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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08화 (208/225)
  • 208화. 수 싸움. (1)

    기에스티오와 마주한 아구아의 표정이 험상궂었다.

    [야. 왜 말이 없어? 어?]

    “…….”

    [마지막에 쳐서 다 먹으라며? 하마터면 내가 먹힐 뻔했다고.]

    기에스티오는 갑작스러운 아구아의 방문에 사지가 떨릴 지경이었다.

    [허? 이것 봐라? 네가 한 말인데 책임은 져야 할 거 아니냐고.]

    아구아가 비아냥거리며 발을 탁, 탁, 굴렀다.

    소멸은 면했지만 진짜 까딱하다간 갈 뻔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르자 눈앞에 있는 이 물고기를 당장에라도 쳐죽이고 싶었다.

    “아구아님.”

    그때 기에스티오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말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죽자 싶었다.

    [말해봐.]

    “차라리 이게 더 잘 된 기회일지 모릅니다.”

    [뭐?]

    기에스티오의 말에 아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타라스는 소멸했고 마족들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제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그래서?]

    “그러니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대부분의 세력들이 죽거나 소멸했으니 말이죠. 아구아님께서 그 빈자리를 차지하시면 됩니다.”

    [야. 저번에도 빈자리 차지하라며? 그런데 아모레한테 소멸당할 뻔했어.]

    아구아의 말에 기에스티오가 고개를 들더니 씨익 웃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주신의 열쇠라는 자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가 주신의 권능을 이어받게 된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지?]

    “그를…… 주신의 자리에 오르면 됩니다.”

    아구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멍청한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자는 주신의 자리 따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생을 끝내고 싶어 했다지요. 마신 타라스 역시 그자에게 그것을 빌미로 거래를 내걸었고 말입니다.”

    [……그렇지.]

    “그럼 그자가 주신의 자리에 올라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주신의 자리를 내려놓으려고 할까?]

    “바로 그겁니다. 사라진 주신을 찾는 것에 열중하거나 제 자리를 넘겨줄 다른 이를 찾겠지요.”

    [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아구아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를 노리십시오. 마신이 없는 마족들은 이빨 빠진 맹수와도 같지요. 제아무리 마법을 잘 쓴다 하여도 저희가 공급했던 아티팩트들이 없다면 드래곤에게 대적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렇지.]

    “그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더 이상 드래곤들의 심기를 거슬러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기에스티오의 눈이 활처럼 휘었다.

    [참 교활해. 넌 내가 본 생물 중에 가장 교활한 놈이야.]

    “하하. 과찬이십니다.”

    기에스티오의 넉살에 아구아가 혀를 쯧, 하고 찼다.

    [미친놈.]

    “아구아님께서는 그자가 주신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에만 집중하시지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흠…… 아모레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놈 아모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하하!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아구아님께서 지상에 있는 인간의 목숨 따위를 취하지 못하실 리가 없는 것을요.”

    [그건 또 그렇지.]

    아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됐네. 내가 죽인 줄만 모르면 되는 거 아냐?]

    “예. 맞습니다.”

    [그러지 뭐. 큭……! 크학! 그 자식이 주신의 자리를 내려놓기 전에 내가 빼앗아 오지 뭐! 어차피 처음 신의 자리에 올라서면 어리바리해서 아무것도 못 하거든!]

    “예. 뜻하는 대로 이루실 겁니다.”

    기에스티오가 머리를 푹 숙여 예를 표하자, 만족스럽게 웃은 아구아가 손을 휙 저었다.

    [그래. 간다!]

    기에스티오가 땅에 고개를 처박은 사이 아구아가 떠났다.

    “하…….”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하…… 하, 하하하!”

    한숨이 곧 웃음으로 바뀌어 방을 가득 울렸다.

    “좋구나. 아주 좋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기에스티오가 주변을 슥 둘러봤다.

    새롭게 마련한 터전도 마음에 들었다. 전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새 터전은 험악한 인간들의 해역에서도 멀리 벗어나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제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온 세상이 바다가 되고 나면 인간들 따위는 제 종족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디로 헤엄쳐 나아가도 끝나지 않는 세상.

    그 세상을 생각하니 마치 날아갈 것 같았다.

    “작은 섬들 정도는 몇 개 남겨두어야겠지.”

    벌써 희망찬 미래가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육지를 궁금해하던 일족들에게 가라앉은 대륙을 보여주고, 남아있는 몇몇 아름다운 섬에 올라가 땅을 딛게 해줄 것이다.

    “좋구나. 아주 좋아.”

    이제부터는 저 멍청한 아구아가 잘해줘야 했다.

    ‘들키지 않아야 할 텐데.’

    아구아의 말대로 그 인간은 아모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으니, 혹시 들킨다면 위험한 상황을 피하지 못한다.

    “흠…….”

    생각을 거듭하던 기에스티오가 방을 벗어났다.

    “새로운 객이 있다지.”

    아구아가 오기 전 전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새로운 터전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던 일족 중 하나가 마족을 주워 왔댄다.

    “흥미롭군.”

    기에스티오는 온 세상이 바다가 되거든 모든 종족을 한 쌍씩 모아 이곳으로 데려올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특히 드워프는 필요하지.’

    드워프가 이곳에 온 뒤로 생활이 훨씬 윤택해졌으니 말이다.

    그들은 터전 안에 육지와도 같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 물론 아티팩트를 잘 조합한 결과긴 하지만, 그들이 기에스티오가 만든 목걸이를 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투명한 뚜껑이 덮인 것처럼 바닷물도 없었으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땅에 스며든 바닷물 역시 조금씩 말라 단단한 땅이 되어있었다.

    ‘신기한 이들이야.’

