레의 힘을 끌어모았다.

    ‘이렇게 쓰면…….’

    아모레의 방어막은 쓸 수 없게 될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어차피 드래곤들의 힘을 제한하는 저 아티팩트를 찾아 부수지 않는다면 하셀을 비롯한 다른 드래곤들이 온다해도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페디오스 마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완벽해졌다. 그러니 그가 신으로 각성한지 얼마 안 된 지금이 기회였다.

    [네놈의 오만을 탓해라.]

    “주신의 권능이 내게 있는 건 혹시 알고 있나?”

    [그래 봤자다. 내가 네 힘을 먼저 빼앗으면 되니 말이다.]

    기에스티오가 피식 웃었다.

    “웃기는군.”

    루카스가 아모레의 방어 마법을 풀고 곧장 기에스티오를 향해 쏘아져 올라갔다.

    [같잖은 수를 쓰려고 하는구나.]

    저를 향해 날아오는 루카스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읊조린 기에스티오가 손을 뻗었다.

    ‘안 돼.’

    필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어 그의 손을 피해낸 루카스가 손에 힘을 끌어모았다.

    -콰아아아앙!

    아모레의 신력이 더해진 마법이 기에스티오의 목 부근을 강타했다.

    [크아악!]

    악신에게 진짜 신력은 통했다.

    ‘됐다.’

    뒤로 몸을 물린 루카스가 다시 한번 힘을 끌어 모으던 때였다.

    -쿠오오오오오…….

    기에스티오의 주변에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윽!”

    하마터면 소용돌이에 휩쓸릴 뻔한 루카스가 얼른 몸을 빼냈다.

    [네 놈이…… 기어이……!]

    기에스티오가 제 목 부근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죽여주마. 네 놈에게 있는 모든 권능을 빼앗아 온전한 신이 되겠다!]

    기에스티오의 손에 거대한 창이 소환됐다.

    “엘라임!!!”

    루카스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건 혼자 막을 수 없다고 말이다.

    “아모레!!!”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이름을 외쳤다.

    [가엾구나.]

    하지만 기에스티오는 그들의 이름을 듣고도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설마.”

    [그래. 네 놈이 아무리 그들의 이름을 외쳐도.]

    기에스티오가 창을 높게 치켜올렸다.

    [그들이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에스티오의 창끝이 루카스를 향했다.

    [네 놈의 힘은 잘 쓰마.]

    자신을 향한 거대한 창을 마주한 루카스는 생각했다.

    ‘끝이구나.’

    기에스티오의 말대로 오만한 판단이었다.

    ‘나는 끝까지…….’

    오만했다. 드래곤으로 살아왔던 긴 세월도.

    ‘인간으로 살지 못했구나.’

    인간으로 살았던 짧은 시간들 역시 언제든 삶을 내던질 준비를 하며 살았었다.

    ‘인간들의 말이 거짓인 줄 알았더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들.

    소중한 장면들이 마치 잘 그려둔 그림처럼 생생히 지나갔다.

    ‘소용없겠지.’

    마나는 무한했으니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방어 마법을 겹겹이 둘렀지만, 이번엔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죽어라.]

    기에스티오의 손에서 창이 떠나며 제게 다가오는 찰나의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별거 아니었구나.”

    그래도 아등바등 살았는데 그 모든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영멸은 얻었나.’

    창이 내리꽂히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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