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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17화 (217/225)

217화. 마족 (2)

드래곤들의 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마족들은 변변한 잠자리 하나 없이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나고 있었다.

“테드라스님…….”

거기에 더해 자신들의 수장인 마왕까지 죽고 말았다.

“그래.”

마왕의 충직한 신하이자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테드라스 역시 실의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루종일 제 부모를 찾으며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덩달아 녹초가 된 마티사크가 테드라스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 역시 마계로 쫓겨나며 잃은 것이 수도 없이 많았다.

명예를 잃었으며, 사랑하던 이를 잃었다.

살고 있던 터전을 빼앗겼으며, 생이별을 겪었다.

이젠 정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슬프구나.”

연인과 함께 거닐던 숲에 다시 돌아왔음에도 되찾은 것이 없었다.

“모두 잃었다.”

“…….”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모두 잃었어.”

테드라스의 공허한 목소리가 슬피 울렸다.

“하지만…… 테드라스님 말씀대로 우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힘없이 말하는 마티사크의 시선이 아이들이 잠든 임시 거처에 머물렀다.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와 크고 작은 잎사귀들을 얼기설기 엮어 대충 지어놓은 곳이었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아이들은커녕 자신들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드래곤들을 찾아가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

테드라스 역시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왕님께서 테드라스님께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온 마왕 야스탄은 테드라스를 불러 슬픈 얼굴로 이야기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티사크의 물음에 잠시 숨을 고른 테드라스가 힘겹게 대답했다.

“혹여 자신이 세상에 없더라도 일족들을 잘 부탁한다 하셨다.”

“그렇다면…….”

“그래. 이미 예견하셨던 걸 수도 있다.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드래곤이 마왕님을 해친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마티사크가 버럭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테드라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닐 거다.”

드래곤들이 굳이 야스탄을 암살할 이유는 없다.

“마왕님을 해칠 거였다면 굳이 이런 방법을 쓸 필요는 없었겠지.”

“그렇다면 누구의 짓이라는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마왕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이는 테드라스였다.

때문에 맨 처음 마왕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땐 테드라스 역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마왕이 있던 작은 오두막을 샅샅이 조사해서 나온 결과는 수정구에서 느껴지는 옅은 마력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였을까.’

혹시 야스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말이 되지 않았다.

‘마지막 대답을 기다린다고 하셨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셨다면 약속 또한 하지 않으셨을 터인데.’

야스탄은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였다.

그런 그가 마지막 대답을 듣지 않은 채로 목숨을 끊었을 리는 없다.

“마티사크.”

테드라스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예.”

“누군가 온 것 같구나.”

***

“저 집이 아직도 있군요.”

멀리서 얼핏 비추는 오두막 지붕을 본 하셀이 말했다.

“그래. 있구나.”

그리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마당이었을 자리에 여기저기 세워진 작은 천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찾던 이들도 여기 있고 말이다.”

하셀과 루카스 앞에 나타난 두 개의 인영이 살기를 드래냈다.

“죽이기라도 하려고?”

하셀이 먼저 그들 앞에 여유롭게 나섰다.

“……안 되더라도 해볼 수 있다면 해봐야겠지요.”

테드라스가 두 주먹을 꽉 쥔 채 당장에라도 앞으로 튀어 나갈 듯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만.”

하셀 뒤에 서 있던 루카스가 한 발짝 나서며 둘을 만류했다.

“우린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지 싸우러 온 게 아니다.”

“…….”

“너희를 다시 마계로 돌려보내 주마.”

루카스의 말에 테드라스가 꽉 쥐고 있던 두 주먹의 힘을 잠시나마 느슨하게 풀어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마티사크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혹시 기에스티오님과 연락이 닿으신 겁니까?”

듣기만 해도 화가 치솟는 이름이었다.

“……아니.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러니 이야기를 좀 나누겠나.”

루카스가 화를 꾹 억누르고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마티사크가 테드라스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알겠습니다.”

테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마티사크와 바로 맞은편에 마주 앉은 루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저를 아십니까?”

인간인 루카스였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기에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래. 언젠가 본 적이 있었지.”

“그렇군요.”

테드라스는 더 묻지 않고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스탄의 일은 알고 있다.”

그러자 테드라스의 눈이 순식간에 매섭게 변했다.

“당신이 어떻…….”

루카스가 한 손을 들어 테드라스의 말을 막았다.

“기에스티오의 짓이다.”

“말도 안 됩니다.”

마티사크였다.

“믿을지 말지는 너희 자유다.”

“로드. 자유는 무슨 자유랍니까?”

하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다면 당장에라도 네놈들을 세이렌 영역에 던져주지. 모두 사이좋게 물고기밥이 되고 싶다면 말이야.”

하셀 역시 더 이상 참아주기가 힘든 듯 보였다.

“네 놈들을 살리겠답시고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나? 뻔뻔하게 굴어도 유분수지.”

하셀의 잇새에서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셀. 그만해라.”