    단점이 있다면 그곳은 세이렌들이 헤엄쳐 들어갈 수 없어서 조금 불편하다는 것쯤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느새 그들의 새로운 바닷속 육지 앞에 다다른 기에스티오가 드워프들의 족장을 찾았다.

    “투르캄은 어디에 있나?”

    “예. 폐하. 투르캄님은 지금 새로 찾아온 손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좀 만들고 계십니다.”

    “그래? 흠…….”

    “투르캄님을 모셔올까요?”

    “아니. 되었다. 그보다 새로운 손님을 응접실로 좀 모셔오겠나?”

    “예. 폐하.”

    기에스티오가 자리를 뜨기 전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그들의 터전을 바라봤다.

    ‘참 신기하지.’

    바닷속에 제대로 된 육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가.

    ‘그 오랜 시간 동안 해내지 못했던 것을 저리 뚝딱해 냈으니…….’

    드워프란 종족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생각을 끝으로 기에스티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응접실에 도착한 기에스티오는 눈앞에 놓인 체스판을 보며 한참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얀색 말과 검은색 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

    벌써 수십 가지 수를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검은 말이 이길 수 있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흐음…….”

    -똑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기에스티오가 마법으로 문을 직접 열었다.

    “오오!”

    쭈뼛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잿빛 피부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한달음에 헤엄쳐 간 기에스티오가 파멜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그런 기에스티오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듯한 파멜라가 그의 손을 조심히 맞잡았다.

    그러자 기에스티오의 허리춤에 달린 지느러미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어쩜 이리도 귀하신 분이 이곳까지 오셨을까. 어서, 어서 앉으십시오!”

    먼저 등을 돌려 헤엄치는 기에스티오의 입이 찢어질 듯 귀에 걸렸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들어왔을꼬!’

    기에스티오는 그녀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의 열쇠가 여기에 있구나!’

    마치 모래알들 사이에서 귀한 진주알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자, 어서 앉으세요.”

    어찌나 들떴는지 기에스티오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감사합니다.”

    제 눈앞에 있는 자는 분명 세이렌의 왕이라고 하였는데, 이런 모습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는지 파멜라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잠시 방황했다.

    ‘저자가 진짜 왕인가……?’

    제가 생각했던 왕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위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제 기분을 나타내는 듯 세차게 흔들리는 지느러미 역시 그러했다.

    “험한 일을 당하셨다지요. 어쩌다가 그런 일을 겪으셨습니까. 바다는 자비롭지 못한 곳입니다.”

    기에스티오의 입에서 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식사는 입에 좀 맞으십니까? 육지에서 음식을 공수하기가 어려워 요즘 조금 부실합니다.”

    “…….”

    “아, 차는 좋아하시는지요? 이 차는 깊은 해저에서 나는 붉은 해초를 말리고 덖어 만든 붉은 해초 차입니다. 오래 끓일수록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것이 일품이지요.”

    “…….”

    “그리고 이 쿠키는 작은 물고기들을 말리고 가루를 낸 다음 해초 가루와 섞어 구운 쿠키입니다. 여기 들어간 해초가 비린 맛을 모두 잡아주어 아주 고소하고 단맛이 난답니다.”

    설명과 함께 기에스티오는 손수 차를 따라주고 쿠키까지 파멜라의 앞에 친절히 놓아주었다.

    “자. 어서 드셔보시지요.”

    “…….”

    파멜라가 아무런 말도 없이 차와 쿠키를 번갈아 보다가 기에스티오를 멀뚱히 쳐다봤다.

    “아!”

    그러자 기에스티오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먼저 쿠키를 집어 입에 가져갔다.

    “독이라도 들었나 걱정하시는 겁니까! 하하하!”

    쿠키를 한입 가득 베어문 기에스티오가 이어서 차까지 한 모금 들이켰다.

    ‘하.’

    그 모습을 본 파멜라는 무언가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 자는 내 정체를 아는구나.’

    그는 분명 왕이었다. 그렇다면 바다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긴 자신이 마족이라는 사실과 기억을 잃은 것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인데 독이 들었다는 생각을 한다니?

    ‘정체를 모르고서야 그럴 리가.’

    게다가 이렇게나 환대하는 것에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본 그의 성격대로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당장에라도 드워프들이 머무는 곳 앞으로 저를 불러냈을 텐데, 처음엔 몰랐다는 뜻이겠지.

    “저, 저는…… 그게 아니라…… 왕이라고 하셔서…….”

    우선 상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파멜라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쿠키를 손에 집어 든 채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호오. 이것 봐라?’

    기에스티오의 짐작대로라면 파멜라는 기억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모르쇠라니?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 그렇습니까. 저는 바깥세상이 흉흉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혹여 당신께서도 그런 걱정을 하실까 염려가 되었답니다. 개의치 마시고 어서 드시지요. 정말 맛이 좋습니다!”

    기에스티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한번 쿠키를 권했다.

    “가, 감사합니다.”

    결국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파멜라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기에스티오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오. 그보다 기억을 모두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좋았던 기억도 싫었던 기억도 모두 추억일진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네.”

    파멜라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흐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아는 마족이 몇 있습니다. 그들이 지상에 오기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았었지요.”

    기에스티오가 먼저 미끼를 던졌다.

    “그들에게 연락을 취한다면 당신이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주시겠어요?”

    파멜라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녀가 아는 사실대로라면 마족들은 언젠가부터 이곳을 찾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거처도 옮겼다고 했으니 그들을 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요!”

    파멜라가 미끼를 물지 않자 기에스티오는 머릿속에 다시 한번 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던 때 파멜라의 눈동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체스판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기에스티오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체스를 두실 줄 아십니까?”

    그러자 파멜라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데 이건 기억이 나네요.”

    둘의 숨 막히는 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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