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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88화 (188/225)
  • 188화. 시작된 전쟁 (1)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니, 이 상황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정신을 깨우는 약을 써 겨우 버텼던 것도 이제는 한계였던 듯, 잠시 숨을 돌리려 앉은 의자에서 루카스는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물속에서 부유하듯 가볍게 떠오른 몸이 편안했다.

    새하얀 방 안. 그곳에 덩그러니 놓인 문에 의문을 느낄 때쯤이었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그곳에서 은빛 머리를 높다랗게 묶은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누구였더라.’

    낯이 익었다. 마치 언젠가 꿈속에서 본 적 있는 장면처럼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남자의 모습이 익숙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남자가 떼는 걸음이 느릿하게 보였다.

    “안 오더라고.”

    “……?”

    남자의 말도 느릿했다.

    “온다고 했잖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그제야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심각하더군.”

    주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을 구하고 싶었다.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고 말이다.

    “나도 몰라.”

    “…….”

    하지만 돌아온 주신의 천진한 대답에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런데 타라스도 지금 죽을 맛일 거다. 널 회유해야 하는데 자꾸 계획이 틀어지니 말이야.”

    자신이 중요한 열쇠라고 했다. 앞날을 내다본 주신이 남겨둔 열쇠.

    “우린 이길 수 있습니까.”

    “하하. 이겨야지.”

    누구나 아는 쉬운 대답이었다.

    “당신이 내다본 앞날은 어떻습니까.”

    “모르겠네. 상황이 바뀔 때마다 자꾸만 바뀌거든.”

    그가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드래곤들이 져. 이대로 가다간.”

    “…….”

    “내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저 말인즉 돌아오기 힘들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타라스가 당신의 힘을 능가한다는 말입니까.”

    “흠. 능가라… 그보다는 얕은수를 잘 쓴다고 해야 할까.”

    “제가 당장에라도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도울 수만 있다면 무슨 수든 써야 했다.

    “아쉽네. 진즉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힘들어. 내가 없으니 말이야.”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라면 뭐든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제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무엇이든 말입니다.”

    “누구도 믿지 마라.”

    개 같은 소리였다. 누구도 믿지 마라?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불신이 낳는 결과가 어떤 건지 아실 텐데요.”

    “그럼. 알지.”

    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누굴 믿지 말라는 건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할 수 없어. 그렇다면 미래가 다시 바뀌거든. 그리고 그 미래는 언제나 패배라서 말이야.”

    어려운 말들뿐이었다.

    “제가 도대체 뭘 어떻게, 어떻게 해야…….”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괜찮을 거다. 지금 본 미래는 승리니 말이야. 넌 잘하고 있어.”

    애매한 소릴 듣느니 궁금한 것을 묻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족이 둘이나 당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방법이 없어. 아쉽지만.”

    “…….”

    도대체 주신이 찾아온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아무런 답도 주지 않을 거면서 제 꿈에 나타난 이유가 말이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너도 좀 쉬어야지.”

    주신의 손에서 빛이 일자 꿈인데도 불구하고 몸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왔다. 널 좀 쉬게 해주려고 말이야.”

    “…….”

    “좀 쉬어둬라.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지옥일 테니 말이다.”

    “그렇군요.”

    주신이 씩 웃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진짜 시작이니까.”

    “당신이 돌아올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 저를 찾아 주십시오.”

    그러자 주신의 입매가 씁쓸하게 비틀렸다.

    “그래.”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던 그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고생해라.”

    주신이 사라짐과 동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봤다.

    “저, 저게 뭐야?”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와이번 떼.

    “와이번이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에 달하는 와이번 떼가 하늘을 빼곡하게 메웠다.

    -끼오오오오!

    하늘에 울리는 와이번의 울음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냈다.

    “드, 드래곤! 드래곤도 있다!”

    혼비백산해 도망치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 멈춰섰다.

    “드래곤…….”

    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거대한 몸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가장 뒤에서 날던 드래곤은 어느새 속도를 높여 와이번떼의 선두에 섰다.

    -끼오오!

    -끼오오오오!

    골드 드래곤의 꽁지에 바짝 붙은 와이번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아…….”

    멈춰선 사람들의 눈에 공포가 드리웠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과 와이번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

    “로드!”

    의자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고, 주신을 만났다. 그리고 눈이 뜨이자마자 제 앞에 나타난 아만이 손을 뻗었고.

    -파앗!

    그와 동시에 텔레포트했다.

    잠에 빠져 몽롱했던 기분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텔레포트해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전 루카스는 아공간을 뒤져 각성 물약을 꺼내 들이키고, 악마의 포식자를 손가락에 끼웠다.

    “아.”

    어두운 하늘에 의아하기도 전 하늘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 많은 와이번들의 영혼이 모두 잠식 당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아프레?”

    와이번 앞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황금빛 몸체가 정신을 더욱 아득하게 만들었다.

    결국 저렇게 되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슬쩍 고개를 들기도 전에 아프레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쿠오오오오오오…….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아프레의 입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는 엄청난 마력에, 루카스와 아만의 몸이 재빨리 반응했다.

    ‘브레스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둘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아만의 몸이 하늘로 쏘아지듯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밝은 빛에 휩싸였다.

    “안 된다!!!”

    아만의 몸이 본체로 돌아감과 동시에 쏘아지는 브레스.

    -쿠아아아아앙!

    아만의 푸른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아만!!!”

    아프레가 쏜 브레스를 온몸으로 막아낸 아만의 몸에 얼른 방어 마법을 촘촘히 둘렀다.

