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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200화 (200/225)
  • 200화. 새로운 구도. (2)

    기에스티오는 현신해 버린 아구아의 기운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 미안. 죽일 뻔.]

    아구아가 기운을 누르자, 기에스티오의 떨림 역시 점차 잦아들었다.

    “크…… 헉…….”

    쉬어지지 않던 숨을 세차게 몰아 쉰 기에스티오가 아구아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아구아님을 뵙습니다.”

    [그래. 그래서 그게 뭐?]

    “……혹시 타라스님의 승리가 아구아님께 도움이 되는 일인지요.”

    [그깟 자식이 이기고 지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일 거 같아. 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어 보이냐고.]

    확실히 기분이 나쁜 듯 했다.

    “저는 그저…… 아구아님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굳이 돕지 않으시는 게 낫지 않은지 염려가 되어 드린 말씀입니다.”

    [건방지군. 물고기 주제에.]

    아구아의 잇새에서 까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지만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에스티오는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제안? 감히 네깟 게?]

    기에스티오가 바짝 숙였던 고개를 들고 아구아의 눈을 똑똑히 바라봤다.

    [하?]

    “주신의 자리…… 아구아님보다 더 잘 어울리는 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에스티오의 말에 아구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뭐?]

    “한낱 마신이 차지할 자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자 아구아가 피식, 웃었다.

    [아주 건방지구나. 미물 주제에 한낱 마신이라니…….]

    하지만 말과는 달리 아구아의 음색은 조금 들뜬 듯 들렸다.

    “예. 하지만 아구아님을 모시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실이지 않습니까? 아구아님과 대적할 수 있는 신이라고는…… 사실 헤르도네님과 아모레님 정도이지 않습니까?”

    [하! 아모레도 사실 나한텐 한참 모자라지. 그깟 놈이 무슨!]

    기에스티오가 다시 바짝 고개를 숙였다.

    “예. 지당하신 말씀이시지요.”

    고개를 숙인 기에스티오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그래서 뭐. 내가 주신의 자리를 차지하라 그거야?]

    “예. 맞습니다.”

    [싫어. 주신 그 자리가 얼마나 귀찮은 자리인 줄 알아? 지금도 쌓인 서류가 한가득 있다고.]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제가 염려되는 것은 그저…….”

    기에스티오가 잠시 말을 삼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혹여 타라스님이 승리하시어 그 ‘아래’에 계시게 된다면…….”

    다시 아구아의 이가 빠득 갈렸다.

    [아래?]

    예상했던 반응이 너무도 뻔하게 나오자 기에스티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무도 쉽군.’

    아구아 그는 너무도 뜨거운 성미를 가진 신이었기에 복잡한 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이가 없네?]

    “하, 하지만…… 주신의 자리는 가장 높은 자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분명 새로운 주신의 자리 아래가 되실 텐데…….”

    [씨X. 장난해? 내가 타라스 놈 아래로 들어갈 거 같아?!]

    “…….”

    기에스티오가 말을 아끼는 사이 아구아는 더욱 분노했다.

    [이런 씨X! 아니! 내가?! 어?!]

    본인보다 한참 아래라고 생각되는 타라스 밑으로 들어가는 생각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는 듯 보였다.

    아구아가 한참이나 화를 토해냈다. 어느 정도 그 화가 잦아들었을 때 기에스티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아구아가 씩씩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던졌다.

    [말해봐.]

    “먼저 둘이 싸우게 놔두시지요. 어차피 아구아님께도 둘의 싸움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그대로 두시지요. 승자가 누가 되던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러자 아구아가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반문했다.

    [타라스가 이기면?]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고개를 든 기에스티오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있었다.

    [푸학! 웃는 것 좀 봐라? 너 재밌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타라스가 승리한 이후 아구아님께서 손쉽게 그 승리를 갈취하는 상상을 했더니…… 저도 모르게.”

    기에스티오가 멋쩍은 듯 다시 입맛을 다시곤 고개를 숙였다.

    [야. 고개 들어. 똑바로 말해봐. 네 생각이 뭔지 들어나 보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구아님께서는 그저 지금처럼 싸움을 구경하시면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누가 승기를 잡는 순간…….”

    [그거 너무 추접한 거 아니냐? 그리고 나는 주신의 자리 따윈 필요 없다니까?]

    아구아가 말을 끊고 들어왔다.

    “예. 맞지요. 하지만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주신의 자리를 잠시 맡아두시는 거지요.”

    [흠…….]

    “주신께서 언젠가 돌아오실 거 아닙니까. 그때 주신의 자리를 다시 넘겨드리면 됩니다. 그렇다면 아구아님께서는 누구의 아래가 아닌 본래 주신과 함께하실 수 있는 거지요.”

    아구아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굴렸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

    [돌려줄 거면 뭣 하러 내가 뺏어 오겠어?]

    어쩌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뭐. 주신이 돌아오면 주고 그게 아니면…… 신계를 확 개편해 버리지 뭐.]

    “뭐가 되었건 그건 아구아님의 뜻이니까요.”

    [그럼 넌? 네가 원하는 건 뭐기에 나를 돕겠다고 하는 거지?]

