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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95화 (195/225)
  • 195화. 전쟁의 시발점 (1)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존재를 마주한 루카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기에스티오?”

    “하하! 누가 이런 짓을 했나 보러왔더니만, 루카스님이셨군요!”

    물 위로 올라온 기에스티오의 지느러미는 물속에서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대체 왜?

    “하하하. 어떻게라…… 제가 도움을 드렸다고나 할까요?”

    기에스티오가 활짝 웃었다.

    “그보다 루카스님의 공이 큽니다. 드워프들을 제게 보내주신 덕에 일이 아주 수월하게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루카스는 사고가 정지한 듯 같은 말을 읊조렸다.

    ***

    백여 년 전.

    마계로 떠났던 마족들은 그곳에서 터전을 잡고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중이었다.

    “폐하. 이곳은 어떠십니까?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 지내시기에 좋을 것입니다.”

    “흐음…… 뒤에 난 길이 마음에 안 드는데.”

    “아, 저 뒷길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래는 토착민들이 살던 곳인데,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아 떠난 지 오래라고 합니다.”

    마왕 야스탄은 별장을 지을만한 땅을 찾던 중이었다.

    “저쪽도 한번 둘러보지.”

    “예.”

    수풀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걷던 야스탄은 갑작스레 느껴진 수상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시공간이 뒤틀린 듯한 느낌. 야스탄은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저, 저건!”

    옆에 선 하인은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게이트가 열린 것을 보고 소리쳤다.

    게이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경이로웠다.

    “……세이렌의 영역인가.”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물속에 지어진 성.

    그 주변을 빙 둘러 지어진 크고 작은 집들까지.

    야스탄은 그곳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너는 여기에 있거라.”

    “예. 예?! 지금 저곳으로 가시겠다는 겁니까? 안 됩니다! 혹시 못 돌아오시기라도 한다면…….”

    그의 말에 야스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안 그래도 답답한 마계에 갇혀 사는 것이 질렸던 참이었다.

    그리고 야스탄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세이렌 영역에 발을 들이는 야스탄의 얼굴은 기대로 부풀었다.

    깊은 물에 대비하여 몸에 방어 마법을 비롯한 다른 마법들을 칭칭 둘렀다.

    게이트를 넘어서자 곧장 세이렌 둘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그러했다. 제 앞에 나타난 게이트는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중한 그들의 안내와 함께 성으로 들어서자, 다른 하인이 다가와 촌스러운 목걸이 하나를 건넸다.

    “이곳에서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고맙네.”

    목걸이를 목에 걸자 몸이 편안해졌다.

    ‘유용한 물건이군.’

    하인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문을 지나자 멀리서 기에스티오가 쏜살같이 헤엄쳐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제 부름에 응해주셨군요!”

    “…….”

    “저는 기에스티오 아르다. 세이렌의 우두머리라고나 할까요. 하하하!”

    한없이 해맑은 세이렌 왕과의 첫 만남이었다.

    ***

    그 뒤로 야스탄과 기에스티오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기에스티오는 물 밖에 나갈 수 없어 답답한 생활을 했으며, 야스탄은 마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답답한 생활을 했으니 둘은 통하는 게 꽤 많았다.

    “이보게 친구. 그보다 마족들은 억울하겠어.”

    “흠…… 억울할 게 뭐 있겠는가. 뭐 억울하다면 억울할 수 있겠지. 나와 중책들이 진 죄를 백성들이 같이 받고 있으니.”

    그 게이트는 정말 야스탄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이트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하나뿐이었고 그마저도 처음 이용했던 사람이 아니면 통과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야스탄은 게이트가 있는 곳을 봉쇄하고 기밀에 부친 뒤, 거의 매일 기에스티오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허허! 자네는 참 속도 좋구먼. 만약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나는 그렇게 쫓겨나지 않았을 걸세.”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네. 모든 마족들이 배척받는 상황이 와버렸으니 어쩌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건 타라스님께서 새로운 마계를 주셨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 타라스님. 타라스님께 한번 부탁해보는 건 어떤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일세.”

    그러자 야스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일세. 그래도 너무 그렇게 노여워 말게. 마계는 꽤 살기 좋으니 말이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옛날엔 어떻게 쓰였던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마계는 꽤 살기 좋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지상과 다름없이 커다란 영토가 있었으며 바다와 산 그리고 강도 있었다.

    게다가 지상보다 위험한 몬스터나 마물의 숫자도 훨씬 적었으니 살기는 좋았다.

    “쯧쯔…… 하지만 동족들뿐이니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나는 그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니 괘념치는 말게.”

    기에스티오와 대화를 나눌 때면 마음이 편안했다.

    아무리 동족이라지만 왕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이 누굴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에스티오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아. 그보다 지난번에 말했던 그건 가지고 왔는가?”

    “물론일세. 아까 하인에게 곧장 줬네.”

    “정말 고맙네! 아주 고마워!”

    게다가 기에스티오는 순박했다. 바닷속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엄청 많을 것인데도, 손이 무거우면 안 된다며 마계에서 구할 수 있는 향신료나 설탕 등을 가끔 부탁했다.

    “자네도 참. 아니 손이 무거우면 안 된다더니, 지난번에도 그렇고 자꾸 돌아갈 때마다 뭘 그렇게 한가득 주는가?”