“맞잖습니까? 우리 일족 절반이 죽었습니다. 영혼까지 모두 소멸당해 환생의 길도 막힌 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식들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놈들은 은혜도 모르는 놈들입니다!”

하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루카스 역시 조금 당황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마계로 꺼지든지 아님 전부 뒈지든지.”

하셀이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네놈들이 언제부터 우리와 같은 자리에 앉아 말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었지? 하찮은 것들 주제에.”

“언사가 지나치다.”

루카스가 하셀의 폭주를 막아섰다.

‘이러다간 진짜 다 죽이겠어.’

레드 일족보다는 덜할지 몰라도 하셀 역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만해라.”

“……알겠습니다.”

그나마 이성은 남아있던 건지 하셀은 순순히 물러났다.

“이주할 수 있는 날은 오늘로부터 이틀 뒤다. 그때면 모두 준비가 끝날 거라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테드라스 역시 하셀의 투명한 분노를 마주하고는 더는 말을 얹지 않았다.

“그래. 이만 가지.”

루카스 역시 무어라 말을 더 하려던 것을 애써 집어넣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말을 나눌 기회가 오겠지.’

그들을 마계로 다시 보내려던 목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남은 마족들은 어떻게든 다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단 하나였다.

‘기에스티오.’

그를 잡아 죽여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다.

***

파멜라와 체스를 두는 기에스티오는 수세에 몰린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흐음…… 어렵군요. 아주 어려워요.”

“…….”

파멜라는 그런 기에스티오를 보며 무표정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왜 자꾸 나를 찾는 걸까.’

아무리 제가 체스를 잘 둔다고 하여도 이상한 일이었다.

‘차라리 죽이거나 내쫓았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기에스티오와 마주할 때면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자신을 은근히 떠보는 듯한 언사와 함께 던져지는 수들이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마왕이 죽었다더군요. 그 이야기 혹시 들으셨습니까?”

이제 막 말을 집어 든 파멜라의 손이 흠칫 떨렸다.

“못 들으신 모양이군요.”

우뚝 멈춰있던 기에스티오의 지느러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저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당황한 파멜라의 말에 기에스티오는 속으로 ‘옳다구나.’를 외쳤다.

“그저 지나는 소문을 이야기한 것일 뿐입니다. 무슨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만.”

“어찌 되었건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기에스티오의 허를 찌르는 말에 파멜라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난번에 마족도 모른다 하셨으니 당연히 모르시겠지요. 아, 그런데 말입니다.”

파들파들 떨리는 파멜라의 손이 힘겹게 말을 옮겨 놓았다.

“마족들 역시 대부분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는 지난번에 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파멜라가 애써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오오. 그렇군요. 이것 참…….”

기에스티오가 말을 옮겼다.

탁, 소리와 함께 말이 체스판 위에 놓이자 파멜라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이런 실수를 하시다니요.”

파멜라를 보며 싱긋 웃는 기에스티오의 표정에 도취감이 어렸다.

“저도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파멜라가 제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런데 기에스티오님은 어떻게 육지의 상황을 그리도 잘 아시는 겁니까?”

파멜라가 최대한 침착한 말투와 몸짓을 보이려 애를 썼다.

‘애를 쓰는군.’

안타까운 건 파멜라가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기에스티오도 안다는 점이다.

“아, 그 말씀을 안 드렸군요.”

“……?”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파멜라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육지에 정보를 주는 이들이 몇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수롭지 않은 정보라는 듯 파멜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체스판 위에 시선을 두었을 때였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이가 준 정보는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고심 끝에 말을 집어 든 파멜라가 물었다.

“제가 죽였거든요.”

파멜라의 손에 들렸던 말이 체스판 위로 툭, 하고 떨어져 다른 말 몇 개를 함께 넘어뜨렸다.

‘본인의 손으로 죽였다니? 어떻게……?’

분명 기에스티오는 육지로 나간 적이 없었다.

‘정보를 준다던 이가 죽인 건가?’

야스탄은 제게 진심을 보였던 몇 안 되는 이였다.

이종족에게 받은 호의 역시 야스탄이 처음이었다.

“어이쿠! 이런. 이렇게 되면 다시 두어야겠습니다.”

“…….”

“체스는 이렇게 다시 두면 되지만…….”

기에스티오가 얼른 말을 정리했다.

“목숨은 그렇지 못하지요.”

파멜라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저건 협박이다. 분명한 협박.’

기에스티오는 지금 제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지금 두는 체스판처럼 네 목숨은 다시 둘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신중해야겠지요.”

당황하는 파멜라의 모습을 보며 즐거웠던 기에스티오의 지느러미가 우뚝 멈춰 섰다.

“당신 동생을 영영 잃고 싶지 않으면 말입니다.”

파멜라는 이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같잖은 수를 쓰는 걸 봐주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파멜라 양.”

파멜라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내 동생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당신도 죽여버릴 거야.”

파멜라의 몸에 검은 회오리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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