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16화 (216/225)
  • 216화. 마족 (1)

    [놀라셨습니까! 하하하!]

    푸른 물에 잠긴 기에스티오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야스탄은 어디 있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오…… 야스탄…….]

    기에스티오가 눈을 위로 치켜뜨며 있지도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저곳에 있을 겁니다.]

    안타깝다는 듯 가슴께에 손을 얹은 모습이었지만, 허리춤에 달린 작은 지느러미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네 놈이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구나. 기에스티오.”

    [오! 설마요. 저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상상만으로도 두렵군요!]

    결국 기에스티오가 야스탄을 죽이고 말았다.

    ‘그렇게 두지 않았어야 했거늘.’

    가여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꼭두각시처럼 휘둘리기만 하다가 죽고 말았다.

    드래곤의 알을 훔쳤을 땐 어리석은 신하와 인간들의 뜻이었고, 드래곤을 향해 칼을 겨눴을 때도 실은 세이렌의 뜻이었다.

    그는 그렇게 아둔함을 죄로 한평생 휘둘리기만 하다 죽고 말았다.

    “기에스티오.”

    낮게 가라앉은 루카스의 음성이 그르렁거렸다.

    [아! 드워프들은 걱정 마십시오. 세상이 모두 바다가 될지언정 그들은 꼭 남겨둘 테니 말입니다.]

    기에스티오가 싱긋 웃으며 물건을 하나 꺼내보였다.

    [이것만 있으면 언제든 육지가 만들어질 테니 말입니다!]

    드워프들이 새로 만든 아티팩트인 듯싶었다.

    “네 놈을 꼭 찾아내 죽여주마.”

    [세상에나! 그런 말씀 마시지요.]

    과장되게 몸을 흠칫 떠는 기에스티오의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했다.

    [어찌 되었건 드래곤들은 꽤나 오래 살겠지만…… 뭐 온 세상이 바다인데 저희가 갈 곳이 없겠습니까! 게다가 지금도 바다가 훨씬 넓은 것을요. 하하하!]

    “내가 아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널 죽여주마.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네 얼굴을 끝까지 지켜봐 주지.”

    […….]

    날이 선 살기에 기에스티오가 말을 잃고 잠시간 수정구를 바라봤다.

    [그러시든지요.]

    하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루카스는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애써 억눌러 당장에라도 수정구를 집어 던지고싶은 것을 참아냈다.

    [아. 그리고…….]

    루카스가 연결을 끊어내려는 것을 안 기에스티오가 그를 붙잡았다.

    [파멜라인가요? 야스탄이 새로운 이름을 줬다고는 하던데 그 이름이 뭔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뜬금없이 튀어나온 파멜라의 이름에 놀란 루카스가 되물었다.

    [여기에 있거든요. 그 아이 말입니다.]

    “…….”

    [아주 영특한 아이더군요. 마지막까지 어떻게 쓰일지 한번 보십시오.]

    파멜라라는 이름에 루카스가 잠시 동요한 것을 알아차린 기에스티오가 도발했다.

    “그러시든지.”

    이번엔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내 손으로 죽이려했던 아이인데 직접 처리해준다면 감사하지.”

    […….]

    “아, 혹시 처리하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네 놈이 죽기 전에 꼭 끌어안고 있어라. 함께 보내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연결을 끊어낸 루카스의 잇새에서 까득, 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감히.’

    야스탄이 당했다.

    ‘마족들은 괜찮은 건가.’

    야스탄을 제외한 마족들과 연결고리가 없으니 소식을 알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죽인 거지?’

    야스탄이 저렇게 당했다면 다른 마족들 역시 무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젠장 할!!!”

    결국 루카스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무기력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더이상은 잃고 싶지 않다.’

    속이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더이상은…….’

    ***

    마음을 어느 정도 다스린 루카스는 하셀과 함께 마족들의 본거지를 찾아 나섰다.

    “얘네 다 어디갔을까요.”

    먼저 델러다칸에 들른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마족들이 어디 있을지 먼저 생각하는 중이었다.

    “짐작 가는 곳이 있다.”

    루카스의 머릿속에 한곳이 떠올랐다.

    ***

    전생에 야스탄과 했던 대화였다.

    “라노스님. 혹시 에스테릴 사막 옆에 작은 숲이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작은 숲?”

    둘은 가끔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티타임을 즐겼었다.

    야스탄은 인간들과 마족들 사이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들려주었으며, 루카스 역시 드래곤들이 최근 찾아낸 성유물이나 아티팩트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예. 그곳에 언젠가부터 풀이 한두포기씩 자라기 시작하더니 숲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그래?”

    에스테릴 사막은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그런데 숲이라니?

    “혹시 북쪽으로 가면 숲이 시작되는 그쪽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라노스님도 참. 제가 그곳도 모를까 봐요?”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숲이라.”

    “예. 일족 중 하나가 그곳에 숲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고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래?”

    “예. 그 일족의 반려가 엘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엘프는 마을에서 쫓겨났겠군.”

    “예.”

    엘프들은 타 종족과의 혼인을 결사반대했다.

    조금 과격한 이들은 다른 종족들을 두고 ‘더러운 피’라고 칭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숲이 시작되는 곳이니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러자 야스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안 그래도 저도 그 부분이 걱정되어 물었더니 그자의 반려가 땅의 정령을 부릴 줄 안다고 하더군요.”

    “흠. 그렇다면 조금 낫겠군.”

    “다음에 그곳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가보니 신기했습니다. 사막에서 시작되는 작은 생명들이 퍽 생기를 띠더군요.”

    “그러지.”

    야스탄은 항상 이러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와 나누었고, 좋은 곳이 있으면 자신을 찾아와 함께 구경갈 것을 권했다.