    -쿠구구구궁! 콰아앙!

    아만의 몸을 뒤덮은 시뻘건 화염이 방어 마법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크아아아악!!!]

    아만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에 찬 괴성이 하늘을 울렸다.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간 아만을 잃을 수도 있었다.

    쉼 없이 방어 마법을 영창하던 루카스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하늘이 울렸다.

    -끼오오오!

    그러자 와이번 떼가 루카스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젠장.’

    주문이 완성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

    -끼오오오오오!!!

    하지만 수천 마리의 와이번 떼가 제게 날아오는 시간이 더욱 빨랐다.

    -콰지지직! 콰직!

    그때, 와이번 떼 위로 떨어지는 수백 줄기의 번개.

    -끼오오오오!

    -콰지지직! 콰직! 콰지지직!

    그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에 힘을 입은 번개의 엄청난 파괴력이 와이번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물의 정령들이 와이번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설마.’

    -쿠르르릉!

    몰아치는 번개와 함께 몰아치는 폭풍우.

    “루키!!!”

    ‘젠장 할!!!’

    그제야 자신이 선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린 루카스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주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아만이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문을 끝마친 루카스의 입이 멈췄다.

    -콰쾅!

    그와 동시에 멈춘 아프레의 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콰콰쾅!

    아만의 거대한 몸이 수직으로 낙하해 아프레를 덮쳤다.

    “심장을 꺼내!!!”

    루카스가 소리치자, 아만의 날카로운 발톱이 아프레의 몸통을 꿰뚫었다.

    -콰직!

    두꺼운 가죽을 한 번에 꿰뚫고 들어간 아만의 발이 아프레의 심장을 움켜쥐고.

    -콰드득!

    그대로 뜯어내 심장을 부쉈다.

    아프레의 몸이 축 처지더니 이내 빛이 되어 날리기 시작했다.

    드래곤에게 가장 불명예스러운 죽음.

    “아만!”

    루카스가 곧장 아만을 향해 뛰어갔다.

    푸른 빛이어야 하는 아만의 몸이 새까맣게 변했다.

    [크어억…….]

    아프레의 심장을 꿰뚫었던 아만의 거대한 몸체가 풀썩 쓰러졌다.

    “젠장!”

    상태가 심각했다. 아무리 방어 마법을 썼더라도 브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엘라임!”

    루카스가 곧장 엘라임의 이름을 외쳤다. 물의 정령왕인 엘라임이라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엘라임이 나타나지 않았다.

    “엘라임!!!”

    다시 한번 간절하게 이름을 부르는 루카스.

    “엘라임님! 엘라임님, 제발 도와주세요.”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넬라가 엘라임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그럼에도 엘라임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아마록, 아마록……! 정신 좀 차려봐라.”

    루카스가 거대한 아만의 머리 앞에 서서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마록 괜찮으냐?”

    [……아니요. 더럽게 아픕니다.]

    아마록의 입이 힘없이 움직였다.

    “그래, 그래. 응? 더럽게 아프더라도 조금만 참아봐라.”

    루카스의 간절한 목소리에 아만이 피식 웃었다. 루카스의 몸통만 한 거대한 이빨이 드러났다.

    ‘저긴…….’

    아만이 입은 상처를 확인한 루카스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이빨 보이지 마라. 무서우니까.”

    눈빛이 떨린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실없는 소리를 뱉은 루카스가 아만의 송곳니를 툭 쳤다.

    [예…… 엘라임 왜 안 옵니까.]

    아만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올 거다. 넬라. 상급 정령을 소환해.”

    “엔다이론.”

    넬라가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을 소환해 아만의 상처 부위를 치료하게 했다.

    ‘이걸로는 안 된다.’

    “넬라. 엘라임을 계속 불러줘.”

    엔다이론의 치료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엘라임이 필요했다.

    “드래곤…… 드래곤이 아만 교수님이야?”

    [여어…… 꼬맹이들.]

    바닥에 털썩 누운 거대한 블루 드래곤이 아만 교수라니.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면서도 꾸벅 인사했다.

    [그래. 예의 바른 꼬맹이들. 이야…… 그 많던 와이번을 다 조졌네.]

    그러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와이번 떼를 모두 처리했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시타타는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엄청나네. 버프도 엄청나던데.]

    “아닙니다.”

    스키르가 멋쩍게 웃었다.

    [넬라, 너는 이제 정령왕이랑 계약도 하고…….]

    “입 좀 닥쳐라.”

    말을 할수록 목소리가 흐려졌다.

    [폴라는…… 이 정도면 번개의 신도 안 부럽겠네.]

    아만 역시 자신이 다친 부위가 어딘지 잘 알았다.

    [로드. 저희 왜 엘라임 안 옵니까…….]

    “올 거다. 엘라임 온다. 곧 올 거니 조금만, 조금만 버텨라.”

    넬라가 꾸준히 엘라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입 좀 닥쳐라. 입 벌어질 때마다 애들 겁먹는 거 안 보이냐.”

    아만을 타박하는 루카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 웁니까?]

    아만의 거대한 눈동자가 천천히 루카스를 향했다.

    “안 운다. 누가 운다고 하느냐. 네 놈이 날리는 먼지가 눈에 들어갔다.”

    아만을 잃을 수는 없다.

    [……흠집만 조금 났어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만의 말이 뜨문뜨문 이어졌다.

    “아만. 정신 붙잡아라.”

    아만의 기다란 꼬리가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엘라임!!! 엘라임!!!!!”

    엘라임을 찾는 갈라진 목소리가 온 숲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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