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07화 (207/225)
  • 207화. 울파.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야스탄 울파.

    마족들의 수장이자 마왕인 그자를 죽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야스탄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할 테지만…….’

    루카스 역시 머리에서는 ‘어서 죽이라’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사실…… 내키지 않았다.

    마계로 내쫓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를 바랐던 자.

    그렇기에 가여웠다.

    게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그를 향한 미움 역시 희석되어 옅어져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앨라스와 내가 먼저 연구를 진행한 뒤에 다시 하기로 하지.”

    “…….”

    루카스의 말에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실망스럽겠지.’

    루카스 역시 알았다. 그들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셀. 따로 이야기 좀 하지.”

    “예.”

    루카스가 먼저 그들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셀과 단둘이 앉은 루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망스러우냐.”

    “……조금은 그렇습니다.”

    “그래. 나도 안다. 나 역시도 내게 실망스러우니 말이다.”

    하셀 역시 많은 일족을 잃은 수장이었으며, 제 아들을 잃은 아버지였다.

    그러니 당장 그를 죽이지 않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밖에.

    “그렇다면 왜 당장 야스탄을 처단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셀의 목소리가 조금 격앙되었다.

    “가여웠다.”

    “……그렇다면 영혼을 통째로 빼앗겨 환생의 길조차 없는 우리 일족들은 가엾지 않으십니까?”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어째서 야스탄을 당장 죽이지 않으시냐는 겁니다. 야스탄 하나면 모든 마족들이 살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일족이 베푸는 큰 호의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결국 하셀이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기에 루카스 역시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에 앉은 채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왜 그냥 두신다는 겁니까.”

    “그냥 둔다고 한 적 없다. 하셀. 게이트가 열리고 그들이 나갈 방법이 생기거든…… 죽여야겠지. 네 말대로 야스탄 목숨 하나면 마족들 모두가 살 수 있는 게 아니냐. 게다가 회의에서도 그렇게 결정되었고.”

    “우리 모두 당장에라도 가서 모두 몰살시키고 싶은 것을 참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하셀이 그대로 등을 돌려 사라졌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들 루카스를 답답히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도 답답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인간으로 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지겹구나.”

    고뇌와 번뇌를 거듭하는 지금의 생이 순간 지겨웠다.

    “차라리 드래곤으로 한 번 더 살아볼 것을.”

    ***

    험악한 바깥과는 달리 이곳은 너무도 고요하고 평온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파도가 부서지는 새하얀 백사장을 걷는 파멜라의 눈은 무언가를 잃은 듯 멍했다.

    루카스가 제 동생인 폴라의 이름을 꺼냈을 때 파멜라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스크롤을 죽 찢어 도망쳤다.

    언젠가 리월이 제게 건넸던 디바노스로 향하는 스크롤이었다.

    그와 동시에 파멜라는 제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을 잃었다. 머릿속에 온통 제 동생인 폴라만이 가득 차올랐으니까.

    “폴라…….”

    그녀를 살리겠다고 도망쳤다. 언제 버려졌는지도 모르는 낡은 오두막에 숨어들어 알 수 없는 풀뿌리를 캐 먹으며 삶을 연명했다.

    언젠가 상황이 잠잠해지거든 그녀를 되찾아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을 버텼다.

    그러던 중에 리월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마왕을 위해 헌신했다.

    무엇을 위해 동생을 두고 도망쳤는지도 잊은 채 말이다.

    “미친년.”

    파멜라가 자신을 향해 욕지거리를 했다.

    “미친년. 나는 미친년이야.”

    남자에 미쳐 성녀 행세를 하고, 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 대하듯 쥐락펴락했었다.

    제게 입혀진 새로운 잿빛 피부가 본래 제 것인 것처럼 느껴졌고, 같은 피부를 가진 마족들이 제 종족인 양 느껴졌다.

    마왕이 제게 준 새로운 이름이 본래 제 이름인 것 같았고, 파멜라라는 이름은 먼 기억 속에 아른거리는 허상과도 같이 느껴졌다.

    ‘멜라니. 멜라니 울파. 웃기지도 않지.’

