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마지막 협상 (1)
루카스와 엘라임이 싸움에 합류하자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다.
[너희 지금 내가 쟤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꺽!]
-콰쾅!
엘라임의 공격이 빗나가면 뒤이어 아모레가 공격했다.
그리고 묘하게 루카스가 방패처럼 그들의 앞에서 아구아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못 죽이는 거 맞는 거 같은데?”
엘라임이 이죽거렸지만, 아구아에겐 대답할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콰쾅! 콰콰쾅!
[자기 이리 와야지~?]
[너 내가 그따위…… 으악!]
쉼 없이 쏟아지는 공격 세례 속에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피하는 아구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죄인가.’
이미 주신의 계획은 모두 알았기에 죽는 게 두려울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피해야지.’
문제가 있다면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
“이리 와라. 네놈 안에 있는 물이란 물은 싹 말려줄 테니!”
엘라임의 손에 새하얀 얼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 잠깐!!! 휴전! 휴전!!!]
그때 아구아가 얼른 제 몸 위로 방어 마법을 칭칭 감으며 소리쳤다.
[휴전~? 우리 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어잉! 난 자기랑 한시도 쉬고 싶지 않은뎅~]
하지만 그 말을 들어줄 리 없는 아모레가 다시 공격을 재개했다.
[마, 마왕! 마족들을 전부 마계로 돌려보내 줄게!]
그러자 아모레가 걸음을 딱 멈췄다.
[어차피 타라스도 소멸했잖아? 내가 죽였다고. 어? 그렇게 따지면 엄연히 나는 적이 아니다?]
이때다 싶어 아구아가 얼른 말을 이었다.
[내가 소멸시킨 거 봤지? 봤잖아! 나는 적이 아니라니까? 나도 주신의 자리를 탐낼 생각은 전~ 혀 없었다고.]
“지랄하네.”
루카스가 앞으로 나섰다.
[야. 인간.]
아구아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뭐 이 자식아.”
[하!? 너 아주 막 나가는……]
“됐고. 말 같지도 않은 지랄 한 번만 더 떨면 이 자리에서 당장 소멸시켜 주마.”
루카스는 아구아의 검은 속내가 무엇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뭐?!]
“너 기에스티오랑 짰지?”
그러자 아구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고, 루카스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지?]
“맞나 보군.”
루카스가 예상한 바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증거였다.
[뭐가 맞지?]
아구아가 시침을 뚝 떼며 물었다.
[자기가 나한테 처맞지~]
상황을 눈치챈 아모레가 공격을 재개했다.
[사랑의 힘으로!!!]
그때 아모레의 간드러지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뾰. 롱. 뾰. 롱!!!]
그와 동시에 쏘아지는 핑크빛 광선의 향연에 루카스와 엘라임은 넋이 빠진 듯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봤다.
‘……미친놈.’
역시 아모레는 제정신이 아닌 신이었다.
***
한참이나 이어진 전투는 결국 아구아가 신계로 도망치며 끝이 났다.
“왜 그냥 가게 뒀지?”
루카스가 아모레를 향해 물었다.
분명 아모레와 아구아의 힘 차이는 비등비등했으나, 거기에 엘라임까지 가세했는데도 아구아가 멀쩡히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아모레가 힘을 조절했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구아 저 쥐새끼 같은 놈이 잘도 도망친 거지.]
아모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대꾸했지만, 루카스의 말이 사실이었다.
둘은 오랜 기간 함께해 왔던 동료이자 친구였으니까.
“아모레. 아구아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잘 알지 않나?”
[흐음~ 아모레는 잘 모르게쪙.]
사실 엘라임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루카스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모레는 아구아를 당장 잡아 죽일 듯 공격했지만, 몇 번이나 일부러 비껴 맞추는 것이 보였기 때문.
“하…….”
이렇게 아구아를 멀쩡히 돌려보낼 거였으면 차라리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았을 것이다.
마족들을 모두 마계로 돌려보내 준다고 했을 때 알겠다고 했더라면 하나 더 해결이 되었을 텐데.
“됐다. 나는 이만 돌아가야겠군.”
“이곳에 남은 마족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제 입으로 다른 이들은 남김없이 모두 죽이라 명했었다.
‘모두 누군가를 잃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대로 둬라. 그리고 이곳에 경계를 풀면…… 저들을 찾으러 누군가 오겠지. 우린 그때를 노려 그들 뒤를 밟는다.”
“아. 그래서 살려둔 거였나.”
의도치 않게 아이들을 미끼로 쓰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저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긴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테니.
“로드!”
그때 하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어떻게 된 겁니까?”
“마신은 소멸했다.”
그러자 하셀이 입을 떡 벌리고 아모레와 엘라임을 번갈아 바라봤다.
[결론적으론 아구아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뭐.]
이제 아모레는 어디에서도 제 본모습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제 머리를 베베 꼬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하셀이 더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왕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 듯 보였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미 지상으로 올라와 터를 잡기 시작한 마족들. 그들이 모두 문제였다.
‘지금 와서 저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리가…….’
사실 루카스는 마족들에게 마음의 짐이 남아있었다.
저들이 바란 것은 그저 용서였을 뿐인데 모질게 군 것이 아직까지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지상에 발을 붙이게 해준다면…….’
그렇다면 누군가 또 드래곤들을 향해 반기를 들 수 있었다. 애초에 저들에게 모질게 군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는가.
“머리가 아프구나.”
루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혹시 저들을 마계로 다시 돌려보낼 방법은 없는 겁니까?”
말을 마친 하셀의 눈동자가 아모레를 흘끗 바라봤다.
[있긴 한데…….]