    “하하! 올 때는 가벼이 와도 갈 때는 또 다른 법일세!”

    그들은 매일같이 친분을 쌓고 다져갔다.

    “아, 그보다 자네가 저번에 얘기했던 것 말일세.”

    “……?”

    “게이트 말이야. 그걸 좀 더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에스티오의 말에 야스탄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하지만 드나들 수 있는 숫자는 여전히 적을 걸세. 그래도 자네 부인이나 아들딸 정도는 오갈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야스탄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세이렌은 바닷속에서 할 일이 없어 매일 연구만 하는 종족 같았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게이트를 또 열 수 있다니?

    “이 연구를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올 날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게 정말인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종족 모두가 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야스탄은 이 아름다운 왕국과 왕래만 한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마족들 역시 순수한 이들이었으니 세이렌과 잘 지낼 것 같았다.

    “그래. 게다가 마계의 바다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그 바다를 조금 맛보고 싶네.”

    기에스티오가 활짝 웃었다.

    ***

    기에스티오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정도는 더 왕래할 수 있는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정말 아름다워요!”

    황금색 목걸이를 목에 건 야스탄의 막내아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손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눈앞에 생겨나는 공기 방울이 신기한 듯 눈을 굴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리 좋으냐?”

    “예. 게다가 세이렌은 책에서만 봤는데 이렇게 만날 수도 있다니!”

    “하하. 그래 네가 좋으면 되었다.”

    이미 첫째와 둘째는 세이렌들이 모아둔 책을 보고 싶다며 서고로 향했다.

    “폐하. 이곳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부인. 이제 언제든 올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행복했다.

    ***

    “기에스티오! 두 번째 게이트가 닫혔네.”

    몇 달 뒤 가족들이 드나들던 게이트가 닫혔다.

    “설마 했네만…….”

    기에스티오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 야스탄을 바라봤다.

    “얼마 전 블루 드래곤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셨네. 수상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두 번째 게이트가 있는 곳을 향해 가셨었는데…….”

    “…….”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도 막내아들이 문제였다.

    벌써 이곳에서 친구를 사귄 것인지 하루 종일 그 아이에 대해 떠들어 댔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닫히자 울상이 되어 밥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잠시 게이트를 여는 아티팩트 하나를 뒤집어 뒀었는데 그때 술식이 깨진 듯싶네.”

    “……어쩔 수 없지.”

    기에스티오가 두 번째 게이트를 열었을 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 게이트를 열기 위해 세이렌 마법사 몇몇이 마법을 영영 못 쓰게 될 뻔했다고 했다.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이 게이트를 다시 열어달라는 뻔뻔한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네. 야스탄.”

    “아닐세. 나는 자네가 우리 가족들에게 이곳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네.”

    “이것 참…… 차라리 지상으로 올 수만 있더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마족들 모두가 이 아름다운 곳을 보면 얼마나 좋겠는가! 게다가 지상에 있는 그 못된 종족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말일세.”

    그러자 야스탄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기에스티오. 혹시 우리 마계에 있는 마법사들을 이쪽으로 보낸다면…… 연구가 조금 더 빨라지겠는가?”

    “게이트 말인가? 말해 무엇하겠는가! 당연하지. 게다가 마법을 쓰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니 두 종족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걸세!”

    “자네가 가진 아티팩트들을 언젠가 보여주겠다고 했었지. 그거 오늘 좀 봐도 되겠는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수많은 성유물과 아티팩트들. 세이렌들은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당연하지! 게다가 이 창고는 드래곤도 모르는 창고일세. 자네에게만 보여주는 게야.”

    앞장서는 기에스티오의 지느러미가 빨라졌다.

    “나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창고지.”

    미로처럼 숨겨진 비밀 창고를 향해 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대단한 유물들이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됐다.

    ‘아니야. 그래도 드래곤들을 상대로 그럴 수는 없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머리를 내미는 생각들을 애써 외면했다.

    ‘잘못을 저지른 건 맞으니까.’

    창고 문이 열리고 물빛에 반짝이는 수많은 유물들을 마주한 야스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게 전부…….”

    “그렇네! 이게 바로 우리 세이렌들이 가진 최종 병기나 다름없지.”

    창고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헤엄치는 기에스티오가 달라 보였다.

    “이정도 유물이면 세상을 평정하는 것도 가능하겠어.”

    “하하! 하지만 우린 세이렌이 아닌가. 물속이 아니라면 조금 힘이 들지.”

    순박한 웃음이 순간 조금 달라 보인 것은 기분 탓일까.

    “하지만 자네라면 다르지 않겠는가. 나는 사실 마족들이 너무나도 안타깝네. 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세상 모든 이에게 손가락질받을 만한 죄는 아니지 않은가.”

    기에스티오가 가운데 놓인 왕관 하나를 집어 높게 들자, 왕관에 박힌 보석이 유난히 빛났다.

    “지상엔 새로운 왕이 필요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네.”

    “새로운…… 왕…….”

    “간악한 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은 이제 끝나야 하지 않겠는가.”

    기에스티오가 왕관을 건넸다.

    “하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걸세. 내가 도와주겠네.”

    야스탄이 왕관을 받아 들었다.

    “내가 자네의 책사가 되어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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