    파멜라가 햇살 아래 빛나는 잿빛 피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게 내 피부인 양…….’

    우스웠다. 얼마나 됐다고 이게 제 피부인 것처럼 익숙한 게.

    뜨끈하게 달궈진 모래에 발이 따뜻했다.

    ‘더 살아야 할까.’

    이미 피부를 비롯한 제 모습이 너무도 많이 바뀌어 버렸다.

    게다가 리월은 드래곤들이 습격하던 그때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를 향한 모든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흔적조차 남지 않고 말이다.

    ‘멍청하기도 하지.’

    그가 속삭이던 달콤한 사탕발림을 모두 믿었다.

    그만은 다를 거라고, 그만은 내게 거짓말하지 않을 거라고.

    그랬는데 결과가 어떤가.

    그는 인간이 아닌 마족이었고, 마계에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왔다.

    제게 사랑을 속삭이던 그 입은 모두 거짓이었고, 그의 마음속엔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

    ‘나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면 면죄부를 준다고 했다던가.’

    마왕이 제게 사실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가 어떤 자인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제게 접근했는지.

    ‘차라리 마왕이 나아.’

    그는 처음엔 어땠을지 몰라도 마지막엔 정녕 자신을 위했으니까.

    손목에 채워진 팔찌만 보아도 그걸 알 수 있었다. 마왕은 제힘을 나누어 담은 팔찌를 제게 주었다.

    언제든 위험한 일이 생기면 팔찌 위에 박힌 보석을 깨라고. 그렇게 하면 제게 올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만하자.”

    머릿속에 몇 번이나 떠올랐던 생각을 굳히기 위해 소리 내어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파멜라.”

    모두 잃었다. 동생도, 사랑하는 남자도, 제 모습도.

    “이제…… 그만…….”

    슬프게 웃은 파멜라가 바다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깊어지는 물이 어느새 목전까지 차올랐다.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삼켜 참으려던 파멜라가 피식, 웃어 마지막 숨까지 모두 뱉은 뒤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눈 아래까지 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발을 디뎠던 땅이 쑥 꺼져 사라졌다.

    ‘금방…… 금방 끝날 거야…….’

    몸에 힘을 꽉 준 채 물에서 떠오르지 않으려 애를 썼다.

    짜디짠 바닷물이 코로, 입으로 들이쳐 너무 쓰고 아팠다. 어느새 폐부에 들어찬 물이 자신을 너무 고통스럽게 했지만, 꾹 참아냈다.

    ‘이게…… 내 마지막 벌이길…….’

    모든 것을 저버린 제게 내려지는 마지막 벌이길 간절히 기도하며 정신을 잃었다.

    ***

    ‘여기가…… 천계인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새하얀 빛이 들이쳐 눈이 부셨다.

    “어어? 일어났네! 일어났어!”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천사도, 신도 아닌 짤뚱한 팔다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크! 죽은 줄로만 알았더니.”

    “아니, 그런데 마족이 여기까진 어떻게 왔대?”

    “어떻게 오긴! 산책 나갔던 친구가 주워왔다잖여!”

    목청은 또 어찌나 큰지 먹먹하던 귀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 기가, 어, 디.”

    목이 잠겨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겨우 목소리를 내니 쇳소리가 났다.

    “어, 뭐래?”

    “들었어?”

    “아니.”

    “아가씨. 뭐라고?”

    드워프 하나가 귀를 가져다 대자, 덥수룩한 수염이 파멜라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여기가, 어, 디…….”

    다시 겨우 목소리를 냈다.

    “뭐래?”

    “여기가 어디냐는디?”

    “어디긴 어디여! 바닷속 마을이지!”

    “크하하하! 이 친구도 참!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아니, 그럼 뭐라고 해? 바닷속 마을 맞잖여?”

    “그건 또 그렇네. 바닷속 마을이긴 하지.”

    “맞어.”

    그러자 대장쯤 되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앞에 턱 나서더니 짧은 팔을 휘익 저었다.

    “쓰읍! 맞긴 뭐가 맞어? 아가씨. 여긴 세이렌들이 사는 곳이오!”

    “오! 족장!”