    전생에 루카스는 그런 야스탄을 아꼈다.

    ***

    얼마 뒤에 찾은 그 숲은 야스탄의 말대로 퍽 신비로웠다.

    “꽤나 괜찮군.”

    “그렇죠?”

    사막의 모래가 어느 지점부터 조금씩 단단해지는가 싶더니, 돌연 숲이 시작되었다.

    “그래. 숲의 신이 장난이라도 친 것 같아.”

    “하하! 라노스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꽃의 씨앗들이 땅에 자리를 잡고 피어나고 있었고, 아직은 허리께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묘목들이 듬성듬성 생겨나고 있었다.

    “저곳인가 보군.”

    숲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서자, 작은 오두막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예.”

    잿빛 피부를 가진 사내와 함께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귀가 뾰족한 여인이 함께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테드라스.”

    “마왕님!”

    야스탄이 그를 부르자, 테드라스라고 불린 사내가 얼른 뛰어나왔다.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왕을 대하는 태도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태도였지만, 인간과는 달리 마족들은 그러했다.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엄청난 믿음과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어쩐 일이긴. 새로운 살림을 응원해주러 와보았네. 어떤가? 숲이 너무 작지는 않은가.”

    “하하! 괜찮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어쩐 일인지 에스테릴 사막에 사는 몬스터들도 침범하질 못합니다.”

    “그래?”

    옆에서 듣던 루카스 역시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참 신기하군.”

    “어……! 드래곤님 아니십니까!”

    “그래.”

    그러자 멀찌감치서 야스탄과 제 남편을 지켜보던 엘프 여인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왕을 뵙습니다.”

    루카스를 본 엘프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래.”

    루카스 역시 그 인사를 자연스레 받아주었다.

    “아. 그보다 줄 게 있네.”

    야스탄이 제 주머니에서 작은 선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뭡니까? 물뿌리개!?”

    선물을 받아 든 마족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실망한 기색을 역력히 내비쳤다.

    “그래.”

    그 모습을 본 야스탄이 피식, 웃었다.

    “내가 설마 평범한 물뿌리개를 줬겠는가?”

    “…….”

    “물을 뿌려보게.”

    “예? 지금요?”

    야스탄의 말에 테트라스가 텅 빈 물뿌리개 안을 보며 되물었다.

    “그래. 뿌려보래도.”

    끝까지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테드라스가 물뿌리개를 아래쪽으로 숙였다.

    “오, 오!”

    그러자 물뿌리개에서 맑은 물이 퐁퐁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엄청 비싼 거야.”

    야스탄이 테드라스의 귀에 대고 장난스레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가까운곳에 연못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야스탄의 센스있는 선물에 루카스 역시 감탄했다.

    ‘나도 뭘 좀 줘야 하나.’

    루카스가 주변을 한번 슥 둘러봤다.

    “그렇다면 나도 뭘 좀 줘야겠군.”

    그들에게 줄 선물이 생각난 루카스가 제 앞에 서서 눈을 빛내는 엘프를 보며 싱긋 웃었다.

    [αὐξάνω ἐν τῇ ζωῇ σου]

    용언으로 된 고대어가 루카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다른 이들의 눈에 기대심이 가득 차올랐다.

    [……자라나 숲을 채울지어다.]

    한참이나 이어졌던 주문이 끝나자, 숲에 생명력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허리께까지 왔던 나무들이 순식간에 키를 높여 빽빽이 숲을 채우기 시작했다.

    듬성듬성 모래가 보였던 땅에도 들풀이 빼곡이 자리하기 시작했으며, 작은 들꽃 역시 땅을 가득 메웠다.

    그 모습을 본 이들 모두 신이라도 강림한 듯 경건한 표정이 되어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고 감탄했다.

    “정말, 정말 대단하십니다.”

    “라노스님. 이런 선물을 주시면 제 선물이 뭐가 됩니까…….”

    야스탄이 옆에서 풀죽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네 선물은 이것들을 키워내는 데 쓰겠지.”

    “엄청난 선물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엘프의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숙여졌다.

    “내가 써준 마법은 너희가 이곳에 살 때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너희가 이곳을 떠난다면 숲은 본래의 속도를 찾아 성장하겠지. 그러니 둘이 여기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 숲을 더욱 키워보거라.”

    마족과 엘프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예. 감사합니다.”

    “가지.”

    그들을 보고 싱긋 웃어준 루카스가 야스탄에게 말했다.

    “그래. 잘 살거라.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하지 말고 둘이 알아서 해결해 보거라.”

    장난스레 말한 야스탄 역시 루카스를 따라 몸을 돌렸다.

    ‘퍽 귀엽군.’

    새로 시작된 젊은 커플을 응원해준 기분도 퍽 나쁘지 않았다.

    ***

    “이곳이 짐작가는 곳이었습니까?”

    루카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에스테릴 사막 구석에 있는 작은 숲이었다.

    사람들이 한때는 이곳을 두고 생명의 숲이라며 칭송했더랬다.

    지금은 생명의 숲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신기한 숲쯤은 되는 숲이었다.

    사막에 뜬금없이 숲이 생겨났으니.

    “그래.”

    루카스가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테드라스.’

    야스탄과 함께있던 그자를 얼핏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기는 하네요.”

    높이 자란 나무들이 생기를 띠었다.

    그걸 보니 루카스는 더욱 확신했다.

    마족들이 이곳에 있다고 말이다.

    “어? 느껴집니다. 로드 말씀대로 이곳에 있나본데요?”

    탐색 마법을 펼치던 하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루카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잊지 않았구나.’

    이곳에서 웃던 야스탄의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