    아구아의 말에 기에스티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물입니다. 저는 이 세상이 모두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풉!]

    “우스우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걸 원합니다.”

    [큿…… 크학! 캭! 캬학! 학학학!]

    아구아가 고개를 젖히며 미친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또…… 캬학! 또라이! 학학! 학!]

    아구아의 입장에선 기에스티오가 정말 또라이 중에서도 상또라이로 보였다.

    전부 다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다니?

    저 말인즉 자신이 이 세상의 왕이 되고 싶다는 말이랑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냥 네가 왕이 되고 싶다고 해! 이 미친 자식아!]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그저…… 모두 바다였으면 좋겠습니다. 육지와 바다가 구분되는 게 싫습니다. 저희가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기에스티오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정령왕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건데?]

    “그 부분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바다에도 땅이 있고 불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물이니 그것도 괜찮겠지요. 또한 바다를 제외한 하늘엔 바람이 불 텐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기에스티오의 말에 아구아는 감탄을 내뱉었다.

    [캬…… 너 맨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당치도 않습니다.”

    [새끼. 이거 물고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네. 다른 놈들이 목숨 걸고 치고받고 싸울 때 넌 이걸 노렸어. 그렇지?]

    기에스티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온 세상이 바다가 되는 상상은 수없이 했었지만, 이걸 노리고 야스탄을 도왔던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아구아가 자신을 찾아온 순간 기에스티오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고, 모든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답은 이것이었던 것뿐이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아구아는 확신에 찬 듯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대단해. 아주 대단해.]

    아구아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내가 한번 네 놈 뜻에 놀아나 주지.]

    작게 조소한 아구아가 자리를 떠났다.

    ‘작전을…… 조금 바꿔야겠군.’

    원하는 것이 바뀌었으니 그걸 얻기 위해선 작전을 조금 변경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에스카르 산맥으로 다시 돌아온 루카스는 하셀과 함께 마지막으로 작전을 점검하고 있었다.

    “저들이 전력을 모두 회복하려면 최소 삼 일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때는 지금뿐이다.”

    “정말 괜찮을까요?”

    하셀의 얼굴이 조금 굳어있었다.

    “그래. 괜찮을 거다.”

    루카스가 제 손에 끼워져있던 반지를 빼내 하셀에게 넘겼다.

    “이걸 쓰면 될 거다.”

    악마의 포식자였다.

    “이걸로 될까요?”

    “안 되겠지. 그러니 얼른 유물들을 다 모아 와라. 이것과 비슷한 속성이면 될 거다.”

    그러자 하셀이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반지를 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것과 비슷한 속성의 유물들을 모두 모아 한 방에 무너뜨리면 된다. 저들의 마법과 아티팩트가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우리가 하는 공격을 끝까지 버텨줄 리는 없을 테니까.”

    루카스가 생각한 전략 중 하나는 선공이었다.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들이 생각하는 드래곤들의 수 중엔 선공은 없을 것이다.

    ‘우리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원래 강한 자가 크게 손실을 입으면 더욱 몸을 사리게 된다. 저들은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 드래곤이 먼저 공격할 거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차라리 에스카르에서 방어를 더욱 견고히 쌓을 거라 생각하겠지.’

    과거에도 드래곤은 그랬었다. 먼저 공격을 감행하는 때는 대부분 마을이나 제국을 하나 통째로 쓸어버릴 때가 아니면 하지 않았으니까.

    “이번 공격으로 많은 것이 바뀔 거다.”

    “예. 혹시 공격에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한 방이 실패한다면?

    “차선책은 없다. 하셀.”

    “…….”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거니까.

    “그리고 저들이 준비한 방어책과 수는 대부분 파악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화가 단단히 난 정령왕들이 저들이 쓴 수를 모두 알려주다시피 했으니, 걱정은 대부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러자 하셀 역시 믿음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엔 타라스가 직접 내려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모레 역시 오겠지.”

    “그 때엔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면 더욱 고마운 일이겠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일 테니까. 그나마 우리 드래곤들은 신력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겠지만, 마족들은 아닐 거다.”

    루카스가 선제공격을 생각한 또 다른 이유가 이거였다.

    아모레와 타라스가 내려와 지상에서 싸움을 벌인다면 마족들은 대부분 힘도 쓰지 못하고 쓸려나갈 것이다.

    “모두 쏟아부어 한 방에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겐 승산이 없으니까.”

    기에스티오의 창고에서 보았던 수많은 아티팩트와 성유물들을 드워프가 손보고 있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승산은 없다.

    마족들은 이제 드래곤을 납치해 마나를 추출해 내지 않아도 언젠가 마나를 무한히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셀. 네가 모두에게 전해라. 우리는 마지막 전쟁을 준비할 거라고 말이다.”

    “예. 로드.”

    하셀이 방을 떠나자 루카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 왔다.

    ‘혹시 패배한다면…….’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곧 가족들을 비롯한 아이들 모두 안 좋은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아팠다.

    ‘엘라임이 돌봐줄 수 있을까.’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낫겠지.’

    생각이 막장까지 치닫자, 얼른 고개를 저어 사념을 털어낸 루카스가 다시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이긴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사활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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