    역시 대장이 맞았던 듯 다른 이들이 족장이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크흠! 그래. 아가씨 정신이 좀 들어? 아니 디바노스 바다는 무서운 곳이여! 앞은 잔잔해도 더 나아가면 엄청 깊다고!”

    “그래. 그 부표들 안 봤어? 디바노스 사는 애들이 부표를 주욱~ 띄워놨을 거인디!”

    정신이 사나웠다.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짧은 팔다리를 너도나도 휘저으며 목청 높여 소리를 치니 차라리 다시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또 살았구나.’

    질기고도 질긴 목숨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만 살자고 다짐했었다.

    모든 것을 잃었으니 이제는 그만하자고 말이다.

    그런데 신은 도대체 무얼 하는 건지 이렇게도 못된 제 목숨을 또 살려줬다.

    ‘내가 아직 할 일이 있는 걸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다른 종족들 목숨 역시 빼앗았다.

    “아가씨. 물을 많이 먹어야 혀. 어? 그 바닷물이 얼마나 짜다고.”

    “맞어. 아, 그보다 아가씨 혹시 술 가진 거 없지?”

    “아니믄 혹시 쌀이나 밀 가진 거 있나?”

    “야 이! 멍청이들아! 이 아가씨가 물놀이 하믄서 쌀이랑 밀 들고 들어갔것어?!”

    파멜라가 다시 눈을 감았다. 도저히 저들의 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꿈은 아닐까.’

    사람이 죽기 전에 무언가를 본다고 하던데 이게 그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 아가씨. 물 마셔야 된다니까?”

    “그래. 자더라도 물 마시고 자.”

    “…….”

    결국 파멜라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드워프 하나가 얼른 다가와 그녀의 등을 받쳐주었다.

    “고, 맙습, 니다…….”

    “그려, 그려. 아주 예의 바른 마족이네. 아니 그보다 위에 뭔 일이 났다고는 하던디.”

    “그래. 맞어. 아가씨 뭐 들은 거 없어?”

    “우리는 보다시피 여기에 갇힌 신세라 말이여.”

    갇혔다기엔 그들의 낯빛이 너무도 좋았지만, 파멜라는 우선 고개를 저었다.

    ‘아는 척하지 말자.’

    여태 당하고만 살았던 그녀의 감이 말했다.

    지금 여기서 무엇도 아는 척 말자고 말이다.

    “그려. 그럴 수 있지.”

    “근데 아가씨. 나이가 몇이여?”

    “이름은 뭐고? 혹시 알어? 여기에 마족이 가끔 오니께 그중에 아가씨 가족이 있을지 몰러. 아니믄 뭐 아는 마족이거나.”

    “그려. 마족들이 이곳에 종종 온다고?”

    “그런디 요즘은 안 오긴 하더라고. 왜 안 오지?”

    “그러게. 갸들이 가져다주는 술이 꽤 맛이 좋았는디.”

    “맞어.”

    수다가 끝이 없었다.

    “몰, 라요…….”

    파멜라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드워프 하나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되물었다.

    “몰라? 뭘 몰라?”

    “설마 기억이 안 나?”

    “세상에나. 기억 상실 뭐 그런 건가?”

    “그래. 뭐 큰 충격을 받으면 그런 병이 생긴다고 하더만.”

    “세상에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이미 여론은 그쪽으로 흘러간 듯 드워프들의 표정이 안타깝다는 듯 변해있었다.

    “아가씨. 그래도 걱정 말어. 여기 고기는 별로 없어도 물고기는 많으니께.”

    “맞어. 곡식은 없어도 해초는 겁나 많어.”

    “그걸로 대충해서 먹으믄 꽤나 괜찮은 음식들이 탄생하니께 너무 걱정 말어.”

    드워프들이 합심해 파멜라를 안심시켰다.

    “고, 맙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파멜라 역시 그들의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는 게 차라리 낫겠어.’

    물을 받아서 한 모금 마시는 파멜라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렀다.

    ‘이렇게 된 거…….’

    마족들과 세이렌이 엮여있다는 사실은 파멜라 역시 알고 있었으니, 이곳에서 무언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신의 뜻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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