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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87화 (187/225)
  • 187화. 운명 (2)

    인간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은 바람의 정령왕인 제피로스의 바람보다 빠르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도 놀랐겠구나.”

    오랜만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중 아버지인 시비에 백작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제국에서 마족들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들리더구나. 국가에 귀속된 유물들을 빌려주겠다고 하는 것 같던데.”

    황제도 없고 나라를 지탱하던 중앙 귀족들도 없는 상황. 그런데 도대체 누가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말인가.

    “도대체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제국의 유물이라니. 그중엔 아란트 제국의 국교인 헤르도네 여신의 성유물도 있을 것이었다.

    ‘전쟁의 신인 아스탈의 성유물도 있겠지.’

    게다가 오래전 아란트가 칭제하는 것을 도왔다고 알려진 전쟁의 신 아스탈의 성유물도 있었다.

    “남아있는 대신들이 내린 결정이겠지 않겠느냐.”

    호랑이가 없으니 여우들이 앉아 왕 노릇을 하는 꼴이었다.

    ‘벌써 인간들에게까지 손을 뻗쳤다니.’

    마족들의 움직임은 더 이상 거침이 없었다.

    드래곤들이 이제 완전히 제 아래 있다고 생각이라도 한 건지, 그들은 더 이상 모습을 숨기지도, 행동을 조심히 하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럽더구나. 드래곤들과 마족이 전쟁을 일으킨다니…….”

    그러자 무슨 일인지 몰라 잠자코 듣고 있던 폴라가 놀란 듯 손에 들었던 포크를 툭 놓쳤다.

    “아이고, 폴라. 놀랐느냐? 하지만 걱정 말거라. 우리 시타타는 안전할 것이니 말이다.”

    “…….”

    넬라도 입이 마르는 듯 물을 들이켰고.

    “시타타에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이젠 제법 어른스러워진 스키르는 벌써 영지에 필요한 것을 지원하겠다 나섰다.

    “되었다. 너희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 당신도 참. 왜 애들을 놀래키고 그래요?”

    “내가 실수했구려. 나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한 것뿐인데.”

    블레인의 타박에 시비에가 멋쩍은 듯 샐러드를 슬쩍 뒤적였다.

    “그래도 그렇지. 애들아 다 괜찮을 거야. 백작님께서도 먼 나라 이야기라고 하시잖니. 시타타는 안전할 거야. 특히 백작저는 더욱.”

    블레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곳보다 백작저는 분명 안전할 것이다.

    ‘안전하지 않아.’

    안 그래도 오늘 식사 자리에 참여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그러니 조금이라도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백작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곳만큼은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요새가 되도록 말이다.

    “그래. 백작저는 안전할 거야.”

    아이들의 눈이 자연스레 저를 향하자 루카스가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이들을 지켜낼 것이다.

    ***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즐기는 여유는 여유가 아닌 고통이다.

    루카스는 지금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이러고 있을 시간에 길바닥이라도 뒤져 마족놈들을 찾아내 죽이고 싶었다.

    정원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즐기는 티타임은 여느 때보다 무거웠다.

    “루키. 정말 괜찮을까?”

    폴라가 물어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괜찮다며 우선 안심을 시켜야 할까, 아니면 사실대로 말하고 대비를 해야할까.

    루카스의 눈이 찬찬히 그들을 훑었다.

    스키르는 이미 성인이었고, 폴라도 성인까지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넬라 역시 어엿한 숙녀티가 났다.

    “왜 대답이 없는가. 혹시 괜찮지 않은 건가……?”

    스키르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넬라는 무표정으로 쿠키 하나를 집어 한입 베어 물 뿐이었다.

    “넬라. 무슨 일 있어?”

    언제든 자신을 찾아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주길 바랐지만, 넬라는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밝아졌던 성격은 다시 전보다 더 어두워졌으며, 생기가 돌던 눈은 빛을 잃은 듯 침울했다.

    “아니.”

    넬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입 베어 문 쿠키를 살짝 내려뒀다.

    “그래.”

    하지만 순간 변했던 폴라의 표정을 알아차린 루카스는 마음 속에 울컥 서운함이 솟구쳤다.

    ‘나만 빼고 모두 아는구나.’

    아무리 아이들과의 관계에 소홀했다고 한들 이건 서운해도 너무 서운했다.

    ‘젠장.’

    서운하다는 감정을 느낀 자신에게도 서운했다.

    ‘이깟 거에.’

    저들끼리 알면 뭐 어떻다는 말인가.

    그게 뭐라고 이리도 서운하다는 말인가!

    천천히 숨을 뱉어 서운한 감정을 일단 흩어버린 루카스가 다시 아이들을 바라봤다.

    “뜬금없이 넬라한테는 왜 그런대? 그래서 우리 진짜 괜찮은 거 맞냐고!”

    결정을 내렸다. 이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기로.

    “아니, 안 괜찮아.”

    그러자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게 정말인가? 괜찮지 않다는 게?”

    “그럼 우린 어떡해? 드래곤이 얼마나 무서운데…….”

    폴라와 스키르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다 죽는 건가?”

    넬라가 툭 뱉은 말에 폴라와 스키르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애가 왜 이렇게 삐뚤어졌어?’

    하지만 지금은 삐뚤어진 넬라를 제대로 돌려놓을 시간 따윈 없었다.