“……?”
[쟤네가 스스로 돌아가는 거지 뭐.]
“하긴…… 타라스도 소멸되었으니…….”
마족들을 관장하는 타라스도 소멸되었고, 주신의 자리 또한 공석이다. 그러니 저들의 뜻 없이는 돌려보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구아는 무슨 수로 돌려보내겠다고 한 거지?”
[뻥이지 뭐. 걔 원래 그래. 위기를 모면하는 능력이 좀 탁월하달까?]
“…….”
“…….”
모두가 말을 잃었다.
“그게 정말 거짓말이라고?”
엘라임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모로 꺾었다.
[응. 뭐 차원 이동 마법이나 그런 걸 쓸 수 있으면 되긴 하겠지만, 지금은 쟤네 뜻 없이 그러기 쉽지 않을걸?]
듣고 보니 또 그랬다. 새로운 마계가 생겨난 때에도 저들이 모두 동의한 일이었다. 또한 동의하지 않은 이가 있더라도 마신의 권능으로 해결했었고.
“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하셀이 저런 질문을 했다는 것 역시 루카스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야스탄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차라리 야스탄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계로 돌아가 달라고 말하면 그들 입장에서도 좋은 일일 수 있을 테니.
‘더 이상의 희생은…….’
드래곤들 역시 많은 일족을 잃었고,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신들도 많은 수가 소멸했으니 세상은 곧 혼돈에 빠질 것이다.
[자기야. 그런데 그 세이렌 놈이 뭐라고 얘기했기에 아구아가 홀딱 넘어갔을까?]
“젠장 할 놈.”
루카스의 입에서 곧장 욕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또한 드워프들을 붙잡아 놓고 지금도 아티팩트를 쭉쭉 만들어 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게다가 그 모든 걸 내가 떠먹여 준거나 마찬가지이니!’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이거였다.
영악한 기에스티오의 입에 아주 맛있는 걸 스스로 떠먹여 주었으니!
[그치? 자기도 어이가 없지?]
아모레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듯 콧방귀를 흥흥 불며 물었다.
[아니, 아구아 저놈이 애가 좀 정신이 이상해서 그렇지 권력욕은 없는 놈이거든.]
“…….”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 하던가.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그런데 저게 왜 갑자기 주신의 자리를 탐을 냈을까? 응? 자기는 안 궁금해?]
“그 전에 나도 뭐 하나 묻지.”
[뭔데에~?]
“너는 정말 내가 주신의 마지막 열쇠인 걸 몰랐나?”
[알았지. 그런데 주신이 네게 권능을 모두 넘겨줄 준비를 하고 떠난 건 줄은 몰랐지.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자기 진즉에 죽였겠지~]
“…….”
살벌했지만 너무도 확실한 답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나 의심하지 말라구~ 지금도 죽이고 싶은 거 꾹 참고 있으니까. 혹시 죽였다가 자기가 주신이 되면 나한테 해코지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참는 거군.”
[그렇지~! 어차피 죽는 건 잠깐이고 사는 건 영원일 텐데 내가 뭐하러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어. 아, 물론 주신의 자리가 더 이상 공석이면 위험하겠지만.]
루카스 역시 고민이 안 되던 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아주 깔끔하고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원을 산다는 것이 너무도 끔찍했다. 그것도 주신이라니? 더욱 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어차피 백 년 안엔 죽을 텐데…….’
그 뒤로 신이 되는 과정은 같았으니 차라리 당장 주신이 될까 싶기도 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싫다.’
어차피 닥칠 일인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어머, 자기야.]
그때 아모레가 루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자기네 애들 무슨 일 당하나 보다.]
“그게 무슨 말이지?”
[사실 아구아가 도망가고 난 다음에 내가 불안해서 자기네 집에 눈을 하나 붙여놨거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로 누가 간다는데?]
“젠장!”
루카스가 당장 텔레포트 하려던 때 아모레가 루카스의 마나를 막았다.
“무슨 짓이지?!”
[지금 가면 자기 죽어. 그래도 괜찮으면 가고.]
“가야 한다.”
[그럼 뭐. 나야 좋지~ 자기랑 평~생 볼 수 있으니까.]
“차라리 내가 먼저 가겠다. 어지간한 공격엔 정령계로 돌아갈 뿐이니.”
엘라임이 나섰다.
“뭐가 됐건 빨리 마나 제한이나 풀어라. 아모레.”
가족들과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아! 미안, 미안.]
아모레가 마나 제한을 풀자마자 루카스가 텔레포트하고, 그 뒤를 아모레와 하셀이 따랐다.
-파앗!
저택 지하로 단박에 텔레포트한 루카스는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다리가 풀릴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로드. 마나 드레인이 모든 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하셀의 전음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괜찮은가.]
[저는 괜찮습니다.]
드래곤의 마나 서클은 최소 9서클 이상이었기에 자신보다 높은 서클인 자에게 적용되는 마나 드레인이 하셀에겐 소용이 없는 듯싶었다.
‘그렇다면 최소 7서클 이상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지금 마나의 양만 거의 무한에 가까웠을 뿐, 6서클을 넘어 겨우 7서클 언저리에 다다랐기에 마나 드레인이 작용하는 거였고.
게다가 이 모든 공간에 마나 드레인을 펼쳤다는 것은 아티팩트의 힘이 합쳐진 것이 분명했다.
[어디쯤인지 알겠나?]
기운을 읽어내는 것은 드래곤이 훨씬 능했기에 하셀에게 어디쯤에 아티팩트가 있는지를 물었다.
[……한 명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셀의 대답은 달랐다.
[한 명이라니……?]
아티팩트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