    “마족들은 인간을 배신할 거다. 그러니 인간이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드래곤이 아닌 마족이다.”

    “하지만 마족을 돕기로 했다고 했잖아. 아란트 제국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읊조리는 폴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니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비하기 위해 루카스가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천여 년 전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미리 들은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남은 이야기가 있었다.

    ‘파멜라의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오늘 꼭 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

    말을 한번 삼켜낸 루카스가 다시 입을 뗐다.

    “이제 너희는 강해. 스키르도 3서클을 넘어섰고, 폴라 역시 전격 마법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약하지 않다.

    “넬라는 정령왕과 계약한 물의 정령사이니 제국 기사단 하나와 맞먹는 전력이지.”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힘없이 잃지 않을 것이며.

    “그러니 스스로를 더 나아가 시타타를 지킬 수 있을 거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친구를 끌어안고 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여기 시타타에 남아 백작가를 지켜내.”

    “그럼 루키 너는?”

    “나 역시 이곳에 남고 싶지만…….”

    “너 없인 안 된다. 우리끼리 뭘 한다는 말인가!”

    지레 겁먹은 스키르가 소리쳤다.

    “할 수 있어. 스키르.”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를 잃은 비극을 생각보다 잘 견뎠으며,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널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넌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나는…….”

    “맞아. 키르. 넌 강해.”

    루카스와 폴라의 진심 어린 말에 스키르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늦었지만…… 미안하다. 네 부모님을 지키지 못해서. 널 위험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크흑…….”

    결국 스키르의 곪았던 마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죽음에 루카스는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스턴을 살려 보내지 않았더라면, 집을 나갔던 그를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는…… 나는…….”

    스키르의 눈에서 묵었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너무, 너무 보고 싶다… 크흑……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넬라와 폴라가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스키르의 등을 토닥였다.

    “너는 강하다. 스키르.”

    “맞아. 오빠는 강해.”

    “그래. 키르…… 그만 울어. 응?”

    세수하듯 눈물을 거칠게 닦아 낸 스키르가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강하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구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우리 키르 강하다!”

    폴라의 장난스런 말투에 스키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폴라. 너 역시 강해. 마력 분배만 조금 더 신경 쓴다면 백작저를 지키는 데엔 아무런 무리가 없을 만큼.”

    “응! 알겠어. 나도 강해!”

    폴라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넬라. 말 안 해도 알겠지만, 네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력이야. 언제나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

    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냉정하게.”

    사실 필요 없는 조언이었을지도 모른다. 넬라는 이들 중 누구보다 냉정한 상태였으니까.

    “지켜낼 수 있어.”

    그리고 하셀과 아만이 용언으로 이루어진 방어 마법까지 써 준다면, 이곳은 요새가 될 것이다.

    루카스는 이런 일을 이미 머릿속에 수십 번 그려왔다. 그들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낼 방법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니…….

    ‘지켜 낼 것이다.’

    ***

    드래곤들이 그들을 상대할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 마족들도 마냥 놀고있는 것은 아니었다.

    “흐음…… 그래?”

    집무실에 앉아 수정구로 누군가와 대화 중인 마왕 야스탄의 눈은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

    소리 차단 마법이 쓰인 것인지 말소리가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야스탄의 표정만으로도 무언가 재미있는 소식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아, 그보다 저번에 말 한 건 어떻게 되어가나?”

    […….]

    웅얼거리는 소리가 무어라 말을 맺을 때마다 야스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벌써 그만큼 준비가 되었을 줄이야.”

    […….]

    “그러도록 하지. 어차피 인간들이 가진 유물은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으니. 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군.”

    야스탄은 어딘가에 듣는 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짐작은 되어도 정확한 단어는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항상 신경을 썼으며, 누군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에게 전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치밀했다. 그 역시 준비했던 세월이 길었던 만큼 모든 것들을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그래. 내 손에 모든 마족들의 운명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일세.”

    […….]

    “그래. 조만간 내가 직접 가도록 하지. 언제나 자네에겐 고마운 마음뿐이네.”

    수정구가 완전히 빛을 잃자, 야스탄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의 입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몇 번이나 새어 나왔다.

    “병신들.”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만큼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고고한 척 대단한 척 고상한 척. 그 모든 위선을 떨어 대더니 결국 꼴이 이렇게 되는구나.”

    드래곤들은 생각보다 더 멍청하게 움직였다.

    조심성이라고는 없었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때문에 쉽게 승세를 잡을 수 있었지만, 사실 너무 일이 쉽게 풀리니 재미가 없었다.

    처음 게이트를 열 때. 그리고 지상으로 올라와 황제의 몸을 차지했을 때를 빼고는 모든 일이 순탄했다.

    ‘그 인간 놈을 제외하고는 말이지.’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인간.

    마신마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인간.

    야스탄은 드래곤보다 지금 그 인간의 존재가 더욱 거슬렸다.

    ‘엘라임의 계약자라…….’

    게다가 그 옆에 붙어있는 인간 계집 하나는 물의 정령왕의 계약자이기까지 했다.

    ‘이쪽이 더 재밌겠군.’

    지난번에 겪었던 실패는 실패도 아니었다.

    그들의 실력을 얕잡았던 제 작은 실수일 뿐이니까.

    ‘이번엔 제대로 상대해 주지.’

    운명의 수레바퀴가 다시 한번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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